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를 위기 탈출의 계기로 삼으려는 집권 우파가 필사적인 공안 탄압으로 도발하고 있다.
검찰은 주먹과 방패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를 강탈해 갔고,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를 ‘종북 주사파’라며 국회 제명을 추진하고 있다.
급진좌파 단체 ‘노동해방실천연대’ 활동가 네 명을 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체포했고, 다음날엔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깨부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계좌도 뒤진다고 한다.
우파들이 이렇게 도발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감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잠시 진정되는 듯하던 세계경제 위기가 최근 다시 격화되고 있다. 특히 수출 강화로 추락을 피해 온 한국 자본주의에게 유럽과 중국의 경기 침체는 커다란 위협이다.
저축은행들의 잇따른 퇴출은 권력 실세들의 복마전 같은 비리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연계된 경기부양책의 실패와 가계대출 부실화 등 심각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가계대출은 줄지 않는데,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고 있고, 물가는 내려올 줄 모른다. 이른바 ‘MB ‘물가 품목’ 중 공공요금을 뺀 30개에서 돼지고기와 달걀을 빼곤 모두 가격이 올랐다.
경제 위기와 생활고는, 기층의 불만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고, 노동자투쟁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대표적인 친기업 우파 신자유주의자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마저 ‘물가를 잡으려면 대기업 독점 이익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 위기 대처 방안을 놓고 지배계급 내부에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부패 비리가 계속 밝혀지는 것은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집권 우파들에겐 치명타다.
정권이 레임덕에 빠져 있고 부패와 실정으로 지독한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집권당을 장악한 박근혜조차 정권과의 차별화와 갈등의 길로 이끌릴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게다가 당을 박근혜 일인 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선 내부 경선 규칙을 둘러싼 비박 대선 주자들의 반발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결국 경제 위기 대처 문제, 이명박과 차별화하는 문제, 차기 대선 후보 선정 문제 등에서 새누리당과 우파 내부, 심지어 친박계 안에서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처지니 우파들에겐 언론 파업, 쌍용차 해고자 투쟁 등에 사회적 지지가 커지는 것이 정권을 향한 비수처럼 느껴질 테고, 두 배로 의석을 늘린 통합진보당도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금속노조와 화물연대의 투쟁도 예고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위기의 전조가 드리운 상황에서 집권당은 취약해져 있고, 대중의 불만은 고조되며 투쟁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우파가 우리편을 교란하고, 자신들은 단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통합진보당의 선거 부정 사태가 낳은 진보진영의 내분과 위기를 한껏 이용하며 공안 탄압으로 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할 법하다.
우파들은 우선, 조중동과 MB 방송을 이용해 통합진보당 사태를 더 추악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데 이용하고 있다.
최고 실세들인 최시중과 박영준이 구속된 파이시티 사건은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비리와 대선자금 문제로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데, 검찰은 은근슬쩍 개인 비리로 덮어버렸다. “정권 실세들의 닥치고 먹자판”이라는 저축은행 비리도 묻히고 있다.
무엇보다 불법 사찰 관련해 진경락 문건이 폭로돼 사찰 사건의 몸통이 이명박이라는 게 명명백백히 밝혀졌는데, 이 사건도 가려지고 있다.
둘째, “종북 좌파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내세워 분열 위기에 놓인 우파의 결집을 유지하려 한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 찍어 진보 대중에게 환멸을 심어주고 진보진영을 분열시키려 한다.
검찰은 통합진보당 내부 혼란에 대한 “국민적 공분” 때문이라지만,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수사에 ‘민주노동당에서 13년 동안 입당·탈당한 약 20만 명의 명부’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공안당국의 당원명부 입수는 진보 대중을 위축시키고, 좌파나 공무원노조·전교조 등을 향한 또다른 공안 탄압을 위한 ‘강도 행각’일 뿐이다. 군대 내부 숙청에 이 명부를 활용하겠다는 발상을 보라.
이 과정에서 우파들은 대한민국 체제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은 국가기구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선거에서 받은 지지도 무시하고 국회에서 제명을 하겠다고 한다 .
셋째, 이런 분열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에게 통합진보당과 대선 연대로 ‘종북 좌파’가 정부 안에 들어오게 할 것이냐며 압박을 하고 있다. 조중동은 ‘종북좌파’ 이석기를 노무현과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으면서 사면복권시켰다며 공격하고 있다.
선거로 당선한 이들은 사상 검증해서 의원직을 박탈하겠다는 우파적 히스테리는 위기에 직면한 자본가들이 자유민주주의 교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드러내는 도발일 뿐아니라, 우파적 지배자들이 친북좌파의 국가기구 진입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도 보여 준다.
검찰이 압수한 당원명부로 이석기 당선자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겠다는 것은 국회 제명이 실패할 경우 국회에서 제명할 명분을 찾으려는 의도로도 보인다.
결국 우파의 전략은 경제 위기를 앞두고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운동을 약화시키고 민주당을 길들여 사회 세력관계를 역전시키고, 우파의 우위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참에 지난 2~3년 동안 진보의 복지 확대 요구에 끌려다녔던 수모도 만회하고 싶을 것이다. 1
‘우리 편의 약점은 감추고 뭉치게 하면서, 적들은 분열시키자’는 노림수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권 우파들은 정권 재창출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도발은 도박에 가깝다. 자칫 하다간 거듭 확인된 청년세대의 반우파 정서와 노동자 투쟁이 만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들의 공격도 그토록 신경질적이고 필사적인 것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의 총선 이후 행보는 이런 집권당의 전략을 오히려 돕는 구실을 하고 있다.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의 지시로 만든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는 “야권연대는 민주당이 주도권을 상실하고 유권자를 야권연대의 ‘정치적 볼모’로 삼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좌편향으로 중도층 유권자를 우파에게 뺏긴 것이 총선 패인’이라는 뜻이다. 한미FTA 폐기나 제주 해군기지 중단 같은 정책이 안보 불안감을 줬다는 평가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평가를 정당화하려고 이 보고서는 “4·11 총선에서 일관된 진보, 일관된 보수로 … 정의할 수 없는 ‘이념적 혼재층’이 51.7퍼센트로 대폭 증가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것이 민주당 왼쪽표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좌우 양쪽을 모두 흡수하려면 통합진보당을 위축시키거나, 민주당에 확실히 종속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판단에서 진보정당을 국회에서 배제·고립시키는 국회선진화법을 새누리당과 합의해 기성 양당 구조를 공고히 하려한 것이다. 또 반이명박 투쟁을 삼가고 안철수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등 이박연대가 추진된 배경이기도 한 것이다.
최근 민주당 대표 경선 결과가 지역별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까지 나타나는 것은 주요 후보들이 이런 비전을 공유하면서 서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의 대응이 매우 중요해 졌다. 더는 민주당에게 의존하는 자세를 보여선 곤란하다. 그들은 종북좌파 마녀사냥에서 새누리당의 2중대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진영은 우파들의 공안 탄압에 맞서 광범위하게 단결하는 범진보적 대응기구를 구성해 투쟁을 건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동춘 교수의 말처럼 “조봉암 사형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동조하고 박수쳤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후 박정희에게 죽었다. 진보정치 복원에 수십년 걸렸는데 … 이 일을 우선 막을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운동의 쇄신 과제를 뒤로 미뤄만 놓을 수는 없다. 쇄신은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애국가를 부르자’는 등 ‘국가기구를 존중하자’는 식의 우경적 타협으로 가선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지형을 우경화시키려는 우파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뒤에 숨어서 가리려는 이명박과 우파들의 치부를 들춰서 열정적으로 폭로하고, 박근혜의 우파적 본질과 모순을 공격해야 한다.
그러면서 언론 파업, 쌍용차 투쟁 등과 정권의 부패와 공안 탄압에 맞서는 정치적 행동들을 연결하고, 연대를 건설하면 얼마든지 우파의 더러운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다.
※ 이 글은 <레프트21>82호에 축약해서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 그러므로, 이념이 아니라 실사구시적 복지 논쟁으로 전환해 정치의 구실을 복원하자는 논리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 공상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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