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21>은 격주 신문입니다. 그래서 신문이 나오는 주는 정신이 없죠.

월요일과 화요일은 기자들이 기사 마감하고, 기자들이 쓴 기사와 각 칼럼 기고문, 독자편지, 외부 기고 글들을 교정·교열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수요일엔 마지막 교정·교열과 디자인 제작, 사진 찾기 등을 합니다. 거의 새벽까지 가는 작업이죠. 그러고 나면 목요일 오후에 인쇄된 신문이 나오고 우편 발송과 배포가 시작됩니다.

오늘 나온 <레프트21>20호는 비운의 호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 호 <레프트21>은 애초에 철도 파업 지지 기사를 1면 헤드라인 기사로 정했습니다. 보충 기사가 3면에 실렸구요. (이 녀석은 세상 구경도 못해보고 폐지가 되는...)

관행대로 목요일 오후에 모든 기자들이 우편 발송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철도 파업이 중단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충격과 공포' 속에 일손을 멈추고 이리저리 아는 채널들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최종 결정을 위한 회의 중이며 6시쯤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결국 철도 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결정이 전해지고 기자들은 허탈감 속에서 새 판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상률게이트와 두바이 몰락을 1면을 대체할 기사를 정하고 논설 포함 철도노조 파업을 언급한 관련 기사들 모두 내용을 손 봐야 했습니다. 1면과 3면을 대체하는 기사들의 사진을 새로 찾습니다. 인쇄소가 정해준 시한에 겨우 맞춰 일을 끝냈습니다. 배송이 하루 늦었기 때문에 금요일(오늘) 오전까지 신문이 나와야 했으니까요.

결과는 수천 부의 신문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 결과적으로 에너지 낭비, 돈 낭비 한 셈이 됐습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난 오늘 오전, '새 20호'의 우편 발송을 모두 마치고 신문에 큰 실수가 생긴 걸 발견합니다.

1면을 대체한 두바이 기사의 3면 나머지 기사에서 무려 여덟 단락이 반복된 것입니다. 한 기사 안에서 기사의 3분의 1가량이 중복된 것이죠.(좋은 글은 반복해 읽어도 좋긴 합니다) '새 20호' 너마저... 또다시 찾아온 충격과 공포. 모든 기자들이 큰 실수에 대해 낭패감과 독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오늘 남은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게 철도노조 파업은 왜 중단해서리... 하는 원망이 계속 든 게 사실입니다. 모든 게 철도 탓이다 하고 싶지만, 저희들의 실수를 누구에게 떠넘길 순 없잖아요. 

신문이 아깝기도 했지만 대통령이 탄압을 진두지휘하는 상황에서 8일간 버텨온 철도노조였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얻은 것 없이 후퇴한 건 잘못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죽이려 해서 파업한 건데, 저들이 양보 안 하니 파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냥 스스로 죽겠다는 것 아닙니까.


※ 이 글을 쓴 후 한 달 간의 사태 추이와 토론을 거쳐 스스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바뀐 내용은 엮인 글을 따라 가서 읽으시면 됩니다. 아래 내용은 개인 증거 차원에서 수정하진 않습니다. 더는 글쓴이 스스로 보증하지 않는 내용이므로 굳이 읽으실 필요 없기도 합니다. 위 내용만 해도 충분한 이야기 꺼리가 됐다고 봅니다. 참고하십시오.

험난한 운명을 겪은 20호 신문에 새로 실린 철도 파업 평가 기사는 신속한 평가 노력은 좋았으나 내용에선 문제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기사는 철도노조가 처한 상황을 공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철도노조는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로 방어적 차원에서 파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파업 사흘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상 파업 파괴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합법 파업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불법으로 바뀌고 지도부 체포영장,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손배 청구 협박, 무려 8백여 명의 직위 해제, 보수언론의 총공세 등이 숨가쁘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기사는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면서도 철도노조 지도부에게 왜 유리한 정세에서 후퇴를 했냐고 다그칩니다. 객관적인 정치 상황이 노동운동에 유리한 건 사실이었지만, 철도노조 자체로는 지배계급 전체의 총공세를 받고 있었고,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으로 민주노총도 잠시 주춤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철도노조 자체로나 상급단체 차원에서도 연대 파업 등 철도노조를 엄호할 준비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는데 불법을 감수하며 속전속결 전술을 사용하라는 것은 한 지인의 표현처럼 "철도노조 혼자서 이명박을 뛰어넘으라"는 주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광폭한 탄압에도 처음으로 8일간이나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용기를 고무하고 지도부가 3차 파업을 선언한 마당에 다음 파업을 잘 준비하도록 독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전 이 점을 강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판한다면, '(예상치 못했을) 강경한 탄압에 어떻게 맞서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협 해지라는 부문적 요구로 시작한 파업이 의도치 않게 정치 파업으로 '내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철도공사 사장 허준영의 탄압이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애초에 정치적 성격이 부분적으로 있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공기업 선진화 철회, 노조탄압정책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저들의 '정치파업' 협박에 진정한 정치파업으로 맞불을 놓는게 진짜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투쟁의 요구가 진짜 '우리 모두'의 것이 될 때 연대투쟁을 호소하고 건설하기가 더 쉬웠겠죠.

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단협해지 철회와 대화 재개에만 머물렀습니다. 이 점이 저는 지도부의 실책이라고 봅니다. 시야가 협소하니 탄압의 효과가 더 커보인 듯합니다. 합법 파업도 불법이라고 난도질 탄압을 하면서 마치 파업을 유도한 걸로 보일 정도로 몰아부치는데 불법 파업 전술을 사용하는 게 관건이라 보지 않습니다.

파업 중단 문제는 아쉽지만, 지방 지역 복귀율에 대한 엇갈린 의견들도 있고 하니 좀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듯합니다. 개인적으론 파업을 더 지속하면서 앞서 말한 전술을 구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차피 상황은 재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결정적 실책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조합원들이 대체로 집행부 결정을 수용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국 집결 집회(사실상 총회)에서 진퇴 여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게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번엔 제대로 준비해 연대 파업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연대 건설에서도 양 노총 공공부문이 함께 한 집회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의 공세가 더 다급하게 이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연대파업 일정을 왜 당길 수 없었는지는 더 알아봐야 겠습니다.

좀더 상황과 정서를 파악해 보고 <레프트21>에 기자가 아니라 애독자의 자세로 독자편지를 보내볼 생각입니다. 부족하고 단편적이지만 제 생각에 의견 있으신 분들은 주저없이 댓글 달아 주세요.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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