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국민과의 대화'를 했습니다. 공중파 방송 3개 채널에서 동시 상영으로. 잠깐 보다 채널을 돌려 버렸습니다. 다음날 인내심 많은 분들의 기사와 글들을 챙겨보는 걸로 때웠습니다.
사실 정식 명칭은 '대통령과의 대화'였습니다. 명칭부터 권위적입니다. 사람들이 정부에게 '소통'하라고 한 것은 '국민과 대화'해 의견을 들으라는 거지, '대통령과 대화'하며 훈계를 듣고 싶어했던 게 아닙니다.
동화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세상 사람들 다 벌거벗은 걸 아는데 임금과 그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옷이 화려하게 비춰지길 '고대'하고 '소망'합니다. 오죽하면 "4대강이 완성되고 나면 아 이렇게 하자고 정부가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허풍을 치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은 벌거벗은 임금이 당한 것처럼 또다시 큰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요. BBK 때처럼 이명박은 피해자입니다. '만사형통'이어야 하는데 아마 이번 옷 구매는 형을 통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이름 붙은 이 투명 옷을 판 자는 이 옷이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그래서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에게는 매우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감언이설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님을 위해 미국에서 '이제 오'신 그 분께서 앞장서 보필하시는데 동화책에 이미 나온 수법의 낡은 사기 행각에 속았을 리 없습니다. 사실 옷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투명 옷을 화려한 옷으로 봐 줄 '국격 있는 국민'들만 있다면요.
문제는 이 옷을 아름답게 바라봐 줄 '떼법 안 쓰고 부자 감세를 너그러이 이해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4대강을 방재대책으로 생각하는 착하고 똑똑한 국민'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건 '이제 오'신 분의 직무유기입니다. 그가 맡은 게 국민권익위원회 아닙니까.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별로 안 남아있는 건 이분이 품격 있는 국민들의 권익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껏 값이 오른 대한민국 땅이 하나님께 봉헌될까 봐 품격 있는 국민들이 숨었다는 소문이 있긴 합니다)
나머지는 국격에 어울리지 않아 정부와 국회, 검찰·경찰, 법원에게 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한 아랫것들입니다. 이들은 명박 씨를 두고 "4대강 사업이 법을 어겼는데도 떼법을 써 강행하려 하고, 서민 감세를 이해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요구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한다"고 서툰 비난들을 해댑니다.
이 무리 안에는 "아마 지금은 사람들이 무리라고 하겠지만 'MB OUT'이 되면 나중에는 다 '아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국격에 어울리는 국민이 없어서 아름답고 찬란한 '벌거벗은 옷'을 자랑하지 못한 명박 씨는 외로워서 이날 깊은 속마음을 털어 놨다고 합니다.
세종시에 반대하는 이유가 "대통령 혼자 서울에 있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는 것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면 청와대엔 '2명 밖'에 안 남을지도 모릅니다. 철밥통 공무원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려고 다 옮겨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게 불안해서, 가지 말라고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남아서 벌거벗은 내 옷 좀 봐 달라고, 세종이 뭐 별거냐고, 청와대 가까운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새로 만들었나 봅니다. 죽은지 5백년이 넘었는데도 할 일이 참 많은 세종대왕입니다.
기타 어록
피해망상
"내가 20조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에 43조, 87조 들여 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과대망상
"경부고속도로도 반대가 많았고 청계천도 그랬다. 완공하고 난 다음에는 다 찬성하고 있다"
동문서답
"토목공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배우는 것이냐"
횡설수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
천기누설
"대운하를 하려면 다음 정권이 하는 것이고…"
"대기업 욕하는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하려고 하고 미국 욕하면서 미국 가겠다고 한다"
뭥미?
"내복 입는 것이 녹색성장"
※ 그럼 이날 사기극의 범인은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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