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삼성과 <조선일보>, 대형 교회 등의 세습도 비꼬았다.

남한도 그러니 북한도 문제삼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라면, 소수 지배자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세습하는 행태는 남북이 다르지 않다는 이런 통찰은 정확한 것이다.


그런데 자칭 ‘민주·진보’라는 사람들 일부가 이런 비교를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정권의 세습이라는 문제와 기업 경영권이나 재산이나 직업의 세습이라는 문제를 같은 차원에서 뒤섞어 물타기하는 궤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주대환은 이런 비교가 “더 나쁜 경우”라고 단정한다.

국민참여당 유시민은 “기업은 사적 권력”으로 “한 기업이 세습 때문에 망하면 다른 기업이 그 자리를 차지”하니까 간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은 우리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은 ‘사유재산’이므로 이를 ‘상속’하는 것은 ‘공공의 것’인 정치 권력을 ‘세습’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들으면, 삼성과 <조선일보> 등이 그 이른바 사적인 권력과 부를 이용해 선출된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해 온 일들이 떠오른다. 이들의 범죄는 단지 시장질서를 어지럽힌 데 있지 않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유착돼 있고 자신들이 로비로 만든 법을 위반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에 도전하는 행위를 결코 ‘관용’하지 않는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과 세습을 위한 불법을 가리고, 이른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해 수조 원대 비자금으로 행정·사법부 관료들을 관리해 왔다. 

<조선일보>는 상속세 폐지 등 꾸준히 부자 감세를 부르짖으며 보편적 복지 염원을 매도해 왔다. 면세 혜택과 신도 성금으로 덩치를 키운 대형 교회들은 진보 개혁에 반대하는 일에 신도를 동원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호응해 1백조 원이 넘는 부자 감세를 실시하고 부동산 부자를 위해 4대강죽이기를 강행하며 대기업을 위한 알짜 공기업 매각과 의료 민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사적 권력들이 공공의 것인 권력을 사실상 사유화하려 온갖 방법을 다 쓰는 현실에서 시장과 사기업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적 논의의 장에서 다룰 필요 없다는 주장은 부당하다[각주:1].

오히려 이런 분명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돈과 권력이 결코 분리돼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습된다.

올해 7월 기준으로 억대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가 220명이다. 이 가운데 열두 명은 보유 총액이 각자 1백억 원을 넘는다. 모두 재벌가의 자식들이다. 이들이 재산을 세습하는 것은 그것이 보장해 주는 권력()까지 세습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식도 주요한 세습 대상이란 점에서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주주들이 인정했으므로 삼성 세습 같은 일이 북한 세습과 다르고, 별 문제 없다는 주장도 틀렸다[각주:2].

사실 주주들은 배당금과 차익으로 투자의 대가를 모두 받아간다. 그러고도 세습 받은 주식으로 기업의 주인 행세를 한다는 건 불공정한 일이다[각주:3]

이처럼 소수 지배자들이 세습을 통해 평범한 다수를 지배할 특권을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남한 자본주의도 북한의 정치·경제 구조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기업주의 권력과 부를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문제삼지 않는 종류의 개혁주의 정치로는, 아무리 북한 세습을 비판해도, 막상 지금 여기에서 우리 삶을 개선하거나 기업의 횡포에 맞서 삶을 보호할 힘을 발휘할 수 없다[각주:4]. 주대환이나 유시민 등은 기껏해야 시장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북한 세습을 비판할 뿐인 것이다[각주:5].

그것이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자조한 노무현 정부 수준의 개혁이 처참하게 실패한 까닭이다[각주:6].

물론 국가와 자본이 항상 유착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삼성의 비자금과 로비, <조선일보>의 악다구니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사적 세습 권력들이 단순히 정부를 지배하는 관계라면 뭐하러 그렇게 애를 쓰겠는가.

무엇보다 삼성 같은 거대기업들을 개인의 소유물로 인정해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오늘날 거대기업들이 조직하는 생산은 세계적 규모에서 협력적 노동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각 기업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다[각주:7]

사실, 개인 소유로 감당할 수 없게 커진 경제단위당 생산력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조직한 게 주식회사다. 마르크스는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 안에서 사적 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각주:8]라고 말한 바 있다.

심지어 국민 세금으로 특혜도 준다. 2008년 한 해 삼성전자 혼자만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감면 받았다. 이 돈이면 1년간 서울에 있는 모든 유치원···고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삼성그룹 자체가 파산 위협에서 국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노동자의 노동과 국가의 보호가 없다면 이건희 일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각주:9]. 이건희 없는 삼성은 존재할 수 있어도, 노동자 없는 삼성은 그럴 수 없다.


기업과 경제를 세습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계획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 이 글은 <레프트21>43호에 실은 내 기사에 몇 가지 내용과 각주을 덧붙인 글이다. 바뀐 글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기사 원문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753)

※ 격주간 신문의 특성상 약간 뒤늦은 감이 있다. 지난 번처럼 이 글도 보론을 써 조만간 올릴 예정이다.



  1. 신자유주의의 탈정치화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인데, 형식과 달리 매우 보수적인 실천을 낳는다. [본문으로]
  2. 주주총회는 1주식 1표다. 얼마나 자본주의적인가. 즉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가. 재산 액수대로 표 수가 정해지는 ‘주주 민주주의’를 인정한다면, 북한 세습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본문으로]
  3. 세습받을 정도로 규모 있는 지분이 돼야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4. 경제 위기 시대에 보편 복지 도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사유재산과 사유기업이 정치의 영역 밖이라면 무슨 수로 부자 증세를 할 것인가? [본문으로]
  5. 시장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다, 시장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두 생각 모두 취지는 달라도 시장 자본주의가 최선이고, 이걸 벗어나는 체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북한 비판은 시장자본주의 틀 안에 있다. [본문으로]
  6. 요즘 들어 좌고우면하며 우경화한 진보정당들이 대안정당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7. 삼성전자의 거대 수익은 순전히 반도체 노동자들의 땀값, 목숨값이다. [본문으로]
  8. 사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의 모순을 지적한 것으로서 발전하는 생산력이 갈수록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의 형식(생산관계)과 모순(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본문으로]
  9. 국가의 보호라는 것도 상당수는 노동자들의 수행하는 노동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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