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씨는 "제왕적 (우익) 야당 총재"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것이 내 관찰인데. 매사에 권력투쟁 프레임, 만사가 남 탓, (계급본능형) 멸시와 증오의 수사, 선거 승리 우선주의, 자기편과도 협력 부재 등. 그래서 박근혜 씨의 포텐이 폭발한 전성시대는 2004~5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서 정치적으로 죽이겠다는 식으로까지 말할 때는 그 후과가 결코 투정 부리기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국회법 개정안 통과는, 계속 지적해 왔듯이, 국회를 우회한 시행령(대통령의 행정명령) 통치를 통치스타일로 해 온 박근혜에게는 실질적 위협이었을 것이다. 세월호만이 아니라 의료민영화 등이 시행령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
(※ 내가 볼 때 이 스타일은 단지 유신스타일만이 아니라, 2001년 9·11 테러 후 조지 부시의 통치 스타일에서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반테러 열풍을 이용해 부시는 애국법 등으로 민주적 권리들을 제약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를 통하기보다 행정명령을 발하는 방식을 애용했다.)
단지 청와대 주인의 캐릭터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역설을 볼 수 있다.
첫째, 새누리당을 대상화해 적대시하는 듯한 언사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 장악의 의지다. 이것이 관철될지 안 될지는 정치·경제 상황과 계급세력관계에 달려 있다.
둘째, 박근혜의 새누리당 장악 의지는 거꾸로 집권당 내 레임덕 공포가 박근혜를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 이제서야 말이다!
셋째, 역설이게도 위기를 끝내려는 청와대의 시도가 위기를 증언했고 더 증폭시켰다. 이제 레임덕 위기는 박근혜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이슈가 됐다.
박근혜의 노발대발 오리발닭발은 외려 유승민의 사퇴를 어렵게 해놓았다. 사실상 정계은퇴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물러선다고 당청 갈등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비박계에게 정권재창출을 위한 단합은 공천 숙청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이 제거되면, 김무성은 안전할까? 그렇다고 황교안이 지휘할 사정 위협이 만만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의도치 않게 서로 발목이 묶인 것이다. 어느 한쪽이 치고 나가야만 돌파구가 생길 텐데, 그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커서 서로 확신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미래가 없는 (현재만 있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는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고, 차기 총선과 대선을 바라봐야 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들이박지도, 완전히 수그리기도 힘들게 된 것이다.
결국 당분간 이도저도 선택을 못 하는 상태로 갈등만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이러다가 황교안이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일이? ㅋ) 고로 당청 관계만 놓고 보면, 박근혜는 외통수인 상황이니 변수는 새누리당(그 안에서도 유승민, 이것은 셋째 역설의 한 표현이다)에게 있는 셈이다.
차기 선거와 여론을 신경써야 하는 새누리당에게는 정치·경제 상황과 기층 대중, 특히 노동운동의 저항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지금이 노동운동에게 단결된 투쟁으로 반격을 개시하기에 불리하지 않은 때인 이유다.
물론 박근혜는 바로 이런 위험성을 제기하며 여권의 단합을 촉구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권 단합이 두려워 싸우지 말아야 하는가? 투쟁을 자제하면, 정반대 결론으로 날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이 적어진다는 것은 여권이 분열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역설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 안에서 불확실성이 커져 온 문제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잘 싸우지는 못해도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조직된 반대를 제공할 수가 있다. 이 정부가 이 길로 갈수록 대중과는 멀어지게 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임무를 수행할수록 정치 위기는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정치 영역으로 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투쟁 영역에서의 조직된 반대가 이곳에서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만회할 만큼 조직된 반대 투쟁이 거세지는 않다 보니, 부상을 입고도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조금씩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객관적 위기가 강요하는만큼 노동자투쟁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이런 역설들을 낳고 있다. 따라서 저항이,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박근혜는 공무원연금 개악에 성공했고, 공안정국의 기초를 놓으려 한다.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위해 그 전초전으로서 공공부문 2차 ‘정상화’를 밀어붙이려 한다.
이 시도가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 따라서 박근혜의 길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노동운동이 저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그나저나 대통령이 여당을 국정 방해자로 지목해 몽니 부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회엔 야당이 없나 보다. 아니면 대통령 머릿속에 야당이 없거나. 진짜 야당은 노동운동 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더더욱 분발하자.
(※ 그리고 박근혜랑 싸운다고 다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다. 그런 게 진짜 나쁜 진영논리적 사고고, 하등 도움이 안 된다. 이명박 때 이명박 깐다고 이상돈, 김종인 띄워주다가 뒤통수 맞은 일을 잘 기억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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