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국회 대응”
국회 밖에서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1호 | 발행 2015-11-14 | 입력 2015-11-14
박근혜는 11월 10일 자신의 각종 개악 정책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혼이 비정상”이라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12일, “[노동개악] 법안을 가로막는 것은 국정을 방해하는 비애국적 행위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적대 행위”라는 막말을 했다.
이는 지지율 하락 속에서도 국회의 “노동개혁” 처리 절차를 앞두고 여권과 우익의 투지를 독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매우 신경질적인 막말로 표현되는 것은 최근 경제 위기가 악화되면서 지배계급 안에서 불안감이 번지는 것과 관계 있는 듯하다.
현재 새누리당이 제출한 “노동개혁” 법안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자동 상정됐다. 이 법안들은 11월 16일 환노위 전체회의를 거쳐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시작되는 20일 이후 안건 상정돼 다뤄질 예정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상정시 무기한 파업’이라는 파업 계획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국회 대응계획도 발표했다. 10월 30일에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정치민주연합 환노위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노동개혁” 반대 당론 채택과 환노위 상정 저지를 요구했다. “노동개혁” 저지를 위한 야권공조를 요구한 것이다. 물론 정의당도 야권 공조의 대상이다.
박근혜가 필사적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상황에서 국회(야권 공조)를 통한 ‘정치적’ 중재 노력보다는 민주노총의 파업 투쟁이 더 효과적인 반격일 것이다.
대중 파업은 “노동개혁”이 지키려고 하는 바로 그 기업주들의 이윤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국회 표결에 대비해 “국회 대응”도 필요하지만, 그런 국회 압박의 동력으로서 국회 바깥에서 효과적인 대중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국회 절차에 대응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첫째, 박근혜 정부는 국회 개악 입법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입법 절차를 우회한 개악도 추진하고 있다. 가령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취업규칙 개악 등은 아예 행정지침으로 처리하려 한다. ‘시행령 통치’ 스타일을 “노동개혁”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노동개혁”의 내용을 관철시키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미 임금피크제 등을 상당히 관철했고, 내친김에 성과차등연봉제의 연내 관철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 사측은 취업규칙 변경을 위한 직원 투표를 강행했다가 부결되자, 이사회 결의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런 일이 경북대 등 나머지 국립대병원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대응과 야권 공조에 우선순위를 두면 당면한 공격에 맞서는 투쟁의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있다. 이는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노동개혁”을 연내에 관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강박은 경제 위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가하는 압력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에서도 협상(야당의 중재) 자체로써 국회 일정을 지연시키거나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일관되지가 않다. 통상임금, 노동시간 단축시 임금과 노동조건 유지 등에서도 매우 의심스러운 입장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담회를 할 때 새정치연합 소속 환노위 의원들은 ‘당론은 당 지도부와 상의하겠다’, ‘상임위 상정은 못 막으니, 논의 시 민주노총과 충분히 사전 논의하겠다’ 정도로만 답했다. 그 뒤 보름이 지났지만 환노위 일정 공조 이상 더 나아진 문제는 없는 듯하다.
‘민생’
새정치연합도 새누리에 비하면 조력자 구실이지만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이기 때문인데, 이를 잘 아는 박근혜와 여권은 ‘민생’을 내세워 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민생’이란 말은 기업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일을 뜻하는 코드명 구실을 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8일 새정치연합은 교과서 국정화 반대 농성을 정리하며 ‘민생최우선주의’를 내세웠다.)
따라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노동개혁” 법안들을 다루기 전에 노동운동이 외부에서 강력한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과 정권의 밀어붙이기에 새정치연합이 찔끔 저항하다가 멈추고, 찔끔 버티다가 끌려가는 익숙한 모양새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
민주노총이 파업 동력보다 일부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활약에 기대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새정치연합을 매개로 새누리당의 책략에 발목 잡힐 수도 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개악을 저지하려면 민주노총이 실질적인 파업 투쟁 조직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불필요한 후퇴나 양보 없고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단호한 대중투쟁만이 박근혜의 공세에 맞서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럴 때 새정치연합도 무시 못할 압박을 느낄 것이다.
민주노총 중앙과 산별 지도부는 ‘상정시 파업’ 계획을 제출했었다. 그런데 막상 총궐기 다음주에 법안들이 상정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투쟁 지침은 “상정시”에서 “처리시”로 슬쩍 바뀌는 듯하다. 이런 상황은 주저와 망설임을 반영하는 것이고, 구체적인 국면에서 야권 공조 중시냐 대중 투쟁 중시냐는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문제다.
제약
노사정 간 사회적 논의나 새정치연합과의 공조를 우선하면, (기반상 파업을 꺼리는) 공조 상대를 의식해 파업 같은 전투적 전술을 스스로 제약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긴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최근 <한겨레>의 민주노총 20주년 특집 기사나 정의당의 국회 내 논의(‘정치적 해법’) 중시 등이 내포한 정치적 함의가 위험한 이유다.
한편, 야권 공조 같은 원내 협상을 더 중시하는 발상에는 “노동개혁” 문제가 국회에서 법을 다루는 ‘정치’ 문제이므로 노동조합 조직들은 의회 정당들의 ‘전문적인’ 정치 협상에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이는 정치와 경제의 분업을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개혁주의 논리는 아래로부터의 자력 행동 방식보다는 위로부터의 협상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 조율을 해 나가려는 노동조합 고위 상근간부층의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전술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의식이 발전하기가 힘들다.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참을성과 끈기를 가지고 설득하고 조직하려는 좌파의 구실이 매우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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