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넉 달 반]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는 동전의 앞뒷면
세월호 참사의 감춰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기업들과 국가 기관(국정원 포함)들의 부패와 무책임도 드러날 것이다. 민영화, 규제 완화 등과 연관된 유착과 무책임성도 드러날 것이다. 구조 지휘 책임을 내팽개친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7월 30일 재보선 승리 이후 세월호 참사 진실 파묻기와 ‘친기업 경제 살리기’로의 국면 전환에 올인해 왔다. 마치 유가족이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 호도했다. 8월 26일 경제부총리 최경환, 29일 국무총리 정홍원 등이 나서서 경제 살리기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영산대 한성안 교수가 구체적 수치를 들어 반박했듯이, 세월호 참사와 경기 위축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민생’은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의 생계를 뜻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기업 이윤 등 부자들의 수익을 가리키는 기업주들과 그 정치인들의 코드명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안달하는 ‘민생’ 대책은 카지노와 영리 병원 허용, 크루즈산업 육성 등 기업주 돈벌이에 관한 것들뿐이다.
박근혜는 심지어 이번 일을 “재난재해 보험상품 개발 촉진 … 안전 산업 육성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안전’ 부문 민영화 등 재난을 본격적으로 상품화ㆍ시장화하자는 것이다. 8월 12일 내놓은 ‘제6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 민영화 등 이윤과 시장 지향적 정책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정책들이 세월호 참사의 일부 원인들이었다. 참사를 낳은 지옥문을 더 크게 열어젖히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든 말든, 구조를 하든 말든 보험 상품만 많아지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도대체 보험 가입을 안 해서 애꿎은 목숨이 가라앉았다는 말인가.
이처럼 노동계급 자녀들 구조에는 관심도 없던 정부가 기업주들 구조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런 방향 전환을 위해 박근혜는 경찰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도 더 억압하려 한다. 박근혜는 지난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습격한 강신용을 새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그는 8월 25일 취임식에서 “도로 점거 [같은] …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력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우선순위
결국 세월호 참사 넉 달 반 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노동계급 사람들의 목숨과 안전은 전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이 우선순위를 바꿀 수 없다고 선언하며 지금의 야비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재ㆍ보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겠다는 의도이다. 체제의 위기를 강조해 정치적 위기를 단속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경제 살리기’ 기치는, 특히 박근혜가 “의회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부디 경제활성화와 국민안전, 민생안정을 위한 핵심 법안들을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꼭 처리해[야 한다]”고 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진영 내 자유주의ㆍ개혁주의 정치세력들 ―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의사와 의지가 없는 정치세력들 ― 을 겨냥한, 특히 ‘장외투쟁’을 겨냥한 압박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당연한 요구다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ㆍ기소권을 달라는 요구는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법안 자체는 사회 주류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협이 함께 만든 것이다. 법학자 수백 명도 법리상으로든 사법제도상으로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회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한국 같은 경우가 오히려 흔치 않는 경우다. 검찰이 법무부장관 직속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소권 요구가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반대 논리는 정권의 보위가 걱정된다는 말의 가증스런 앞가림일 뿐이다.
권력과 자본의 외압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구성된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수사해서 문제라는 비난도 옳지 않다.
새누리당은 ‘자력 구제 금지 원칙’을 운운하는데, 피해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에 따른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고, 수사권과 기소권은 진상 규명을 위한 것이므로 유가족들의 요구는 자력 구제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자력 구제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학살당하던 민중이 국가권력을 봉기 등으로 심판하는 혁명적 자력 구제는 정당하다.)
오히려 (사고 원인의 일부인) 규제 완화와 구조 방기의 책임을 나눠 져야 하고, 조사 대상이 돼야 할 박근혜의 충복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수사 대상인) 피의자가 수사권을 갖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비문명적인 야만이다.
결국 저들이 거부할수록 진실과 책임 규명의 알맹이가 통치자들의 부패와 무책임을 밝히는 문제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가 꼭 필요하고, 이 기구가 설립된 뒤에도 엄청난 방해 공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진정한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정권과의 (정치적인) 정면 대결을 감수할 태세를 갖춘, 지금보다 더 강력한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조직 노동운동이 중추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 <노동자 연대> 133호에 실림. http://wspap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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