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 관해 <노동자 연대>123호에 기사를 세 꼭지 썼다. ①노동부매뉴얼 전반의 정치적 맥락을 다룬 글, ②연공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제도와 논쟁을 다룬 글, ③마르크스주의의 임금 이론을 약술한 글이다. 각각을 한 글의 세 꼭지처럼 썼기 때문에 하나만 읽으면 불완전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아래 글 중 색이 다른 부분은 지면 분량상 줄인 내용들 중 내가 임의로 선별해 덧붙인 구절들이다.

☞ 이 글의 원문 주소: http://wspaper.org/article/14290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또 하나의 무기를 내놓았다. 노동부가 3월 19일 발표한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이 그것이다.


노동부 매뉴얼은 대놓고 50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말한다. 근속년수가 오래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제 때문에 이들이 직무와 성과에 비해 너무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60세 정년제와 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는]” 연공급제에 따른 고임금 탓이라고 주장한다. 부담을 느낀 기업주들이 중장년 노동자들에게는 “희망퇴직 형태로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청년들에게는 “신규채용을 주저하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노동 현실에 조금만 눈 밝은 사람이라면, 노동부의 논리가 실은 경제 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가해 기업주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수작이란 걸 바로 눈치챌 것이다.


노동부는 생산직 신규자 대비 30년 경력자의 임금이 3.3배로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높은 게 문제라고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더 불평등한) OECD 국가에서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 노동자 전체의 평균 근속년수가 6년 남짓인 상황에서 30년 경력자와 신규자를 비교한 것 자체가 상당히 허구적이다.


노동부가 밝혔듯이 기업주들이 “조기퇴직을 실시”해 왔다는 것이야말로 기업주들 스스로 이미 연공급제를 그 취지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무급제가 더 보편적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정규직 고용이 줄어든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양산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비용을 아끼고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자본가들의 선택의 결과이지 연공급제와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저들의 논리는 결국 정해진 인건비 안에서 노동자들끼리 다투라는 논리다. 


청년층의 정규직 신규 고용이 줄어든 이유를 연공급제에 따른 인건비 증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전가해 노동자 분열을 노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분열 책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업주들은 1997년 IMF 위기 때 대규모 정리해고를 실행하면서도 정규직 고용안정이 청년층 신규 고용을 막는다는 논리를 폈었다. 그러나 그 뒤 경영상태가 호전된 대기업들은 이전의 정규직 고용 수준을 결코 회복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직무급ㆍ직능급ㆍ성과급제 도입ㆍ확대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지난해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불거진 임금체계 개편 논란에 대한 자본가들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노동부 매뉴얼도 1월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이미 실렸던 내용이다.


통상임금 논쟁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에서 고정 기본급 비중이 적은 것이 문제임이 밝히 드러났다(제조업 평균 40퍼센트). 나머지를 각종 수당과 상여금들이 채우다 보니 근로기준법의 ‘통상임금’에 어떤 수당들이 포함되고 안 되는지 하는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사장들은 기본급 비중이 적은 임금체계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었다. 강성노조 작업장이라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조차 1년에 2천5백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1만7천여 명이나 됐다.(2012년)


그러므로 이 임금체계 논란에서 대안의 핵심은 연공급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해 고정급 비중을 높이고 이를 충분히 인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기본급을 성과주의로 바꿔 고정급을 올리기 힘들고 불안정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상여금을 성과 기준으로 지급하라는 것도 (그나마 불완전한) 통상임금 판결마저 무력화하려는 술책이다.


성과주의 임금제는 임금 책정을 개별화하고 내부 경쟁을 강화하며 직무 배치나 성과 측정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오히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의 조사를 보면, 고졸ㆍ대졸 초임은 직무급 체계에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임금 개악 매뉴얼의 목적은, 첫째 노동계급 전반의 임금을 하락시키려는 시도이며, 둘째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 정책 논평이 고령 노동자의 상대적 고임금이 문제라는 듯한 뉘앙스를 비친 것은 잘못이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60세 정년제, 임금피크제 등을 추진해 왔다. 이는 큰 틀에서 “나쁜 일자리”로 고용률 70퍼센트를 확보한다는 ‘신자유주의식’ 사회안전망 계획의 일부들이다. 이런 일자리들로 노후복지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불만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다.


그 점에서 전반적 임금비용을 낮추려는 임금 개악 매뉴얼의 셋째 목적은 기업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나쁜 일자리”를 늘리려는 술책이 될 수 있다. 노동부 매뉴얼도 직무급 도입과 임금피크제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효과도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고용불안 등의 책임을 고령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열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연공급제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라면 대체로 노조가 강한 대기업이나 공기업 노동자들일 테므로 정부의 연공급제 공격은 ‘노동귀족론’의 새 버전인 셈이다.


둘째는 평생고용을 전제로 한 연공급제를 공격함으로써 청장년 노동자들에게 평생고용을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려는 것이다. 기업주들은 연공급제가 약화되면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감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따라서 노동부가 “[이 매뉴얼의] 임금체계 개편을 중장기적인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겠다]”고 한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노동운동은 경제 위기의 책임이 이 체제와 기업주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반대하고 고정급의 대폭 인상을 요구해야 한다.


불필요한 타협을 추구하는 개혁주의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힘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고용과 임금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격도 심해질 것이다. 상대적 격차를 빌미로 한 이간질도 더 극성일 것이다. 임금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단결과 저항을 구축하려면 변혁적 정치가 필요하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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