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해결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부채


연인원 1천7백만 명이 참가한 박근혜 퇴진 운동이 내세운 제1의 퇴진 사유는 세월호였다. 그러므로 압도적 정권교체 염원 속에서 당선한 문재인은 세월호 운동에도 큰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다.


대선 막판에 문재인은 자기에게 투표하는 것이 세월호 진상 규명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홍보했다. 개혁 기대 지지층의 표심이 정의당 심상정에게 쏠리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은 문재인 정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세월호 참사 해결은 남은 진상을 밝혀내는 것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와 사회의 이윤 우선 논리에 메스를 대는 것이다.


세월호 선체 조사는 물론이고, 해양수산부 관료들의 선체 인양 태업 의혹도 수사해야 한다. 박근혜·이명박의 친기업 규제 완화 조처들과 그 배경이 됐을 (재판 중이기도 한) 기업주들의 로비도 더 파헤쳐야 한다. 세월호 경영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국가정보원도 수사해야 한다. 당연히 전 정권의 수사 방해와 유가족 비난 관제 동원 의혹도 파헤쳐야 한다.

ⓒ이미진

그러나 그 계급 기반상, 아래로부터의 압력 없이는 문재인 정부가 행정부 관료 조직과 이윤 우선 시스템에 메스를 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본가 기반 정당이므로 ―비록 자본가들의 제2선호 정당이지만― 야당 시절에도 이런 쟁점에서 불철저하게 대응해 왔다. 집권하면 더더욱 몸을 사릴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은 기다리지 말고 독자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행동해야 한다.


운동은 국회에 계류된 세월호 2기 특조위 특별법의 국회 처리만 기다리지 말고, 정부가 검찰을 지휘해 즉시 수사에 착수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새 정권이 여소야대 국회를 핑계 대며 시급한 과제들을 미루도록 봐 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을 믿어서가 아니라, 국정원 수사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기관은 검찰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국가를 (아래로부터) 창출하기 전까지는 기존 국가에 대한 압박이 필요할 때가 있다.


국가와 기업주들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하려면 당연히 조직 노동계급의 기여가 필요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행동과 독립적 계급 정치가 중요한 것이다.


퇴진 운동이 크고 거센 압박을 가한 결과, 특검이 이재용을 구속하고 검찰이 박근혜와 이재용을 뇌물죄로 기소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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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0일 ─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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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필요하면 특공대도 보내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 이렇게 해 가면서 보고 받으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보냈어요. …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 2017.1.1.)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어선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가지고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라고 …”

(유가족 증언)

정의 세월호 참사 항의는 큰 지지와 탄압과 모욕 등 굴곡을 겪었지만, 결국 참사 책임자 박근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진 이미진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천 일이 다 돼서야 내놓은 박근혜의 변명을 들으며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박근혜가 천진한 표정을 가장하며 3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할 때는 특히 그랬다.


정말 날짜를 헷갈린 것이든, 그 날 자신에게는 기억날 만큼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암시를 주려 수작을 부린 것이든 둘 다 어처구니 없고 가증스런 언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에 아무런 관심도 안타까움도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그래도 ‘대통령’이라고 이런 작자에게 유가족들이 얘기 들어 달라고 애원한 시간이 억울할 뿐이다.


박근혜의 죄가 참사 당일에 희생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의심할 정도로 큰 죄다.)


참사의 배경이 된 안전 규제 완화, 국가기관의 안전 예산 삭감, 안전 업무 일부 민영화에 앞장선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친기업 행각에 윤활유 구실을 한 부패 구조의 꼭대기에도 박근혜 일당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윤 우선주의 친기업 정책들을 역대 정부들도 강화해 왔다고 해서 박근혜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박근혜는 그런 국가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친기업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때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과 은폐로 일관하다가 온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사적 치부인 것을 알면서도 기업주들이 돈을 내놓은 것은 단지 협박이 아니라 감사와 청탁의 뜻도 있는 것이다.

팽목항 기다림의 시간은 분노가 자라 온 시간이다. ⓒ이윤선

직접 책임도 있다.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첫 해에만 6백 개 넘는 규제를 없앤 것이 박근혜다. 선장의 선박 안전 관리 보고 의무를 없애고 과적과 화물 결박 점검을 서류로 대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박근혜다. 재난 관리 예산을 줄이고 해경의 수색구조계를 폐지한 것도 박근혜다.


해경의 구조 능력 약화는 관련 업무 민영화와 예산 직접 삭감은 물론이고, 예산 절감을 목표로 한 기관별 성과주의가 관료적 무책임과 상명하복 분위기를 조장한 대가일 것이다.


세월호 과적의 중요한 배경이 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찬성하고 공사를 서두른 것도 박근혜다. 그 배경인 미국의 군사 패권 정책에 앞장서 협력해 온 것도 박근혜다.


그런 호전적 정책이 우파 지지층을 달래고, 한국 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박근혜가 기업주들이나 제국주의자들과는 죽이 척척 맞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에게서 물려받은 계급본능일 것이다. 그러니 노동계급이 대부분인 희생자들의 목숨을 자기 어깨나 허리 잠깐 아픈 것보다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이윤 우선주의를 향한 사회적 문제제기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기업주들을 위해 온갖 반동을 수행해야 할 자신의 정부가 약화되는 일을 막으려고 박근혜는 지난 1천 일 동안 온갖 더러운 일들을 벌여 왔다. 


심지어 박근혜는 아비에게서 배운 공작정치 등 통치 기술을 유가족들에게 써 먹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 자신의 안정적 통치에 방해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 이윤 우선주의와 친제국주의 정책에 대중적 문제제기가 일어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런 사생활이 드러나 위신이 떨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진상규명 특별법을 반쪽으로 만들었고 그마저 ‘쓰레기 시행령’으로 다시 반토막 내 버렸다. 청와대(김기춘)와 국정원은 유가족을 ‘돈벌레’로 모욕하고,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 (김기춘이 감사원 세월호 보고서 내용 변경에, 황교안과 우병우가 세월호 검찰 수사에 각각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들도 최근 제기됐다.)


가진 게 변변찮아 자식이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인 사람들이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하소연할 기회도,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꺾어 버리려 한 것이다.


그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조대환을 자신의 마지막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만행들에 책임을 질 자가 박근혜 본인이라는 자백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극의 상징물인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악몽처럼 여겼을 것이다. 책임론이 다시 대두돼 원망과 분노가 다시 자신을 향할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거듭된 인양 결정 지연과 인양 실패는 ‘연출된 무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세월호 참사는 이윤 우선주의의 야만과 냉혹함, 노동계급 천대의 극치를 보여 줬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익 정권의 합작품이다.


이 사건을 보면, 체제의 사악함을 집약해 놓은 듯한 박근혜 정부의 존재 자체를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고 열 번이라도 탄핵을 당해야 마땅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항의는 이윤 우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축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적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수천만 노동자·민중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은 연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한 정권 퇴진 운동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요구가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도, 진상 규명도, 세월호 인양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악행들의 대가로 박근혜가 쫓겨나기 직전으로 몰렸다. 다만, 이는 최소한의 정의다.


지금이라도 유가족과 운동의 요구는 즉각 실현돼야 하고, 박근혜 정권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희생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즉각적인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 요구는 세월호 참사 해결과 한 몸이다.

멈춘 시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별이 돼 버린 아이들. ⓒ이미진

박근혜 퇴진 운동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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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우선순위 문제 성찰을 촉구하다




  •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
  • 세월호를 기록하다 오준호 (미지북스)
  •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사회운동)
  • 팽목항에 부는 바람 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
  •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될 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 있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살았지.”

“TV 자막이 떴어요. ‘전원 구조.’ 그때 부모들은 박수를 치면서 ‘그럼, 그럼,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배 만들어서 수출하는 나란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그 배가 일본에서 가져 온 낡은 배인지도 모르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에 실린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유가족의 피눈물 나는 말들이다.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소속 필자 열두 명은 유가족들을 심층 인터뷰해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활동과 심경을 담았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씻기 힘든 분노가 있다. 기업들의 책임과 부패 유착은 물론이고 정부의 구조 실패, 거짓 언론플레이, 진상 규명 방해가 점차 밝혀지면서 이 내려놓을 수 없는 분노는 수백만 대중에게 확산돼 왔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찬성하는 서명에 6백만여 명이 참여한 것은 단순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권당이 일년 동안 흑색선전을 펼쳤는데도 올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투쟁 때 여전히 여론 다수가 유가족의 요구를 지지했다. 올해는 더 많은 10~20대의 학생, 청년들이 거리 시위에 나와 폴리스라인에 맞섰다.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연대의 한복판에는 예방적인 안전 조처에서는 물론이고 구조에서조차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의 본능적 연대의식이 있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보면 작가들이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닐 텐데도 평범한 노동계급의 애환과 비애가 가득하다.(일반인 희생자들도 단원고 교사, 화물 운전사, 가족 여행객 등 대부분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


맞벌이를 하느라 (희생된) 애들을 평소에 잘 챙겨주지 못한 일, 갖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사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런데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밝게 살았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신발 하나 사달라는 거 사줄 걸. 가방만 하나 사줬더니 ‘엄마, 가방이 너무 비싸네? 신발은 갔다 와서 살게’ 하는 아들한테 ‘그래, 새 신발 신고 돌아다니면 발 아플 거야’ 그러면서 신발도 안 사주고 보낸 이 어리석고 답답한 엄마.”

못 믿을 기성 언론

달리 가진 것이 없어 자식이 유일한 ‘재산’이고 삶의 목적인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현재의 일상만이 아니라 미래의 일상까지 파괴된 사건이었다.

“출근하기가 싫어요. 회사에 왜 가는지를 모르겠어요. 다영이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엄마도 회사를 다녔던 것이고, 나도 애들 위해서 노력했던 건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목표의식이 사라졌어요.”


참사 당일, 언론은 ‘전원구조’ 오보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순전한 엉터리로 대응하는데도 언론은 헬기 수십 대, 함정 수백 대, 잠수인력 수십 명이 동시에 투입돼 있다고 버젓이 보도했다. 언론의 오보에 팽목항 현장에 있던 유가족들이 격분한 것은 당연하다.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


“배에는 앙카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그 방 아이들은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갖고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 선원들 중에는 학생들이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어대고 얼굴을 유리에 대고 숨을 거둬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 살펴보기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물음은 “왜?”로 압축된다. ‘왜 이런 사고가 나게 됐지?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 왜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지?’ 이것들이 응축돼서 ‘이게 나라야?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야?’라고 표현됐다. 이중 소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 즉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 의구심을 확대하고 있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미지북스),《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사회운동) 등은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가’에 대해 답변해 보려는 진지한 시도다. 세 권 모두 읽어볼 만하다.


《민변의 기록》은 민변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를 꾸려 유가족을 지원하면서 파악한 것들을 나름의 틀로 종합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이 참사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와 정부의 무능이다. 안전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 같은 중요한 공공 업무까지 민영화하는 등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공공성을 해체해 온 것이 참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사고 원인이라고 밝힌 ‘급변침’이 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지적은 침몰의 직접적 원인도 진상 규명 대상이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세월호 인양이 실종자 수색뿐 아니라 진상 규명에도 중요한 이유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과정과 기록들을 재구성해 참사 진실에 다가가려 한 수작이다. 작가기록단 소속이기도 한 오준호 작가는 재판 기록으로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행위만 기소하고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가 적법한지 여부만 따지기 때문에 … 지난 이십 년간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으로 …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결론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회 시스템이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 시스템 내 구성원들의 무책임과 비겁함은 “평범한 개인들도 자신의 행동으로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사회진보연대 박상은 활동가가 쓴 《대형사고는 왜 반복되는가》도 기업의 이윤 추구와 그것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조처들이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장점은 제목처럼 풍부한 국내, 해외의 대형사고 사례를 통해 대형 참사가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임을 보여 주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내놓은 대안들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 규제 강화, 민영화 중단과 원상 회복,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기업살인법 등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미 국가가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이런저런 조처들을 실행한 것이 문제가 된 터다. 왜 지금껏 국가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헌신해 왔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안전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세월호 참사가 특정 정권만의 문제일까? 세월호 참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려는 학자들의 논문집인 《팽목항에 부는 바람》(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에서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해경이 사기업인 언딘에게 구조를 위탁한 것은 정부의 기능 축소와 민간 위탁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결과이므로 구조적으로 이 사고는 국가 시스템 전반과 연관되어 있다. 해군의 통영함이 출항하지 못한 것은 해군 비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해경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도 오래된 관료사회의 문제점이 누적된 것이므로 단순히 박근혜 정권 차원을 떠난 국가 차원의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대형 참사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런 통찰력 있는 분석을 “한국 시스템의 한 결과”로 스스로 제한한다. 이는 한국 지배계급의 통치 특성을 “전쟁 정치”로 규정하는 그의 분석이 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한국 국가를 예리하게 구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절반의(또는 반의반의) 인민주권’, ‘안보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연속성’은 최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편(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특수(한국 국가)는 구분되지만 별개의 것이 아니다. 특수는 보편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찰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에는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을 다음처럼 분석하는 구절이 있다.

“시스템을 닫힌 체계로 인식하게 되면 기존의 시스템을 그냥 둔 상태에서 … 시스템을 지탱하는 암묵적 가정은 의문시하지 않고 시스템의 목표나 가치 그리고 전략을 그대로 둔 채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추가하게 된다.”


이 책을 쓴 연구자들은 사회의 우선순위를 공공성에 둬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지적과도 달리) 이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정에 도전하진 않는다. 앞의 책들처럼 이들이 지적하는 요인들, 즉 기업의 이윤 추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본주의의 생래적 특징인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연구자들의 지적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더 물어야 한다. 왜 기업들의 이윤 추구가 이 사회와 국가운영의 우선순위가 됐는지 말이다. 사회의 우선순위는 정치, 민주주의, 계급(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다. 따라서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앞의 책들회피하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특히,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이 필요하다. 세상을 통찰하려면 현미경도 필요하지만 망원경도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는 둘 모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시대에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와 저항 모두에서 구출하려고 등장한 강성 우익 정부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적’처럼 여기는 정부가 이윤 우선주의를 문제 삼는 유가족을 적대시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이성의 발로로 보는 것은 이 체제가 노동계급이 보기에는 비이성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는 합리적 소통과 공감이 사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도 보여 주는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한 유가족이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자기 아들 시신이 나왔다는 방송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체육관 인파에 섞여서 몰래 감시하던 사복경찰이 방송을 듣고 당신 아들 나왔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참사 당일 진도 현장에 배치된 해경의 5분의 4가 유가족 감시에 배치됐다(《금요일엔 돌아오렴》).


국가의 첫째 임무는 합법으로 폭력을 독점하고서 자본가 계급을 대표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계급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성공해 자본주의 경제가 성공하는 것이 그것에 기초한 국가가 부강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예방하고 체제 내로 포섭하려고 통치의 절차상의 정당성을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수 대중을 분열시키고 현혹시키는 일들을 매일매일 꾸며 낸다. 사람들은 오직 저항할 때나 격변적 경험 속에서 이를 문득 깨닫게 된다. (격변적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재난 때 저들은 유언비어 단속에 더 열중하는 것은, 바로 그 평소의 거짓말들이 탄로날까 봐서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좋은 것이다는 식의.)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국민도 아닌 것 같아요. 대통령이 국회에 연설하러 왔을 때는 거의 경악 수준이었어요. 엄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대통령 눈길 한번 사로잡으려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눈길 한번 안 주더라고. 그러면서 웃으면서 지나가더라고. 그게 사람인지요. … 대통령이 그러니 그 밑에 사람들은 어떨까 싶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유가족을 외면한 박근혜의 눈길과, 국가를 믿고 구조만 기다리던 무고한 목숨들을 가차없이 외면한 이 사회 시스템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뿌리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에서 착취받는 노동으로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주도적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149호 | 발행 2015-05-25 | 입력 2015-05-23
※짙은 회색으로 된 문장들은 지면 제약상 등의 이유로 축약한 것을 내가 덧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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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4월 20일 4·16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주최로 경찰 탄압 규탄과 시민 피해 상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4·16연대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이기도 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은 이 기자회견을 지지해 여럿이 참가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직후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이들에게 ‘운동권이 많이 와서 외부 세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유가족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 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우파는 유가족과 광범한 ‘외부 세력’을 분리시키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시위에 정권 퇴진 구호가 나오거나 정치 단체나 사회운동 단체들, 노조가 참여하는 것을 두고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는 식으로 비난해 왔다. 익숙한 상투어들이다. 

특히 16일, 18일 집회 후에는 경찰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우파 언론의 마녀사냥식 공세도 거세졌다. 아마 그 시민단체 활동가도 여기에 위축돼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안전 문제조차도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에게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도 높고, 사고가 나면 구조를 못 받을 확률도 높다. 계급 간에 불평등하게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대형 사고는 대부분 작업장에서 일어난다. 이윤을 만들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공장, 건설 현장, 백화점, 철도나 선박 등등. 이런 공간들 대부분이 노동자나 서민 대중이 일하거나 이용하는 공간들이다. 이런 곳들에서 기업주들은 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려고 노동자를 쥐어짜고 안전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을 위해 국가는 안전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 왔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오래된 건물의 수직 증축을 허용하고,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설에 대한 관리 기준을 완화하는 등 규제 완화라는 돌팔이 ‘항암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 산업 육성’을 대안이라고 내놨다. 이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상품화한다는 것이고, 구매력이 떨어지는 노동계급과 서민 대중은 더 많은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국가가 이를 도우려고 지속적으로 안전 규제를 약화시켜 온 것과도 관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기업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까지도 따져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하고, 박근혜 정부와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특별법 시행령 건에서도 보듯 박근혜 정부 스스로 진실 규명 방해 주범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참사 이후 이윤 획득을 가장 앞세우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의문과 각성이 커져 왔다. 유가족들 스스로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줬다.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려면, 더 많은 정치적 각성이 필요하고 정치적 운동과 정치적 조직이 필요하다. 정부와 우파의 협박은 이런 식의 사태 발전을 막으려는 것이다.

탄압 협박과 외부 세력 개입 운운은 분노한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이간시키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계급적 각성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좌파들이 세월호 참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운동이 정치적으로 비치면 ‘역풍’이 분다는 수세적 태도가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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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의 정상적 작동이 만든 비극이다




세월호 선원들 재판 과정에서 출항 당시 과정을 담은 CCTV를 보던 유가족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여객선을 탄다더니 화물선이었어”라는 말이었다.(《세월호를 기록하다》, 오준호, 미지북스)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승객도 돈 벌어 주는 화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 번에 최대한 많이 실어서 매출을 늘리는 것이 유리한 일이다. 게다가 2012년에 매입한 세월호로 수익을 올리려면 최대한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했다. 여객운송 업계의 불경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청해진해운의 돌파구는 무리한 증축과 일상적인 과적 운항이었다.


선주들이 돈을 내어 만든 해운조합 운항관리자는 평소처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안개 낀 밤에 출항을 허가했다.


20년이나 된 데다가 이미 증축으로 배 자체의 복원력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진 세월호였다. 예정 시간을 넘긴 뒤 출항하느라 급하게 과적을 하다 보니 그나마 고박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운 좋게 14시간만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열악한 처우가 만든 무기력감은 선원들의 책임성도 무디게 만들었다.


이 전 과정에서 정부가 꾸준히 안전 규제를 해체해 온 것이 영향을 미쳤다. 선령 규제 완화, 안전 감독의 민영화, 화물 고박 관련 검사 축소 등. 


세월호가 출항해 사고가 나는 과정은 이 사회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더 빨리 벌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업들의 이윤 경쟁과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구조 과정을 봐도, 해경 지도부가 포함된 구조 당시 교신 기록은 이들이 제대로 된 구조 매뉴얼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 기록마저 나중에 조작해 검찰과 감사원에 제출했다. 검찰과 감사원은 이를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세월호 항로에는 중형 함정이 배치돼 있었어야 했는데, 없었다. 전문 구조대는 이동 수단이 없어서 배가 다 가라앉은 뒤에야 도착했다. 구조의 민영화 자체가 책임 회피와 비용 절감을 위한 것이므로 구조 체계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적인 중복 투자로 보였을 것이다.


해경의 구조적 무능은 국가 자체가 ‘생명보다 이윤’이라는 자본주의적 우선순위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친 뒤에는 구조 작업을 일개 기업에 맡기고는 교신 기록 조작 등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참사 당일 진도 팽목항에 출동한 해경의 다수는 구조가 아니라 유가족 감시에 투입됐다.


평범한 사람들을 천대하고 이들을 위한 치안이나 구조에는 소홀하면서, 고위 통치자들을 보호하고 이런 계급 질서를 지키는 것에는 열심이며, 책임지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려는 모습. 우리가 날마다 보는 경찰 등 국가기관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가 ‘정상’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반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음모론들은 기획 학살설이든, 잠수함 충돌설이든 뭔가 일탈적 상황으로 세월호 참사를 본다. 음모론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상식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상식으로 해석될 수 없는 사건이다 보니 자꾸 일탈적이고 음험하며 충격적인 원인을 찾게 된다.


물론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라는 상식적 생각이 현실에서 배반당했다는 배신감이 때로는 정당한 항의에 나설 근거가 된다.(태극기 소각도 그런 충격과 배신감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국가는 법으로 폭력을 독점해 작동하는, 지배계급의 도구다. 자본주의 국가는 노동계급 소속 국민들에게 납세와 병역 등 의무를 강제하지만, 정작 복지, 민주주의, 노동권 등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의무라고 법전에 명시된 것들은 노동계급이 저항하기 전까지는 이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토록 잔인하고 비정한 체제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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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뿐 아니라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공식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해 항의 운동이 다시 부상하자 유가족들의 요구 중 하나를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다. 끈질기게 싸워 온 유가족과 우리 운동의 성과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5월에 인양이 가능하다는 기술 검토를 마쳤고,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자고 유족들을 설득하던 11월에는 먼저 인양 얘기를 꺼냈다. 인양해서 실종자를 찾자는 것이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인양을 검토한 것은 침몰 원인 등 진상 규명과 희생자 수습보다는 사건을 빨리 정리해 버리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구조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언딘의 기술이사는 당시 ‘구조가 아니라 배 인양을 위해 갔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이미 인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면서도 “세금 도둑” 운운하며 유가족을 고립시켜 인양을 회피하고 진상 조사와 시신 수습까지 방해해 온 것이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정부 시행령(안) 입법예고가 자충수가 됐다.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지 못한 반쪽짜리 특별조사위원회마저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정부가 진실 은폐 주범이라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래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과반의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결정’ 요구를 지지했다. 또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16일, 18일에는 수만 명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며 정부에 항의했다. 특히 18일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봉쇄선을 뚫어 기세를 보여 줬다.


여기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리스트에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현직 국무총리, 현직 도지사 등 정권 핵심 실세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 나왔다. 대통령 자신이 불법 대선 자금 의혹의 주인공이 되게 생겼다.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4·29 재·보선 표심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고 요건 완화 시도 등에 맞서 민주노총이 벌일 일련의 파업 투쟁들과 만난다면, 정권으로서는 더 큰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재·보선의 특성상 결과 예상이 쉽지는 않지만, 만일 여당이 패하면 박근혜의 국정 통제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도 30퍼센트대로 다시 떨어졌다.


그래서 박근혜는 서둘러 이완구를 사퇴시키고 세월호 인양 계획을 발표했다. 이완구는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앞장선 인물이기도 했다. 정부의 부패 스캔들을 이용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전진한 것이다.



꼼수: 시간 벌기하면서 탄압하고 이간질시키기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파헤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일 지난해 결정해 인양 작업을 시작했다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에 배를 건져 올려 침몰 원인을 조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인양 결정 지연이 진실 규명을 막으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세월호 인양은 나중에라도 방해 공작을 펼 수 있으니 마지못해 수용하면서도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한사코 피하고 도리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탄압하는 것만 봐도 정부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래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 가족협의회)’는 “인양 선언을 환영하지만 아직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4·16 가족협의회’는 시행령(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강조해 요구했다. “선체 인양을 위한 모든 과정을 ‘4·16 가족협의회’와 공개적으로 협의하면서 신속히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진상규명 특별법 정부 시행령(대통령령)을 즉각 폐기[해야] … 합니다.


정부는 인양 계획 발표라는 사이드스텝을 밟는 동시에 탄압의 훅을 날리고 있다. 경찰은 18일 집회에서 광화문 봉쇄가 뚫린 것을 빌미 삼아 수사본부까지 차려 ‘시위 참가자들을 처벌할 것’이며, ‘주최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 벌써 당일 집회 참가자 두 명이 구속됐다. 구조 당시 교신 기록을 조작한 해경 지도부는 처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동안 보여 준 것은 구조에는 무능, 진실에는 모르쇠, 진압에는 최선, 탄압에는 신속뿐이었다. 이런 정부가 정당한 집회를 불법 폭력으로 매도하고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탄압의 칼날을 겨누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의 과제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 참가자들이 경찰 탄압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박근혜가 요구 하나를 수용한 것 자체가 운동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게다가 부패 스캔들로 정부가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 시행령(안)도 문구 수정 같은 정부 꼼수를 단호히 거부하고 폐기를 목표로 뚝심 있게 싸워야 한다. 또한 그런 점에서 ‘불법 폭력 시위’, ‘매국 행위’, ‘유가족이 아닌 외부 세력의 선동’, ‘정치투쟁으로 변질’ 따위의 비방에도 단호하게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각별히 우파적인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이런 야비한 정부와 맞서 싸워 참사의 진실과 책임을 규명해 내려면, 운동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 조직 노동운동의 힘과 연결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노동운동이 요구해 온 ‘이윤보다 인간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투쟁의 일부다.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요구와 투쟁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 다수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


결정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부를 물러서게 할 잠재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 내 좌파 활동가들과 투사들의 몫이다.


대규모 시위와 행진도 계속돼야 한다. 4월 24일 민주노총 파업 집회부터 25일 집회, 5월 1일 노동절 집회 등이 중요할 것이다.


마침 유가족들도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대거 참가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파업을 지지하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투쟁에 노동자들도 함께해 줄 것을 호소할 것이다. 5월 1일에는 1박 2일 철야 행동도 호소하고 있다.


이 투쟁들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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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에는 무능, 진실은 모르쇠, 진압에는 최선, 탄압에는 신속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투쟁은 정당하다

적반하장식 경찰 탄압 중단하라



노동자연대 성명 보기 ☞ 바로가기



경찰에 도전한 것 자체가 극렬 불법 폭력 시위란다. 경찰은 자신들이 ‘폭력을 법적으로 독점’한 집단이라는 것을 자백한 것이다.

이 사회가 합법적 폭력으로 유지되는 사회라고 암시한 것이다. 국가와 국민 간의 사회계약이 아니라 국가로 결집된 지배계급이 폭력을 법으로 독점하고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놈의 국가는 구조에는 무능해도 진압에는 최선일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 수백 명 목숨에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국가에게 평범한 민중이 항의하고 시위하는 것이 죄일까? 누구에게 죄일까?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 그 ‘약속’을 믿었던 청년 하나가 국가, 다름 아닌 바로 ‘대한민국’ 국가가 스스로 그 (가짜) 약속을 내팽개친 것에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욱해 종이 태극기 하나 태운 일이 무슨 대수라고 호들갑일까? 더 효과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그 정도의 표현의 자유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편, 이날 경찰의 봉쇄와 진압 작전은 해산과 검거가 일차 목표인, 피냄새 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경찰이 자애로워서가 결코 아니다. 세월호 1주기라는 특성, 즉 국민적 추모 정서와 정부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방해에 대한 반감과 분노, 그리고 최근 정권 핵심부의 부패 추문에 따른 곤혹함 탓이다.

그렇다고 경찰의 이날 작전이 과잉진압이 아닌 것은 아니다. 듣도보도 못한 6중 차벽을 쌓고 광화문을 수영장 만들 기세로 물대포를 쏴대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얼굴에 최루액을 직사로 뿌리고 때리며,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때리고 모욕하고 연행한 짓들이 용납될 수는 없다. 그런 자들이 맨 몸의 집회 참가자들이 테러리스트나 되는양 적반하장으로 혓바닥 놀리는 꼴은 눈 뜨고 봐 주기 힘들다. 

해경은 구조 무능과 실패, 외면의 증거를 조작하고 육지 경찰은 유가족을 괴롭히고 진실을 밝히자는 사람들을 패서 연행하는 것. 진도 앞바다에서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정부가 시위 참가자는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검거하겠다니. 끊임없이 유가족과 사람들을 모욕하는 박근혜 정부. 너희들은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수백 명을 죽이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것은 이 체제 자체가 구조화된, 일상화된 폭력 그 자체라는 소리다. 그런 체제 앞에서, 내 자식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것이, 그런 유가족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는 것이, 사람도 아닌 버스 좀 두들긴 것이, ‘위험천만한 폭력’(?)이라면, 제기랄, 파리가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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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진실 규명의 투지가 정부의 봉쇄선보다 셌다

김지윤ㆍ김문성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 및 청와대 인간띠 잇기 대회’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은사람들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의지와 경찰의 진압·봉쇄 의지가 충돌한 날이었다. 경찰은 종로부터 경복궁 앞까지 겹겹이 차단벽을 쌓고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난사하며 수만 명의 사람들과 유가족이 만나는 것을 막았지만, 이날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의 투지가 더 셌다. 진실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곳으로 침몰시켜 버리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겹겹이 둘러친 차단벽을 뚫고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이 만난 이날 집회와 행진은 추모조차 맘 편하게 할 수 없게 만든 박근혜 정부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인 일이었다. 집회 대열은 유가족들과 만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부패한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박근혜와 경찰 당국에게는 불안한 일이겠지만, 참가자들 모두 고무돼 돌아갔다. 다음 주 또 모일 것을 약속하고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전국 집중 대회인 만큼 제주, 전라, 경상,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노란 깃발을 띠운 대열이 모여 들었다. 3만 대열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지난 4월 16일 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10대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대열이 눈에 띄었다. 총파업 선포대회 직후에 열린 터라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많았다.

사회자는 “이제 추모를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 규명을 위한 행동을 호소하며 대회를 시작했다.

민주주의 국민행동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가 첫 발언자로 나섰다. 함세웅 신부는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한 다윗과 이를 비판한 나탄에 관한 성경 속 이야기를 소개하며 “잘못된 사람, 부정부패한 사람,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도려내고 조사해야 한다고 얘길 했는데 조사 받아야 하고 부패한 것은 바로 박근혜다. 차떼기당인 새누리당은 해체돼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해산시키자! 대선 불법 자금 주모자가 박근혜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말처럼 하는 이 여인,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박근혜에게 외쳐야 한다”고 속시원히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맞습니다”를 외치며 호응했다.

뒤이어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의장인 김한성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구미현 씨가 무대에 올랐다.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하며 온갖 거짓말과 폭력, 모욕을 경험하고 상처 받았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겐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 정권은 해도해도 너무 한다. 청와대가 사람 살던 곳이냐. 쥐가 살더니 이젠 닭이 살면서 제 멋대로 하고 있다. 박근혜 찍어줬던 밀양 할매들은 이제 ‘박근혜 오기만 해봐라’ 하며 분노하고 있다. 이 정부는 사람보다 돈이다. 우리 자식들이 침몰하는데 가만히 있지 않겠다. 박근혜가 물러설 때까지 싸우겠다.” 구미현 씨의 발언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한성 의장은 “대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하고 있다. 4.19 혁명의 정신을 잊지 않고 끝까지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은 “지금 박근혜 정부는 우리 모두를 연행하고 있다”며 울분을 담아 시를 낭송해 참가자들을 먹먹하게 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로 단원고 허다윤 학생 아버지 허흥환 씨와 박혜선 학생 어머니 임선미 씨가 무대에 섰다. 임선미 씨가 눈물을 터뜨리며 절규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잡아가나요? 우리가 가해자인가요?” 진실 은폐로도 모자라 유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전 우리 혜선이, 그 예쁜 혜선이 얼굴도 못 보고 보냈어요. 1년이 이렇게 힘든데, 앞으로 새털 같은 날들은 어떻게 살죠? 시체팔이라고요? 네, 맞아요. 우리 혜선이 덕에 부자 되어서 이 나라 뜰 거예요. 그리고 박근혜 너도 이 나라 다시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한 임선미 씨는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는 무대에 주저 앉아 통곡했다. 참가자들도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유가족들 곁으로 갑시다!”


한편,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선포대회와 세월호 1주기 집회가 열리는 그 시각 경복궁 앞 광화문 현판 아래서는 경찰이 또 도발해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었다. 이날 하루 경복궁 앞에서만 16명이 연행됐다. 출입 통제는 물론, 경찰 차벽으로 유가족들이 무엇을 위해 시위하는지도 감추려 한 경찰들에 항의해 유가족들이 경찰 차벽에 올라가 대로를 향해 팻말 시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야비한 경찰들 때문에 한바탕 난리를 치고 유가족들이 기다린 것은 서울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연대하러 와주는 것뿐이었다. ‘유가족은 고립되지 않았다’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은 우리가 함께 이뤄내야 할 일’이라고 외쳐 줄 수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에게는 필요했다. 경복궁을 지키던 유가족 말마따나 정부가 유가족을 폭도로, 종북으로, 자식 팔아 팔자 고치겠다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세월호보다 더 깊은 고통의 심연으로 내몰려고 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김혜진 씨가 집회를 중단하고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지금 광화문 앞에서 유가족들이 연행되고 있습니다. 더는 범국민대회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함께 광화문 앞 유가족 곁으로 모여 주십시오!”

유가족들의 연행 소식에 분노한 대열은 광장을 빠져 나와 광화문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로에는 이미 거대한 경찰 차단벽과 경찰 버스로 만든 차벽이 서 있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무려 1만 5천여 병력을 동원했다. 1년 전, 바다에서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은 집회 참가자 공격에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광화문 사거리로 통하는 대로는 이틀 전처럼 거대한 차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저렇게 다 광화문으로 오면 동네는 누가 지키냐”는 한 유가족 어머니의 얘기가 와 닿는 상황이었다. 이날 경찰은 어떻게든 유가족들과 집회 대열을 떼어 놓으려 했다.

경찰은 행진 시작도 전에 불법적으로 차단벽을 쳐 놓고는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집시법 위반이다.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해산조치 하겠다”며 위협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유가족들을 향한 연대를 막아 선 경찰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경찰 차벽이 불법이다!”, “먼저 차벽 세우고 교통 통제한 경찰이야말로 시민들 불편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참가자들은 차벽을 피해 청계 광장을 지나 종로를 통해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다. 그러나 길목마다 경찰이 막아선 통에 참가자들은 종로3가까지 뛰어서야 겨우 종로로 나올 수 있었다.

종로를 차지한 대열은 기세 있게 구호를 외치며 안국역 부근까지 행진했지만 이내 종로경찰서 앞 차벽을 마주해야 했다. 유가족들을 코 앞에 두고서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하철로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광장에 겨우 들어 온 참가자들의 분노가 확인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였다. 이미 종로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온 참가자들에게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두 차례의 저지선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보다 해체의 대상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 시민들이, 심지어 10대 학생들까지 서로 앞장을 서며 어떻게든 더 유가족들 가까이 가려고 뛰고 부딪치고 넘었다. 정부의 명백한 구조 실패 책임을 덮으려고 온갖 추악한 공격을 해 온 박근혜 정부, 수십 조 원이 넘는 이명박의 4대강 비리 등은 수사 시늉만 하고 넘어가면서 경제 위기의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한데 모였다.

결국 세종대왕상과 광화문광장의 북단 저지선까지 뚫었다. 이 소식은 금세 경복궁 앞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이 광화문 차벽을 뚫었답니다!” 얼마 안 지나 함성 소리가 들렸고 경복궁 앞과 광화문 북단의 두 차벽을 넘어서 펄럭이는 깃발들이 보였다. 애타게 연대 행진 대열을 기다리던 유가족들은 광화문 광장 북단의 대열에게 들리도록 구호를 외치고, 차벽에 올라 팻말을 들며 서로 함께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해경은 증거 조작, 육지 경찰은 유가족 탄압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경복궁 앞 대로로 나오는 길마저 참가자들이 뚫고 나오려 하자, 유가족들은 아예 차벽을 넘어 나가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경찰들을 몸소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도 부상을 많이 입었다. 유가족들은 대로로 나오는 대열을 조준하려고 오는 물대포차 앞에 누워버렸다. 덕분에 시간을 번 참가자들은 마지막 저지선까지 뚫고 대로로 나와 유가족들과 만났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가 경복궁 앞 대로를 가득 메웠다. 아마 박근혜가 미리 도망가지 않았다면 청와대에서 이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먼저 나온 참가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대로로 나올 수 있도록 경찰과 대치하는 동안, 참가자들 일부는 아예 경복궁 앞 차벽까지 넘어 유가족들과 만났다. 이들 수백 명은 유가족들과 함께 경복궁 앞 인도를 통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다급해진 경찰은 참가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무자비하게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이 날 하루만 연행자가 1백 명이 넘는다. 연행된 유가족들만 20명이다. 이 날 박근혜 정부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그 고통에 공감하며 진실 규명을 외치는 참가자들에게 “불법” 운운하며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이것은 명백한 유가족에 대한 모욕이다. “가족 잃은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박근혜의 본심은 진실 파묻기일 뿐이라는 것이 똑똑히 드러났다.

몇 시간을 대치한 끝에 밤 10시 반이 넘어서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합류했다.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는 “감사하고 미안하다. 오늘 희망을 봤다. 끝까지 싸우겠다”며 4월 24일과 25일에 또 만나자고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환호 속에 발언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세월호 진실 규명에도 노동자가 앞장서겠다며 4월 24일 총파업 때 만나자고 호소했다.


18일 집회 성공 이후의 상황과 과제


이 날 경찰 차벽이 박근혜 정부의 진실 규명 가로막기의 상징이었다면, 어떻게든 유가족들의 손을 잡으려고 행진한 대열은 진실 규명 투쟁 의지의 표현이었다. 경찰은 19일 오후 ‘시위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전원 사법처리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나머지 15개 지방경찰청에도 수사전담반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까지 했다. 강도 높은 보복성 협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위헌 판결이 난 경찰 차벽을 종로에서 경복궁 앞까지 6겹이나 쌓은 경찰이 불법 시위 운운하고 맨몸의 참가자와 유가족들에게 (규정까지 위반해 가며) 방패와 물대포, 최루액 살포를 아끼지 않은 경찰이 ‘극렬 행위’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실제로 귀가길이 막힌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다.) 진도 앞 바다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가, 진실 규명을 요구한 참가자들의 불법 행위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런 짓인가.

18일 시위의 성공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만과 분노가 크고 격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줬다. 경찰의 신속한 사법처리 방침 발표는 바로 이런 점을 걱정해서다. 이 시위의 성공이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을 고무하는 것은 악몽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지배계급 안에서 박근혜 정부의 통치 능력에 불신을 가지는 세력이 커져 4.29 재보선은 물론이고 향후 국정 통제력이 급속히 약화될 위험이 있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30퍼센트 대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인 고통전가 공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이 경찰의 협박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더욱 확고하게 주장해야 한다. 다행히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를 이윤보다 인간으로 돌리려는 운동의 일부라는 자각도 커져 왔다.

반면, 경찰의 사법처리 협박은 평범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 어려우면 우파 결집에 기대는 것밖에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앞길을 보여 준다. 당분간 위기 속에서, 위기 때문에 더욱 박근혜는 강공책에 매달릴 것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KBS, MBC 등과 조중동 종편 등은 이를 위한 여론몰이에 앞장설 것이다. 다음 주 집회 때는 자존심 상한 경찰이 16일이나 18일보다 더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최근의 정치 상황 때문에 더 공격적인 진압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예상은 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사회를 위해 싸우는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이 조직 노동운동의 힘과도 만나야 할 필요성을 더 강력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노동운동도 자신들의 쟁점과 연결해 이 투쟁에 앞장서야 더 힘이 커질 수 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 다수의 보편적 이익과 연결되고 대변한다는 점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 좌파의 구실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시행령(안) 발표로 참사의 진실을 확실히 묻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지 3주 동안 운동이 발전해 온 속도와 강도를 볼 때, 진실 규명 운동의 투지, 이에 대한 지지도 쉽사리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와 함께할 4월 24일, 그리고 25일 행동은 이런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경찰의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길일 것이다. 그러려면, 다음 주초에라도 징검다리가 될 경찰 폭력 항의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김지윤·전문기

4월 18일 ‘“멈춰! 박근혜, 가자! 총파업” 노동자-서민 살리기 민주노총 총파업 선포대회’가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민주노총은 4월 13일 84.35퍼센트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이 무대에 올라 “역사를 바꾸는 파업에 나서자”며 선포대회 시작을 알렸다.

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이 투쟁 호소 발언에 나섰다.

“일년에 2천5백명씩 산업현장에서 죽어간다. 수년간 사람 죽어가는 문제 해결해달라 요구했는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하고 있다. 24일부터 시작되는 총파업으로 무능 부패 박근혜 정권 갈아치우는데 복무하겠다.”(건설연맹 이용대 위원장)

“1년 전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 행동하겠다 다짐했다. 자본의 민낯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의 곳간은 넘치는데 노동자 서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의 삶, 노후 우리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정부는 전교조 연가투쟁을 불법이라 한다. 그러나 쟁의권도 없는 전교조도 노동자의 권리인 연가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헌법을 짓밟는 박근혜야말로 구속돼야 한다. 협박에 굴복하지 말자. 온전한 삶과 노후를 위해 투쟁하겠다.”(전교조 변성호 위원장)

“공무원노조는 파업권이 없다. 설립신고도 안 돼있다. 노동3권중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투쟁이 급하기 때문에 그 대열에 섰다. 이길 때까지 싸울 거다. 정부가 탄압을 경고했다. 공무원노조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칼 빼지 않았다. 정부가 탄압한다면 더 큰 칼을 빼서 정부에 맞서 투쟁하겠다.”(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

“노사정합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4월까지 임금피크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고 5월까지 성과연봉제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공부문을 돈벌이로 내몰고 있는 공공부문 2단계 정상화 지침 용납할 수 없다”(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

“무능, 무책임 넘어 비리 부패 정권, 박근혜는 나라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 금속노조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4.24 총파업을 결의했다. 15만 전 사업장 4시간 이상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지역별 결의대회에 참여해 선봉에 서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총파업이고 박근혜와 맞짱 뜨는 투쟁 전개하겠다.”(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끝으로, 한상균 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총파업을 선포하고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더 이상 구호에 그치는 총파업 하지 않겠다. 공무원 연금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뺏고, 노조를 공격하는 정부에 맞서 필사즉생의 각오로 나서고 있다. ...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날 해외로 날랐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르기 전에 공무원 연금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했다. 부정부패 뿌리 뽑겠다는 가당치 않은 으름장을 놓았다. 진짜 손봐야 할 자들이 누구냐? ... 미친 정부를 끝내려면 미친 듯이 싸워야 한다.”

한편, 본대회에 앞서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기념하는 ‘노동안전 쟁취대회’가 열렸다.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의 세월호 참사를 막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재해로 고통 받고 있는 건설연맹 플랜트노조 부위원장이 산재와 비정규직 확대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작업 중지권 보장하라”, “기업 살인법을 제정하라”, “규제 완화 중단하라”,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를 함께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성우 아빠’ 최경덕 씨도 연대를 호소했고, 참가자들은 따뜻하고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3백67일 전에 금속노동자였다. 지금은 4.16 가족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유가족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도 똑같다. 아이들에게 그랬듯이 이제 부모들에게도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내 새끼가 죽었는데 책임자가 없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도와달라.”

세월호 인양 상징 의식이 시작됐다.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노동자들은 4월 24일 파업을 발판으로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고 결의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노동계급의 문제다. 희생된 사람들도 그렇지만, 참사의 배경에도 모두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양 삼는 체제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고유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과도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총파업 선포대회가 끝난 후에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어진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에참가하고 행진에도 앞장서 진실 규명 투쟁에 힘을 보탰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적극적으로 참가해 앞장선 일은 다른 많은 참가자들에게 힘이 됐다.

ⓒ<노동자 연대> 146호 | online 입력 2015-04-19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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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 끝까지 행동할게!”


김지윤ㆍ김문성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조차 가슴 아파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차분한 애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가족과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분노와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투쟁으로 가득 채웠다.

세월호 1주기인 16일, 낮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 분향소에는 청년들의 긴 줄이 저녁까지 줄지 않았다. 서울광장에서 저녁에 열린 ‘대통령령 즉각 폐기! 선체인양 공식 선포! 4 · 16 약속의 밤’에는 5만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이 광장 주변 차도까지 넘쳤다.

이런 애도와 공감, 연대에 박근혜의 대답은 도발이었다. 지난 반 년 간 걸어 나와도 만날 수 있는 광화문광장의 유가족들을 외면해 온 박근혜는 (분노한 유가족이 미리 알고 분향소를 폐쇄하고 철수해 분향도 할 수 없고 유족도 만날 수 없는) 진도 팽목항에 가서 깜짝 쇼를 했다.

도통 박근혜 머리 아니면 생각도 못 할 것 같은 이 도둑 추모 쇼에 따라가 멋진 사진을 찍어 준 주류 언론들은 충실히 박근혜의 팽목항행 일정 관련 엠바고를 지켰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반성하고 약속한 것도 없이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라]”는 복장 뒤집는 소리나 해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해외 순방을 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경찰 차벽, 최루액, 경찰 폭력이 남았다. 경찰 방패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수술을 해야 할 지경이 된 성복 엄마 ‘권남희’ 씨가 남았다. 진실을 규명 못 한 상태에서는 추모를 할 수 없다며 분노와 투쟁으로 1주기를 맞자고 호소하던 수백 명의 유족들이 남았다. 자정이 넘어도 폭력경찰에 맞서 물러서지 않았던 수만 명의 성난 청년들, 학생들, 노동자들이 남았다. 분노가 남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세월호 국면을 정리하는 기회로 이용하려고 반쪽짜리 특별조사위원회마저 정부 시행령(안)으로 식물 상태로 만들려고 한 지 3주 만이다.

해고 요건 완화, 공무원연금 개악 등 노동자 공격으로 우파를 결속하고 지배계급 내에서 자신의 신뢰를 재구축해 재 · 보선 등에서 개가를 올리려 했던 박근혜의 계획은 지금 제 궤도를 가지 못하고 있다.


4 · 16 약속의 밤


평일임에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실 규명을 요구하기 위해 5만여 명이 모였다.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서울만이 아니라 광주, 전남, 부산, 경남,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1주기 집회가 열려, 서울을 빼고도 1만 2천여 명(17일 정오에 집계된 수치만)이 참가했다.

집회 시작 시각 7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서울광장은 노란 리본을 달고 국화꽃을 든 대열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퇴근 시간이 지나자 대열은 삽시간에 불어나 이동이 힘들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누더기 특별법 통과 이후 잠시 소강 상태인 듯 보였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1주기를 앞두고 정부가 쓰레기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며 다시금 들끓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날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삭발까지 감수하며 단호하게 투쟁에 앞장 선 유가족들의 호소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핵심 구실을 했다.

이 날 집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줬다. 서명부스마다 참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노동자 연대> 부스에 마련된 ‘세월호 인양 요구’ 서명은 용지가 모자랄 정도였고, 참가자들은 뒷면에라도 서명을 하고 싶다고 이름을 써낼 정도였다.

특히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서 참가한 것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대학생들은 이 날 도심행진과 사전집회를 열기도 했다. 조직된 학생 대열은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집회에 참가한 청년들도 상당수 눈에 띠었다.

전명선 가족협의회 대표가 첫 발언으로 호소했다. “대통령, 국무총리 누구도 답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한낱 돈으로 치부하는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 답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앞장서 행동할 것이다.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같이 행동해 달라.”

이어진 영상에서는 소중한 가족을 떠나 보낸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더 잘해줄 걸” 하며 흐느끼는 한 어머니의 모습에 대열 여기저기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실종자 9명 중 한 명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가 실종자 수습을 외면해 온 정부를 향한 울분을 쏟아냈다. “아직 바다 속에는 9명이 있다. 그들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는 눈물을 참아가며 차분하고 또박또박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최윤아 씨의 발언은 많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미안하다’입니다. 그런데 정작 잘못한 사람들은 왜 사과하지 않나요? ‘미안하다’고만 하고 ‘살려달라’는 우리의 손은 왜 잡아주지 않나요?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세월호를 인양해 주세요. 시행령을 폐기해 주세요. 희생자 분들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저희는 동생이 죽어 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지 말아 주세요. 같이 행동해 주세요. 저희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말고 잡아주세요.”

발언이 끝나고 유가족들은 함께 세월호 모형을 온전히 인양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안치환 밴드, 이승환 밴드 등도 공연으로 유가족을 비롯한 5만여 명과 마음을 나눴다.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에, 해경의 증거 조작 등이 새롭게 폭로된 상황 때문인지 참가자들의 분노는 투쟁하는 분노로 느껴졌다. 광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은 서로에게 고무 받았다. 


행진


이런 자신감과 분노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집회가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은 헌화 행렬조차 거대한 차벽으로 막았다. 태평로 전 차선을 청계천부터 서울광장까지 채운 행진 대열은 물러서지 않고 항의했다. 경찰의 불법 운운하는 해산 방송에는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불법? 구조 안 한 것은 합법이냐?”

행진 대열은 청계광장을 통해 행진을 이어갔다. 청계천에서 종로 방향으로 가는 다리 곳곳에서 경찰 차벽과 방패가 길을 가로막았지만, 그 곳곳마다 교복입은 청소년들, 대학생들들이 최루액을 뒤집어 써가며 싸웠다. 결국 종로3가에서 종로에 진출한 대열이 종각으로 행진하며 곳곳의 대열이 모두 종로로 합류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수만 명이 “정부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쳤다. 유가족들과 청년들이 경찰차 위로 올라서 투쟁과 연대를 호소했다. 탄압에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종각까지 밀고 갔던 행진 대열은 유가족 70명이 경복궁 앞에서 고립됐다는 말에 인사동 방향을 통해 경복궁을 가려고 시도했다. 이미 막차가 끊길 시점인데도 수천 명이 남아서 인사동 골목을 메우고, 길이 막히자 경찰의 봉쇄를 피해 삼삼오오 경복궁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이 철통 같은 골목 봉쇄를 하는 바람에 많은 참가자들이 경복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복궁 행을 막으려는 경찰 폭력으로 유가족 한 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조계사 앞에서 성복 엄마 권남희 씨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조계사 뒤편과 종로구청 사이 골목 곳곳에서 작은 충돌들이 벌어졌다.

경복궁에서도 경찰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경찰이 전체를 포위하고 연행 시도를 한 것이다. 유가족들은 (연행 위험이 더 높은) 대학생들을 보호하려고 스크럼을 짜고 저항했다. 격렬하게 버텼지만 힘에 부쳤고 결국 네 명이 연행됐고, 이 날 총 10명이 연행됐다. 그 건너편 광화문광장 북단에서는 경복궁에 들어가지 못한 대학생들이 밤새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차벽과 경찰 병력으로 농성자들을 아침까지 에워쌌다. 17일 오전에는 쓰러진 유가족을 위해 부른 119 구급차 출입까지 방해하는 작태를 부렸다.

경찰의 이런 행태는 유가족들의 경복궁 농성이 새로운 상징이 돼 정권에 대한 저항이 확산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정권 자체가 부패 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박근혜는 자신이 해외 순방으로 없는 동안, 공무원연금 개악도 해 놓으라고 지시하고, 세월호 도둑 추모쇼도 하고 출국했지만, 부패 혐의에 거짓말까지 들통 난 총리 이완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는 엎드려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태도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총리인데 또 공석을 만들 수 없다’는 애처로운 오기도 있겠지만, 지금 부패 문제와 국민적 반감 속에서 총리 사퇴는 정권의 레임덕을 가속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이완구, 홍준표 따위 등이 아니라 박근혜의 대선자금 의혹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해경이 구조 과정 기록을 조작했고 검찰과 감사원이 이를 덮어줬다는 사실, 정부의 TF가 발표한 인양 검토 보고서가 사실은 지난해 5월에 이미 작성됐다는 사실 등이 폭로됐다. 구조를 안 하고, 수색도 안 하고, 오로지 진실 은폐에서만 조직적이고 치밀한 국가기관들의 복마전 같은 실상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것도 정부와 기득권세력의 부패 문제였다. 

결국, 부패 스캔들이 터진 지 2주 만에 박근혜 지지율은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모두 30퍼센트 대로 또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구 · 경북 지지율의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이런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서울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은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이 날 집회는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투쟁이 곡절을 겪을 수 있지만 원칙을 놓지 않고 이어간다면 정부의 위기, 새로운 사실 폭로 등과 맞물려 다시 부양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부패한 측근들을 감싸면서 유가족과 진실을 내치는 대통령에게 더는 관용을 보내기 힘들다는 분노가 표출됐다. 물론 그런 분노가 실현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 하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들이 진짜로 본격화돼야 할 것이다.

일단 4월 18일 범국민추모대회에서 다시 한 번 진실을 밝히는 투쟁의 힘을 보여 주자.

ⓒ<노동자 연대> 146호 | online 입력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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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호소한 4월 11일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총력 행동 광화문 집회는 유가족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분노도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집회 장소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이 가득 차 길 건너 세종문화회관 계단까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주최측 추산 8천 명) 도보 행진 후 일주일 만에 집회 규모가 두 배가량으로 커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쓰레기 시행령(안)’을 내놓은 지 2주 만이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사람들의 분노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기는 구조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진상 규명을 가로막는 주범인 것이 정부 시행령(안)으로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핵심부의 부패 추문이 터졌다. 이날 집회에서 이처럼 부패하고 무책임한 이 정부를 끝장내자는 주장들이 많았던 배경이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논란을 피하려고 콜롬비아 출국 일정을 급하게 잡아야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이날 집회는 조직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의 적극적인 참가가 특히 두드러졌다. 대학생들은 청와대 방향 행진 시도에도 적극 앞장섰다.


이날은 박근혜에게 직접 책임을 묻고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인양에 대한 답변을 들으려고 집회 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곧 경찰의 버스 장벽 쌓기로 가로막혔다. 결국 참가자 수천 명은 광화문 사거리, 종로 2가, 명동, 시청 등 도심 한복판을 위력있게 행진하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지지와 동참을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이 왜 필요한지,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이 왜 폐기돼야 하는지 등.


그리고 통쾌한 거리 행진은 참가자들을 고무시켰다. 광화문 사거리로 돌아 온 행진 대열은 다시 한 번 청와대 방향으로 진격했다. 최근 정부의 군색한 처지 때문인지 시내 도심 행진은 전혀 제지하지 못한 경찰이, 경복궁 앞에서는 유가족들에게까지 최루액(캡사이신)을 뿌리며 유가족 포함 스무 명이나 연행하는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자정 넘게까지 박근혜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싸웠다. 


박근혜 정부가 진실 규명 방해 공작에서 물러서도록 하려면 세력관계가 우리 편에 유리해져야 한다. 16일, 18일 집회와 24일 민주노총 파업이 성공을 거둬야 하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요구 사안에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포함시키고 18일 집회에 적극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더 많은 집회 참가,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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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밝혀진 부분적 사실들과 정황, 이 사회의 작동 원리들과 결합해 참사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법정 기구로 수사하고 그것들을 확정된 진실로 내놓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실종과 관련해 중대 재난에 대한 정부의 보고 지휘 체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은폐의 장본인이 박근혜 정부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세월호 집회 한 참가자의 팻말이 신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책임 규명은 조금이라도 참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법정 기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진실 파헤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셋째, 수사든 조사든 그 결과에 공신력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광주 학살이 전두환 신군부의 짓인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을 요구했다. 결국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과 유죄 판결로 광주항쟁은 ‘독재 정권의 민중 학살에 맞선 정당한 민중 저항’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 우파들은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실 규명 기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이 설령 애초 요구대로 통과돼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에 나서자는 주장은 일면적이다. 또한 폐기가 아니라 문구 수정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문구 수정 수준에서 타협하자는 운동 내 일각의 태도는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할 뿐이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진실 규명을 향한 장도의 첫 발



박근혜가 대통령령인 특별법 시행령(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확실히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기습이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항의 운동이 매우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4월 4~5일 도보 행진과 마무리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가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도 정부 시행령(안) 반대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지지가 50~70퍼센트를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분은 잠복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한 <노동자 연대>(136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런 전망 속에서 당시 <노동자 연대>는 불필요한 양보를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끈질기게 싸우자고 주장했었다.


지금 4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도 파업 요구안에 정부 시행령안 폐기 등 포함, 집회 적극 참가 등 세월호 참사 항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교조도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저지를 위해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가 투쟁 형태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시작한 “부패비리 발본색원” 작업은 김기춘, 허태열 등 친박 핵심 인사들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와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기 공세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박근혜는 늘 해 왔던대로 정부 시행령(안)을 쉽게 폐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편에 유리한 여론과 집회 참가 등 행동 규모 사이에 여전히 격차가 있다.


따라서 요구안 후퇴가 아니라 유리한 요소를 이용해 운동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문제가 민주노총의 파업과 연계돼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박근혜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세력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지면, 정부 시행령(안) 강행도 어렵겠지만, 설사 이를 통과시켜도 다시 개정하거나 심지어 특별법 자체를 새로 만드는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 유가족은 물론 특별조사위 이석태 위원장 등도 불복종하고 싸우겠다고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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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에 메모처럼 쓴 글. 다시 보니, 흥미롭다.
다만 ‘박근혜 퇴진’ 슬로건 자체를 물신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조금 과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나 지금이나 이 슬로건을 지지하지만 말이다. 

슬로건은 구체적 행동 목표나 당장 성취하려는 요구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중장기적 전략 목표로서 선전 차원에서 내놓거나, 분노의 표출을 상징화해 내놓을 수도 있다. 다만 전술에서 각각의 슬로건의 성격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1980년대 전반기에 ‘군사독재 타도’ 슬로건을 당장의 성취 요구 성격의 슬로건으로 여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것은 전략 목표였고,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래서 슬로건과 관련해서는 특정한 슬로건이 어느 시점에서는 추상적(당장 성취하려는 목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슬로건일 수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구체적 슬로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87년 6월항쟁 한복판에서 ‘독재 타도‘, ‘전두환을 몰아내자‘가 단지 선전 차원의 슬로건이기만 했을까. 이를 현실화하려고 하지 않은 부르주아 야당이나 좌파 내 계급동맹론자들이 문제 아니었을까.

또 반대로 운동의 발전이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더 급진적 구호로 가게 되기도 한다. 2008년 촛불운동 때, 운동이 계속 커지는데 이명박이 소고기 재협상은커녕 고시를 강행하려고 하자, 사기가 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퇴진이 인기 구호가 됐다. 당시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또한 ‘이렇게 국민이 반대하는데 강행해? 우리 말을 안 듣겠다면 네가 물러나라’ 식의 상황 전개는 운동 성장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그런 점에서 비춰, 지난해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초기에 운동의 공식 요구로 ‘퇴진’을 채택하지 않은 것이 당시의 결정적 걸림돌은 아니었다. 물론 박근혜를 표적으로 하는 것은 필요했고, 그 점에서 ‘박근혜가 책임져라’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봤을 때, 진정한 문제는 퇴진 구호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려 한 것이었다. 운동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퇴진 구호로 갈 수 있고, 초기에조차 분노의 표현과 선전 차원의 슬로건으로서 퇴진 구호가 가능했는데도, 이를 아예 금지시키려 한 것은 운동의 시작점부터 스스로 제약과 한계를 설정하고 가는 것이다. 이래서는 운동이 어느 수준 이상 성장할 수 없다. 왜냐면, 미리 자기제약을 해 버리면, 운동의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어떻게 더 성장하게 할 것이냐 하는 각도에서 전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퇴진 요구는 자연스럽다. 이렇게까지 진실 규명을 방해하는데 대통령이 물러나야 진정한 진실 규명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상황 발전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인 점이 있다. 누구보다 유가족이 앞장서 대통령으로 인정 못 하겠다, 물러나라 하고 얘기한다. 

물론 아직 구체적 목표는 아니다. 11일 집회가 고무적이었어도 아직 1만 명도 안 되는데, ‘퇴진’이 손에 잡히는 목표는 아직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운동의 리더들 다수가 이를 언급하기 꺼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도 정당성이 있다는 점, 박근혜 책임론을 강력하게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점에서 퇴진 구호를 지지한다.

중요한 것은 슬로건을 현실화시킬 힘이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추상적 슬로건은 공허한 소리가 될 것이고, 추상적으로만 옳은 스로건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파업 성공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박근혜 퇴진 요구가 유가족들을 분열시킨다는 주장에 대해

(2014.6.18)



1.진정으로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안 마련이라면, 참사의 책임자로서 박근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정당하다.(이 요구 자체는 유가족만의 요구가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근원적 원인을 고려하더라도) 한국 자본주의의 현 최고위 통치자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그 책임의 수준이 무엇이냐가 문제일 텐데, 침몰과 관련한 책임(민영화, 규제완화, 이와 연관된 부패 등), 구조 방기와 실패에 관한 책임(예산삭감 등으로 구조역량 파괴, 컨트롤타워 실패 등), 진상규명 노력 방해(언로 통제, 집회 탄압 등), 재발방지 대안 거부(규제완화 등 신자유주의 가속화 등) 등을 볼 때, ‘적폐’의 뿌리를 대변하는 박근혜가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항의 슬로건의 두 기둥은 진상규명/책임자처벌과 박근혜 퇴진이어야 한다.)

그동안의 행태, 박근혜 세력의 본질을 볼 때, 박근혜가 정권을 계속 쥐고 있어서는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재발방지 대안 마련조차 무망하다.


2.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것은 자본주의 이윤경쟁체제가 노동계급과 평범한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더는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 모두의 문제다. 

물론 유가족들은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고 정치적 요구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애초에 정치적 견해도 다를 것이다. 정부와 우파도 이를 이용해 ‘정치적 의도’, ‘순수 유족’ 등의 용어를 써 가며 유가족들을 위축시키고 분열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유가족의 분열(=위축, 정치적 대응 회피)을 이유로 박근혜 퇴진 요구를 회피하는 것은 정부와 우파의 의도에 말리는 것이며, (일부 개량주의 세력은 ‘국민’이란 이름으로 후진적 생각에 영합하는 것) 운동의 자연스런 발전을 억눌러 도리어 우리 편을 분열시키게 된다. 


3.이는 운동의 요구와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협조를 하면서도 유가족을 설득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유가족과 우호적 협력을 하는 것은 필요하고 유용하다. 다만, 운동이 노동계급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가장 강한 설득력은 운동, 특히 노동운동이 실제로 박근혜 정부를 패퇴시킬 수 있는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의 여론과 유가족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그때조차 일부는 거부감을 가질 수 있으나 세력관계가 진실 규명에 유리해지면 입장을 고집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책임은 물론 지방선거 패배 결과도 뒤집어 엎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금, 운동이 더 급진적으로 가야만 동력을 확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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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진상 규명 노력마저 침몰시키려는 박근혜 정부




3월 31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416시간 광화문 집중 항의행동 농성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 ‘세희 아빠’ 임종호 씨는 “정부가 특별법 같지도 않은 특별법까지 무력화하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3월 27일 입법예고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의 시행령(안)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 시행령(안)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사실상 관제기구로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안이다. 조사 대상인 행정부 관료가 특조위에 임명직으로 와서 돈과 인력을 통제할 수 있게 해 놓았고, 특조위의 진상 규명 범위를 독자 조사가 아니라 정부와 검찰, 감사원 등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검증만 하도록 해 놓았다.


참으로 뻔뻔하고 사악한 작태다. 참사 직후 ‘적폐 척결’ 운운하던 박근혜는 본인이야말로 참사를 낳은 자본주의 적폐의 수장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한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앞장섰다지만, 시행령은 기본으로 대통령령(법률에서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되도록 박근혜 정부는 구조를 못 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진상 규명 방해, 특별법 반대, 유가족과 항의 집회 탄압, 특별조사위원회 무력화, 유가족 마녀사냥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의 측근들도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 도둑” 운운하며 김빼기를 시도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야 야합으로 권한도 줄여 놓은 특조위를 아예 식물기구로 만들려는 것이다.(애초에 유가족이 요구한 특별법상 진상규명기구는 수사권, 기소권과 함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 핵심 요건이었다.)


저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노동계급과 민중의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무시하는 이윤 경쟁 체제의 수혜자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의 수혜자들과 통치자들은 이익과 권력으로 유착돼 있다. 이런 유착 구조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비극을 선물했는지 드러나는 걸 그들이 반길 리 없지 않은가. 이들을 대변하는 박근혜 정부가 한사코 참사의 진실 규명을 방해하고 심지어 진정한 애도의 감정조차 표명한 바가 없는 이유다. 


정권에 불리한 이 쟁점이 다시 부각되고 그 때문에 재.보선에 영향을 주는 상황도 고려했을 것이다. 또한 세월호 쟁점이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걱정될 것이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지도부가 보인 우클릭도 이런 행보에 힘을 보탠 듯하다.


전날인 3월 30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정부의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려고 청와대 면담 요청을 하려던 ‘동수 아빠’ 정성욱 씨, ‘성호 아빠’ 최경덕 씨가 폭력으로 연행되기까지 했다. 이날 경찰의 폭력 봉쇄로 곳곳에서 유가족과 시민, 학생들이 고립되고 부상을 당해야 했다.


이래 놓고 정부는 보상금 문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끈질긴 항의가 돈 때문인 것처럼 보이게 해 국가(정부) 책임론에 물타기하려는 것이자 세월호 참사 이슈를 정리 수순으로 내몰려는 수작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거의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측이 요구한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지지하는 의견이 60퍼센트를 넘는다. 이는 당장 행동으로 표출되진 않아도 이 운동의 저변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들이 무력화하려는 반쪽짜리 특별법도 5백만 명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배경으로 그나마 제정될 수 있었다.





지금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사)4 · 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 · 16 가족협의회)’ 등은 3월 30일부터 참사 1주년인 4월 16일까지 416시간 시민긴급행동을 선언했다. 매일 저녁 광화문 촛불집회, 도보행진, 온라인 항의, 신문 전면 광고, 주말 대규모 집회 등이 계획돼 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 등 유가족들도 광화문광장 북단에서 맨몸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이 천막 등의 설치를 막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 3월 31일 밤을 이들은 비닐 천 하나로 새워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꼼수와 탄압을 막아 내고 진실 규명을 위한 걸음이 앞으로 나가려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다시 고조되는 관심과 지지를 행동으로 모아 내야 한다. 민주노총이 조직하는 4월 총파업과 총력 투쟁이 세월호 참사 항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4월 1일에 <노동자 연대>에 실렸습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여기로



주요 투쟁 일정


4월 16일까지 매일 광화문 세월호광장 촛불집회

4월 4~5일 시민·가족 도보 행진(안산~광화문)  ※4월 5일 오후 5시 도착 예정.

4월 11일 시행령 폐기 세월호 인양 촉구 국민대회
4월 16일 참사 1주기 범국민추모제
4월 18일 세월호 참사 1년 전국 집중 범국민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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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백 일과 여야 특별법 제정

세월호 참사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다


<노동자 연대> 137호 | 발행 2014-11-10 | 입력 2014-11-08




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기업주들의 이윤몰이보다 하찮게 여기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에서 비롯했다. 노동계급과 민중의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무시하는 체제의 수혜자들이 만들어 낸 미필적 고의의 살인인 것이다.


선주와 고위관료들의 눈에는 볼품없는 노동계급 자녀들의 사고에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이 낭비로 보였을 것이다. 골든타임에 구조의 능력도 의지도 발휘하지 않았던 이유다. 


어쩌면 골든타임을 놓친 뒤에는 불가항력의 사고로 위장해 참사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떠넘기려고 구조를 회피하고 방해했을런지도 모른다.


정부와 국회는 비용 절감과 이윤 확보를 위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해 기업들을 도왔다. 박근혜 정부에게는 사회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손톱 밑 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 생지옥이 펼쳐졌지만, 지옥문은 애초 뭍에서 열려 바다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어이없는 대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당연한 진상 규명 요구가 지배자들의 그토록 야비한 반감과 방해에 부딪힌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다. 이는 노동계급에게 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다. 


노동계급 자녀들이 대거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자 혹사와 천대 등은 부패한 지배자들이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다.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한 작업공정, 이윤 경쟁을 위한 실적 압박, 비용 절감을 위한 저임금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밤샘 노동, 심지어 지하시설 환풍구가 깔린 도보를 지나는 출퇴근 길 등 노동자 삶의 현장이 ‘세월호’다.


세월호 참사가 노동계급의 조직된 투쟁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투쟁은 체제의 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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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백 일과 여야 특별법 제정

진실 규명 요구와 투쟁은 왜 중요한가


<노동자 연대> 137호 | 발행 2014-11-10 | 입력 2014-11-08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은 피해자들이 단지 운이 없어 비극을 당한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 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이윤 경쟁 시스템의 잔혹하고 부패하며 무책임한 실상을 파헤치는 것은 사회를 바꿔 안전 사회를 만들자는 투쟁에 정당성을 입증해 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런 참사가 필연적이라는 것, 즉 “돈보다 생명”인 사회를 위해서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를 놓고 노동 대중이 단결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참사의 반복이 필연적이더라도 그 빈도는 낮출 수 있다. 성역 없이 진실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그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수사권ㆍ기소권


그러므로 새로 설치될 진상 규명 기구를 압박하며 진실을 더 많이 규명하려고 싸우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지난 반년간 증명됐듯이, 진상 규명은 노동계급과 그 자녀들을 생죽음으로 몰고 가고, 구조를 외면한 이윤 경쟁 체제의 기득권 집단과 싸우는 문제다체제의 수혜자ㆍ수호자 집단은 자신들의 치부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본회의 표결시 위헌 운운한 새누리당 하태경의 발언을 보라.)


그러는 한편, 특별조사위가 한계에 봉착할 경우에 대비해 애초의 수사권ㆍ기소권 포함 특별법 요구를 유지해야 한다.


특별법 투쟁을 넘어 안전 사회로?



일부 좌파가 특별법 투쟁 때문에 안전 이슈가 주목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양자택일식 주장을 펴는 것은 일면적이다.


물론 “이윤 앞에 안전이 희생되는” 구조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제대로 된 특별법을 통해 그 구조를 이루는 인간 집단들이 참사에 어떻게 연루됐고 영향을 미쳤는지 파헤치는 것이 결코 구조적 대안 마련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진상 규명 투쟁 중에 ‘제2의 세월호를 막자’를 막자고 호소한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이 2백만여 명의 지지 서명을 받은 것도 둘이 대립되지 않았다는 간접 증거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특별법 투쟁은 참사 주범의 하나인 정부와 싸우는 핵심 전투였다. 그 상황에서 ‘특별법을 넘어 안전사회로’를 주장하는 것은 이런 전장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이런 태도는 특별법 투쟁 국면을 정리하고 싶어 한 온건파 리더들을 돕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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