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28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좌절된 것은 진보신당을 빼고 참여당과 통합하려던 민주노동당 내부의 시도였다. 참여당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을 수임기관에 위임한다는 안이 통과됐다면 정치적 긴장이 형성될 참여당 관련 당론 결정 과정도 필요 없을 테고, 진보신당 당대회에서도 1백 퍼센트 부결됐을 것이다. 

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 양당간 잠정합의문과 새통추 운영방안 등은 이번 진보대통합의 주체가 정당으로선 진보 양당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 전제 위에서 수정통과된 안은 진보신당과 합의를 전제로 했을 때만 참여당 관련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신당과 협의되지 않은 일체의 참여당 통합 관련 시도는 당대회 결정을 어기는 것이 된다. 당 지도부는 꼼수를 부리는 과정에서 참여당 관련 당론이 없고, 이전 수임기관의 행위가 6월 당대회 결정을 어기는 월권행위였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심지어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돼도 민주노동당은 참여당과 통합을 곧바로 추진 못 하고 새로 당대회를 소집해서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문구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안전판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여러 압력에 밀린 당대회 후퇴가 뼈아플 것이다. 물론 그들은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양당간 잠정합의문이 가결돼도 참여당과의 통합 시도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기하려 했다면, 27일 전격 양보로 합의해 놓고 바로 다음 날 당대회에서 이를 뒤엎는 안건을 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승부수를 던졌다가 자진 안건 철회를 할 정도로 지도력이 훼손된 당 대표와 지도부는 당대회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 물러났어야 옳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당대회 결정이 지도부의 지도력을 인정한 대회였다는 논평을 내놓고 태연히 꼼수를 부리려 한다. 

일단 양당 통합이 이뤄진다면 그때 참여당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진보신당을 빼고 참여당과 통합하려던 이들의 애초 목표와는 많이 그림이 다른 상태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절차를 지켜가며 이를 통합 진보정당의 당론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참여당과 3당 통합이 설사 성사된다하더라도 목표하는 만큼 그 당 지도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물론 진보신당 내부의 심상정 등이 그때 어떤 태도를 취할지 모르겠으나 그 변수를 빼고 본다면, 사실상 민주노동당 지도부 내 당권파의 꿈은 좌절 직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참여당과의 통합을 목표로 하는 민주노동당 내부 세력에게 역전을 위한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기회는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잠정합의문이 부결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당원총투표로 졸속 결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솔직하게 따져보면, 창당 전 민주노동당 내부 당원 총투표는 당대회 결정 해석 문제 등 정치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 시간상으로 집행이 불가능하다.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 결과를 보고 민주노동당이 당원총투표를 하려면 최소 그 다음 주까지는 당대회를 소집해야 할 텐데, 그 다음 주 주말은 추석 연휴다. 그 다음 주 주말로 넘어가면 당대회에서 당원총투표를 결정해도 25일로 확정한 [따라서 일주일 남은] 창당대회 전에 당원 총투표 진행을 완료할 순 없다.

그래서 일부 세력이 당원 총투표 운동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진보신당의 합의문 부결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꼼수로 당대회에서 자신들의 지도력이 패배한 것을 만회하려는 술책으로 진보정치 지도자다운 태도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진보의 분열을 유도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연합하려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에 가장 해악적인 것으로 이들이 이 쟁점에서 ‘종파’라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들과는 결연히 싸워야 할 쟁점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2.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조차 꼼수를 부려야 할 만큼 명백한 이 당대회 결정과 메시지를 왜곡하는 세력이 또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참여당 합당파와 진보신당 내부의 독자파는 
공교롭게도 둘의 민주노동당 당대회 해석도 유사하고, 양당 통합을 ‘도로 민노당[각주:1]’이라며 평가절하하면서 거부하려는 것도 유사하다. (그래서 조금 과한 표현이긴 하지만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비판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둘 중 어리석은 것은 독자파다. 진보신당 당대회 부결 유도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얻는 게 확실하다. 참여당과 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진보 분열의 책임도 진보신당 쪽에 전가할 수 있다. 

그런데 독자파는 얻는 게 불확실하다. 독자파 행세를 하는 대통합파(복지국가단일정당파) 정도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독자파에게 확실한 것은 분열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진보적 대중조직에게서 고립될 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 자주파를 싫어한 나머지 자신들을 고립(고사)시키려는 시도에 협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하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게 아니다. 독자파는 기껏해야 어음을 얻는 것인데, 그게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해 연립정부 노선으로 우경화해 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길 반사이익, 자신들이 정통 진보 노선이라는 반사이익을 얻어 재생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그 우경화는 진보운동의 판 전체를 우경화시킬 것이므로 오히려 좌파적 반사이익보다는 우경화의 유탄을 좌파들이 맞을 가능성이 더 크다. 독자파는 물론이고 급진좌파의 입지까지 더 협소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가 오더라도 굽힘 없이 인내심을 갖고 상황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경화를 초래할 결정을 해 놓고 자신들이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것은 종파적이고 무능한 발상이다.

지금 독자파들의 통합 반대 주장의 약점은 일관성 부족에 있다. 참여당, 연립정부 등에서 합의문이 불완전하다고 비판하면서 막상 독자 생존 가능성을 말할 땐 야권연대를 말하고, 조건부로 연립정부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니 이들의 반대가 원칙적인 것인지, 단지 자주파가 싫다는 건지 알 수 없고, 믿기가 힘들다.

한때 독자파의 고집이 통합 협상이 우경화로 가는 데 안전판 구실을 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이 요동치는 정세에서 3월에 옳았던 게 9월에 반드시 옳으란 보장은 없다. 그 점에서 진보신당의 통합파가 독자파를 설득한 만한 원칙적인 비전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 유감이다.

통합파의 최상층 지도자들은 지난해 경기도지사 선거 등 불신을 살 만한 행동을 여러번 했다. 참여당 문제에서 진보신당에게 거부권을 준 새통추와 잠정합의문, 그리고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정이 독자파에게 자신들의 견해가 관철됐다는(또는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못 주는 건 자주파에 대한 이들의 뿌리깊은 불신만이 아니라, 바로 자기 당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로선 할 말이 있다.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파들이 몇 주 간의 투쟁 성과로 지도부의 안을 철회시키면서 진보신당의 합의를 조건으로 하는 참여당 논의 안건을 만들어낸 것은 [불가피하게 아쉬운 타협이긴 했지만] 최소한 그것이 진보신당 내부의 좌파들에게 통합 진보정당에서 함께 동맹을 맺어 통합 당과 운동에 개입해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진보신당 당대회 부결은 이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내 원칙있는 활동가들의 집단적 노력을 단기적으로 무효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진보대통합 자체가 현재 운동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비결이고, 절대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또 상황에 대처하면 된다. 그러나 민주노총 조합원 다수가 통합 진보정당으로 진보정치세력이 단결하는 것을 지지하는 한
, 좌파들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여타의 진보정치세력이 총집결할 이 당이 선거적 실용주의 탓에 계급운동의 대의를 포기하거나 후퇴하는 길로 가지 않도록 개입하는 것이 옳다[각주:2].

진보운동의 우경화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통합 진보정당에 딱 달라붙어 오히려 우경적 세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막아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저쪽이 피하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그와 함께 대중운동이 진정한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길로 가도록 개입하는 것이 진짜 진지한 태도라고 본다. 종파냐, 대중운동이냐 선택할 때다.

  1. 도로 민노당 비판은 한심하다. 진보 양당 모두 도로 민노당도 못 되는 현실이다. 참여당을 포함시켜야 진보대통합이라는데 어불성설이다. 참여당은 진보가 아니다. 우리의 진보대통합은 민주노총을 젖줄로 한 진보정치세력의 대통합을 하자는 것이 돼야 한다. [본문으로]
  2. 2012년 대선까지는 지역위까지 공동 운영을 하기로 했는데, 이는 그때까지 독자파들이 공식적으로 당내 당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소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통합을 부결한다면, 자주파에 대한 공포감이라고 밖에 보기 힘들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