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원치않는 형사고발은 황당한 일이지만, 논점은 그것만은 아니다. 아래 한겨레 칼럼은 동의도 되지만, 의문도 들고 갸우뚱한 면도 있다. 쟁점 하나는 분명해지는 듯하다.
이 칼럼의 필자는 폭력에 대한 해석 권한을 가해자나 기성 주류에서 피해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로 옮겨오는 것의 가치를 말한다. 그런데 그 해석 권한을 이전받아야 하는 공동체의 범위에 대한 것이 결국 현재 소동에 깔린 한 쟁점이기 때문이다. 그 공동체에 누구는 포함되고 누구는 배제되는가? (이번 경우에 그 주체에 경찰과 법원이 들어가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늘 그럴까? 그 점에서 칼럼의 필자는 다소 일면적으로 느껴진다.)
정의당은 당원과 지지 대중에게 사죄를 하고 피해자에 대한 연대를 호소했다. 그런데 모순되게도 정의당 공식 공지로 (광범하게 적용될 기준 하에) 2차가해 제보를 받겠다고도 했다. 심지어 원 가해자 형사고발을 반대한 당이 이제 2차가해 법적 조치를 운운한다. 이를 해석권을 둘러싼 주체의 포함과 배제에 대한 답을 대중에게 내놓은 것으로 봐도 될까? 내가 A라면 A인 줄 알고 입 다물라는 식이니.
한편, 대표 직무대행은 성추행이 본질이지 구체적 행위는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아래 칼럼의 개념을 빌리면, 구체적 행위(폭력)는 해석의 대상, 즉 해석의 필요불가결한 선행 요인이다. 성추행 사건은 관계와 맥락상 성추행으로 해석된 그 구체적 행위를 본질로 하는 사건이다.(칼럼의 '폭력 재현' 문제에 관해 덧붙이자면, 성폭행 정도만 빼고는 성추행과 성희롱 규정만으로는 구체적 양태와 수위에 대해 알기 어렵다. 성적 접촉과 언사는 형식적으로 같은 언행이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고, 부적절한 언행의 경우에도 경중을 따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사람들은 좋은 의도에서도 구체적 양상을 궁금해 할 수 있다. 단죄에는 유무죄만 있는 게 아니다. 죄의 경중의 문제도 따져야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칼럼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정의당이 자꾸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조직문화 운운은 사실상 모두가 죄인이요. 하자는 것인데, 당대표의 잘못을 모두의 탓으로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 책임 전가. 그런데 사실은 이게 사건 대응을 주도하는 급진페미니스트의 교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두가 죄인인 공동체에서 예외임을 주장할 수 있는 일부가 고발자이자 심판자로 행세하게 되는 논리이다. 그런데 그런 교리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 해석권을 독점한 공동체에서 배제된 지지자들의 항변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리대로라면, 훈계와 협박은 필연적이다. 가장 위험한 측면이다.
안타깝게도 정의당은 지금 지지층에게 사죄와 훈계(모르면 배워라)를 동시에 한다. 정의당 일부는 자신들의 처리 절차 자체가 대중의 검증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을 어색해 하는 듯하다. 대표적 진보정당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고, 정의당 스스로 공개한 사건이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공론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본인들이 제공했다. 그리고 경중을 떠나 잘못은 정의당 당대표가 한 것이지, 대중이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중에게 훈계와 협박이라니.(2차가해 개념의 폐해)
개인 일탈이 아니라 자기 공동체의 문제라더니 그 공동체의 핵심이었던 본인들이 왜 애먼 대중에게 판사·교사 노릇을 하나. 노동계 대표 정당을 자임했던 정당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적 책임성의 문제다.
형사고발에 반대했으니(이 의사는 존중돼야 한다) 징계는 최고 수준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내 페미니스트들도 집단적으로 제명을 요구했다. 2차가해 협박도 거세게 할 것이다. 그렇게 무차별적 무관용으로 대처할수록 (피해자/가해자만 공개하고 구체적 행위를 비공개했으므로) 과연 이 사건이 그렇게 난리를 뽀개는 식으로 처리해야 할 수위의 문제였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2차가해 엄포를 놓을수록 공개 폭로와 형사고발 거절 문제가 모순으로 지적될 것이다.(원 가해자 형사고발을 거부했으므로) 자신들만의 폐쇄적이고 고유한 교리에 입각한 주관적 당위와 객관적 현실은 구분된다.
피해자에 대한 책임과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예리하게 구분해 둘 다를 각각 중히 여겨야 한다. 수백만 명 지지자들도 정의당 또는/과 당대표에 의해서 다른 종류의 상처를 입었다. 미안하지만 스스로 대중 앞에 꺼내놓는 순간, 이에 대한 예상과 대비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상황은 이해하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숙고하며 대응을 하길 바란다.
내가 토론 소재로 삼은 한겨레 칼럼.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0610.html
참고할 만한 추천 글. wspaper.org/m/2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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