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늘리고 노동시간은 줄여라
<노동자 연대> 124호 | 발행 2014-04-14 | 입력 2014-04-12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구성한 ‘노사정 사회적 논의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노사정소위)에는 여야 의원들, 고용노동부, 사용자 단체들, 한국노총의 대표들이 참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조차 참여하지 않아 용도 폐기”된 “노사정위원회를 되살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 꼼수”라고 올바르게 비판했다.
노사정소위는 4월 15일까지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등 각종 노동 현안에 합의된 의견을 도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사용자 단체들과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양보하지 않고 계속해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 강요하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 문제와 관련해,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40시간에 더해 1주일에 최대 12시간 더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단결과 투쟁 임금과 노동조건의 상향 평준화를 이루려면 투쟁력과 조직력이 있는 노동자들이 앞장서는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그러나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을 각각 정의한 점을 악용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즉, 사용자들이 주중에 12시간 연장근로를 시키고도 주말 이틀 동안 최대 16시간(하루 8시간씩)을 또 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당 68시간 노동을 보장해 준 것이다.
그러나 주당 40시간 노동 외에 일한 것은 모두 ‘시간 외 연장근로’다. 노동부 해석은 주말은 일주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또한 주중 40시간을 일한 노동자가 휴일에 더 일하면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모두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노동부 해석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최근 법원은 노동부 해석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렸고, 이는 조만간 대법원 판결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판결이 나면, 노동시간은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제한되고, 휴일 연장근로에 대한 체불임금 소송을 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최선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은 더 줄어야 하고, 법정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해 놓고, 연장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자체가 문제다. 가장 좋게는 임금총액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좋겠지만, 최소한 시간당 임금의 삭감 없이 노동시간 40시간 상한 등이 이뤄져야 한다. 자본이 손해 안 볼 자유보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자유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은 그 전에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불리한 판결을 피하고 장시간 노동 강요하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단계별 시행 등 온갖 꼼수 법안이 나오는 이유다.
책임 전가
한편, 장시간 연장근로에 따른 비용을 줄이도록 정부가 도운 것은 자본가들이 신규 채용보다 기존 인력을 쥐어짜는 게 더 ‘생산적’이도록 보장해 준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자들이 이제 와서는 경제 위기와 수익성 하락에 직면해, 연공급제를 빌미로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 탓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노동자 분열과 전반적 임금 하락을 유도하려 한다.
그러나 한국은 10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율이 18.1퍼센트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OECD 평균은 36.4퍼센트). 이런 현실 때문에 실제 노동자 평균임금은 40대 후반 이후 하락하고 있다(김유선, ‘임금체계 개편 논의, 비판적 검토와 대안 모색’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한국 자본주의 전체로 보면, 연공급제가 진정한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투자 대비 이익의 (수익성) 위기다.
물론 이 와중에도 SK 최태원의 연봉은 3백억 원이 넘었고, 삼성 이건희는 지난해 주식배당으로만 1천억 원 넘게 챙겼다.
최근 10여 년간 기업소득은 늘고, 가계소득은 줄어 왔다.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하락 추세이기까지 하다.
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을 더한 수준이 돼야 그나마 실질임금이 유지되는데, 사용자들은 상용직 임금은 물론이고 최저임금조차 실질적 인상을 거부해 왔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평균임금조차 민주노총이 자체 계산한 표준생계비 대비 70퍼센트가량에 불과하다.
한편, 노동부 임금 개악 매뉴얼이 병원 간호사, 은행 사무직, 제조업 생산직의 임금체계 변경을 특별히 예시로 든 것도 시사적이다. 병원 간호사의 성과주의 강화는 의료 민영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최근 수익성이 오르지 않은 은행권은 인력 감축 시도가 있을 듯하다. 벌써 씨티은행에서 감원 시도가 시작됐다. 제조업은 통상임금 쟁점이 민감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조선 등 일부 산업에서는 구조조정의 사전 포석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임금 개악을 당장에 전면화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은 노동자들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벅찰 수 있다.
그래서 실제 투쟁 양상은 개별 기업마다 불균등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 고임금을 문제 삼아 노동자들을 서로 이간질하는 효과는 지금부터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이간질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반격의 조건이 되는 곳에서부터 파열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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