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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심화로 여권의 분열도 심각해지다



<노동자 연대> 152호에 실린 기사. 지면 제약으로 생략한 내용 일부를 괄호로 첨가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겠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유승민이 수용한 것이 계기였다. 행정부의 시행령, 시행규칙이 국회가 만든 상위법에 위반될 때는 국회가 개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 행정입법


행정권으로 법규를 정립하는 것 또는 그 법규를 말한다. 대통령긴급명령,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 등이 있다. 박근혜는 각종 개악 조처들을 주로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밀어붙여 왔다. 


박근혜는 국회법 개정이 시행령으로 국정을 추진해 온 자신의 통치 행위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각종 개악을 행정입법에 의존해 왔다. 거추장스러운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 청와대와 행정부가 바로 개악을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애국법 등 반민주적 조처와 신자유주의 조처들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의존했던 미국 부시 정권과 비슷한 수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시행령 25개가 상위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사측이 일방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의료민영화를 간접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시행령도 문제다.


시행령 개정만이 아니라, 시행령 악용도 문제다. 특히 노동 관련이 그렇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이 “월권 백화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전교조에게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도 바로 이 시행령(9조 2항)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9조 2항은 박근혜가 개정한 것은 아님.) 


시행령을 앞세워 자본가들을 위한 고통전가 개악 드라이브를 추진해 온 박근혜에게 개정 국회법이 매우 성가신 방해물이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노동자 투쟁, 세월호, 정윤회 의혹, 메르스 공포 등으로 지지율 하락 추세에 있는데, 여당 지도부가 야당과 합의해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박근혜는 레임덕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역설이게도 박근혜의 히스테리는 오히려 박근혜가 여당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고, 정치 위기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국회법 개정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은 좀 더 근원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유승민은 올해 원내대표 당선 직후, 박근혜가 말해 온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중국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청와대와 달리 사드 도입을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지난해에는 “청와대 얼라들”에게 “일관된 국가안보전략”이 없다며 단호한 한미동맹을 요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권 내 갈등은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한국 지배계급 내의 불안감과 이견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태의 심화·발전으로 지배자들이 2012년 대선 때처럼 박근혜를 일치단결해 지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 그런 점에서 이번 갈등 사건은 국가기구 내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이라는 요소도 배경에 있다. 의회 입법과 행정입법 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여권의 태생적인 권위주의적 속성, 정세의 불확실성, 박근혜 협박의 이중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공천 숙청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하며 유승민과 비박계의 퇴로를 막아 놓은 탓에 갈등이 쉽게 봉합될 수도, 항복을 받아낼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근혜가 ‘선거 심판’을 운운한 탓에 유승민은 물론이고 김무성 등 비박계는 여기서 물러서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숙청을 당할 거라고 걱정한다.(유승민 다음은 김무성?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 순망치한설은 개연성이 꽤 있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인들 일반에게는 양보하기 힘든 이해관계 문제다. 또한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와 달리 차기 총선과 대선을 염려해야 하는 의원들은 여론과 노동운동의 저항 태세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의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 새누리당의 의회 정치인들 입장에선 박근혜와 확 갈라서는 게 차기 선거에서 좋을지 그 반대일지, 분열이 어떤 효과를 낼지 판단하기가 애매한 정세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봉합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도 있다. 이 문제의 변수는 여당 바깥의 저항과 여론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박근혜는 지배계급 내 반대를 무릅쓰고 황교안을 총리로 앉혀 놓은 것이다. 황교안은 노동운동과 사회 운동에는 공안 통치를 시도하고, 여야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정 정국을 펼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여권 분열 상황에서도 박근혜는 각종 개악을 밀어붙이는 한편, 집권당 분열이 노동운동에 자신감을 줄까 봐 탄압도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 점을 걱정하기는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 숙청을 연상시키는 박근혜의 여권 내부 협박은 길게는 균열도 키우지만, 당장은 협조를 받아내는 즉 이중(역설) 효과도 발휘한다. 첫째, 박근혜의 협박은 무엇보다 뒤를 캐는 사정 협박이다. 둘째, 분열이 낳을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도 있다.
박근혜 메시지의 논리 구조는 ‘여당이 단결해야 한다/안 그러면 외부 세력에게 당한다/그런데 단결이란 나를 중심으로 뭉치는 것이란 뜻’으로 구성돼 있다. 새누리당 누구도 대전제를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순환논법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의견 자체가 단결을 해치는 배신이자 분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조직 노동운동을 다루는 데서는 아직은 별다른 충돌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는 노동운동의 저항 수위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제가 위협받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박근혜와 충돌하는 것이 차기 총·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표면적으로는 복종과 협력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니, 박근혜에 맞선다고 유승민 등을 띄워주는 게 얼마나 형편없는 짓인가.) 


그러나 박근혜의 탄압이 강력함을 뜻하기보다는 정치 위기의 발로임을 앞서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위기와 여권의 분열을 신자유주의 공세 거부 투쟁을 조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동운동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을 보편화하려는 공격에 더 격렬하고 단호하게 맞서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여권의 내분을 봉합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 공격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여권 내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박근혜가 여당의 원내대표를 정권의 걸림돌이라고 공개 선언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으로서 얼마나 꾀죄죄한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진정한 야당은 투쟁하는 노동운동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지금껏 각종 민영화, 노동조건 개악 시도, 복지 삭감 시도에 진정한 조직된 반대를 제공한 것은 조직 노동운동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운동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를 막아낼 만큼 충분히 잘 싸우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예고한 7월 파업뿐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악과 공공부문 2차 정상화 조처를 막을 저항 구축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여권 내 분열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전진시키자.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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