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도 주제지만 저보다 더 나이 어린 사람들과 하는 토론은 늘 흥미롭습니다. 세파에 찌들기 전이라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의심을 많이 합니다. 질문도 기발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 주제는 마르크스주의로 본 경제위기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상황이 경기회복인지 거품인지까지 다루는 꽤 방대한 주제였습니다.

어려운 주제라 그런지 토론이 활발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가한 학생 중 한 명이 흥미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대강 요약하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심'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에 가장 부합하는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가장 오래된 주장이기도 하고 가장 흔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욕구 실현을 외면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체계적으로 가로막힌 상황을 바꾸려는 이론이자 전략입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흔히 나오는 것은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체제들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이 나라들을 인용해 마르크스주의의 신용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옛 소련의 가짜 사회주의가 인민에게 절제와 일방적인 이타심을 강요한 것은 체제가 인민들에게 충분히 풍족하게 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지배자들이 그렇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이 가짜 사회주의보다 서방 자본주의 경제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정부 재정이 악화돼 복지 지출을 줄이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늘어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과 소련, 남한과 북한,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욕심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은 왜 자본주의에서 특정한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이기적 탐욕은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어떤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마저 무시당하고 심한 경우, 강제로 억압당하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 수익성이 줄어 투자처가 마땅하지 않은 기업과 부자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합니다. 그러나 그 세금이 깎인 것 때문에 25만 명의 결식 아동이 방학 중에 급식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의 파생상품 투자가 왜 한때는 경제의 구원자였다가 지금은 저주 받을 행위가 됐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기업과 부자들이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 이를 독차지하는 반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재산 가치가 폭락하는 손해를 보고 심지어 세들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사정은 어떻습니까.

이처럼 자본주의는 경제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욕심은 구조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고 억압합니다. 어느 계급 소속이냐에 따라 어떤 이들의 욕심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칩니다.

인간의 욕심 이론은 이처럼 아무것도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가들이 자기 탐욕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변설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론자들에게 왜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이기적인가라고 묻는다면 본래 이기적이니까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한 해에도 수만 명의 신입생들을 받는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기본 동력이라는 이 엉터리 공리에 바탕한 학문을 가르칩니다.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인간의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늘 변함 없었는데, 왜 인류 역사의 3분의 2가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사회였을까요. 

그게 당시 인류의 잠재적 생산능력의 수준에 부합했기 때문이죠. 생산성이 너무 낮아 협력해 수렵과 채집을 해야 했고, 공동으로 식량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함께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자본주의는 특유의 역동성으로 생산 능력을 혁신했지만, 자기 모순 때문에 그 생산 능력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주기적인 경제 공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도 생산과 분배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라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료도, 기계도, 공장도, 일할 사람도 그대로 있습니다. 부족한 건 기업의 이윤입니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라는 기름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자본주의란 체제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특정한 생산력 수준 하에서 이뤄졌던 일시적 체제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이제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기본적 욕구는커녕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입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르크스가 경고한 것보다 더 위험한 세상이 됐습니다.

지구를 서른 번이나 없앨 수 있는 핵폭탄을 품에 안고서 평화를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광기어린 체제입니다.

한때 자본주의 발전을 이끌었던 석유 관련 기업들은 무작위한 CO2 배출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쳐 인류 전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데도 당장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CO2 배출을 억제하지 않습니다.

적게 투자해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식품기업의 탐욕은 광우병이라는 재앙적인 질병을 만들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경제이론은 이런 광란의 경제 체제의 탄생과 변화, 실상을 어느 이론보다 훨씬 더 일관되게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게 그 질문을 던진 학생이 제 답변을 듣고 어떤 고민을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학생은 토론이 끝나고 나서 자신은 상위 20퍼센트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평범한 노동계급 출신 젊은이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할 확률을 반반으로 볼 수 있다면,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바꾸는 실천이 성공할 확률도 반반입니다.

확률이 같다면,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쪽에 서는 게 낳지 않을까요.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말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건 로또보다는 훨씬 확률 높은 베팅입니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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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깁니다. 한국 다음 순위 국가들보다도 두 달 (8시간×23일[주5일제 기준]×2) 정도 더 일합니다. 

그러니 아침 출퇴근 전쟁 시간대 버스와 지하철은 조는 사람, 멍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쉴 시간, 놀 시간이 없으니 여가생활이라곤 대체로 친구들과 술먹기 뿐입니다. (글로 배워서~)

이런데도, 기업주 모임인 경총이나 정부는 한국에 휴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해 왔습니다. 제헌절, 식목일 등 매년 국가지정 공휴일이 줄어왔습니다. 심지어 반쪽짜리 주5일제 도입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유급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꿔버렸습니다.

기성 언론에선 추석을 앞두고 '민족의 명절'이다 뭐다 하고 떠듭니다만, 정작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억울한 마음은 다루질 않습니다.

올핸 추석이 주말과 겹쳐 명절이라기보단 금요일 하루 더 쉬는 것 밖에 안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ㅠ.ㅠ 올해는 추석 이틀에 개천절 하루, 총 3일이 사라졌네요...

장시간 노동, 휴일 노동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아직도 피할 수 없는 굴레입니다. 저도 예전 직장에서 새벽 퇴근, 새벽 출근을 자주 해봤지만, 아주 사람 얼을 빼놓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앉아서 휴일을 도둑맞다니... 


달력의 빨간 날, 즉 법정공휴일은 어느 회사에서나 유급 휴일이기 때문에 공휴일의 축소는 정해진 월급에 일 더 시켜먹겠다는 것 밖엔 되지 않습니다. 법정공휴일을 축소하면 애써 머리띠 매고 투쟁하고 임금 교섭해서 올려 놓는 임금이 뒤로 몰래 깎이는 겁니다.

한마디로 '부지런한 한국인'이란 이미지는 '사람 부려 먹는데 부지런한 사장'과 '권리 찾아 먹는데 게으른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원래 두 몸인데, 이걸 한 몸으로 합쳐 놓으니 사람 헷갈리게 하는 그림이 된 거죠. 

최근 몇 년간 웰빙이니 삶의 질이니 언론 보도가 많았습니다만, 먹는 것, 여가 이용법, 여행지 정보는 넘치는데, 막상 이걸 위해서 월급을 올려야 한다거나 휴일을 늘려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을 하는 언론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주식, 부동산 등등. 하지만, 한 실험에서 월가의 투자 전문가와 원숭이의 랜덤 투자 수익률이 같았다고 하죠. 몇몇 구조적 주가 조작을 하는 기관 투자가들 빼곤 개미들이 벌 수 있는 돈이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펀드 폭락 사태는 평범한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의 현실을 잘 보여줬습니다.

부동산으로 돈 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좋게 집 하나 샀다 해도 내 집만 오르는 게 아니므로 내 집값 올라봐야 새 집 구할 땐 제자리입니다.

이 순환을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뿐인 듯합니다. 새 아파트 분양을 받거나 강남 아파트를 사는 건데, 2천년 대 내내 분양가가 집값과 똑같이 올랐습니다. 결국 남는 길은 강남 아파트 사기. ㅋ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일자리를 얻고 지키기. 조금이라도 더 월급 받기. 이게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웰빙의 출발점입니다. 우리에게 여유있는 삶, 즐길 수 있는 삶은 난관이 참 많네요.

정말 최소한 설과 추석은 일주일을 모두 쉬어야 합니다. 토요일도 정식으로 법정공휴일로 하고, 주말과 겹치는 법정공휴일은 다음 월요일에 쉬어야 합니다. 주류 엘리트들은 교육과 언론에서 가족과 민족의 가치, 양보와 여유의 가치를 자랑만 하지 말고, 여염집 갑남을녀가 그런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게 휴일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휴일을 줄이며 일해야 하는 건 우리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금고 채우기만 바쁜 사장들 말고 정부가 좀 나서서 우리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가(정부와 국회)가 유급휴일인 법정공휴일을 줄이는 데 열심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된 대표들이 선출되지 않은 기업주들을 위해 자신을 선출한 주권자들을 쥐어짜고 사실상 임금 삭감을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노동자 집회 같은 데 가 보면 "시키는대로 일만 한 죄밖엔 없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돌이켜 보면 그건 진짜 죄인 겁니다. 충분한 휴식을 요구하는 건 충분한 임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어떻게 꾸려 나갈까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충분히 쉬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살펴보는 실천적·문화적 역량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평범한 이들에겐 충분한 임금과 여가 시간을 요구할 이유가 많습니다.

······

사실 무엇보다 휴일이 줄어드는 게 당장 걱정되는 이유는 이명박과 그 똘마니 국회가 일하는 날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죠. 정말 최소한 이들에겐 휴일을 많이 보장하면 안 될까요.
무급으로~ 쭈욱~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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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레프트21>15호 "법 질서 확립? 너나 잘하세요~"


엊그제 113명의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일방 표결로 정운찬이 국무총리가 됐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가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고 하네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반대파에 대해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겠다는 겁니다. 청문회를 글로 배운 정운찬이나 서양식 아파트를 너무 사랑한 한식 전문가 백희영이나 자기를 처벌해야 하는 이귀남, 이런 자들을 그냥 그 자리에 앉히고 가겠다는 겁니다. (이런 내각이 친서민 내각? 그건 니 생각이고~)

정운찬의 총리 임명 반대는 단순히 정파적 반대 목소리가 아닙니다. 여론의 과반이 총리 임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정운찬과 나머지 인물들의 비리와 혐의들이 주류 특권층의 부패한 실상을 여지 없이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정당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죠. 상대적으로 특권층 기반이 적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투기, 탈세 의혹으로 총리 후보가 낙마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이 정권은 좀더 노골적입니다. 이들이 특권층의 3~4세대 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커왔으니까요. 마치 "우리집은 가난해요. 아빠도, 엄마도, 집사 아저씨도, 정원사도, 식모도, 유모도......"하는 오래된 우스개소리처럼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후보 중엔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환경부 내정자도 있었고, 유방암 진단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에게 받은 선물이 강남 30평 오피스텔인 청와대 비서관 내정자도 있었죠. 오세훈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11평 집에서 어떻게 발 뻗고 자냐?"고 말했습니다. 도심에 30평대 '서민형' 오피스텔을 만들겠다면서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는 일들을 이들은 당연하게 저지르고 내뱉습니다. 점점 가벼워지는 유리 지갑의 월급쟁이 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탈세와 위법을 저지르고도 처벌은커녕 무사히 장관직에 안착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 사회의 정치 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환멸은 커집니다. "그놈이 그놈" "있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 내각 인사가 있을 때마다, 또는 고위층 비리 사건이 날 때마다 듣는 표현들입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이 당장은 승리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더 깊은 곳에서 '통치'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근시안적 '실용주의'는 주류 특권층이 독점하는 정치체제의 위기를 더 크게 만들 것입니다. (딱히 밀어붙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정부죠, 사실)

이 문제가 조용히 넘가는 듯 보이는 건 한나라당의 생각처럼 사람들이 망각하거나 그 몹쓸 추진력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을 바꿀 가능성에 아직 확신이 부족하고, 또 바꿔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게 되는 지위와 권한이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배웁니다. 처음부터 그런 일에 맡게 교육되고 길러진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예산을 다루는 일, 공장을 짓고 투자를 결정하는 일, 외국에 나가 협상하는 일 등.

그래서  '민중'이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보다 선덕여왕 같은 좋은 정치인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주류가 가르치는 기성 교육은 4년에 한 번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국가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민주주의고,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민주적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를 다스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죄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도대체 누구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기름때 묻은 '공돌이공순이',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장관을 하고 기업을 경영할까요? 이러니 "대안이 없잖아"하는 푸념에 빠지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가 망가지고, 4대강 예산은 복지 예산을 갉아먹으며, 갈수록 살기 더 힘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쟤네들이 썩 그 일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조기 영재 교육 받아서 영어 백날 잘해 봐야 소고기 협상처럼 하고 온다면 특권층의 지위와 능력을 존중한다는 게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법적 의무조차 안 지키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용해 배를 불려 온 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구호로 의회 체제와 타협하고 왕제를 유지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 표현을 빌어 고위 공직자 시비에서 드러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구호를 요약하면, "통치하고 군림하되, 책임지지 않는다"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제대로 '잉여' 존재인 겁니다.

그렇다면, 공장을 실제로 돌리는 노동자가 공장을 경영하고, 여염집의 갑남을녀가 경제와 사회, 정치에 대해 뜻을 모아 결정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최소한 스스로 결과에 책임지는 결정들을 할테니까요.

또 어차피 사회가 돌아가는 건 노동계급 대중이 하는 일들 덕분입니다. 집과 도로를 만들고 제작과 운송을 기획하고 사회서비스를 관리하는 수많은 갑남을녀가 없다면 소수에 불과한 특권층이 뭘 할 수 있을까요.

냉소는 분노의 다른 표현입니다. 환멸과 냉소가 분노와 행동으로 바뀌는 데에는 불쏘시개가 필요합니다. 알리고 선전하며 대안을 주장하는 일, 즉 장작을 쌓는 일이 지금 중요한 이유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그대여 분노하라! 분노를 숨기지 마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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