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역습이 아니라 민주당의 자살골 탓이다
4·11 총선 결과를 두고 민주통합당이 중도층 유권자를 놓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에게 패배했다는 평가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즉,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위해 ‘좌클릭’한 것이 중도층 유권자에게 불안감을 줬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안철수처럼 중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후보를 끌어들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으로 쉽게 귀결된다.
예를 들어, <한겨레21>은 “박 위원장의 진짜 훌륭함은 중도층을 지지자로 끌어왔다는 점”이라고 평가한다. “유권자들에게 쇄신하는 이미지를 주면서도, 현 정부와 전면적인 결별을 통해 전쟁으로 가지 않고 조화시킨 것”(경희대 교수 김민전)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이런 기만적이고 어정쩡한 비MB 차별화는, 첫째 그의 정치 수완을 보여 주기보다는 오히려 곤란한 처지를 보여 준다. 그는선거 내내 급진화하는 반우파 청년들에게 ‘이명박근혜’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지금 박근혜는 우파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이명박과 차별화도 해야 하지만, 또 우파 결집을 위해 이명박을 쉽게 버릴 수도 없는 모순에 처해 있다.
사실 박근혜와 이명박은 이번 총선에서 도저히 중도층 유권자까지 흡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동맹해 색깔론과 안보 위기론, 지역주의 등을 부추기며 우파적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면죄부를 받은 듯이 보이는 이번 선거 결과 때문에 이명박의 몰락이 지연되면서 박근혜와 이명박의 잠재적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은 더 커진 것이다.
박근혜의 한 측근은 청와대가 미랸하려 한 새누리당 당선자 초청 만찬에 거부감을 피력했고,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임기말 대통령이 당선은 못 시켜도 낙선은 시킬 수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실 박근혜가 중도층 유권자를 흡수했다는 주장은 사실 관계에서도 맞지 않다. 박근혜당의 과반 확보는 우파들의 위기감 속에서 다른 우파 정당들의 지지가 새누리당으로 집중된 결과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정당 득표는 642만여 표였다. 여기에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의 정당 득표를 더하면, 우파 [의회] 3당의 정당 득표는 985만 표였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전국 정당 비례 득표는 912만 표였고, 자유선진당을 더하면 981만 표다.(친박연대는 한나라당이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하자, 합당 협식으로 흡수됐다.)
새누리당의 충청권 지역구 약진도 절반은 충남에서 자유선진당의 의석을 뺏어온 것이다. 그 결과, 18대 총선에선 우파 정당 당선자수가 185명이었는데, 이번엔 157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야권연대 정당들의 정당비례 합계나 지역구 득표 합계도 새누리당보다 더 많다.결국 박근혜의 기만적인 비MB 차별화는 우파 결집용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도층 견인
둘째, 그런데도 선거적 성과를 거둔 것은 바로 민주통합당의 약점 때문이다. 그 점에서 “박근혜의 탁월한 이미지 정치”가 새누리당의 승리를 불렀다는 식의 분석은 피상적이고 모순적이다.
<한겨레21> 기사가 인정하듯이 “김용민 막말 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30퍼센트 미만이고, 정권심판론, 민간인 불법사찰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은 그 두배”였다. 결국, “부동층의 4분의 3 가량이 야권 성향인데 이런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서강대 서복경 교수)은 민주통합당의 약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싫으면 우리를 찍어라’라고 하면서, 자신이 승리하면 무엇이 달라질지 분명히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비전 없이 정권심판론에만 의존한 것이 문제’라는 식의 평가는 반만 맞는 것이다. 진보적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에서 사람들이 진정성을 찾기 힘들었다.
<한겨레21>은 “안[철수] 원장이 야권 대선 경쟁에 합류해야 중도는 물론, 합리적 보수 성향 표심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는 민주당의 재선 의원의 말을 인용해 그 변화의 방향을 암시한다. 사실상 민주통합당이 박근혜에게 빼앗긴 중도층 표심을 노려 ‘우클릭’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정치의 몰락?
한편, <한겨레21>은 통합진보당이 울산과 창원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것을 “사실상 노동정치의 몰락”이라고 평가한다.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던 17대 총선과 달리 “[노동] 현장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는 진보정당 관계자들의 말도 인용한다.
그러나 당선권에 근접했던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통합진보당은 17대 총선 때보다 지역구 득표가 증가해 역대 최대 득표수를 확보했다. 예전보다 노동자들의 표가 대대적으로 줄었다면, 노동자가 아닌 수만 명의 표가 통합진보당에게 새로 유입돼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예전보다 소극적이었다해도 노동자들의 계급투표 자체가 후퇴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울산 북구에서 당선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국가보안법 처벌 전력이 있는 김창현 후보에 대한 우파의 색깔론 마녀사냥으로 보수층이 결집한 결과일 것이다.
울산 북구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선거를 앞두고 분열한 것이 이런 우파 결집을 뛰어넘는 진보 표의 결집을 이루는 데 장애 요인이 됐을 것이다. 경남 창원에서도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의 득표를 더하면, 새누리당을 앞섰다.
따라서 진정으로 노동정치의 성장을 바란다면, 진보정치의 단결을 촉구해야 하고, 영남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줄기차게 제기한 색깔론과 지역주의를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한겨레21>은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두고 보수 진영의 공세가 계속돼 당에 호감을 보이던 중도층 일부가 이탈한 것도 정당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평가한다. 통합진보당에게도 중도층을 향해 우향우하라고 촉구하는 평가인 것이다.
앞으로 전망에 관해서도 “어수선했던 당내질서가 사실상 경기동부의 독주 구도로 정리된 셈”이라며 이것이 “당내 갈등을 표면화할 수 있다”고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평가를 한다.
그러나 <한겨레21> 스스로 평가하듯,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야권연대 세력이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미래지향적 의제와 정책을 주도해 승리”했다. 이들은 모두 진보정당들이 10년 가까이 쟁점화하고 실천으로 주도해 온 의제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자신의 보수적 지지층 눈치를 보다가 급진화하는 청년세대를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선에서 드러난 표의 양극화를 제대로 평가하면, 오른쪽은 새누리당으로 왼쪽은 야권연대 정당으로 몰렸고, 야권연대 안에서도 통합진보당이 약진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 아니라 우파의 여왕이었을 뿐이고, 사람들은 진보적 대안을 갈구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진보진영의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우위가 여전하며, 이를 실질적 개혁 쟁취와 선거 승리로 현실화하려면 진보정치가 더 강화돼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흐름 때문에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니 복지니 하는 거짓말을 내놓고, 표를 구걸했고, 이 흐름을 중단시켜 거꾸로 되돌리려고 지금도 통합진보당을 ‘종북 좌파’로 몰아붙이면서 민주통합당에게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이다.
따라서 <한겨레21> 식의 제안대로 진보정당과 민주통합당이 중도층을 향해 우클릭하는 것은 우파를 강화해 전반적인 정치지형을 우경화시키는 노림수에 걸려드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1% 세력이 주요 기반인 민주통합당이 우파적 압력에 일관되게 저항하기를 기대하긴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노동운동은, 불가피한 경우에 선택적으로 야권연대를 할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독자적 대안과 투쟁을 발전시킬 때만 올해 투쟁과 선거에서 우파를 패퇴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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