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투자하는 분은 업어드려야 한다”고 나서자, 경제부총리 현오석은 새만금에 가서 진짜로 사장 한 명을 업어주는 ‘어부바’ 쇼를 벌였다. 


그리고는 일주일 만에 ‘부자 감세 노동자 증세’ 세금 개악안을 들고 나왔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3 세법개정안’은 “소득·소비과세 비중을 높이고, 법인․재산과세는 성장친화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늘려 과세기반을 확대하겠다고도 한다.(간접세는 역진적이라 간접세를 늘리는 것은 조세불평등이 커지는 것이다.) 심지어 “상속증여세는 … 높은 누진세율 체계 등으로 인해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이 큼”이라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전체 세금 수입중 소득세 비중이 낮고 법인세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소득이 높거나 세금을 적게 내서가 아니다.


재벌들이 체불한 통상임금만 최소 20조 원이 넘고, 마땅히 정규직 임금을 받아야 할 현대차 비정규직 수천 명이 방치되는 현실 때문이다. 이건희가 안 낸 상속세만 2조 원인데, 이는 이번 개악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걷겠다는 1년치 돈보다 크다.


2000년대 이후 전체 국민소득에서 기업소득 비중은 늘어왔고, 노동소득분배율은 낮아져 왔다. 그런데도 지난해와 올해 소득세로 걷은 돈은 계속 늘어왔다. 법인세를 그동안 얼마나 깎아줬기 때문일까.



노동자는 등쳐먹고, 기업주만 업어주는 재벌 어부바 쇼.



사실 소득세만 놓고 보면, 누진성이 부족한 게 진짜 문제다. 소득에 매기는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많이 매겨야 돈이 나오는 법이다. 아니면, 노동자들 월급을 대폭 올리든지! 지금도 5백여만 명이 소득이 적어 세금을 안내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편안은 노동자들에게 십시일반해서 재벌과 부자들에게 퍼주겠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상반기에만 10조 원이나 세금이 덜 걷혔다면서도, 정부는 7월에 총 6조 원이 넘는 기업 지원책을 내놓은 바 있다. 국방부도 5년간 70조 원의 최신 무기를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낸 바 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 설명을 보면, 이번 세제 개악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걷어가려는 돈은 총 1조 3천억 원가량 된다. 이걸 5년 간 누적으로 하면, 10조 원이 넘는다. 연봉이 3천4백50만 원을 넘는 노동자 4백34만 명(전체 노동자의 28퍼센트, 세금 내는 노동자의 43.7퍼센트)가 1년에 16만 원에서 1백만 원가량 더 내야 한다.[각주:1]


청와대 경제수석 조원동은 “이 정도는 …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 그동안 봉급 생활자는 특혜를 받아 왔다”며 염장을 질렀다.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 나성린은 ‘연소득 1억5천 이상 사회주도층에게 증세는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자백했다. 이쯤 되면 사회주도층이 아니라 사회강도층이라 부를 만하다. 


이번 안은 전형적인 경제 위기 고통전가며, 유리지갑 노동자들에게 벌이는 강도짓이다. 결국 ‘증세 없이 복지한다’던 박근혜의 허황된 약속은 결국 ‘복지 먹튀, 노동자 증세, 재벌 퍼주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계급 불평등 성격을 감추려고 소득공제를 폐지해 세액공제를 늘리는 것이 대략 연봉 3천만 원 이하 노동자들에게는 유리하다고 말한다. (또, 연봉 3천만 원 이상 노동자층을 굳이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다.) 그러나 이런 말은 연봉 3천만 원 이하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영원히 오르지 말라고 주문을 거는 것밖엔 안 된다. 


무엇보다 소득공제 축소의 목표는 ‘과세 기반 확대’지 ’복지 확대’가 아니다[각주:2]‘과세 기반 확대’란, 세금 안 내던 노동자들도 세금 내라는 말이다. 부자감세로 줄어든 재정을 노동자 증세로 채우겠다는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단어인 것이다[각주:3]. 상위 노동자의 세금으로 하위 노동자의 복지를 늘린다는 말이 감언이설에 불과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일부 보편증세론자들의 주장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그들은 대기업 과세가 빠진 게 아쉬운 거지, 노동자 증세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한다. 


구체적 노동자 삶의 현실에서 복지 확대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자신들의 관념에서 사람들의 삶을 재단하니, 이런 전도된 분석이 나온다. 복지를 위한 증세는 필요하지만, 보편 증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가 돼야 조세·복지·소득의 거대한 불평등을 완화하는 대책이 될 수 있다. 


노동자 유리지갑에 빨대 꽂기와 대기업 봐주기는 한 몸통이다. 저들의 의도는 대기업 과세를 피하면서 재정을 늘리려고 노동자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첨단 무기 구입이나 국정원 댓글 알바 고용 따위에 쓰겠다는 것이다. 


1퍼센트 기득권 세력이라는 저들의 기반과 본성을 똑바로 파악한다면, 감언이설에 속을 이유가 없다. 조세 불평등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옳고, 이를 조세저항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쪽이 틀렸다. 왜 유리지갑 구실을 하면서도 변변한 복지 혜택을 못 받아왔던 노동자들이 저들의 책임을 대신해야 하는가. 


정리하면, 이번 세제개편안은 첫째, 부자증세(=누진세 강화)가 아니라 ‘과세 기반 확대’(=노동자 증세)를 하려는 것이다. 둘째, ‘복지 확대’가 아니라 ‘정부 재정 벌충’을 위한 것이다. 셋째, 이렇게 해서 채워진 재정은 저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박근혜 세제개편안을 통째로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조세도피처에 숨겨진 한국 돈이 9백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뉴스타파>의 폭로로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국세청이 뇌물 받고 깎아준 재벌 세금도 어마어마하다. 대기업 현금보유액만 1백조 원을 넘는다. 노동자들이 뭉쳐서 이런 돈으로 복지를 늘리라고 싸워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109호에 실린 기사에 살을 붙인 것이다.  


  1. 일부에서 이 노동자층을 굳이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습다. 연봉 3천5백이면 주요 대기업 대졸 초봉도 안 된다. [본문으로]
  2. 세금 걷는 입장에서 사안을 보는 정책 기술자들에게는 중요한 대안인지 모르겠으나, 세금 내는 노동자들 처지에선 본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본문으로]
  3. 이런 용어법은 많다. 역대 정부와 재벌들은 사기업화를 민영화로, 민영화를 선진화로 포장했다. 정리해고와 노동자 쥐어짜기를 구조조정과 선진시스템 배우기로 포장해 왔다. 성적 차별 교육을 공정한 경쟁을 통한 우수 인재 선발로 포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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