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끝납니다. 후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인 김중수가 내정됐죠. 정권 초기 청와대 팀이었다가 촛불 후 개각에서 외곽으로 나갔던 인사입니다.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할 인사라는 거죠.

이젠 전임 총재인 이성태와 정부가 최근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기를 놓고 논쟁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은행 즉,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논쟁꺼리가 됐습니다.

오늘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이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에 제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한국에선 이른바 관치금융의 기억이 있어 중앙은행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지금 잡음이 인 신임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면서 청와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염두에 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독립은 금리 정책 등 화폐공급에 관해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중앙은행의 정책이 '정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 같은 때, 이 주장은 매우 솔깃하게 들립니다. 정부가 매우 인기 없는 친재벌 우파 정부기 때문이죠. 별로 실력도 없어 보입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운 화폐의 공급과 수요를 다루는 재정정책과  환율정책, 아니면 출구전략 따위는 전문성도 없고 지지층 동향에 휩쓸리는 정치인들이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다 전문 관리들이 국가적 장기적 전문적 안목에서 처리하는 게 나을 듯도 합니다.

그래서 진보 언론들도 이명박 정부의 여러 차례 간섭을 두고 중앙은행 독립을 해친다고 비판했고,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은 정부의 한국은행 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이들은 신임 총재 김중수가 청와대와 친하고, 통화정책 전문가로서 검증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게 그것을 옳게 본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은행 독립성은 원리상 진보진영이 반대해야 하는 정책입니다.

지난 역대 정부들의 관치금융이 여러 관료적 부작용과 노조 탄압 문제를 낳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국가가 주도해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주력 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경로에서 나타는 필연적 현상이었습니다. 국가가 은행을 통해 총저축을 통제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에서 은행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은 이젠 덩치가(덩치와 함께 자신감과 욕구도 함께) 커진 개별 대자본들의 욕구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통제하는 은행에서 빌린 돈은 꼬리표가 붙어 자유로운(?) 투자에 제약이 따르니까요.

중앙은행은 상업은행들에 화폐를 독점 공급하는 은행입니다. 통화 정책에 매우 핵심인 기구입니다. 이런 중앙은행을 선출권자인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부 영향력에 떼내온다는 건 실질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통화주의') 핵심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하나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자본이 중앙은행과 금융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크게 하려는 겁니다.

결국, 은행의 독립성,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그것이 [잘된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출된 정부가 [대중에 책임을 지려고] 정책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를 빼앗으려는 겁니다. 결과적으론 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걸 막는 구실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에 필요한 정부 지출은 주로 복지 지출이잖아요.

1998년 독일 사민당이 슈뢰더를 앞세워 기민당을 물리치고 십수 년만에 집권했을 때, 사민당 정부는 독일연방은행을 통제할 연방정부의 재무부장관에 오스카 라퐁텐을 임명했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은 사민당 좌파였고, 당시 당 대표였습니다. 라퐁텐은 정부 지출을 늘려 신자유주의 정책과 반대되는 정책을 펴려했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해치려 한다는 비난을 시작으로 독일과 유럽 보수 언론들의 맹공격을 받다가 결국 취임 석 달 만에 사임합니다.(사임 압력에 굴복한 총리 슈뢰더와 사민당도 잘못을 했죠.)

한국도 IMF 위기 후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을 독립시키고, 금융통화위원회를 만들어 형식상 독립기구를 통해 금리 등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한계기업들의 도산, 서민들의 불만이 어우러져 정권이 압력을 크게 받은 덕분에 IMF가 강요한 초고금리 정책을 1999년부터는 저금리로 역전되었던 겁니다.


문제는 이 저금리 정책이 카드-부동산-주식(펀드) 거품 정책으로 귀결됐다는 데 있는 거죠. 이명박 정부의 저금리 정책도 똑같습니다. 거품 유지에 목매다는 저금리 정책입니다.

지금 금리 정책 자체는 자본 간에도 이해관계가 틀립니다. 예를 들어, 지금 현금 자산을 많이 보유한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을 바라겠죠. 반면에 부동산 자산을 많이 가진 자본가들은 금리인상에 반대할 겁니다. 아직까진 출구전략 논쟁은 저들의 논쟁입니다.

다만, 소득이 줄어 돈을 빌려 써야 하는 서민들 처지를 봐서 저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거죠.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를 두고 대학생들이 금리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정부도 [기업주들의 영향으로] 대중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려 하질 않는데, 시스템 상으로 어떤 책임도 기층에 지지 않는(선출직 임기와도 관련 없는) 전문관료들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면, 어찌 될까요.

이들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받을까요.

어제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박지연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온양과 기흥의 삼성반도체공장 노동자 중에 같은 병으로 벌써 9명이 죽었고, 현재 투병중인 이까지 더하면 스무 명이 넘습니다. 박지연 씨는 고3 때부터 조기 취업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물한 살에 빛나던 청춘이 시들고 결국 스물셋에 한많은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나 언론들은 보도도 제대로 하질 않죠. 이쯤되면, 누구나 언론계의 삼성장학생들을 떠올릴겁니다. 삼성장학생은 언론계에만 있나요. 장학생은 삼성만 관리하나요? 경제관료들은 모든 대기업들의 핵심 관리 대상입니다.

이들은 공직을 떠나면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정권이 들어서면 고위적 관료로 다시 들어옵니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입니다. 핵심 금융관료였던 이헌재, 윤증현 등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거야말로 진짜 관료주의 아닐가요. 이런 자들에게 중요한 정책 결정을 민주적 통제 수단 없이 넘겨야 할까요.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 무상급식도 반대하고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깎으면서 은행들이 돈놀이하다 위기를 겪자 3백억 달러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해 주면서 지원해 줬습니다. 나쁜 정부입니다.

그렇다고 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한국은행의 시스템상 독립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목욕물 버리다 애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은행가들은 정부 지원 덕분에 [돈놀이 하다 맞은] 경영 위기를 넘겨 놓고는 한숨 돌린 지금은, 다시 막대한 보너스 놀이를 하며 각국 정부들에게 흑자 재정을 유지하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돈놀이 경영을 막고 공공을 위한 서민 금융에 힘쓰도록 요구하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중앙은행 독립이 아니라, 은행 국유화와 공공성(금융의 민주화) 강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합니다. 국유화는 시장주의와 관료주의에 반대해 민주적·민중적 통제를 하라는 요구입니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권력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함축합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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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급식회사의 경영자인 순재와 보석, 이들과 결탁(?)한 교감 자옥, 그리고 이들의 가족인 평교사 현경. 이들은 무상급식에 어떤 의견일까요. 갈비를 나눠 먹기 싫어하는 해리가 무상급식을 좋아할까요. 집없는 신애와 세경에게 전교생 무상급식과 선별 무상급식 어떤 게 좋을까요.

무상급식 문제가 쟁점입니다. 한나라당과 우익들은 ‘사회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그 반대편에선 사상 최대의 연대 기구라는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약칭, 친환경무상급식연대)를 만들었습니다. 무상급식 도입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쟁점처럼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수정 서울시의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무상급식 찬성이 79퍼센트(78.93)나 되네요. 응답자의 절반은 고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져야한다고 답했습니다. 엊그제 출범한 ‘친환경무상급식연대’에 2천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한나라당 일부도 찬성한다죠. 저들의 우려대로 무상급식은 이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요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기도의회의 충돌로 시작한 무상급식 논쟁이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겁니다. 진보 공직자가 해야 할 좋은모범을 보인 거죠. 올 지방선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런 복지 의제가 주도할 듯합니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개별 가정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은 사상 최대인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은 부자에게 웬 무상급식이냐고도 합니다. 그렇겠죠. 부자에게 단체급식은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최상의 식단을 못 준다는 뜻이니까요. 저들은 무상급식을 위해 돈도 내기 싫고, 밥상도 섞기 싫은 겁니다. 

바로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 어쩌구,‘생명 존중 낙태 금지’ 저쩌구 하던 자들이 아이들 밥값 부담 좀 덜어주는 일에 핏대 세우며 반대하는 꼴이 우습네요. 저출산이계속되면 급식 예산 같은 건 금방 줄어들텐데, 뭐하러 애 낳으라고 선동하는지, 참.

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낳은 정치적효과를 우려합니다. 누구나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보편적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은 증세(와 부자증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혜택이 보편적이므로 재원 부담도 국가와 사회의의무가 되니까요. 그들은 무상급식 만큼이나 무상급식 도입 후가 두려울 겁니다.

저들이 말하는 선별 급식(잔여주의 복지)은 기본소득 관련글에서 지적했듯이 사회적 낙인 효과가 있습니다. 시혜 대상이라는 게 떳떳하게 내세울 꺼리가 못 됩니다.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가난을 유지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설픈 소득 향상이 혜택을 앗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들은 경기도선관위를 앞세워 무상급식 지지 서명이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탄압에 나서는 한편, 한나라당 이름으로 선별 급식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선별 복지(잔여주의 복지)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 정책입니다.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되, 나머지는 개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겁니다. 자본가들은 당연한권리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하나 주면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거지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각주:1] 

덧붙여, 기업의 구실을 살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정부가 보장하는 무상급식은 당연히 직영급식이 돼야 합니다. 지금 다수 학교가 위탁 급식입니다. 급식 회사와 계약해서 외부 민간 기업이 급식을 공급하는 거죠. 이 급식 기업들이 LG나 CJ 같은 대기업들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대기업의 노다지 시장을 위협하는 주장입니다.

위탁 급식은 기업 수익성을 위한 조치라는 점 말고도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입찰 계약제는 저가 입찰을 유도하므로 급식업체 직원들의 임금과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 급식업체에서 해당 학교에 보낸 직원들은 일단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기업이 돈을 버는 동안, 파견노동의 불안정성, 급식의 질이 모두 사실은 악화됩니다.

이런 식의 신자유주의(복지)야말로 지난 30년간 경제를 망치고 인구의 다수를 고통과 절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는 거품 호황이 사실은 개인들의 소비 부채에 의존해서 유지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소득은 역재분배됐는데, 복지는 비효율적 투자라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육과 복지 예산이 조 단위로 삭감됐습니다.   


반면, 무상급식 찬성파들은 여론을 등에 업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17일에 이정희·조승수 등 민주노동당·진보신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모여 의무교육 대상자 무상급식을 위한 학교급식법 발의를 했습니다. 헌법이 규정한 “의무교육의 무상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고 합니다.

‘부자 급식’어쩌구 하는 자들에게 급식은 교육 과정의 하나라고 반박한 것입니다. 전국 초중교 전면 무상급식 실시에 드는 예산 추정치는 1년에1조 7천억 원 정도라고 합니다.(국회 예산처) 이명박이 4대강이나 국정 홍보에 쓰는 돈을 생각하면, 이 예산은 진짜 별 거아닙니다. 오세훈의 서울시 예산을 보면, 시정 홍보 예산이 급식 예산의 거의 열 배더군요. 민주노동당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는 지금 서울시 예산이면, 무상교복, 반값 등록금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쉬운 것은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라는 것이겠죠. 고교생 때야말로 먹어도먹어도 배고플 땐데....
보편적 의무 (공)교육 자체가 노동계급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무상급식도 노동계급의 문제기도 합니다. 꼭 돈 문제만은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 노동자는 좀더 삶의 여유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보편적 권리 의식을 교육받는  노동계급 아이들은 훨씬 더 사회적 자신감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 겁니다. 직영급식을 하게 되면, 급식 관련 직무에 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똑같은 비용이라도 직영이면, 위탁업체에 들어가는 관리비용이 줄고 식자재 구입을 더 책임있게 할 수 있으므로 친환경 급식으로 노동계급 자녀들 영양 상태도도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정치인들도 매우 열심히 여기에 참여한다는 겁니다. 무상급식 실현하겠다는데 과거를 들춰서 미안하지만, 집권당 시절에 민주노동당이창당 때부터 요구해왔는데도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오히려 친환경 급식을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죠.

그런데, 지금은 김진표마저 “무상급식은 전국적 의제”라며 무상급식 찬성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교육부총리 시절에 무상급식에 반대했죠. 이는 중도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민주당이 올해 다시 내놓은 뉴민주당플랜은 비정규직 사융사유 제한을 두자는둥 진보 성향을 강화했습니다.

5+4협상 국면에서 “가치연대를 추구하자”는 진보신당의 목소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는 이런 상황도 조금 작용했다고봅니다. “무상급식” 의제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등이 먼저 핵심 과제로 제시했지만 지금 더 큰 세력이 자신의 의제로 삼으니까 역시 묻히네요.[각주:2]

민주당안의 무상급식 찬성파 중 천정배·이종걸 등과 유시민 등은 자신들의 특정한 복지 전략(논리)에 바탕한 듯합니다. [각주:3]

참여정부는 유시민이 복지부장관일 때, “사회투자 국가(정책)론”을 국가복지노선으로 채택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정권이 레임덕으로 들어간데다(한나라당이 조금의 복지 확대도 반대했죠) 주무장관인 유시민이 국민연금 삭감에만 열을 올려서 동력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사회투자(국가)론" 영국의 신노동당이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제시한 복지정책 묶음입니다. 
복지가 경제 성장과 배치되는 비생산적 지출이 아니라 성장과 연계된 투자라고 말합니다. 복지를 투자로 보는 개념은 “결과의 평등”(고전적 복지국가) 대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출발선을 맞춰줘야 한다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이 노선은 아동·교육 복지를 매우 강조합니다.[각주:4] 영국의 블레어 정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늘어난 복지 부문이 아동급여 액수와 아동보육 예산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듯이 고용 분야에선 기존의 실업급여 지급보다 재교육과 재취업 지원에 예산을 주로 쓰죠. 그것이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면서 인적 ‘자원’의 질을 높이는 ‘투자’니까요. 

15일에 열린 복지국가 제안대회에서천정배가 발표한 교육 분야 발표문의 제목은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복지’이고 ‘최선’의 투자이다” 였습니다. 17일 학교급식법개정안 발의 기자회견문은 민주당 쪽에서 작성한 듯 보이는데, "무상급식의 전면실현을 이뤄내는 과정은 건설토건사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대체하는 ‘사람중심의 역동적 성장전략’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장주의의 상식에 나름 부합합니다. 현실에서 제3의 길이 거부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과 복지의 조화를 이룰 거라는 앤서니 기든스의 말은 틀렸습니다. 도리어 경제 성과와 관계 없이권리로 제공돼야 하는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이런 복지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동 복지를 늘린 대신, '투자 효율성' 없는 다른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희생됐습니다.

한편, 교육 투자가 성장을 위한 인적 자원 투자라면, 교육은 경제의 하위 개념이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각주:5]. 복지의 관점에선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겠지만, 이런 인적 자원 '투자'의 관점에선 학생들이 권리와 (수혜의 대가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라는) 의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수월성 교육과 돈 되는 학문의중시, 규율의 강조가 뒤따릅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진영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확대한다는 취지에서 무상급식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습니다. 보편적 복지제도는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복지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급해줘야 할 의무라고 규정하는 겁니다. 사람들에겐 당연한 권리가 되겠죠.

그래서 이런 전략에선 무상급식 도입이 끝이 아니라 이를 디딤돌 삼아 국가부담 증가를 위한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다른 복지제도를 늘리라는 요구로 일관되게 나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아동·교육 복지에 특화된 사회투자국가론보다는 '확장성'이 크다고 할까요.

어떤 취지에서 도입되든 저는 무상급식에 찬성합니다. 무상급식 찬성파의 세력이 커진 것도 환영합니다. 비록 하이킥의 순재 가족들은 좀 힘들어 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개혁 요구라도 사람들이 뭉쳐서 행동하며 쟁취하려 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지지자가 많아져야 대중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고, 요구를 쟁취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요구로 뭉친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선 요구 실현 방법론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대차게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주들과 조중동, 이명박 정부는 보편적 무상급식 같은 초보적 개혁조차 극렬 반대하는 더러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을 대화와 토론으로 설득하는 데 주력하려면. 지난해 등록금 인하 논쟁시 이종걸의 협상이 보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각주:6].
저들이 버티는 건 현실의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인데, 그 권력을 약화시키는 투쟁 없이는 협상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세력관계에 변동이 생겨야 저들이 버틸 힘이 줄어듭니다. 지금 출발은 좋습니다.

개혁 요구를 함께 내놓아도 이를 실현할 방법론에서 차이가 나는 건 '지향점으로서 대안'(=이념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이 정책 대안 뿐만 아니라 이념적(거대담론) 대안 제시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까닭입니다.


  1. '무상급식'이 아니라 '책임급식' 등으로 표현하면 반발이 적을 거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마케팅 차원인지, 프레임론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을 헷갈린 거라고 봅니다. 단어를 바꿔 홍보했다고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부자들과 이 정부는 단어가 아니라 내용에 반대하는 겁니다. '책임급식' 표현도 나름의 효용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복지가 '권리'라는 생각을 더 늘리려면 이런 인기 있는 쟁점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처음부터 너무 온건한 의제를 잡은 게 문제 아니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복지가 완전 꽝이고 기득권 보수파가 꼴통들인 한국의 객관적 현실 탓으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3. 정동영은 최근 '역동적 복지국가'가 앞으로 자기가 내세울 정책브랜드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종걸·심상정이 유시민을 두고 '무상급식 반대'라고 비판했던데, 요건 좀 실수라고 봅니다. 유시민은 예산 조정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걸리니 단계별로 실시하자고 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국정 운영 경험을 과시하려 단계별 실시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으로]
  4. 민주당 이종걸이 대학 등록금 문제에 열의를 보인 것도 이와 연관있는 건 아닐까요. [본문으로]
  5. 애초에 이런 의도가 사회투자국가론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제 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에서 고전적 복지국가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본에게 일부 복지 분야(아동과 교육처럼 어차피 자본에게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투자 유인이 있는 분야)를 자본의 재생산에 도움이 되거나 투자 가치가 있는 분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자본의 신자유주의와 타협하려 한 '제3의 길'은 진보와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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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이 1라운드 승리를 거뒀는데, 금호타이어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강행할 기세입니다. 금호타이어 사측은 오늘 1천1백99명 정리해고를 신고했다고 합니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키려면 양보안을 낼 것이 아니라 최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금호타이어 부실에 노동자는 조금도 책임이 없습니다. 쌍용차처럼 점거 파업도 해야 합니다. (☞ 관련기사: 한진중공업 승리, 금호타이어 투쟁, 쌍용차 경험)

지난해 쌍용차 파업 당시 일부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의 노동정책을 배워야 한다는 기사들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겨레>도 관련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고용을 두고 극단적 대립을 하지 않을 상생의 대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 쓰고 보니 마침 덴마크 총리가 오는 10일 방한한다는 군요)

덴마크의 노동시장 정책은 황금 삼각 모델로 불립니다. ①해고의 자유와 ②관대한 복지(실업수당), ③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세 가지 정책이 균형을 이뤄 노사 모두 만족한다는 겁니다.

① 덴마크 기업에서 해고는 한국보다 쉽습니다.
② 실업 노동자에게 정부는  기존 급여의 70~90퍼센트 수준의 실업수당을 4년간 줍니다.
그런데 그냥 주는 게 아닙니다.
③ 1년은 그냥 주고 3년은 정부가 제공하는 재취업 교육과 직업 알선에 성실히 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의 유연안전성'이란, 안전망이 있으니 쉽게 자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재취업시킨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사회민주주의의 신종인 '사회투자국가(이나 정책)'으로 부르거나, '제3의 길'의 한 변형으로 봅니다. 이념상으론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정책을 세우는 게 사회민주주의인데, 이 정책은 기업주와 시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관점에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도 이런 덴마크 모델을 도입하려 "사회투자국가(정책)"라는 담론으로 먼저 제시한 적이 있었고, 친기업주 언론들도 긍정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한국은 고용의 유연성 즉, 해고의 자유가 너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편에선, 온건한 진보 학자들 중에도 이 모델을 선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연성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되기도 했거니와,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안정성이라도 확보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된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1997년 전과 비교하면, 취업 노동자 수는 그리 늘지 않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몇 곱절 늘었습니다. 정규직이 잘린 자리를 비정규직이 채운 경우가 많은 겁니다. 고용 유연성이 이미 높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실직 후 소득안정성이 OECD 안에서 최악입니다[각주:1].

논리적으로 이미 유연성이 많이 확보된 나라에서 유연안정성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건 안정성 추구론자들이 적극 나서야 하는 문제인데, 이 나라에선 거꾸로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덴마크 모델의 허점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통상적 경기변동 대응력이 우수할 것 같지만 사실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정책의 가장 큰 허점은 경제 위기 때 드러납니다. 지금 같은 장기 침체기엔 더 심하겠지요.

경기 후퇴로 일자리의 절대적 규모가 줄어들 때, 이 모델은 무기력합니다. 해고가 쉽기 때문에 실업자는 늘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이 재취업할 일자리는 적습니다. 2008년 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후폭풍으로 지난해 덴마크는 인구가 5백60만 명인데, 실업자가 7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실업자가 빨리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실업수당을 줄 기금이 부족하게 됩니다. 실업 노동자들은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당하게 됩니다. 이미 덴마크 정부는 실업수당 기한을 2년으로 줄이려합니다. 실업수당 액수 상한선도 생겼습니다.

이 모델에서 기업주에게 해고는 권리지만, 고용은 의무가 아닙니다. 고용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개인들이 합니다[각주:2]. 일자리 창출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안정성의 후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덴마크 정부가 1994년 이 유연안정성 정책(황금삼각모델)을 도입하기 전에는 실업수당을 무기한 지급했습니다. 수급 기한을 4년으로 줄인 뒤에도 처음엔 조건 없는 소득보장이었지, 조건부 지급이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복지국가의 후퇴인 겁니다.(유연성의 보상으로 안정성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안정성만 후퇴한 셈입니다.)

게다가 개인을 해고하는 게 자유롭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이 약화되고 개인들로 파편화될 개연성도 큽니다.

친기업주 언론들이 덴마크 모델을 찬양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유연안정성' 모델은 절묘한 균형 정책이거나 제3의 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에 복지국가의 포장을 씌운 것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복지 비용은 정부 재정에서 나옵니다. 정부 재정 수입 즉, 세금을 누가 많이 내느냐 하는 것도 복지정책의 진보성을 평가하는 간접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2004년 기준으로 총 조세 수입에서 소득 역진적 간접세인 소비세가 32.7퍼센트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개인소득세가 절반입니다. 법인세는 6.5퍼센트밖에 되질 않습니다. 노사가 분담하는 사회보험료에서 기업 몫이 4퍼센트입니다. 총 조세수입에선 0.1퍼센트입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덴마크의 기업들은 해고는 맘대로 하고, 실업자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비용은 사회에 떠넘기고 있다는 겁니다. 법인세율 자체가 OECD 안에서도 낮은 수준입니다.(한국보단 살짝 높습니다)

정부 재정 수입에서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이 낮고 간접세인 소비세 비중이 높은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가 유사합니다. 차이나는 부분은 덴마크가 개인소득세 비중이 높은 대신, 스웨덴은 연금 등 사회보험에서 기업주가 부담하는 몫이 크다는 겁니다.

북유럽 복지모델도 기업들에겐 상당한 수준에서 규제 완화와 이윤 보장이라는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거죠.

결국, 유연안정성 제도 도입론은 노동자들에겐 사기극입니다. 덴마크 모델 찬성파들은 덴마크의 실업률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매우 낮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긴 미국발 거품 경제 때문에 수출 중심 국가들이 모두 외형적으론 성장을 하던 때입니다.

결론은 덴마크 모델은 대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해고 금지법을 제정하고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늘릴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부도기업은 공기업화해 고용을 보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이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시대에 진보진영은 그 이상을 내놓아야 합니다. (☞ <레프트21>이 제시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

경제 위기 시대에 실업에 저항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일자리를 줄이는 정책이 청년 미취업자들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기업주의 이익과 노동자들의 삶이 충돌할 때, 노동자들은 과감하게 노동자들을 살리는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행동해 삶과 권리를 지키지 못하면 누구도, 친기업주 언론이 칭송하는 어떤 모델도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노동자들은 삶을 위한 투쟁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범한 다수에 속하는 우리는 노동자들의 단호한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1. OECD가 최근 발표한 ‘2009년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OECD가입국 중 비교가능한 29개 국가의 ‘순임금대체율(근로시 순소득에 대한 실직시 순소득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은 30.7%로 세번째로 낮았다. 이는 29개국의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 중위값인 52.2%에 비해 21.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국보다 실직 1년차 순임금대체율이 낮은 국가는 미국(27.8%)와 영국(28.4%)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실직 5년차까지 순임금대체율 28.4%가 유지돼 실직시 소득 안전성은 높은 국가에 속했다. 반면 한국은 실직 2년차부터 순임금대체율이 0.3%로 급락해 실직후 혜택이 2년차 이후에도 지속된 26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특히 실직 5년차까지의 평균 순임금대체율은 6.3%로 미국(5.6%)에 이어 29개국 중 두번째로 낮았고, 29개국 중위값 28.4%와 비교해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기업의 해고비용을 정부가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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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세계적 곡물 풍년 속에 10억 명이 아사 위기

             식량 위기를 둘러싼 신화 벗기기


어제 21세기의 빈곤을 두고 토론하는 포럼에 다녀 왔습니다.

한 대학생이 "이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선이나 구호 활동은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듯 한데 구조적으로 가난을 해결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추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참석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자선단체 봉사활동을 해 봤습니다만, 봉사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은 준종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기부라도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인 자선 활동은 아쉽게도 결과도 소박한 게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굶고, 집이 없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그런 가난의 문제를 '없애지' 못한다는 겁니다. 가난의 원인을 찾아 없애야 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란 끝이 없는 일이어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라고 뜻풀이가 돼있습니다.

요즘은 이 속담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 투자를 소홀히 하는 정부를 변호하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즉, "가난(한 개인)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거죠. 원인이 개인에 있든, 해결책을 개인이 찾아야 하든, 가난은 개인의 문제라는 겁니다. mb스런 발상입니다.

저는 이런 해석이 자본주의적 해석이라고 봅니다. 진짜 뜻은 옛 시대엔 정말 가난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아)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흉년과 홍수 등으로 기근 상태에 내몰린 농민, 소작농들이 왕이나 양반 지주에게 그나마 남은 식량을 다 빼앗기고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광경은 정약용의 책 등 여러 기록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던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는 사회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생산력이 높지 않았습니다. 왕의 탐욕은 개인이 소비하고 누릴 수준, 더 많은 신민을 거느릴 군대 양성 목표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게 자본주의에 와서 바뀝니다. 자본주의는 기업주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무한정 뽑아내려는 시장 경쟁의 압력이 생산을 추동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미 1984년에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당시 농업 생산력이 인구 1백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인구로 쳐도 갑절이나 되는 양입니다. 오늘날에는 고기와 야채 등을 빼고도 곡물로만 전 인류에게 하루 3천5백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성인들에게 권장되는 하루 영양분은 2천5백 칼로리 정도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배고픔은 더는 세상에 먹을 게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식량을 쌓아놓고도 이 지구상에선 오늘도 열 살도 안 된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고 10억 2천만 명이 아사 위기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에선 지금 5천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6백만 명이 법정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갑니다. 배고픔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선 인구 절반이 남의 집에서 살고 극빈층은 판자집이나 심지어 동굴에서 사는 사람도 있답니다. 부동산 1등이 집을 1천83채나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소수의 막대한 풍요 속에서 다수를 빈곤의 바다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금융자본들은 어려운 후진국에 돈을 꿔주고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란 제시해 나라 전체를 외채 갚기에 종속시킵니다. 공기업을 팔고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산업의 초점은 당장 수출해서 갚을 달러를 만들 수 있는 단일 작물 재배나 천연자원 수출로 이어집니다.

이런 곤경에 처한 나라들이 많기에 공급 과잉으로 수출 가격은 하락해 다시 타격을 받습니다. 사탕수수 같은 몇몇 작물들은 물을 고갈시켜 환경 파괴와 사막화를 낳기도 합니다. 천연자원은 헐값에 고갈되고, 노동력과 돈은 수출 농업으로 몰려 산업 기반은 오히려 붕괴합니다. 1980년대에 IMF에서 돈을 빌렸다 국가경제의 3분의 1이 코카 잎 재배와 수출에 의존하게 된 볼리비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반면, 선진국에선 후진국에서 오는 낮은 가격의 수입품을 배경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게 되고, 후진국의 값싼 농산물과 경쟁하도록 자국의 다국적 농기업들에게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쥐어줍니다.이 돈은 가난한 이들에게 쥐어짠 세금에서 나옵니다.

카길이나 몬산토 따위의 다국적 농기업들은 특허낸 종자로, 비료 공급 독점으로 이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후진국 농민들을 다시한번 쥐어 짭니다. 후진국의 정부 관료와 부자들은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현지 법인 경영자 등 선진국들과 다국적 자본들의 앞잡이가 돼 떼돈을 법니다.그래서 선진국에서나 후진국에서나 친기업 정부들에 맞서 싸우는 운동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국제 이자 놀이로 돈을 벌던 다국적 기어들은 제조업 등에서 이윤이 맘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최근에 원료와 식량을 투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최근의 식량값 폭등은 이 때문입니다. 식량은 기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안전한 투자 대상이라고 본 겁니다. 최근엔 식량을 연료로 쓰는 이른바 바이오 연료가 식량 가격을 올리고 먹는 용도로 가야할 식량을 축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보낸 지난 30년은 세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주는 과정이 특별히 두드러지는 시기였습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가난의 문제를 더 현실적인 두려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위기에서 한숨 돌린 국제 지배자들은 다시 신자유주의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쌀밥에 고깃국"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건 북한 정부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정부들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막대한 식량과 재화가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은 소수의 독점과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인 식량이 상품으로 거래됩니다. 돈이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그 돈을 누가 통제하고 있냐는 겁니다.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경쟁시장이 이런 재앙을 낳고 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시장 경쟁에 탈락자를 위한 배려 따윈 없습니다. 경쟁은 승자 독식 구조를 강화합니다. 경쟁이 독점을 낳고 사람들을 (시장 경쟁력이란 기준으로) 획일화하고 (공공을 위한 의사결정에서) 다수를 배제합니다. 독점기업들끼리 벌이는 피튀기는 경쟁은 국가를 끌어들여 끔찍한 전쟁을 낳기도 합니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은 주기적으로 경제 위기를 낳습니다. 경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 넣습니다.

그래서 시장 안에서 정의를 찾아보려는 공적무역 운동은 좋은 의도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막대한 물건과 식량을 쌓아놓고도 일자리를 빼앗고 사람들을 굶기고 죽도록 내버려둡니다. 재앙적인 가난의 문제는 국내에서나 세계 차원에서나 자본주의 탓입니다. 그리고 이 질서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권력입니다. 이들은 가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심에서 없애는 걸 더 선호합니다. 용산참사가 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이 가난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모든 정의로운 노력들은 자본주의를 끝장내려는 운동과 만나고 엮여야 합니다. 이 노력을 효과적이고 헌신적으로 추구할 변혁적 정치단체는 필수 요소입니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이런 네트워크는 국경 안에서 이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는 구실을 하는 국가권력과 맞서야 하고, 자본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노동계급' 운동과 만나 이들이 스스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제가 볼 때 21세기 자본주의에겐 두 천적이 남아 있습니다.

자연의 복수, 그리고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민중권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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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14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농수산위) 전체회의에서'4대강 관련' 예산인 '농업용 저수지 둑높이기' 예산을 한나라당과 합의로 통과시켰습니다.

어제 저녁 <민중의 소리>와 <오마이뉴스> 등에 올라온 기사들을 보면 이 합의가 야당 공조에도 파장을 주는 듯합니다.

통과 내용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된 전국 96개 '농업용 저수지 둑 높이기' 예산 4천66억 원이 모두 통과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민주당 이낙연 상임위원장의 의사봉을 붙들고 항의했다는데, 양당 합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이 결과에 놀라는 것은 이 농수산위의 위원장이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라는 겁니다. '날치기 통과'라는 MB 시대 '상식'이 깨진 거죠.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민주당은 의석수도 딸리고 체력도 딸리지만 독주를 막는 야당 공조의 큰 형이라는 상식.

이번 농수산위 사건에서 이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상식인지 잘 드러났습니다.

이 문제로 민주노동당, 운하백지화공동행동 등 진보 단체들이 비판하자 민주당 일각에서 이낙연을 비판했는데, 본인은 꿋꿋하다고 하는군요. 이낙연은 4대강과 관련 없는 물관리 대책 예산이며 이번 [합리적] 결과를 토대로 여야 대화 국면이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합니다.(오마이뉴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 보를 설치하는 게 홍수 저지 등에 별 효력이 없으며 오히려 물 흐름만 왜곡해 새로운 환경 파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낙동강 공사 중에 피부병에 걸린 물고기들이 나오고 있다는데, 4대강 예산은 무조건 전액 삭감을 목표로 '싸워야'합니다.

이미 제 글에서 몇 차례 민주당의 4대강 예산 방침이 전액 삭감이 아니라 '불필요한 예산 삭감' 방침이라 일관되지 않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20호, MB 예산 뒤집어야 /블로그 MB의 예산 사유화)

민주당이 발행한 '4대강 사업 실체 20문20답'이란 자료집의 '민주당의 대안'이란 항목을 보면,"'대운하’의심사업, 불필요하거나 효과가 의심되는 사업예산은 전액 삭감" 으로 조건부 삭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홍수, 물부족 등에 대비하는 수자원 관리는 필요하다는 거죠. 이것은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재난 대비 사업인 것처럼 홍보하는 상황에서 사족인 듯합니다.


4대강만 그런 게 아닙니다.

며칠 전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에 반대하는 당론을 정했다면서 파병반대 결의안 서명에 빠지고 기자회견에도 불참했습니다. 파병에 찬성한다는 소속 의원들을 강제하지도 못하구요. 애초 파병을 시작한 것도 민주당 집권 시절이죠.

지난해엔 촛불항쟁으로 이명박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을 때 이명박의 소고기 협상에 면죄부를 주는 가축법 개정안 협상에 합의해 촛불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2월엔 미디어법을 6월까지 표결처리한다는 합의를 해 언론노조와 언론지킴이들을 힘빠지게 했죠. 7월엔 한나라당의 안에서 소폭만 바꾸는 미디어법 합의안을 내놓고 심지어 박근혜 안도 합리적이라고 칭찬했지요.

대운하 반대한다고 했는데 막상 경인운하엔 소속 지역구 의원들이 찬성했고, 지난 달엔 민주당 소속 지자체 단체장들이 4대강 기공식에 참석해 MB어천가를 불렀습니다.

10.28 재보선에선 한나라당에 공천신청 했거나(김영환), 한나라당 도의원 출신(이찬열)을 버젓이 공천하고 나머지 야당들에게 자기 후보로 단일화하라는 떼를 썼죠.

쌍용차 파업은 민주당이 집권 시절, 상하이차 기업에 매각한 것이 문제의 발단인데, 쌍용차 조합원들이 MB의 특공대와 사측 구사대에 포위돼 살인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을 때 민주당은 자신들의 원죄를 사과하지도 진압을 막으려는 실질적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집권 시절, 삼성 재벌과 강부자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자신들이 여당이고 국회 다수당일 땐, 친부자 정책들을 추진하다 이제 소수파 야당이 되니 정권을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결정적일 때 타협하고 후퇴하며 과거는 반성하지 않는 것이 민주당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그들의 反MB엔 진정성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여전히 민주당은 국회 등에서 몇몇 악법 저지 공조에 함께 할 수 있지만, 반MB 전선에서 결코 1백 퍼센트 믿어서는 안 되는 동맹자인 겁니다.
민주당이야말로 反MB 진영의 제5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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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동자대회 후기 글에서 한국노총 지도부가 사실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제 항복 선언은 이런 우려가 현실로 된 것입니다. 최악의 결과가 됐습니다.

쟁점이 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의 경우, 전임자 임금 지급은 사용자 쪽에서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 쪽에서 요구했던 사항입니다. 이것이 패키지로 엮이면서 서로 유예에 합의해 왔던 겁니다. 때문 암묵적으로 때론 공개적으로.

그런데 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만 따로 떼서 밀어붙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대기업들이 두 쟁점을 놓고 이해관계를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내세웁니다.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면 주동자를 납치하고 잽싸게 두세 명이 가입한 가짜 노조를 설립 신고합니다. 어느 곳은 아예 미리 가짜 어용노조 설립신고를 미리 해놓기도 합니다. 기업별 복수노조가 금지된 상황에서 이런 '무노조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무너집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탄압과 검경의 비호 속에서도 지금도 삼성에 노조를 만들겠다는 노력[각주:1]이 안팎에서 끊이지 않으니 기업별 복수노조의 허용은 삼성 신화에 균열을 일으킬 겁니다.

반면, 현대차그룹 같은 경우, 이미 강력한 초대형노조가 조직돼 있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노조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지요.

현대차 정도의 조직력이면 복수노조가 생겨도 친사측 노조가 다수파 노조가 되긴 쉽지 않습니다. 사측 탄압으로 무너진 노조들도 많지만 훨씬 더 많은 노조들이 온갖 음모와 분열 술책, 탄압을 뚫고 민주노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야 간혹 엉터리로 바뀌기도 하지만요.

반면 복수노조 금지에 관심있는 삼성은 기업 내에 강력한 노조가 없기에 전임자 임금 문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가 동시에 허용되면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바라는 상황이 되는 것이고 둘 다 유예가 되면 삼성이 바라는 상황이 됩니다. 그 점 때문에 이 패키지를 그동안 정부가 밀어붙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복수노조 설립시 창구단일화 방안은 그래서 이런 대기업들 간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밀어붙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하면서 전임자 임금은 노조에서 지급한다고 하니 기업주들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할 상황이 되버린 겁입니다. 정부와 기업주에게 반대한다더니 난데없이 정부와 삼성, 현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안을 노동계에서 먼저 내놓은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 항복 선언으로 얻을 수 있다는 그 어떤 실리도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 항복 선언으로 정부와 경총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대국민선언이 배신이자 굴욕적인 항복문서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장 조합원의 처지에서 그렇습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저버리고 노동자대회와 찬반투표로 모인 조합원들의 분노와 투지를 비민주적으로 짓밟았습니다.

복수노조 허용을 사실상 반대하며 조합비보다 정부 지원에 더 의존해 왔던 노총 지도부 주류파로선 '항복'이 아니라 절묘한 타협책이었을 겁니다.

1천 명 이하 노조는 노사 자율로 한다는 한나라당 중재안이 나왔다는데 중소기업 노조가 많은 한국노총 지도부로선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국노총 소속 대기업노조를 포함해 나머지 노조와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결사의 자유를 제물로 바쳐 자신들의 안위와 입지를 굳히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쉬이 흘러가진 않을 겁니다.

한국노총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내부적으로도 큰 반발에 부딪혀 있습니다. 특히 경총과 논의 과정에서 1만 명 이상 대형 노조는 즉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실행하고 나머지는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별로 시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흘러 나오자, 한국노총 소속 대형 노조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노동자대회에서 각각 수천 명을 동원했던 은행권 대형 노조들[각주:2]에서는 조합원들이 한국노총을 탈퇴하라고 난리입니다. 이들 노조의 집행부는 이명박의 노동탄압의 본질이 결국 '대기업 노조 죽이기'였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석춘 지도부의 선언은 전임자 임금 노사 자율 쟁취와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연맹들과 지역에서 임시 대대 소집과 지도부 사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토요일(11.28) 공공부문 양 노총 공동집회도 개최했던 공공연맹 노조들도 반응이 안 좋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총 중앙은 연락도 잘 안되고 지도부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무총국 간부들도 통화하기 힘듭니다. 이번 굴복 선언이 한나라당 점거 농성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조합원들은 "항의하라고 농성 보냈더니 그 안에서 포섭되서 돌아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노총 지도부도 자신들의 존재 근거 뿐 아니라 현장의 불만 때문에 투쟁을 시작했지만 양보 없는 정부와 노동운동 안의 압력에 샌드위치가 되서 갈팡질팡한 듯합니다. 재정을 크게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에게서 독립해 억압적인 정부와 맞서 싸우는 것은 두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예전부터 한국노총이 투쟁 노선을 펼 때 노총의 보수파 지도부에겐 뿌리 깊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투쟁을 해야 할 때 안 하면 불만을 품고 소속 노조가 민주노총으로 갑니다. 그래서 그들을 품으려고 투쟁에 나서면 투쟁으로 자신감이 오른 노조들이 또 민주노총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복수노조 반대 논리는 경총의 논리와 같지만 보수파 지도부 자신들의 딜레마(이자 이해관계)기도 합니다.

이번 노동법 투쟁이 중요했던 이유는 수 년 만의 양 노총 공조 투쟁이라는 점, 전반적인 노동탄압 기조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 점, 공기업 부문 공동 투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특히 이명박이 4대강, 세종시, 한상률게이트, 철도 등 노동자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 노총 투쟁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석춘 지도부의 항복 선언은 아쉽고 열받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임자 흔적 지우기에 열중하던 이명박은 또 노무현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노총과 손잡고 민주노총을 배제·고립시키는 정책 말입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굳건히 제 길을 가면서 한국노총 소속 노조들을 이 투쟁으로 견인해야 노총 내부에서 반발이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한국노총은 안 돼."라는 냉소가 아니라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후퇴하는 지도부가 아니라 현장 단위노조와 조합원들에게 말입니다.


  1.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씨를 비롯해 울산 삼성 SDI공장이 꽤 오래 버텼고, 거제 삼성중공업은 법외 단체인 노동자협의회가 준 노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은행권엔 조합원 1만 명 이상인 노조가 셋이나 됩니다. 농협, 우리, 국민. 이밖에도 한전, LG전자 등이 한국노총 안에서 조합원 1만 명이 넘는 노조들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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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국민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공중파 방송 3개 채널에서 동시 상영으로. 잠깐 보다 채널을 돌려 버렸습니다. 다음날 인내심 많은 분들의 기사와 글들을 챙겨보는 걸로 때웠습니다.

사실 정식 명칭은 '대통령과의 대화'였습니다. 명칭부터 권위적입니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소통'하라고 한 것은 '국민과 대화'해 의견을 들으라는 거지, '대통령과 대화'하며 훈계를 듣고 싶어했던 게 아닙니다.

동화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세상 사람들 다 벌거벗은 걸 아는데 임금과 그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옷이 화려하게 비춰지길 '고대'하고 '소망'합니다. 오죽하면 "4대강이 완성되고 나면 아 이렇게 하자고 정부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허풍을 치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은 벌거벗은 임금이 당한 것처럼 또다시 큰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요. BBK 때처럼 이명박은 피해자입니다. '만사형통'이어야 하는데 아마 이번 옷 구매는 형을 통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이름 붙은 이 투명 옷을 판 자는 이 옷이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그래서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에게는 매우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감언이설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님을 위해 미국에서 '이제 오'신 그 분께서 앞장서 보필하시는데 동화책에 이미 나온 수법의 낡은 사기 행각에 속았을 리 없습니다. 사실 옷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투명 옷을 화려한 옷으로 봐 줄 '국격 있는 국민'들만 있다면요.

문제는 이 옷을 아름답게 바라봐 줄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국민'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이제 오'신 분의 직무유기입니다. 그가 맡은 게 국민권익위원회 아닙니까.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별로 안 남아있는 건 이분이 품격 있는 국민들의 권익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껏 값이 오른 대한민국 땅이 하나님께 봉헌될까 봐 품격 있는 국민들이 숨었다는 소문이 있긴 합니다) 

나머지는 국격에 어울리지 않아 정부와 국회, 검찰·경찰, 법원에게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한 아랫것들입니다. 이들은 명박 씨를 두고 "4대강 사업이 법을 어겼는데도 떼법을 써 강행하려 하고, 서민 감세를 이해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요구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고 서툰 비난들을 해댑니다.

이 무리 안에는 "아마 지금은 사람들이 무리라고 하겠지만 'MB OUT'이 되면 나중에는 다 '아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없어서 아름답고 찬란한 '벌거벗은 옷'을 자랑하지 못한 명박 씨는 외로워서 이날 깊은 속마음을 털어 놨다고 합니다. 

세종시에 반대하는 이유가 "대통령 혼자 서울에 있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것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 청와대엔 '2명 밖'에 안 남을지도 모릅니다. 철밥통 공무원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고 다 옮겨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게 불안해서, 가지 말라고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남아서 벌거벗은 내 옷 좀 봐 달라고, 세종이 뭐 별거냐고, 청와대 가까운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새로 만들었나 봅니다. 죽은지 5백년이 넘었는데도 할 일이 참 많은 세종대왕입니다.


기타 어록 

피해망상
"내가 20조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에 43조, 87조 들여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과대망상
"경부고속도로도 반대가 많았고 청계천도 그랬다. 완공하고 난 다음에는 다 찬성하고 있다"

동문서답
"토목공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배우는 것이냐"

횡설수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

천기누설
"대운하를 하려면 다음 정권이 하는 것이고…"

자가진단
"대기업 욕하는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하려고 하고 미국 욕하면서 미국 가겠다고 한다"

뭥미?
"내복 입는 것이 녹색성장"



※ 그럼 이날 사기극의 범인은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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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런 댓글)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었죠.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
때리긴 했지만 폭행한 것은 아니다
빨간 불일때 건넜지만 신호 위반은 아니다
얼굴이 바뀐 건 맞지만 성형은 아니다
...

오늘 미디어법 날치기 판결을 보면서 헌재도 인터넷 게시판 놀이를 상당히 즐겼다는 인상을 받았네요.

"절차는 위법이지만, 법은 합법이다."


아쉬운 건 유행이 많이 지난 걸 되풀이한 점이랄까요.

심지어 14년 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유명한 판결도 떠오릅니다. 성공한 날치기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건지...

낡은 기억을 여러 개 되살리는 오늘 헌재의 판결은 '헌' 법재판소라서 일까요, 헌번'개'판소라서 일까요.
 


앞으로도 이 정권 아래선 댓글 놀이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4대강은 파지만 대운하는 아니다
부자 감세 하지만 친부자는 아니다
집회는 금지하지만 반민주는 아니다
방화 증거는 없지만 무죄는 아니다
전투는 하지만 전투병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0년 쯤 뒤에 이 시대를 이렇게 기억하지 않을까요.

쥐××라고 했지만 욕한 건 아니다
선거에서 이겼지만 대통령은 아니다
법은 만들었지만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임기는 있지만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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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효성의 'MB 사돈 게이트' 검찰의 이중적 ‘법치주의’를 보여 주다

새벽에 내일 스터디 준비하다가 무료해서 적어 봤어요. "내 귀에 캔디"를 사랑하시는 분들께 먼저 사과 말씀 드립니다.



니가 원하는 게 뭐야 내게 말해봐
니가 무슨 보답이 없어도 나는 안심해

제일 달콤한 그 말을 원한다면 나를 봐
부끄럽지만 그 말을 원해 너도 알잖아

조사 안 해 (조사 안 해) I love you (I love sadon)
어떤 말을 원해도 다 니 장인 봐서 해 줄께

워 니꺼 니 (워 아이지) Te Quiero(떼 끼에로)
너무 뻔뻔해서 나도 믿기지가 않아

내 뒤를 캤니 너처럼 허술해
늘 하던대로 부드럽게 넘어가 줘
내 뒤를 캤니 꿈처럼 안심해
니 목소리로 뻔뻔하게 넘어가 줘
라 라 라라 라라라라 한나라 한나라
라 라 라라 라라라라 개나라 쥐나라

한가하게 쑤신 '한타' 같은 너의 경험으로
한잔하며 적신 '한날' 같은 너의 입술로

말해 부드럽게 말해 빨리 나의 무혐의로
말해 예전처럼 말해 법치 운운 무대뽀로

사랑해 (자랑해) I love you (I love sadon)
어떤 액수를 원해도 다 니 처가에 해줄께

니꺼 아이 니 (내꺼 아이지) Te Quiero(떼끼 이놈들)
너무 뻔뻔해서 말이 말같지가 않아



※ '한타'=한국타이어. 한국타이어 역시 MB의 사돈 기업.
한국타이어는 작업장의 유독 환경을 제어하지 않아 산재 사망으로 악명 높은 기업이나 정부와 검찰의 비호 아래 처벌 받지 않고 있음. 더구나 MB의 사위인 아무개는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됐으나 이번 효성처럼 무혐의로 처리됨.

※ 요새 제가 좀~~~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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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저보다 더 나이 어린 사람들과 하는 토론은 늘 흥미롭습니다. 세파에 찌들기 전이라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의심을 많이 합니다. 질문도 기발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 주제는 마르크스주의로 본 경제위기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상황이 경기회복인지 거품인지까지 다루는 꽤 방대한 주제였습니다.

어려운 주제라 그런지 토론이 활발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가한 학생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대강 요약하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에 가장 부합하는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가장 오래된 주장이기도 하고 가장 흔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욕구 실현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힌 상황을 바꾸려는 이론이자 전략입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흔히 나오는 것은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체제들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 나라들을 인용해 마르크스주의의 신용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소련의 가짜 사회주의가 인민에게 절제와 일방적인 이타심을 강요한 것은 체제가 인민들에게 충분히 풍족하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 가짜 사회주의보다 서방 자본주의 경제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정부 재정이 악화돼 복지 지출을 줄이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늘어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욕심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은 왜 자본주의에서 특정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기적 탐욕은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어떤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마저 무시당하고 심한 경우, 강제로 억압당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 수익성이 줄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기업과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그 세금이 깎인 것 때문에 25만 명의 결식 아동이 방학 중에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의 파생상품 투자가 왜 한때는 경제의 구원자였다가 지금은 저주 받을 행위가 됐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과 부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이를 독차지하는 반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재산 가치가 폭락하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처럼 자본주의는 경제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욕심은 구조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고 억압합니다. 어느 계급 소속이냐에 따라 어떤 이들의 욕심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칩니다.

인간의 욕심 이론은 이처럼 아무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가들이 자기 탐욕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변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론자들에게 왜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본래 이기적이니까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한 해에도 수만 명의 신입생들을 받는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기본 동력이라는 이 엉터리 공리에 바탕한 학문을 가르칩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인간의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늘 변함 없었는데, 왜 인류 역사의 3분의 2가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사회였을까요. 

그게 당시 인류의 잠재적 생산능력의 수준에 부합했기 때문이죠. 생산성이 너무 낮아 협력해 수렵과 채집을 해야 했고, 공동으로 식량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자본주의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생산 능력을 혁신했지만, 자기 모순 때문에 그 생산 능력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주기적인 경제 공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생산과 분배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료도, 기계도, 공장도, 일할 사람도 그대로 있습니다. 부족한 건 기업의 이윤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라는 기름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자본주의란 체제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특정한 생산력 수준 하에서 이뤄졌던 일시적 체제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본적 욕구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것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됐습니다.

지구를 서른 번이나 없앨 수 있는 핵폭탄을 품에 안고서 평화를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광기어린 체제입니다.

한때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었던 석유 관련 기업들은 무작위한 CO2 배출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쳐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데도 당장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CO2 배출을 억제하지 않습니다.

적게 투자해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식품기업의 탐욕은 광우병이라는 재앙적인 질병을 만들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경제이론은 이런 광란의 경제 체제의 탄생과 변화, 실상을 어느 이론보다 훨씬 더 일관되게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게 그 질문을 던진 학생이 제 답변을 듣고 어떤 고민을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 자신은 상위 20퍼센트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반반으로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바꾸는 실천이 성공할 확률도 반반입니다.

확률이 같다면,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쪽에 서는 게 낳지 않을까요.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건 로또보다는 훨씬 확률 높은 베팅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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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깁니다. 한국 다음 순위 국가들보다도 두 달 (8시간×23일[주5일제 기준]×2) 정도 더 일합니다. 

그러니 아침 출퇴근 전쟁 시간대 버스와 지하철은 조는 사람, 멍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쉴 시간, 놀 시간이 없으니 여가생활이라곤 대체로 친구들과 술먹기 뿐입니다. (글로 배워서~)

이런데도, 기업주 모임인 경총이나 정부는 한국에 휴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해 왔습니다. 제헌절, 식목일 등 매년 국가지정 공휴일이 줄어왔습니다. 심지어 반쪽짜리 주5일제 도입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유급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기성 언론에선 추석을 앞두고 '민족의 명절'이다 뭐다 하고 떠듭니다만, 정작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억울한 마음은 다루질 않습니다.

올핸 추석이 주말과 겹쳐 명절이라기보단 금요일 하루 더 쉬는 것 밖에 안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ㅠ.ㅠ 올해는 추석 이틀에 개천절 하루, 총 3일이 사라졌네요...

장시간 노동, 휴일 노동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아직도 피할 수 없는 굴레입니다. 저도 예전 직장에서 새벽 퇴근, 새벽 출근을 자주 해봤지만, 아주 사람 얼을 빼놓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앉아서 휴일을 도둑맞다니... 


달력의 빨간 날, 즉 법정공휴일은 어느 회사에서나 유급 휴일이기 때문에 공휴일의 축소는 정해진 월급에 일 더 시켜먹겠다는 것 밖엔 되지 않습니다. 법정공휴일을 축소하면 애써 머리띠 매고 투쟁하고 임금 교섭해서 올려 놓는 임금이 뒤로 몰래 깎이는 겁니다.

한마디로 '부지런한 한국인'이란 이미지는 '사람 부려 먹는데 부지런한 사장'과 '권리 찾아 먹는데 게으른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원래 두 몸인데, 이걸 한 몸으로 합쳐 놓으니 사람 헷갈리게 하는 그림이 된 거죠. 

최근 몇 년간 웰빙이니 삶의 질이니 언론 보도가 많았습니다만, 먹는 것, 여가 이용법, 여행지 정보는 넘치는데, 막상 이걸 위해서 월급을 올려야 한다거나 휴일을 늘려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을 하는 언론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주식, 부동산 등등. 하지만, 한 실험에서 월가의 투자 전문가와 원숭이의 랜덤 투자 수익률이 같았다고 하죠. 몇몇 구조적 주가 조작을 하는 기관 투자가들 빼곤 개미들이 벌 수 있는 돈이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펀드 폭락 사태는 평범한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의 현실을 잘 보여줬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좋게 집 하나 샀다 해도 내 집만 오르는 게 아니므로 내 집값 올라봐야 새 집 구할 땐 제자리입니다.

이 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뿐인 듯합니다. 새 아파트 분양을 받거나 강남 아파트를 사는 건데, 2천년 대 내내 분양가가 집값과 똑같이 올랐습니다. 결국 남는 길은 강남 아파트 사기. ㅋ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일자리를 얻고 지키기. 조금이라도 더 월급 받기. 이게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웰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에게 여유있는 삶, 즐길 수 있는 삶은 난관이 참 많네요.

정말 최소한 설과 추석은 일주일을 모두 쉬어야 합니다. 토요일도 정식으로 법정공휴일로 하고, 주말과 겹치는 법정공휴일은 다음 월요일에 쉬어야 합니다. 주류 엘리트들은 교육과 언론에서 가족과 민족의 가치, 양보와 여유의 가치를 자랑만 하지 말고, 여염집 갑남을녀가 그런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휴일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휴일을 줄이며 일해야 하는 건 우리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금고 채우기만 바쁜 사장들 말고 정부가 좀 나서서 우리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가(정부와 국회)가 유급휴일인 법정공휴일을 줄이는 데 열심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선출되지 않은 기업주들을 위해 자신을 선출한 주권자들을 쥐어짜고 사실상 임금 삭감을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노동자 집회 같은 데 가 보면 "시키는대로 일만 한 죄밖엔 없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돌이켜 보면 그건 진짜 죄인 겁니다. 충분한 휴식을 요구하는 건 충분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어떻게 꾸려 나갈까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충분히 쉬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살펴보는 실천적·문화적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평범한 이들에겐 충분한 임금과 여가 시간을 요구할 이유가 많습니다.

······

사실 무엇보다 휴일이 줄어드는 게 당장 걱정되는 이유는 이명박과 그 똘마니 국회가 일하는 날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죠. 정말 최소한 이들에겐 휴일을 많이 보장하면 안 될까요.
무급으로~ 쭈욱~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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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레프트21>15호 "법 질서 확립? 너나 잘하세요~"


엊그제 113명의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 표결로 정운찬이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가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반대파에 대해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겠다는 겁니다. 청문회를 글로 배운 정운찬이나 서양식 아파트를 너무 사랑한 한식 전문가 백희영이나 자기를 처벌해야 하는 이귀남, 이런 자들을 그냥 그 자리에 앉히고 가겠다는 겁니다. (이런 내각이 친서민 내각? 그건 니 생각이고~)

정운찬의 총리 임명 반대는 단순히 정파적 반대 목소리가 아닙니다. 여론의 과반이 총리 임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정운찬과 나머지 인물들의 비리와 혐의들이 주류 특권층의 부패한 실상을 여지 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정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죠. 상대적으로 특권층 기반이 적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투기, 탈세 의혹으로 총리 후보가 낙마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 정권은 좀더 노골적입니다. 이들이 특권층의 3~4세대 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왔으니까요. 마치 "우리집은 가난해요. 아빠도, 엄마도, 집사 아저씨도, 정원사도, 식모도, 유모도......"하는 오래된 우스개소리처럼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후보 중엔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환경부 내정자도 있었고, 유방암 진단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에게 받은 선물이 강남 30평 오피스텔인 청와대 비서관 내정자도 있었죠.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11평 집에서 어떻게 발 뻗고 자냐?"고 말했습니다. 도심에 30평대 '서민형' 오피스텔을 만들겠다면서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일들을 이들은 당연하게 저지르고 내뱉습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유리 지갑의 월급쟁이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탈세와 위법을 저지르고도 처벌은커녕 무사히 장관직에 안착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 사회의 정치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환멸은 커집니다. "그놈이 그놈"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내각 인사가 있을 때마다, 또는 고위층 비리 사건이 날 때마다 듣는 표현들입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당장은 승리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더 깊은 곳에서 '통치'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근시안적 '실용주의'는 주류 특권층이 독점하는 정치체제의 위기를 더 크게 만들 것입니다. (딱히 밀어붙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정부죠, 사실)

이 문제가 조용히 넘가는 듯 보이는 건 한나라당의 생각처럼 사람들이 망각하거나 그 몹쓸 추진력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바꿀 가능성에 아직 확신이 부족하고, 또 바꿔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게 되는 지위와 권한이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배웁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에 맡게 교육되고 길러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다루는 일, 공장을 짓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 외국에 나가 협상하는 일 등.

그래서  '민중'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보다 선덕여왕 같은 좋은 정치인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주류가 가르치는 기성 교육은 4년에 한 번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국가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민주주의고,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민주적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죄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도대체 누구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기름때 묻은 '공돌이공순이',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장관을 하고 기업을 경영할까요? 이러니 "대안이 없잖아"하는 푸념에 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가 망가지고, 4대강 예산은 복지 예산을 갉아먹으며, 갈수록 살기 더 힘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쟤네들이 썩 그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조기 영재 교육 받아서 영어 백날 잘해 봐야 소고기 협상처럼 하고 온다면 특권층의 지위와 능력을 존중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법적 의무조차 안 지키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해 배를 불려 온 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구호로 의회 체제와 타협하고 왕제를 유지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빌어 고위 공직자 시비에서 드러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구호를 요약하면, "통치하고 군림하되, 책임지지 않는다"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제대로 '잉여' 존재인 겁니다.

그렇다면, 공장을 실제로 돌리는 노동자가 공장을 경영하고,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경제와 사회, 정치에 대해 뜻을 모아 결정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최소한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는 결정들을 할테니까요.

또 어차피 사회가 돌아가는 건 노동계급 대중이 하는 일들 덕분입니다. 집과 도로를 만들고 제작과 운송을 기획하고 사회서비스를 관리하는 수많은 갑남을녀가 없다면 소수에 불과한 특권층이 뭘 할 수 있을까요.

냉소는 분노의 다른 표현입니다. 환멸과 냉소가 분노와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알리고 선전하며 대안을 주장하는 일, 즉 장작을 쌓는 일이 지금 중요한 이유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그대여 분노하라! 분노를 숨기지 마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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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77일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해고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이 공장을 차지하기 위한 노-사-정의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하나의 시험대에 올랐다.

파업이 보여준 격렬한 갈등과 분열은 우리의 양식에 질문을 던졌다.

왜 문제를 일으킨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가. 정의는 왜 공장 문 앞에서 멈추는가. 왜 법은 약자를 위해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지 않는가. 이 갈등을 끝낼 대안은 없는가. 

사실관계 논란을 재탕하는 건 이제 시간낭비다. 진실은 명백하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됐다는 정부가 일자리를 지켜 달라는 노동자 ‘국민’에게 테러리스트 진압 특수 부대를 보냈다. 쌍용차를 망친 대주주 상하이차 경영진은 누구도 징벌을 받지 않았다.

지금껏 이 문제를 다뤄 온 이들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물음을 던져 보는 게 낫겠다.

맹목적 경쟁

쌍용차 사건은 수천 명의 직원과 수백 개 유관 기업을 거느린 대기업이 파산 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경영을 맡은 대주주들의 부실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위기의 직접적 계기였다.

그러나 지금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과잉 생산은 3천만 대에 달한다.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연간 생산량 3백80만 대(2008년 기준)의 약 8곱절이다.

지난해 6월 파산 보호에 들어간 세계 최대 기업 GM은 생산 설비의 거의 절반을 폐기해야 한다. 일본 도요타도 4백만 대를 생산할 설비와 인력을 축소해야 할 처지다.

기업들의 맹목적인 시장점유율 경쟁이 과잉 설비를 낳았다. 조율되지 않은 투자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동 균형을 이룰 거라는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은 파산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했다. 시장자본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는 한국의 1년 국내총생산액보다 많은 돈을 부실 기업들에게 쏟아 부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비슷한 용도로 올해 예산의 3분의 2를 이미 7월경에 다 써버렸다.

온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기업들을 살리는 동안, 수익성 회복을 위해 부실 기업의 노동자들은 해고됐다. 고삐 풀린 시장을 비판하던 또다른 주류 경제학도 이 문제는 외면했다. 

요컨대, 쌍용차 파업은 “기업 수익성이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시장 경제의 공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변이었다. 게다가, 자유시장의 징벌은 늘 노동자들에게만 가해진다. 대주주와 대기업 임원들은 여전히 특권층의 지위를 유지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가가 책임지고 공장을 친환경 대중교통 생산 기지로 전환하면 환경과 일자리를 모두 지키며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사기업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공공의 이익과 사기업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무엇이 우선일까.

미래를 의심하기

“아빠, 우리 이제 자가용 못 타요?” “응.” “왜요?” “회사가 어려워서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거든.” “회사가 왜 어려워졌는데요?” “음, 자동차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렇단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잘려야 하는 사회. 한 쪽에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 쪽에선 첨단 생산 시설이 고철덩이가 되는 사회. 식량이 너무 많이 생산돼 농민이 망하고 식량이 버려지는데, 수 억 명의 사람들이 굶어죽는 사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제 나라 국민들의 생존권을 앞장서 짓밟는 사회.

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사회가 우리 모두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할 세상이다. ‘이윤을 위한 경제, 판매를 위한 생산’이라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법칙은 이미 역사적·도덕적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0.1퍼센트 부자의 길은 열려 있지만, 모두 함께 사는 길은 닫혀 있다.

쌍용차 파업은 우리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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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친(親) 부자/기업 정부인 이명박 정부조차 친(親) 서민을 말합니다.이런 거짓말에 눈 뜨고 속을 이는 별로 없겠지만, 이 정부의 새 옷이 아니라 몸통의 지울 수 없는 악취와 속마음을 말하는 사람이 더 적어졌습니다.

오히려 지금 반대파에게 충고하는 듯하면서 이 정부가 하는 거짓말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보적 반대파가 대안 없는 정권 퇴진을 외쳤기 때문에 이명박이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진실은, 기회가 왔을 때 [바로 그들의 방해로] 더 밀어붙이지 못하고 정권 퇴진을 못 시켰기 때문에 이명박은 살아난 것입니다.
 
요즘 반(反)MB 맹주를 자처하는 민주당 역시 집권당 시절,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하고, 부동산 거품 조장을 허용하는 등 친(親) 부자/기업 정책을 펴왔습니다.

실로 이명박 정부로 오는 길은 전임 정부가 닦아 놓은 길입니다. 이 점을 각성해야 한다던 사람들중 적지 않은 수가 지금 침묵합니다. 전임 대통령 둘의 사망 이후, 이 문제에 관한 온갖 에두르고 감추는 말들이 넘칩니다. 

이처럼 말과 글이 겉도는 것은 진실을 가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진실을 냉혹하게 직시하길 두려워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사실과 소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맞서 진실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말과 글조차 사물의 본래 성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단지 겉꾸밈의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정권을 잡고 실패한 사람들이 (변한 것도 없는데) 뭘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사人>이란 주간지의 최신호를 보면 정부 비판에 앞장서던 한겨레/경향/오마이/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들이 광고 수익 때문에 정권과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돈의 힘을 빌어 돈이 지배하는 세계를 비판한다는 것은 공상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제약되는데, 말과 글이 제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세계적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명백한데도,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를 직시하길 두려워합니다. 어는 순간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주장,  “계급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진보진영 안에서도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사회주의”나 “혁명”, “레닌” 같은 단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 계급사회이고, 우리는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낭비적 경쟁을 강요하고 인간의 필요를 짓밟습니다. 경제 위기와 빈곤, 전쟁은 물론이고, 기후와 자원 문제로 지속불가능한 체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는 게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생산 협업은 직접 생산자인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권력과 실천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협력적 생산과 분배의 체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애와 협력, 지식과 자원 공유가 훨씬 더 효율적인 생활 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이 사물과 현상의 핵심을 치르지 않고 겉도는 것은 앞선 예에서 보듯 말과 글의 원천인 생각과 행동이 진실을 향해 곧바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덕여왕> 미실의 대사처럼,
"세상을 가로로 나누면 딱 두 부류,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둘 밖에 없습니다"
미실은 덧붙입니다.
"(지배하는 자가 말하는) ‘백성들의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환상"이라고 말입니다.
미실은 지배하는 자의 편에서 세상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덕만이 아니라 미실이 리얼리스트입니다. 실재가 아니라 캐릭터로서 미실이 덕만보다 더 우월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온갖 환상, 사실과 소망을 뒤섞어 놓은 잡다한 말과 글들이 이 엄연한 진실을 가립니다.

단도직입으로 본질을 향해 찌르고 들어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담하고 거리낌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라는 자기 주문 [呪文]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담하게! 단도직입으로! 는 <레프트21> 기자로서 제 기사 쓰기의 구호입니다.

이 블로그는 이런 정신으로 <레프트21>에 실릴 기사들을 보충하고 지면 바깥에서 마찬가지로 단도직입의 방법으로 제 생각을 보태는 블로그가 될 겁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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