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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4 ‘차별’과 ‘혐오’의 구분에 관한 단상

 

흔한 편견이나 차별의식, 애매한 수준의 불쾌한 발언, 실제 위협받지는 않았지만 외진 공간에서 공포스러웠던 느낌 등. 이런 모든 걸 포괄해서 “여성혐오(misogyny)”라고 해 버린다면, 그것은 단어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장해서 실제로 애초에 그 단어가 지닌 사회적 맥락에서 오히려 그 단어를 탈락시키게 된다.


(누구는 미소지니 번역 문제 제기하는데, 애초 영어권에서도 미소지니의 용법은 성차별이라는 sexism을 대체하려고 쓰인 것이고, 잡다한 차별 현상, 편견 등을 싸잡아 혐오로 기록하려고 쓰인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이런 걸 보면, 희롱 수준의 성차별까지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다 싸잡아 '성폭력'으로 지칭하려던 운동과 많이 닮았다. 이런 단어 바꿔치기 운동은 제도적으로 성공했지만, 무엇을 남겼지? 범죄가 준 것도 아니고. 성폭력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수준의 범죄들을 구분하기 위해 강간/성희롱/성추행 등의 단어(개념 구분)는 계속 필요했는데.

 

사실 단어 자체만 놓고 봐도 차별/천대와 혐오는 전혀 다르다. 혐오는 말 그대로 존재 자체를 싫고 증오해서 사회에서 배척/배제(심한 경우 존재 말살)하는 것이다. 즉, 특정한 표지를 지닌 존재들을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보고, 공동체에서 축출하고자 하는 언행/주장/심리다. 차별은 불평등/불공정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필요로 하지만 대신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소유물처럼 종속시키려는 것, 심한 경우 내 종처럼 여기는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는 사실 노동자도 차별 받고 여성도 차별 받고, 청소년도 차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차별 받는다. 어떤 정신나간 자본가가 일하는 노동자들을 혐오하겠는가? 노동자를 천대하고, 좌파 노동운동가를 혐오할 수는 있어도. 그러니 차별의 정도가 좀 더 심한 게 혐오는 아니다. 둘은 성질이 다르다. 따라서 드러나는 양태도 다르다.

 

가령 남편의 가정폭력이 너는 여자라서 없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건가?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했다가 까였다고 복수하는 건 여성에 대한 집착/욕망에서 비롯한 것으로 배척이 아니다. 행태도 배척(쫓아내기)과 집착(스토킹 따위의)은 다르다.


욕망하는데 그것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당사자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화풀이 공격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볼까. 거기에는 여성을 소유물처럼 여기거나 하는 식의 차별/천대 의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굴복시켜서 내 곁에 붙잡아 두려는 것과 내 눈 앞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특정한 표지를 공유한 집단이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명백히 원인도 맥락도, 형태도 다르다.

 

그래서 사회의 절반이 여성이고 여성이 사회의 필수적 구성원이며 (또 그렇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성 혐오는 사실 드물다. 차별/천대와는 달리 광범위하기도 어렵다.

 

반면, 이주자,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 동성애자 등을 표적으로 한 혐오 행위는 다르다. 혐오행위자들에게 이 피해 소수자들은 공동체로 상상된 해당 사회에서 내쫓아도 사회의 운영, 재생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존재들이다. 오히려 그들이 없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런 혐오들은 실제로 사회에서 배척하려는 것이고, 쫓아내고 살해하고 심지어 유대인 학살 같은 인종청소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여혐 분자들로 불리는 사람들은 어떤가? 여성을 사회에서 축출하자인가? 축출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정에서 나오지 말고 쳐박혀 있으라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이 왜 열등한 자신들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가? 왜 애먼 군가산점은 없애서 안 그래도 불쌍한 나를 어렵게 하는가? 따위의 것들인가. 사실 대체로는 이미 퍼져 있는 사회적 편견의 재생산이나 열등감의 표출(뒷담화 따위) 같은 것이 대다수다.(피해망상이 심했다고 하는 강남역 범인의 인식이 이런 쪽에 가까웠을 수 있다.)

 

그러니 ‘혐오사회가 저지른 범죄’ 이런 식으로 현실을 과장하고 공포를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고,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남성들까지 잠재적 범죄자 취급해서 오히려 사회적 여성차별적 구조에 맞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여성과 남성의 단결된 저항을 해치는 방식으로 분리주의를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성이니 여성의 고통을 이해 못 한다는 식의 유행도 지나간 정체성의 정치로 피억압자들 내부의 소통과 연대의 불가능성을 우기지 말라는 것이다.

 

게다가 단어 개념의 이런 왜곡과 남용은 오히려 그 단어가 가리키는 현상의 뜻을 약화시켜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페미니스트 본인들이 요구하는 혐오범죄처벌법 같은 것의 시의성이나 사회적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 모두가 혐오에 동조한 사람들인데, 사회 모두를 처벌하자는 법이 될 테니 말이다.

 

혐오라는 단어 안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성소수자/이주자 혐오 행동과의 차이가 사라지면, 이 문제들에서의 혐오 운동의 고유한 의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식의 개념 남용이야말로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실제로는 무용하거나 더 피해가 큰 사람들의 고통이 덜하게 보이는 역효과를 낼 뿐이다. '혐오' 단어를 남발하면 일베를 '여혐' 집단이라고 낙인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성혐오범죄 가중처벌에 대한 논의도 무용해질 것이다. 여성혐오가 그렇게 광범위하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혐오범죄 처벌 강화는 경찰국가가 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노동자연대의 기사를 보고 장애인 인권 운운하지만, 정신질환자 딱지에 여혐범죄자 딱지까지 덧붙이려는 사람들이 할 반론은 아닌 듯하다.

 

정신질환자의 희생 대상이 여성인 것이 여성혐오의 증거라고 한다. 그러면, 여성혐오는 피해망상의 원인인가? 결과인가? 결과라면,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니, 망상의 원인이라고 본다면, 그 이유는 여성혐오가 사회에서 그만큼 강해서인가? 아니면 여성이 강해서인가? 여성혐오가 강해서라면 여성의 처지가 그만큼 열악한 것일 텐데, 이 범인이자 조현병 환자는 왜 굳이 여성에게 피해망상을 가지게 됐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심한 조현병의 한 귀결인 무차별 대상 범죄(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는 이유 없는 살인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므로, 좀 더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다른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정신질환의 피해망상, 환청, 환시 등의 특징 때문에 이에서 비롯한 범죄는 매우 흉악한 형태의 살인범죄인 경우가 많다. 다만, 범죄율 자체는 번개 맞을 확률 수준이라는 것이 범죄학의 기본 상식인 듯하다. 그러니 더더욱 공포를 조장하지 마라는 얘기다.)


비판과 반론에는 그러려니 한다. 수준 낮은 비판은 지 수준이 낮은 것이니 내가 어찌할 바가 아니고, 진지한 물음과 반론에는 그만큼 성의를 들여 반론하면 된다. 어차피 의견과 경험은 다양하고, 그들도 알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만 성인이 4천만 명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와 일베 사이에 수천만 명이 있다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자신들에 대한 지지 아니면 모두 일베라는 식의 논리는 실은 일베 따위의 사회 대표성을 어마어마하게 과장해서 보는 공포감일 개연성이 크다.(이것이 박근혜 시대의 퇴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反지성주의적 태도가 만연하는 듯한데, 이것은 그러려니 하기 힘들다. 정말 싫다. 우리가 스스로를 더 못난 존재로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

 

끝으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일각에서 차별과 혐오를 구분하자는 주장이 혐오를 긍정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함께 슬퍼하는 사람으로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자는 주장 자체를 매도하는 것은 정의 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직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지껏 사회의 여성 차별 구조에 앞장서 싸워 온 사람들을 일베 어쩌고 매도하고 퀴어 축제에서 배제하도록 하려는 건, '혐오 반대'라는 과장된 구호 뒤에 감춰진 본인들의 反지성주의를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일에 '좌파'라는 딱지를 달고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사람들이 동조하거나 주도하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할 뿐이다.

 

20여 젼 전부터, 운동권 거의 모두가 관심없거나 차별에 동조할 때부터 동성애 해방 운동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왔던 단체와 활동가들을 모욕적인 이유로 퀴어 축제에서 쫓아내겠다고 하는 게 인권 감수성,차이 존중, 사회적 관용을 표방해 온 운동이 할 짓인가. 미 대사관도 초청했던 주최측이 말이다. 어리석은 일이다. 한심하고 괘씸하다. 성소수자운동사에서 수치로 기록될 일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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