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혁명적 공산주의로 내딛은 첫발은 독일 슐레지엔 직공 반란에 대한 옛 동료들의 경멸적 태도와 결별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대중의 현재 의식과 삶을 덮어놓고 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추수주의가 대중의 의식이 발전할 가능성을 무시하고 현 상태에 머물도록 현혹하는 것이라며 경멸했다.
마르크스는 현재의 노동계급이 가진 온갖 낡은(후진적) 편견과 분열 상태를 비판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노동계급 대중의 지적 역량과 해방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비록 현재는 잠재력일지라도) 마르크스는 그래서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을 구분했고, 후자로 가려면 그들 스스로 투쟁에 나서야 하고, 그럴 경우에만 필요한 계급의식을 쟁취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계급의식은 당연히 분열된 노동계급을 혁명적(해방적) 계급으로 단결시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그가 관여한 조직들에서 그가 반복해서 핵심 기치로 포함시킨 것은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였다.
마르크스는 슐레지엔 직공이 고용주들에게 일으킨 반란을 지지했고, 찬양했다. 그리고 그것이 노동계급이 장차 혁명의 주도적 계급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의 옛 동료들은 반대로 몇몇 약점들을 잡아서 슐레지엔 노동자들을 비난했고, 무지하고 무도한 대중이 사회 변화의 선두에 서서는 안 되는 증거로 삼으려고 했다.
마르크스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로 변모하는 데서, 슐레지엔 직공 반란 지지 문제를 놓고 옛 동료들을 격하게 비판하고 결별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물론 이 전환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선진적인 노동운동, 사회주의운동, 정치경제학, 정치철학 등을 접하고 무엇보다 엥겔스와 만난 것이 기여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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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중국을 가리지 않고 경제 급성장 과정(과거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 홍콩 노동계급에게 강요된 희생은 만만치 않았다. 홍콩 노동계급은 단 한 번도 행정부 수반을 직선으로 선출해 본 적이 없다.
이런 곳에서 노동계급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 희생을 계속 강요하는 정부에 비판적이고, 현 수반(행정장관 캐리 람)의 퇴진과 직선제 요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중국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간단히 이 거대한 대중운동을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놀라운 주장들! 한국의 민주화 시위도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었고, 정확하게 87년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는 하고많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중에서도 미국식 형태를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도 미국의 사주일까?
이런 황당한 소리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고, 마르크스는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바로 이런 일들을 보고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계급사회에서는 민주주의조차도 계급통합적이지 않으므로 계급적 성격을 따져야 한다는 것은 옳다. 문제는 그 성격을 판단하는 게 누구냐는 것이다. 그 판단 주체는 중국공산당도 아니고 미국 첩보기관들도 아니다. 그것은 홍콩 노동계급의 자주적 행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초보적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저항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편에 서는 것. 그것이 심층적이지만 또한 단순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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