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의 주요 지도자와 원로 들이 11월 30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1선언문은 “주변국들의 대화”를 촉구하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협의”와 “6자회담 재개”를 평화적 긴장 해소 방안으로 주장했다.
시국회의 참여자들이 반공적 냉전주의를 부추기는 주류 지배자들과 언론을 거슬러 ‘평화적’ 대응을 촉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떻든 평범한 민중에게나 저항하는 민중에게나 국가간 평화 상태가 긴장과 전쟁 상태보다 낫다.
평화를 바란다면 지금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하듯 무력 대응을 강화해 군사 긴장을 높이는 방식의 대응에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 대결보다 ‘대화’를 촉구한 것에 1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럼에도 “6자회담”과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실제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해소되진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 제안들은 안타깝게도 남북한 국가와 주변 강대국들에게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참가국들은 세계 최상위 그룹의 군사강대국들이다.
그중에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온갖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평화를 파괴해 왔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유일한 핵무기 실전 사용국인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게 핵 공격 위협을 멈추지
않아 왔다. 미국은 냉전 후
약해진 경제력 대신 경쟁국과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해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조지워싱턴 호.
이런 미국에게 이 지역 패권은 세계 패권 전략의 일부다. 워낙 군사 강대국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 전략의 충실한 동맹자들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해 자신의 주도 하에 ‘북한 위험’을 관리해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한·일의 미국 의존성을 유지하며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북한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며 자기 영향력 아래 넣는 것에 더 열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고 침략과 간섭을 불사하는 호전적 국가다.
이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력과 이권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이 6자회담의 본질이다. 이 나라들에 한반도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맡기자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박선원이 폭로한 내용, 즉 한반도 통일 후 중국에 북한 영토를 줄 수도 있다는 미국 관료의 발언은 조선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해방 후 미소 합의로 말미암은 강제 38선 분단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번 위기 자체가 6자회담이나 합의문으로 군사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다.
평화 수단
2003년 시작한 6자회담이 지난 7년 동안 거둔 주요한 성과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과 2007년 2ㆍ13 합의 2 /10 3ㆍ3 합의였다. 이 합의들 모두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발목 잡힌 상황에서 북핵 폐기와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한 것이다. 4
그러나 현재 상황이 보여 주는 바는 이 합의들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것이다. 합의들을 먼저 어긴 건 언제나 미국 행정부였다. 우리가 결코 핵무장을 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볼 순 없지만, 북한의 핵개발 시도 자체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의 군사위협, 그리고 그 뒤 제네바 합의 위반의 산물이다. 5
9ㆍ19 공동성명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부 진보진영에게 고(故) 리영희 교수는 “합의문의 문구 자체는 우리가 바라던 바다. …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제적인 조약이나 합의를 지킨 사례가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로 미국은 휴전협정을 어기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맨 처음 그리고 몰래) 들여 온 당사자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도 마찬가지다. 경제 협력이 군사 경쟁을 막진 못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서유럽 국가들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가이며 교역량도 매우 큰 나라인데도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최대 수출/수입국인 중국이 됐는데도 연평도 훈련 문제 등으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남북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협력해 운영해 왔지만 군사 갈등을 막지 못했다.
6·15정상회담 2년 뒤 벌어진 서해 교전도 한 사례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을 하며 서해에선 1차(1998)보다 더 격렬하게 해상 전투를 벌인 것이다.
긴장의 주범인 강대국들이나 그 위계체제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해 움직이길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2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은 수렁에 빠졌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군사적으로 아주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는 200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강력했던 국제 반전운동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강대국과 한국 정부(또는 북한 정부)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는 http://www.left21.com/article/8994
-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YMCA, 한국진보연대, 민변, 민주노총 등이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3가지 요구 사항으로 △남과 북, 주변국이 즉각 대화에 나서고 △한반도의 긴장 해소 방안으로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이행할 협의에 나서야 하며 △6자회담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를 제시했다. [본문으로]
- 9ㆍ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 회담의 종료 발언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경수로 건설을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동성명 채택 후에도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을 빌미로 대북 금융제재를 계속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고,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지만 역시 이행하지 않았다.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6202 [본문으로]
- 상세 해설은 http://www.left21.com/article/3873 를 보라. [본문으로]
-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실행조치 합의 같은 것인데, 2단계로서 2007년 같은 해 10·3 합의가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가 그다지 진전 있는 합의라고 보기엔 과거 합의의 재탕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북한이 소련 붕괴 후 위협 속에서 핵개발에 기대려 했다가 미국의 침략전쟁 직전까지 갔던 게 1994년 위기다. 김일성 사망 후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지만 미국은 북한의 원자로 폐기를 대가로 주기로 한 중유를 약속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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