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수임기관이 7월 19일 9시간 회의 끝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를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가 일단락 된 후, 최종 결정한다”고 결정했다.
권영길 의원, 이병수 대구시당 위원장 등 국민참여당 합류 반대파들은 소수파였다. 이정희 대표와 장원섭 사무총장, 김창현 울산시당 위원장 등은 “당장 통합을 추진한다”를 원안으로 제시했고, 우위영 대변인 등은 표결로 원안을 통과시키자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서울 지역 위원장들이 비공개 회의장 밖에서 지도부의 의도에 반대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고 당내 서명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져 일부 지역에서 노동자 당원들의 집단 탈당 경고가 나오는 등 당 안팎에서 반대 목소리가 서서히 결집한 효과로 당권파 지도부는 수임 기관 안에서 다수인데도 원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는 그동안 국민참여당과도 통합 가능하다는 생각을 밝혀 왔고 심지어 유시민에게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 자리까지 양보했던 진보신당 심상정 전 의원이나 6월말 국민참여당도 통합 대상이라고 밝혔던 노회찬 전 의원이 최근 다시 말을 바꾼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7월 18일 민주노총, 진보 양당, 사회단체, 진보학계를 망라한 인사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나, 이를 염두에 두고 진보정당의 강령과 실천이 우경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친자본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을 무원칙하게 진보대통합에 포함시키려는 진보정당 일부 지도자들의 행태에 비판적인 압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진보대통합을 앞두고 진보정치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효과적으로 힘을 모아 한목소리를 낸다면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행보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당은 공식 논평에서 “대통합이 결코 쉽지 않은 길임을 보여 준다. 국민참여당은 … 민주노동당의 고뇌와 고충을 이해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결정은 당장 통합 논의를 하겠다는 것은 막았지만, 민주노동당 경기동부(와 울산) 당권파 지도부가 국민참여당과 통합하려는 시도를 공식화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진보의 자격
첫째, 수임 기관 회의의 결정문은 “국민참여당이 5.31 연석회의 최종합의문과 부속합의서에 동의하고 참여정부의 오류와 한계를 일정하게 성찰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둘째, 국민참여당의 참여 문제를 놓고 “당원 및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이미 민주노총 산별대표자회의가 6월 13일 “진보정당의 통합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국민참여당과 관련된 논란은 부적절한 것임을 확인”했는데도 이 결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이제는 민주노총의 결의마저 무시하고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셋째, “진보신당과의 통합 문제가 일단락된 후, 최종 결정한다”고 한 것도 문제다.
이것이 ‘통합한 후’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반대하지만 진보대통합은 찬성하는 진보 대중과 진보정당 당원들의 참여를 막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런데 “통합 문제가 일단락된 후”라는 문구는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진보신당과 당대당 통합을 포기하고 국민참여당과 통합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진보대통합을 진보대분열로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결정인 것이다.
그래서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도 “당혹스럽다”며 “논란의 불씨를 계속 남겨 놓았”다고 논평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그동안 당대회 등 당내 공식 대의체계 안에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당원들의 의혹 제기와 비판이 나올 때마다 ‘당은 공식 결정한 바 없다’며 대답을 회피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경기동부(와 울산) 당권파 지도부가 장악한 수임 기관의 비공개회의에서 [친자본주의인] 자유주의 정당과 통합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대통합의 원칙을 훼손한 당 지도부가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마저 완전히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노동당 당대회와 중앙위원회는 “진보대통합”을 결정하고 추진하기로 해 왔지 진보정당이 아닌 정당과 통합은 결의한 바가 없다. 1
당권파는 당대회에서 새로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할 안건을 자신들이 장악한 비공개 회의에서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형식 논리로만 봐도 수임기구의 결정 시도 자체가 월권 행위이고, 당론 위배인데도 말이다.
이 역시 당의 우경화와 무관하지 않다. 친자본가적 정당일수록 상층 지도자들 몇몇이 당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비민주적
한편, 국민참여당이 진보진영 연석회의 합의문의 내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과시킨 까닭을 유시민은 당시 자기 당 중앙위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 동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식에 불과하고, 일단 논의 자리에 들어가서 우리의 내용을 반영하도록 하겠다.”
유시민에게 합의문 승인은 쉽게 말해 진보대통합 논의 안에 들어와서 헤집어 놓겠다는 ‘트로이의 목마’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고려해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이념”을 강령에서 폐기해 버린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달리 국민참여당 지도자들은 진보진영 연석회의 합의문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자신들의 강령은 ―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장”하고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강령과 태도에서 참여당이 노동운동에 기반한 진보정당들과는 완전히 다른 계급 기반을 대변하는 친자본주의 정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여당은 [평당원 구성과 일부의 지향과 관계없이 실제로는] 노무현 정부의 고위 관료 출신 정치인들(과 이들과 연계된 상층 중간계급 인사들)이 지배하는 당이다.
유시민은 이제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사과할 자격이 나에게 없다”면서 “주관적으로는 둘 다 피해자”라거나 “민노당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망하게 함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냐는 의구심이 있다”는 궤변까지 늘어 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적반하장을 논박하며 참여정부의 과거와 그 주축 인사들에게 “우리는 노동자·민중을 대신해 너희들을 용서할 자격이 없다”고 꾸짖어야 할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오히려 국민참여당 지도부에게 진보대통합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수임기관의 결정은 국민참여당의 진보대통합 합류와 이로 말미암은 진보정치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들에게 가능성과 경고를 동시에 줬다.
이제 진보대통합을 우경화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경기동부(와 울산) 당권파의 행보에 일단 제동을 건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더 힘을 모아 강력한 운동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 (※ 6월 19일 정기 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건설 방침’ 中 2번 항, “민주노동당은 신설합당 방식으로 진보신당 등 타 정당을 포함한 진보진영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한다.”) (※ 6월 19일 정기 당대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진보대통합 연석회의 합의문’ 中 2번 항, “‘진보정치대통합으로 설립될 새로운 진보정당’이 보수세력, 자유주의 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적 발전과 승리를 위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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