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로 불렀다고 해군당국에게 고소당했던 김지윤 씨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1월 4일 “[해적기지] 표현은 주관적 평가에 불과하[고] … 해군이라는 집단에 대한 모욕이라고 보기 어려워 무혐의로 결론”내고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김지윤 씨는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 도와주신 덕분에 불기소로 끝났다”며 연대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검찰 결정으로 “해군당국의 고소가 정당성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명박은 3월 7일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 구럼비바위 폭파를 시작했다. 김지윤 씨는 트위터 항의 인증샷 캠페인에 참여해 “제주 해적기지 건설 반대! 강정을 지킵시다” 하고 메시지를 올렸는데, 이를 두고 해군 당국이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김지윤 씨를 고소했던 것이다.
김지윤 씨 말처럼, 법으로 반대파를 침묵시키고 해군기지 강행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던 정부와 해군 당국의 시도 중 하나가 열 달 만에 좌절된 것은 통쾌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 후 헌법재판소장에 꼴통 보수 인사를 임명하는 현실에서도 검찰 같은 보수적 국가기구를 물러서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것도 뜻깊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호의적일리 없는 검찰조차 이런 무혐의·불기소 결론을 내린 것은 애시당초 강용석 따위를 앞세운 해군 당국의 고소가 얼마나 무리수였는지 보여 준다.
이미 “해적기지”라는 표현은 기지 공사를 강행하는 해군과 경찰, 건설 대기업들의 횡포를 직접 겪은 강정 주민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 통용되던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주관적 평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말은 기지 반대 운동에게 허위 사실 같은 재갈을 물릴 수 없다는 것으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자체의 정당성도 더욱 확보된 셈이다. 더 나아가 99퍼센트 저항 운동의 ‘표현의 자유’에도 진전을 이룬 것이다. 최근 한동안 명예훼손죄·모욕죄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사실 당시 해군 당국이 과잉 대응을 하며 고소를 한 것은 당시 집권당이 총선을 앞두고 우파 결집을 추진하는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연달아 권력형 비리가 터지면서 2011년말부터 집권당은 큰 위기에 빠졌다. 여러 위장 쇼에도 지지 회복이 쉽지 않자 집권당은 안보 공세와 색깔론을 되살리며 우파 결집으로 나갔다.
3월초 제주 구럼비 폭파 강행, 한미FTA 발효 등을 강행하며 보수는 결집시키면서 반대편에선 야권과 진보진영을 분열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총선에서 이기고, 나아가 대선에서 정권을 연장하면 제주 해군기지도 일사천지로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봤을 것이다.
따라서 결집한 우파의 공세였던 “해적기지” 발언 고소에 용기있고 단호하게 김지윤 씨가 대처한 것이 매우 중요했다.
김지윤 씨는 우파들이 언론에서 마녀사냥 공세를 시작하자 도리어 “주민 1천5백여 명 마을에서 고작 87명이 찬성한 게 주민 동의를 얻은 것이라 우기는 정부, … 폭력 경찰, … 보수언론들, … 삼성물산과 대림산업. 이들이 하는 게 ‘해적’질이 아니라면 달리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 기어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여 동아시아 불안정을 높이고 평화의 섬을 파괴한다면 ‘해적질’의 책임을 반드시 묻게 될 것”이라고 단단한 투지를 내보였다.
유감스럽게도 통합진보당 유시민이나 <한겨레> 등이 ‘정치인으로서 적절한 얘기는 아니’라거나 김지윤 씨가 ‘비난을 자초했다’는 식으로 대처해 우리 편 김을 빼고 우파 공세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엑스맨’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많은 진보진영의 지도자들은 망설임 없이 연대와 지지에 나섰다. 무엇보다 이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고권일 강정주민대책위원장, 문정현 신부,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 이광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이 지지 서명에 참여했고, SNS에서는 ‘나도 고소하라’ 릴레이 등이 이어졌다.
특히, 노암 촘스키 등 국제 진보 인사들도 “강제로 강정 주민들을 쫓아내고 해군기지를 건설해 ‘세계 평화의 섬’에 전함을 배치하는 것은 분명한 해적 행위”라며 고소 중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러므로 이번 불기소 결정은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승리이자 진보진영 전체의 성과다. 특히 물러섬 없는 단호한 투쟁도 얼마든지 광범한 연대를 구축해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사실 올해 정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해를 넘겨 처리된 것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산 때문이었다는 것은 저들도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이번 승리는 제주 해군기지 싸움 전체의 일부다. 김지윤 씨도 “해군기지 건설 밀어붙이기를 위한 겁주기 효과는 여전하다고 보고 앞으로도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앞으로도 진보진영은 더욱 단단하게 뭉쳐서 제주 해군기지에 일관되게 반대해야 한다. 친제국주의 정책과 반민주 탄압 등 우파 결집에 맞서는 우리 편의 ‘단결과 연대, 단호함’은 더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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