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백히 이명박 정부와 집권당을 심판하는 선거였다. 북풍도 反전교조/구 정권 심판 구도도 먹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2. 광역에서 기초까지 자치단체장들을 많이 잃어 권위주의적 국가기구 통제를 강화해 정권재창출을 하려던 집권당의 전략은 일단 좌절했다. MB식 교육도 거부당했다. 정몽준과 정정길은 사퇴하고, 오세훈은 "사실상 졌다"고 말했다. 사기가 떨어지면 내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박근혜는 당권 장악을 노릴 것이고, 친MB계는 박근혜 등 속죄양을 찾으려 할 것이다. 

3. 그럼에도 이명박의 적자재정 만회 정책은 본격화할 것이다. 국가 채무 증가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 면에서 일부 양보가 있겠지만, 공공부문 민영화와 구조조정은 계속 추진될 것이다. 그러나 힘은 딸릴 것이다.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이명박은 힘이 딸릴 것이다. 그래서 더 모르쇠로 밀어붙이려 할 수도 있다.



4. 한숨 돌린 반대파들에겐 기회이자 시험대다. 이전보다 저항에 나설 대중의 자신감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맞서 싸우기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더 단호해야 한다. 궁지에 몰린 쥐를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5. 민주당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자력갱생의 성과라기보다는 '반사이익' 성격이 더 크다. 한명숙 지지율이 투표일 닥쳐서야 오른 것은 사람들의 지지가 썩 흔쾌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텃밭인 호남에서도 무소속과 민주노동당이 약진했다. 투표에서 이명박을 심판할 수단으로 민주당을 선택했지만 민주당은 썩 좋은 무기는 아니다. 이명박의 가장 나쁜 정책들에서 민주당이 별 차이 없기 때문이다.

6, 정몽준이 노무현을 불러내 과거 정권의 유산을 심판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광역단체장 선거에 친노 직계 후보들이 거의 당선했다. 사람들은 지금 정부가 하는 말은 뭐든지 싫어한다. 광역단체장 이변의 주인공들은 모두 친노 직계들이다. 친노 세력은 복권됐다.

7. 진보
양당은 2006년보다 당선자를 두 배로 늘렸다. 민주노동당은 인천·광주·전남·경남에서 당선자를 늘렸다. 울산 북구는 4년 만에 구청장을 되찾았고, 인천에선 반MB연합의 덕으로 구청장을 두 개나 차지했다. 그 결과, 2006년보다 당선자가 70퍼센트나 늘었다. 진보신당도 25명의 당선자를 냈다. 서울에선 자력으로 네 명이나 기초의원을 당선시켰다.(이중 당선자의 4분의 1이 민주노총 조합원 후보다. 만만치 않은 비중)

8. 교육감 선거는 민주·진보 단일 후보들이 약진했다. 단일 후보를 10곳 내서 6곳에서 당선했다. 서울과 경기에서 이긴 것이 결정적이다. 인천에서 전교조 후보가 불과 3천 표 차이로 졌다. 광주와 강원에서도 전교조 후보가 여유있게 이겼다. 교육감 선거는 진보의 대승리다.

9. 우파 집권당의 패배로 전반적인 정치 지형은 더 왼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서 개발과 성장보다 복지가 쟁점이 된 것이나, 천안함 사고를 이용한 냉전적 북풍몰이가 통하지 않은 것도 그 방증이다. 대중의 보수화 신화는 산산조각났다. 행동과 달리 말은 더 진보적으로 하는 친노 진영의 부활도 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10. 민주당은 당분간 포퓰리즘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차지한 광역단체들에서 4대강·무상급식 등 공약한 여러 쟁점에서 검증대에 오를 것이다. 공무원노조 문제도 있다. 정부 재정 악화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수가 된 서울시의회에서 서울지하철 등 지방공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막아달라는 압력이 생길 것이다. 주적이 한나라당이고 민주당이 反MB 정서의 수혜자인 점(대중의 기대감)을 고려하면 민주당에게 개혁 약속들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방식이 유용할 것이다.

11.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받는 비난들은 부당하다. 진보는 늘 양보하란 말인가. 오세훈 당선은 안타깝지만, 어차피 단일화 압박 때문에 지지 표를 뺏긴 것은 한명숙이 아니라 노회찬이다. 그 정도로 밀어줬는데도 낙선한 것은 민주당 자신의 탓이 가장 크다. 서울에서 자기 당 구청장 표도 다 못 받았는데, 정권 심판 구도로 얻은 반사이익 말고 스스로 얻은 게 뭐 있는가.

12. 길게 보면, 실용주의적 승리보다 진보의 독자 성장이 더 중요하다. 오세훈 낙선도 좋지만, 민주당이 맘에 딱 드는 대안인 것도 아니다. 이명박의 가장 나쁜 정책들 -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계급의 생활수준 공격 - 에는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도 기업주에 기반한 당이기 때문이다.

13. 장기적으로 노동계급 기반의 진보정당이 성장하려면 기업주와 기득권 세력에 기반한 정당들을 약화시켜야 한다. 물론 그것이 한나라당의 당선을 돕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민주당 대안론에 줄기차게 도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 결과로 진보정당에게 일정한 기회와 공간이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反MB민주연합 노선으로 계속 가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14. 물론 이 문제에서 진보신당이 1백 퍼센트 진지하다고 볼 순 없다. 자신들의 협소한 조직적 이해관계가 더 컸을 수 있고 진보의 독자적 성장 전략에 일관되지도 단호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노회찬의 완주는 진보의 대의를 대표했고 대변했다. 그래서 노회찬을 변호한다.

15. 심상정이 사퇴 전 경기 지역당협 위원장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국참당을 포함하는 정계개편이다. 노회찬도 비슷한 문제의식의 ‘지방선거 후 개편[각주:1]’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민주당을 왼쪽에서 쪼개는 정계 개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이 흡인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야권 재편보다 민주당과 직거래에 더 흥미를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신당이 진보연합의 구심점이 되기엔 지도력과 조직세가 너무 취약하다.

16. 진보 양당이 서로 경합한 선거구에선 대체로 성적이 별로였다. 지금 양당의 전략이 계속 되면 조직 노동자들을 민주대연합(사실상 민주당)과 진보정당 지지로 분열시킬 게 뻔하다. 그것은 투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투쟁을 잘 하려면 정치 영역에서도 진보 좌파의 재단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보 양당의 경직된 양 편향은 이 과제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민주당이 재편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진보연합이 더 현실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17. 민주당과 선거연합 전략이 성공했고, 앞으로도 계속 돼야 한다고 보면, [진보정당은] 동맹자(민주당)를 고려해 일관되게 노동자들의 저항을 지원하고 이끌 수 없다. MBC 파업의 갑작스런 중단에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지난해 노동법 개악 때도 민주당의 의회 활동에 의존하다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근본 성격 때문이다.

18. 그렇다고 진보 양당, 특히 민주노동당을 더는 진보정당(또는 노동자당)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초좌파들의 비판이 정당한 것도 아니다. 이런 비판은 자신들의 혁명적(?) 기준에 비춰 미달하면 모조리 좌파가 아니라는 건데, 이것은 구제하기 힘든 엘리트적 종파주의다. 현재 노동자운동의 발전 수준에 비춰봤을 때도 황당한 얘기다.

19. 이명박을 증오해 민주대연합에 소극적 지지를 보낸다 해도, 여전히 약점 많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해도, 결국 이명박과 싸우고 기업주들의 공세를 물리칠 주역들은 이 노동자들이다. 선거에서 이명박을 심판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들이 투쟁에서도 이명박과 싸울 주역들이다. 이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경험하면서 배우고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20. 反MB 전선(또는 구도)가 문제라며 反MB와 反신자유주의(자본주의)를 대립시키는 이들이 있다. 어리석다. 지금 한국 자본주의의 총자본 대리인은 이명박이다. 어떤 反MB냐가 쟁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와 투쟁에서 모두 다시금 反MB진보(좌파)연합을 진지하게 추구해야 한다. 이제 선거 심판을 한 마당에 더는 기다리지 말고 자신있게 이명박의 다가올 공세에 저항을 준비해야 한다. 투쟁 의제를 중심으로 단결을 시작해야 한다. 투쟁은 단호해야 한다.




  1. 사실 지난해 가을부터 노회찬이 제시한 ‘민들레연대’가 바로 이 구상이다. 민주당에 속해있지만 정체성은 진보적인 인사들이 민주당 밖의 진보와 헤쳐 모여 비민주 진보야당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노회찬은 임종인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최근에는 폴리뉴스(4.6)와 CBS(5.10) 등의 인터뷰에서 이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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