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0일 ─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다
김문성 | <노동자 연대> 193호 | 2017-01-06“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필요하면 특공대도 보내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 이렇게 해 가면서 보고 받으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보냈어요. …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 2017.1.1.)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어선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가지고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라고 …”
(유가족 증언)
△정의 세월호 참사 항의는 큰 지지와 탄압과 모욕 등 굴곡을 겪었지만, 결국 참사 책임자 박근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진 이미진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천 일이 다 돼서야 내놓은 박근혜의 변명을 들으며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박근혜가 천진한 표정을 가장하며 3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할 때는 특히 그랬다.
정말 날짜를 헷갈린 것이든, 그 날 자신에게는 기억날 만큼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암시를 주려 수작을 부린 것이든 둘 다 어처구니 없고 가증스런 언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에 아무런 관심도 안타까움도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그래도 ‘대통령’이라고 이런 작자에게 유가족들이 얘기 들어 달라고 애원한 시간이 억울할 뿐이다.
박근혜의 죄가 참사 당일에 희생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의심할 정도로 큰 죄다.)
참사의 배경이 된 안전 규제 완화, 국가기관의 안전 예산 삭감, 안전 업무 일부 민영화에 앞장선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친기업 행각에 윤활유 구실을 한 부패 구조의 꼭대기에도 박근혜 일당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윤 우선주의 친기업 정책들을 역대 정부들도 강화해 왔다고 해서 박근혜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박근혜는 그런 국가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친기업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때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과 은폐로 일관하다가 온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사적 치부인 것을 알면서도 기업주들이 돈을 내놓은 것은 단지 협박이 아니라 감사와 청탁의 뜻도 있는 것이다.
△팽목항 기다림의 시간은 분노가 자라 온 시간이다. ⓒ이윤선
직접 책임도 있다.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첫 해에만 6백 개 넘는 규제를 없앤 것이 박근혜다. 선장의 선박 안전 관리 보고 의무를 없애고 과적과 화물 결박 점검을 서류로 대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박근혜다. 재난 관리 예산을 줄이고 해경의 수색구조계를 폐지한 것도 박근혜다.
해경의 구조 능력 약화는 관련 업무 민영화와 예산 직접 삭감은 물론이고, 예산 절감을 목표로 한 기관별 성과주의가 관료적 무책임과 상명하복 분위기를 조장한 대가일 것이다.
세월호 과적의 중요한 배경이 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찬성하고 공사를 서두른 것도 박근혜다. 그 배경인 미국의 군사 패권 정책에 앞장서 협력해 온 것도 박근혜다.
그런 호전적 정책이 우파 지지층을 달래고, 한국 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박근혜가 기업주들이나 제국주의자들과는 죽이 척척 맞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에게서 물려받은 계급본능일 것이다. 그러니 노동계급이 대부분인 희생자들의 목숨을 자기 어깨나 허리 잠깐 아픈 것보다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이윤 우선주의를 향한 사회적 문제제기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기업주들을 위해 온갖 반동을 수행해야 할 자신의 정부가 약화되는 일을 막으려고 박근혜는 지난 1천 일 동안 온갖 더러운 일들을 벌여 왔다.
심지어 박근혜는 아비에게서 배운 공작정치 등 통치 기술을 유가족들에게 써 먹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 자신의 안정적 통치에 방해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 이윤 우선주의와 친제국주의 정책에 대중적 문제제기가 일어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런 사생활이 드러나 위신이 떨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진상규명 특별법을 반쪽으로 만들었고 그마저 ‘쓰레기 시행령’으로 다시 반토막 내 버렸다. 청와대(김기춘)와 국정원은 유가족을 ‘돈벌레’로 모욕하고,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 (김기춘이 감사원 세월호 보고서 내용 변경에, 황교안과 우병우가 세월호 검찰 수사에 각각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들도 최근 제기됐다.)
가진 게 변변찮아 자식이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인 사람들이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하소연할 기회도,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꺾어 버리려 한 것이다.
그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조대환을 자신의 마지막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만행들에 책임을 질 자가 박근혜 본인이라는 자백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극의 상징물인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악몽처럼 여겼을 것이다. 책임론이 다시 대두돼 원망과 분노가 다시 자신을 향할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거듭된 인양 결정 지연과 인양 실패는 ‘연출된 무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세월호 참사는 이윤 우선주의의 야만과 냉혹함, 노동계급 천대의 극치를 보여 줬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익 정권의 합작품이다.
이 사건을 보면, 체제의 사악함을 집약해 놓은 듯한 박근혜 정부의 존재 자체를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고 열 번이라도 탄핵을 당해야 마땅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항의는 이윤 우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축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적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수천만 노동자·민중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은 연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한 정권 퇴진 운동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요구가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도, 진상 규명도, 세월호 인양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악행들의 대가로 박근혜가 쫓겨나기 직전으로 몰렸다. 다만, 이는 최소한의 정의다.
지금이라도 유가족과 운동의 요구는 즉각 실현돼야 하고, 박근혜 정권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희생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즉각적인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 요구는 세월호 참사 해결과 한 몸이다.
△멈춘 시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별이 돼 버린 아이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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