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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2 이정희 대표의 경력에 관한 민주노동당내 논쟁 2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고 논쟁해야
 


민주노동당 게시판에서 일부 당원들이 이정희 대표를 비판하는 당원들이 ‘출신’과 ‘근본’을 따진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어제 후다닥 써서 글을 올렸는데, 꼼꼼히 다듬지 못해 오해가 있을 수 있어 다시 다듬어 정리를 했다. 

일단 참여당 통합에 반대해 이정희 대표를 비판한 당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왜곡이다. 나만해도 정치적 과거 그 자체 때문에 진보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거나 출신 성분을 따진 바가 전혀 없다. 내가 펌한 최미진 기자의 <레프트21> 기사도 과거 그 자체를 비난하진 않았다.

사실 출신이나 과거 등은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평가할 때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현재의 선택과 실천이다. 자신의 출신 배경 대신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따르겠다는 정치적 선택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무현이 부자 가문이나 명문대 출신 엘리트라 반민중 정책을 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혁명가들의 경우를 봐도 출신보다 조직적 실천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 엥겔스는 자본가 집안에서 태어나 혁명 활동 내내 사장이었고, 레닌이나 트로츠키도 여유있는 중간계급 가정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출신 배경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정치적 선택을 늘 인생에서 앞세웠다.
 
민주노동당의 노동자·농민 당원들도 권영길 전 대표에게 언제 서울대 출신이라고 비난한 적 있던가.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 중엔 서울대 출신도 있었고, 고졸의 여공, 농민 출신도 있었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은 그들을 학력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단지 진보의 원칙을 지키고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권리를 옹호하는 데서 하나 돼 앞장 서길 바랐다. 

돌아보면, 민주노동당이나 아니면 다함께를 포함한 당내 좌파들이 개인의 과거 그 자체를 문제 삼아 진보로 오겠다는 사람을 막은 적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미FTA 반대 투쟁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노무현 정부 비서관 출신 정태인 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실제로 한미FTA 운동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정태인 씨를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시절, 부족한 민주노동당의 법안 발의 요건을 채워주면서 반신자유주의 정책에 함께 반대했던 임종인 전 의원이 열우당의 기득권과 단절하겠다며 탈당했을 때, 많은 당원들이 그를 격려했고 안산 재선거에서 당이 공식으로 그를 진보 후보로 선정하고 지원했다. 나는 그 때 민주노동당의 결정을 지지했다.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과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현재의 행보와 연결될 때다. 그 출신 배경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실천으로 반영되고 있을 때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손학규가 야권연대한다고 깝죽대다가 가끔 한나라당을 돕는 뻘타 날리면,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재집권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역시 한나라당 출신은 안 돼’ 하고 말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대해 우리가 변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다. 

따라서 누군가가 진보에 가담할 때는 정치적 과거 그 자체보다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단절하냐가 더 중요하다.  

한편, 애석하게도 계급투쟁에서 대체로 지배자들이 더 계급의식적이다. 그래서 지배자들 편(지배계급 성원/그를 돕는 국가관료나 전문가/대체로 친체제 성향인 중간계급 등)에서 분열이 생겨 우리 편에 가담한 인물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 편의 도덕성과 힘의 증거다. 그것은 우리 편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  

물론,  이건희, 정몽구, 전두환, 박근혜, 조중동 사주들 같은 이들에게서 개과천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런 착각은 특정 집단들이 딛고 서 있는 사회적 존재조건/이해관계(토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개인이나 존재조건이 다른 이데올로기 동조자들이 개인적으로 과거의 속성에서 변화할 수 없다고 절대화하는 것은 경직되고, 결정론적 인식이다. 

그 과거를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 분열과 단절이 일어날 가능성 등을 우리 인식 상에서 부정하는 이런 태도는 좌파의 행동 반경을 불필요하게 좁고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각주:1]

적지 않은 2008년 촛불항쟁 참가자들이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내거나 가입했다. 대체로는 그 전에 노무현 정부를 지지했다가 실망한 사람들, 아니면 정치에 크게 관심 없던 사람들이었다. 공통점은 反한나라 反이명박 非민주였다. 

참여당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런 입당을 반대하거나 문제라고 한 적이 결코 없다. 오히려 이들을 더 끌어들일 조직적 수단을 강구하자고 주장했다. 진보대통합도 그중 하나였다.[각주:2]   

이런 예만 봐도 참여당 통합 찬성파 당원들이 반대파 당원들에게 [마치 옛 인민군을 연상시키는 용어인] ‘근본과 출신성분을 따지며 편가르기 한다’고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왜곡과 모략에 가까운 짓이다. 다함께 등은 진보정당이 우경화하는 방식으로 개혁적 대중을 전취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이정희 대표의 친노적 과거에 관해 말하자면, 최근 이정희 대표의 현재 행보가 여러 비판적 논자들에게 과거 친노 행보를 떠올리게 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이정희 대표는 과거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강금실을 지지했다. 2007년 대선 예비경선에서 한명숙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각주:3]

그런데 지금 공교롭게도 이정희 대표가 당권파 실세 지도부를 등에 업고 참여당과의 통합을 앞장서 그것도 매우 비민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의 한명숙 후보 단일 후보 만들기에 앞장섰다. 유시민과는 공동으로 대담집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이 과정이 매우 비민주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의 사퇴와 민주당 후보 지지는 당대의기구 어디에서도 논의되거나 승인된 바 없다.

지금은 당대회는 진보진영과 통합하라고 결정했는데도, 진보정당이 아닌 참여당과 합당 사안을 비공개 수임기관회의에서 결정하려 하고, 수임기관회의는 당대회 3분의 2 결정사항인 이 문제를 어물쩍 과반수로 통과시키려 한다. 당내 대의기구를 통한 토론을 회피하면서 요상한 설문으로 한 당원 여론조사로 분위기를 조성해 이런 비민주성을 덮으려 한다. 
참여당 통합 문제로 진보신당과 통합이 불발되게 생겼는데도 막무가내다.

발언 수준도 과도하고, 그 기준도 민중운동진영보다 참여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노무현 정부의 반민중적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단순한 감정적 ‘앙금’으로 치부하고 참여당 인사들의 과거를 묻지 말자더니,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에 진보세력이 참여해서 잘 되도록 도왔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정희 대표의 과거 평가가 맞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단상 점거까지 하는 내부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얻은 것 하나 없이 비정규직 악법과 악질적인 노사관계로드맵을 받았을 뿐이다. 민주노동당도 내부 논란이 있었지만, 2004년 4대 개혁 입법에 개혁공조로 협조했다가 열우당이 스스로 포기하는 바람에 뒤통수만 맞고 말았다. 

진보에게 책임이 있다면, 더 가열차게 투쟁하지 못해 노무현 정부의 반민중 정책을 막지 못한 데 있다. 헛된 기대로 시간을 끌다가 기회를 놓치고,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갈까 봐 제대로 힘을 동원해 싸우지 못했다. 지금 이정희 대표의 반성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성찰해야 진보가 혁신된다

과거에 대한 성찰이 현재의 실천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정희 대표의 입당 전 과거보다 입당 후 과거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면 입당 전 과거는 개인의 과거지만, 입당 후 과거는 민주노동당의 의원과 당 대표로서 현재 실천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행동한 입당 후 과거, 곧 정치적 현재가 진짜 문제다. 헌정회 우대법 찬성 사건, 호전적 대북결의안 기권 사건, 한-EU FTA 때 뒤통수 맞은 사건, 당 강령 개악, 지역구를 이해찬에게 물려받은 일, 거듭 당대의기구에서 급진적 정책에 반대했던 일, 현대차 비정규직 때 농성 해제 종용에 참가한 일 등. 


물론 입당 후 이정희 대표가 잘못만 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나는 쌍용차 때 공장에 뛰어들어가고 국회에서 온 몸을 던질 때, ‘이제는 망치를 들어 벽을 부숴야 할 때’라며 거리투쟁을 호소할 때는 사심 없이 칭찬하고 함께했다. 
말그대로 잘 한 건 지지하고, 못 한 건 비판해왔다. 나는 그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하고 일관성을 지켜왔으니 껄끄러울 것도 없다.

한편, 대중운동 출신이 아니라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도 조야해서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 비판은 좀더 맥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의 출생과 기반 때문이다. 

이 당은 민주노총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하기로 결의하면서 탄생한 당이다. 민주노총은 이 당이 정치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에서 돈과 사람의 핵심 젖줄이었다. 민주노총 기반 때문에 성장을 못했다는 주장도 2002년~2004년까지 선거적으로 성장했던 것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민주노총 공식기구와 조합원들은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통합 진보 정당을 지지한 것인데, 아무리 살펴 봐도 참여당과 합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도 이 때문에 참여당 통합 논의가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이정희 대표가 한진중공업에서 잘못된 합의를 한 채길용 집행부를 비판하면서 민주노총이 그를 제명해야 하고, 연대파업으로 한진과 유성, 전북 버스 등의 투쟁 승리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대중운동 출신이 아니니 어쩌지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정희 대표가 참여당은 통합 대상이 아니라 하고 진보신당에 대한 과거의 앙금을 씻자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호소했다면 친노 과거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희 대표가 진보정치의 외연 확대를 위해 거리로 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올곧게 대변하는 유일한 세력이 되자고 했다면 엘리트 출신이니 뭐니 하는 조야한 비난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정희 대표가 기층 투쟁의 요구를 대변하기보다 단순한 정치적 중재자가 되려 하고, 더 나아가 그런 정치관에 기초해 매우 비민주적 방식으로 친자본가정당들과 당을 합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기반, 원칙까지 흐리는데, 민주노동당이 맺고 있는 노동 등 기층 운동과의 관계 때문에 [이런 우경화 행보가] 민중운동 전반에 혼란과 분열을 낳을 수 있어 반대하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며 논쟁해야 한다. 최소한 이정희 대표를 옹호하려는 논자들은 일부의 과잉 표현을 빌미 삼아 비판자들을 싸잡아 매도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쟁점은 이정희 찬반 논쟁도 아니고, 자주파 찬반 논쟁도 아니며, 진보의 외연 확장 찬반 논쟁도 아니다. 

진보의 원칙을 지키며 외연을 확대하자는 주장과 우경화해 외연을 확대하자는 주장 사이의 논쟁이다. 우리는 참여당 합당 아니면 진보의 외연 확대가 불가능한 것처럼 구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왜곡이라고 생각한다. 왜곡된 논점이 아니라 정확한 논쟁 구도에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단결해 경제 위기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에 선다면, 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1. 그래서 노동자주의가 초좌파주의가 만나면 매우 경직된 원칙과 전술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민주노동당의 성격, 체제에 정상적으로 뿌리내린 노동조합의 구조 등 개혁주의를 분석할 때 특히 그렇다. [본문으로]
  2. 그 와중에 노무현 자살과 참여당 창당으로 그 부근의 정치적 공백이 부분적으로 메워졌고, 지금은 야권연대 노선이 대체로 이 공백(민주당에서 왼쪽으로 이탈했으나 기존 진보정당 수준까지는 채 오지 못해 그 오른쪽에 존재하는 수백만 명의 대중, 특히 새세대 청년들)을 채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진보대통합 논의가 야권통합의 압력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본문으로]
  3. 2008년 민주노동당 비례 후보로 영입 당시 인터뷰에서 이정희 대표는 강금실 지지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었으므로 흠이 될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형식적으론 맞지만, 친노와 진보정당은 당시만 해도 결이 완전히 달랐는데, 좀더 정치적 단절 과정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을 지금도 갖고 있긴 하다. 문제는 당시 당 지도부가 급하게 전략공천을 밀어붙이면서 그런 민주적 과정을 외면한 탓이 크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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