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정한 최종 합의 시한이 오늘입니다. 쉽게 합의가 이뤄지기는 힘들 듯합니다.
핵심 쟁점은 대선 독자 완주와 연립정부 참여 문제, 대북 태도 문제입니다.
많은 단위들이 대선에서 독자 완주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조건부로 해서 선거연대와 연립정부 참여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기 때문에 실제로는 핵심 쟁점입니다.
참가 단위 다수가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민주당과 선거연대를 찬성하고, 연립정부 반대 같은 의견을 배척하려 합니다. 심지어 민주노총 지도부는 독자 완주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조차 합의하길 꺼려한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등의 신자유주의 세력과는 공동정부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하는 의견을 낸 곳은 사회당 뿐인 듯합니다. 진보신당은 복지와 선거제도 개편 등으로 조건부 공동정부가 가능하다는 의견으로 보입니다.
최근 한eu FTA 합의 과정에서 보듯, 민주당은 결정적일 때 늘 기업주와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입니다. 이런 당과 선거연대를 당연시하면서 새로운 진보정당이니,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장은 반MB 정서에 부합하고 선거적 실리도 일부 보장받는 듯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론 이들과 함께할수록 진보세력의 정치적 신용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게다가 반MB 정서가 야권연대 수준에 머문 것은 진보세력들 스스로 야권연대 수준으로 자신의 정강과 실천을 제약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진보세력이 2004년 대선에서 ‘부시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며 이라크 전쟁 지지자 존 케리를 밀었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위기와 우파에 반대해 민주당과 뉴딜 동맹을 맺었다가 아예 진보정당의 씨가 마른 미국 진보정치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관련 글 보기)
영국 노동당은 20세기 초반에 선거적 실리를 위해 자유당과 연합해 자유당의 정치적 부속물처럼 됐고 지지율도 떨어졌었죠. 그러다가 1차대전 말미부터 노동자 투쟁이 활발해지고 이 압력을 받아 국유화 당헌을 도입하는 등 당의 독자성을 높이면서 오히려 당세가 커졌죠. 1
그런데도 합의를 강행하려는 것은 이에 반대하는 좌파와 일부 독자파를 배제하고 통합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북한 쟁점은 핵 개발과 3대 권력 세습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비판적으로 언급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담백하게 두 사안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진보신당 의견이 옳아 보입니다.
나머지 단위들은 남북 두 체제를 극복하겠다는 수준에서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려 하거나, 아예 민주노동당 지도부처럼 이 쟁점들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등의 의견이군요.
반제국주의가 반드시 핵 개발이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고 일본발 핵공포 때문에 핵 반대가 진보진영의 대세가 되는 상황입니다. 3대 권력 승계는 진보의 관점에서 명백히 비민주적인 것인데 이를 비판 못 하겠고, 반대 의견을 반북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명백히 패권적 태도입니다.
사회당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북한 핵 폐기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과도합니다. 한반도 군사 위기에 미국과 북한이 같은 비중으로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인 듯한데, (그 자체도 잘못된 판단이지만)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주장과 실천은 미국의 대북 압박과 구분되기 힘들 것입니다. 2
북한 체제와 정권을 향한 태도는 비판적이되, 실제로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북한 민중이고, 그들 스스로 투쟁해 쟁취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친자본주의 정당들과 선거 연대/공동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연석회의 안에서 소수입니다.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의 우월론이 아니라 급진적 관점에서 북한 정권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세력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을 지지하는 좌파들을 연석회의가 배제한 것은 아쉬운 일이고, 오늘 막판 논쟁 구도를 보면 그것이 연석회의 다수파의 의도였다는 게 더 분명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대표자연석회의 협상장.(출처: 진보신당 당게시판 http://www.newjinbo.org/xe/?mid=bd_member_gossip&search_target=user_name&search_keyword=%EB%B0%B0%EC%84%B1%EC%9A%A9&page=2&document_srl=1442013)
연석회의 다수파의 좌파 배제
연석회의는 지난 5월초 다함께의 참가 신청을 가로막으며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의 성격이 강하다는 우려가 있다”는 답변을 보낸 바 있습니다. 3
다함께는 최근 이것을 반박하는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다함께의 일부 회원들이 민주노동당 당적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곧 다함께가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이란 “민주노동당의 틀 안에서 의견만 개진한다”는 뜻인데, 다함께의 정치, 조직, 활동은 전혀 그렇지 않죠.
우선, “정치적으로 … 민주노동당과 완전히 독립적 … 정치 원칙과 강령은 물론이고 전략도 다르다. … 연석회의 내 뜨거운 쟁점들 ― 북한 문제, 선거연합 문제 등 ― 에 대해서도 다함께의 입장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공식 입장과 다르다.”
조직적으로도 “자체의 간행물(신문과 저널, 소책자 등)을 발간해 독자적인 선전과 선동(정치적 독자성)을 하며 … 자체의 의결기구를 통해 단체의 정책 등을 결정”한다.
특히 그동안 다함께가 참여해 온 [새로운 진보진영 상설연대체] ‘민중의 힘(준)’이나 반전평화연대, 용산범대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 각종 연대체에서 “단 한 번도 민주노동당의 의견그룹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
사실 이 점은 연석회의의 집행책임자회의에 참여하는 성원들이 누구보다 잘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진보진영에 폭넓게 참여를 개방하겠다는 연석회의가 다함께의 참가신청을 보류하면서 이런 이유를 내놓은 것에 관해 다함께는 “뜻밖”이라고 반문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다함께는 “참여 유보 결정의 진정한 쟁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연석회의의 주도자들이 다함께는 “반자본주의 단체라서 안 된다”며 가로막고 있는 것이 진정한 이유라고 봅니다.
현재 연석회의 안팎에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노선 문제로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고, 오늘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연석회의를 다수를 이루는 세력은 민주당과 총선과 대선에서 계급연합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연석회의 주도자들이 다함께의 참가를 막는 것은 바로 이 쟁점들에서 다함께가 좌파와 현장 투사들의 견해를 대변해 자신들의 우경적 진보대통합 노선을 반대할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겠죠.
연석회의 다수파가 진정으로 진보세력의 단결과 투쟁을 만들려 한다면 패권적인 우경화 시도를 중단하고 급진좌파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 이 글의 일부는 <레프트21> 온라인판에 실렸습니다. ☞ http://www.left21.com/article/9718
- 흔히 말하는 수권정당으로 발전하게 됐는데, 사실 집권 후 성적은 엉망이었습니다. [본문으로]
- 제3세계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주의는 제국주의에게 유용한 도구입니다. 북한 내부에 민주화 저항이 있다면 그 운동에 지지와 연대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개입 목표를 실행하려면 현실적으로 강대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 애초 8자 대표회의로 시작했던 연석회의는 새 진보정당의 폭을 넓힌다며 참가를 개방했고, 4월에 공개적으로 참가신청을 받았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참가신청을 한 것도 이때입니다. 다함께도 이때 했죠. 자주파에 속한 단체들은 모두 무리없이 참가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다함께와 국민참여당의 참가신청만 보류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국진보연대도 거부됐지만, 이는 연대체로 그 핵심 구성 단체들이 개별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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