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노력을 잠정 결산한다
문재인은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 평범한 가족의 용기있는 삶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제 국가는 국민들에게 응답해야 합니다.”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적폐 청산 요구를 받아안을 것처럼 넉살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실천을 보면, 문재인 정부 8개월 동안 적폐 청산은 그다지 실현되지 않았다.
물론 청산된 것들이 있긴 하다. 먼저, 박근혜 임기 중에 이미 추진 동력을 상실한 국정교과서가 폐기됐다.
박근혜 퇴진 촛불을 촉발한 민주노총 노동자들의(특히,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의 쟁점인 성과연봉제도 노동부 지시로 중단됐다.
이명박근혜 시절에 국가기관들이 벌인 부패 행각들의 실체가 상당히 드러났다. 이명박의 개인 비리인 다스, BBK도 다시 수사 대상이 됐다.
지지부진한 것들
세월호 2기 특조위는 1기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권한으로 이제야 구성 중이다.
노동부의 행정지침, 임금체계 개악 시도 등 나쁜 노동정책(개악)이 멈췄다고 보기 어렵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라고 통보한 박근혜 노동부의 지침도 폐기되지 않고 있다.
법외노조 철회와 세월호 조사기구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인데도 국회로 (ILO 비준이나 특별법 제정 등) 미루면서 시간만 끌었거나 끌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 경찰 고위 간부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다. 사망 원인 은폐에 함께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론 적폐도 여전하다. 구 여권이 심어 놓은 적폐 인사들이 여전히 보도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정권 교체를 배경으로 파업을 벌인 MBC 정도가 사장 교체 등 성과를 조금 냈다. KBS는 아직도 파업 중이고, YTN노조가 새 투쟁을 시작했다. 이 투쟁들이 잘 되길 바란다.
뒤통수를 친 것들
박근혜가 구속시킨 민주노총 한상균 전 위원장이 문재인의 첫 특별 사면에서 제외됐다. 오히려 이영주 전 사무총장이 새로 구속됐다. 민주당은 2월에 근로기준법을 개악하겠다고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은 정규직화 제로로 불릴 지경이다.
사드는 오히려 배치를 강행했다. 문재인의 경찰은 사드를 추가 배치하려고 주민들을 폭행했다.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적폐를 문재인이 계승한 대표 사례다.
문재인은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세월호 유가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얘기도 듣고 사과와 해결 약속을 했다. 박근혜와는 다르게 보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결과는 용두사미다.
외교부는 위안부 합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했고, 1월 4일에는 문재인이 직접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1월 9일 외교부장관 강경화가 “재협상은 없다”고 발표했다. 재협상(재거론)은 없다는 게 한일 위안부 합의의 알맹이였다!
촛불이 강력할 때 세월호가 인양돼 선체 조사가 시작됐는데, 정작 정권 교체 뒤에 해결된 건 없다. 해경의 적폐 인물들은 승진했고, 해수부는 유골 발견을 숨겼다. 정부 차원의 조사기구 공약도 일방 폐기됐다. 이 기구에 유가족 참가를 보장하고 검찰을 포함시켰다면 수사권·기소권 문제도 해결됐을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중단(탈원전)이 공약이었는데도, 제 할 일을 ‘사회적 대화’로 떠넘겨 공약을 사실상 파기했다. 문재인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과정을 “대화하고 타협하며, 결과를 존중하는 … 촛불이 염원한 대한민국”이라고 자찬한 건 메스꺼운 위선일 뿐이다.
고뇌를 가장한 기만
최근 이명박 때 국방장관 김태영의 고백으로 한국-UAE 간 비밀 군사협력 약속의 실체가 드러났다. 굳이 따지면 헌법을 위반한 정권 차원의 범죄다.
문재인은 이 문제를 덮으려는 듯하다. 청와대 면담에서 UAE 왕세제의 특사인 칼둔은 이렇게 말했다. “양국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가톨릭식 결혼을 했다.” 이에 문재인은 “결혼했으니 뜨겁게 사랑하자”고 화답했다. 이 문제를 덮는 건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수 없다고 한 것과 양상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
UAE 파병 약속은 미국 패권이 흔들리며 혼돈 속에 있는 중동 지역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한국 지배계급의 시도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류 제국주의로서 국가 이익이 촛불의 적폐 청산 염원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 셈이다. 문재인은 우파나 기업주들의 반발이 큰 문제들은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끌거나, 그도 아니면 고뇌를 가장해 실상은 외면하거나 배신하는 길을 택했다.
문재인은 최근 1987년 민중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보고 이 영화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집권 8개월의 실천을 보면 세상이 (개혁으로) 바뀌냐는 질문에 회의적이게 만드는 것은 문재인 정부 자신이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어 사회를 변화시키길 바라는 건 변화를 요원하게 만드는 것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상 모든 주요 개혁들은 노동계급이 아래로부터 투쟁하고 다른 민중이 이를 지지하는 거대한 대중 운동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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