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올바른 개입을 위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여파로 지금껏 스물두 명이 죽었는데도 진짜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무도한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를 강행하며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진보진영은 해군기지 무효화는커녕 건설 중단조차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의 최고위 실세들이 부당한 특혜를 기업들에게 주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특권과 부를 누려온 일이 폭로됐는데도 당장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 지지리도 인기 없는 이 부패하고 추악한 정부가 아직도 살아남아 온갖 나쁜 정책을 아직도 밀붙이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들을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해결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민주당이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해결할 것을 기대할 순 없다. 


오히려 민주당을 주도하는 세력은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했던 사람들이고,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정권 차원의 저항적 사회운동 사찰을 저질렀던 세력이다. 지금도 이런 악행들을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 점에서 진짜 문제는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을 주도하는 진보진영 내 다수파의 노선과 태도에 있다. 


지난해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비판과 경고를 무시하고, 친자본주의 정치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했다. 


그 뒤에도 이들은 스탈린주의 전략과 개혁주의적 선거 실용주의의 맥락에서 인민전선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약점을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했고 독립적 진보 대안 건설이나 투쟁 태세 구축 대신 ‘묻지마’ 야권연대에 더 힘을 실어 왔다.  


이런 태도가 진보진영 안에 투쟁을 통한 쟁취와 심판보다 수동적 선거 심판론을 유포해 왔다. 투쟁 연대체 등에서 이런 약점들에 비판이 나올라치면 연대체 안의 친민주당 NGO 지도자들과 손잡고 비판들을 패권적으로 묵살하곤 한다.


따라서 급진좌파들이 민주당의 친자본주의 본성을 비판하며, 통합진보당의 묻지마 야권연대에 반대해 온 것은 옳았다. 반MB를 넘어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관점이 운동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원리상 옳다. 


그러나 원리상 옳은 입장을 가지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좌파가 구체적 현실 조건과 당시의 대중 정서를 면밀히 판단해 접점을 만들어 개입하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때 원칙이란 추상적 원칙일 수밖에 없다. 추상적이란 단어는 원리상 옳지만, 현실의 실천지침으로 크게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 문제는 급진좌파들이 현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전술의 차이를 원칙의 차이로 과장하며 고립·주변화를 자초해 오히려 개입할 능력을 약화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우경화에 불만이 높은데도 좌파가 성장하기보다는 단순히 진보진영의 분열만 키우는 방식으로 사태가 흘러왔다. 


즉, 급진좌파들 일부의 문제점도 진보정치세력의 약점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운동의 우경화에 맞서 급진좌파들이 함께 개입해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제약해 왔다. 


첫째, 종파주의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 태도를 종파라 불렀다. “사회주의적 종파주의의 발전과 진정한 노동계급 운동의 발전은 언제나 반비례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종파주의가 고립을 자처할 뿐만 아니라 주변화하고 고립되는 상황에서 싹트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종의 악순환인 것이다. 


우선 이들은 옛 민주노동당의 우경화와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투쟁에 기권해놓고는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종파적 규정을 남발한다. 


민주노총의 상급 지도자들 다수에 기반해 있고, 조합원 다수가 지지하는 통합진보당을 ‘진보도 아니다’ 라거나, ‘진보정당은 변혁에 걸림돌’이란 일면적 분석을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심지어 투표를 통한 지지조차 반대하며, 어떤 공동행동도 거부하려 해 왔다. 일부 급진좌파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투쟁 대안을 제시해 단결을 추구하기보다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 지지를 막는 것에만 열을 올렸다. 


이들은 진보신당이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에서 통합진보당을 새누리당과 다름없다며 분열적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았다. 


계급투쟁에서 부차적 지위를 갖는 선거에서의 차이를 과장해 결과적으로 정작 중요한 투쟁에서의 단결을 해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얼마든지 비판과 지지, 이데올로기적 경쟁과 운동의 단결을 결합할 수 있는데도, ‘차이와 분화’만 강조함으로써 민주노총 조합원 등 선진노동자들 다수와 거리감을 넓히고 스스로 고립과 주변화를 자초한 것이다. 


선진적 소수는 ‘선전과 선동’만으로도 정치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대중적 각성은 투쟁에 참여하고 승리하는 경험 속에서 낡은 사회적 편견과 소외감을 떨치며 더 급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조직에 참가할 자신감을 얻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런 자신감과 각성의 깊이와 폭은 투쟁의 규모에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좌파가 투쟁에 개입할 때나 주도할 때는 운동 지도부의 이데올로기만 보고 미리 재단하거나 선험적으로 참가의 폭을 제한하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이명박의 집권과 2008년 총선으로 자칫하면 우파의 우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사회 분위기가  오히려 진보적 의제가 주도하는 세력관계로 유지되고 바뀐 것은 서울에서만 최대 1백만 명까지 참가했던 촛불항쟁 덕분이었다. 


참가 규모가 커지자, 참가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미국산 소고기 수입 중단에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로 의제가 확장되고 정권 퇴진 같은 급진적 요구로 발전해 갔다. 이 운동은 개혁주의적 NGO 리더들이 주도했는데, 다함께는 이들의 견제 속에서도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 과정에서 의제 확대와 정권 퇴진 요구를 제안해 많은 지지를 받고 영향력을 키워갔다. 


그러나 당시 급진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문제는 배제됐다’거나 ‘가난한 노동자는 어차피 소고기는 못 사 먹으므로 이 투쟁은 중간계급의 투쟁’이라는 식으로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루되거나 개입하길 꺼렸다. 


그래서 이들은 운동 자체를 전진시키거나 운동 안에서 좌파의 영향력을 키우는 문제에서 완전히 무능했다. 이처럼 좌파 일부는 과거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듯하다. 심지어 지난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교훈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당시 중요한 승리의 요인이었던 사회적 연대의 확산 과정에는 대단히 개방적인 태도가 큰 구실을 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도 지지하고 참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급진좌파 일부가 주도권을 틀어쥐고 주도한 올해 희망광장 투쟁은 안타깝게도 통합진보당까지 배척하면서 개방적 연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중 일부는 그런 식의 ‘순수한’ 투쟁으로 통합진보당 식의 야권연대와 경쟁하는 별도의 구심을 만들려고 한 듯하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이 투쟁은 장기투쟁 작업장 조합원들의 품앗이처럼 비춰졌다. 


쌍용차 희망텐트 때도 일부 참가단체들이 통합진보당 지도부에게까지 야유를 보냈는데, 이런 행동은 자신들이 주도한 그 집회에서조차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둘째, 급진좌파 일부의 태도는 말로는 진보정당들의 선거주의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설득력있는 투쟁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몇 가지 행동들을 보면, 선거주의를 비판하는 이들 자체가 엄청나게 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일례로, 노동운동 안의 급진좌파들은 올해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와 3월 임시 대의원대회,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공식 지지 정당으로 정하는 방침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심지어 3얼 22일 임시 대의원대회는 바로 이 방침을 막으려고 좌파들이 소집한 대회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계획을 보완하거나, 언론 파업을 엄호하는 하루 총파업 등 투쟁 건설을 위한 제안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투쟁에 제약을 주기 때문에 야권연대에 반대한다는 자신들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선거 전술에서의 차이를 결정적 차이로 보는 것은 선거에만 집중하는 개혁주의의 거울 이미지다. 


셋째, 이들이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 다수파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건 옳지만, 자신들이 주도하는 투쟁 등에서 보이는 소패권주의도 문제다. 


자신들이 주도한 희망텐트나 희망광장 등에서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세력의 제안이나 주장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따라서 진정으로 운동의 우경화를 막고 투쟁을 활성화하려면 급진좌파들은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야 한다. 


쌍용차, 한진, KEC와 유성기업, 그리고 언론사 들에서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우파 정권의 야비한 탄압을 받 왔고 지치지 않고 치열한 투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파편화된 투쟁으로 제대로 반격하는 데 애를 먹는 경험을 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는 광범한 단결의 정서가 커지고 잇다. 


무엇보다 각종 우파적 공격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격 능력은 얼마나 폭넓게 단결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좌파라면 이런 단결 투쟁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실천 과정에서 입증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야 한다. 


즉 지금 벌어지는 언론 파업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 KTX 민영화 반대 파업, 금속 노동자들의 심야노동 철폐 투쟁 등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와 연결돼 폭넓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이 진정한 총파업이 될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고 헌신하는 관점에서 실천과 비판적 지지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만의 고립된 섬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종파적 늪으로 더 자신을 밀어넣을 뿐이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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