4+4 협상회의가 4월 20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기도지사 경선 방식 이견으로 결렬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와 안동섭 경기도지사 후보는 4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심판 이외에는 그 어떤 선택도 있을 수 없[다]”며 반MB 연대 협상의 재개를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대연합이 모든 판단의 우선 순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공공연맹 등이 주도해 구성한 진보서울연석회의에서도 이상규 위원장은 ‘범 야권 단일화’를 포함시키라고 강요했다.
울산에선 민주당 등과 협상으로 단일화를 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에겐 경선으로 단일화하자고 해 사실상 진보 후보 단일화 노력을 회피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진보대연합을 전략적 과제로, 민주대연합을 전술적 과제로 설명하며 둘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다. 결국 민주대연합이 전략적 과제로 될 거라는 <레프트21>의 경고가 옳았다는 게 당사자들의 실천으로 증명됐다.
비판 없는 지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은 한술 더떠 “반MB 연대는 기존 진보진영의 대통합과 함께 새로운 진보대연합으로서 동일한 위상의 전략적 과제”라고 주장한다.(<진보정치> 463호, “반MB는 옛 ‘비지[비판적 지지]’인가”)
민주대연합이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집권 전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최 소장은 민주당을 미화하면서까지 당권파의 “묻지마 반MB 연대 올인”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최 소장은 “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 연합 노력은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치와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최 소장의 말과 달리 과거의 ‘무비판적 지지’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1987년과 1992년, 아직 노동운동이 독립적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냉전 우파 정부의 집권을 막으려고 자유주의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비판적 지지’ 자체가 아니라, 그 지지가 자유주의 야당을 향한 ‘비판 없는 지지’였다는 데 있다. 당시 정치 무대에서 진보진영은 자유주의 야당의 지원 부대 구실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본가 야당과 전술적 제휴를 하더라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전략적 동맹으로 추켜 세워선 안 된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동맹은 악마 자신, 악마의 할머니 … 와도 체결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우리의 손발을 묶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1
이 비유를 빌어 표현하면, 최 소장의 주장은 ‘대중에게 악마를 천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손발을 묶을 것이다.’ 미화가 성공할수록, 그래서 연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수록, 악마가 본색을 드러낼 때 대처할 능력은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려 자본가 당들과 연합 정부를 꾸린 서유럽 공산당들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다 노동운동을 정치적으로 마비시켜 결국 파시즘에 권력을 내준 경험을 곱씹어야 한다.
진보의 단결
한편, 진보신당이 “묻지마 반MB 연대”를 비판하면서 5+4 협상회의에서 빠진 뒤, 진보적 “반MB 대안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진보신당의 행보는 전혀 일관되지가 않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민주노총 집회에서 “진보대연합을 적극 추진할 테니 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진보신당 대표단은 ‘진보정당 통합 의지를 밝혀 달라’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거절했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진보선거연합’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주로 유시민과 김진표를 겨냥해 “이기는 단일화”를 하자고 한다.
광주에서 반민주당연합을 외치던 윤난실 광주시장 후보는 민주당 예비 후보들과 금호타이어의 '노사 상생 구조조정'을 위한 중재를 하려다 민주노총 광주본부의 항의를 받았다.
사실 진보신당 지도부는 민주대연합을 위한 5+4 회의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핑계로 대며 2) 민주노동당의 “진보대통합”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직후였다. 결국, 지금의 군색한 처지는 진보정당들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진보 양당이 모두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참여하자, 진보대연합 논의도 힘을 잃었다. 3월 10일 강기갑 대표와 노회찬 대표가 만나 “진보대통합 원칙”에 합의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진보 선거연합이 부진하다 보니, 대중의 반MB 열망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 심판론으로 많이 기울었다. 진보정당 지지층 안에서도 반MB 범야권 단일화에는 찬성하는 비율이 70~80퍼센트를 넘는다.(새세상연구소 4월 12일 발표, R&R 의뢰)
물론 이명박 정부가 어렵게 쟁취해 온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고 생활 수준을 하락시키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고 싶어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비판적 투표
그러나 반MB 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반대 경우보다 재집권이 힘들겠다는 안도감은 갖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탄압의 중단이나, 대중이 바라는 개혁의 성취를 뜻하지는 않는다.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진짜 열쇠다. 이 점이 독립적 진보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과제가 더 중요하며, 선거에서 두 노동자 진보정당들이 분열하는 게 잘못인 이유다.
보수 양당 체제를 벗어나 진보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게 더 중요하다. 비록 진보 선거연합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한 곳에선 진보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양당 후보가 경쟁하면 단일화를 요구하고, 안 되면 둘 중에서 더 나은 후보에게 투표하면 될 것이다.
진보 후보가 없는 곳에선 민주당 등의 개혁적 후보를 향한 ‘비판적 투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정책상 차이는 별로 없지만, 민주당이 이긴다면 적어도 광범한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 승리 후 민주당도 경제 위기 등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정부의 노동자 공격에 동조할 개연성이 있다. 그럴 경우 민주노동당의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 트로츠키 본인은 1917년 8월에 코르닐로프라는 우익 장군의 반혁명 군사 쿠데타에 맞서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군사 연합을 맺었다. 그와 볼셰비키는 케렌스키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고, 쿠데타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반동을 막을 힘은 불철저하고 동요하는 임시정부에 기대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노동자들 스스로 혁명을 전진시키는것임을 실천으로 증명했다. 두 달 뒤,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정부가 러시아에서 등장했다. [본문으로]
- 진보신당이 창당 때 내세운 '진보 재구성'은 당시 이념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존재하던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정치연합이 아니라 당 형태로 그 공백을 메우려니 당 자체가 우경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결국 분당으로 세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이 공백을 메우거나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참당 창당, 엔지오들의 민주당 지지 돌변, 민주당의 진보연 등 악재 때문에 오히려 군색한 처지로 몰렸다. 민주노동당이 좌파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가 혼합된 제3세계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면, 진보신당은 서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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