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뿐 아니라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공식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해 항의 운동이 다시 부상하자 유가족들의 요구 중 하나를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다. 끈질기게 싸워 온 유가족과 우리 운동의 성과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5월에 인양이 가능하다는 기술 검토를 마쳤고,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자고 유족들을 설득하던 11월에는 먼저 인양 얘기를 꺼냈다. 인양해서 실종자를 찾자는 것이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인양을 검토한 것은 침몰 원인 등 진상 규명과 희생자 수습보다는 사건을 빨리 정리해 버리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구조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언딘의 기술이사는 당시 ‘구조가 아니라 배 인양을 위해 갔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이미 인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면서도 “세금 도둑” 운운하며 유가족을 고립시켜 인양을 회피하고 진상 조사와 시신 수습까지 방해해 온 것이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정부 시행령(안) 입법예고가 자충수가 됐다.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지 못한 반쪽짜리 특별조사위원회마저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정부가 진실 은폐 주범이라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래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과반의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결정’ 요구를 지지했다. 또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16일, 18일에는 수만 명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며 정부에 항의했다. 특히 18일에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봉쇄선을 뚫어 기세를 보여 줬다.
여기에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리스트에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현직 국무총리, 현직 도지사 등 정권 핵심 실세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 나왔다. 대통령 자신이 불법 대선 자금 의혹의 주인공이 되게 생겼다.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4·29 재·보선 표심에 영향을 미치거나, 해고 요건 완화 시도 등에 맞서 민주노총이 벌일 일련의 파업 투쟁들과 만난다면, 정권으로서는 더 큰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재·보선의 특성상 결과 예상이 쉽지는 않지만, 만일 여당이 패하면 박근혜의 국정 통제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국정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도 30퍼센트대로 다시 떨어졌다.
그래서 박근혜는 서둘러 이완구를 사퇴시키고 세월호 인양 계획을 발표했다. 이완구는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앞장선 인물이기도 했다. 정부의 부패 스캔들을 이용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전진한 것이다.
꼼수: 시간 벌기하면서 탄압하고 이간질시키기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파헤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일 지난해 결정해 인양 작업을 시작했다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에 배를 건져 올려 침몰 원인을 조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인양 결정 지연이 진실 규명을 막으려는 정부의 꼼수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세월호 인양은 나중에라도 방해 공작을 펼 수 있으니 마지못해 수용하면서도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한사코 피하고 도리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탄압하는 것만 봐도 정부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래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4·16 가족협의회)’는 “인양 선언을 환영하지만 아직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4·16 가족협의회’는 시행령(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강조해 요구했다. “선체 인양을 위한 모든 과정을 ‘4·16 가족협의회’와 공개적으로 협의하면서 신속히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진상규명 특별법 정부 시행령(대통령령)을 즉각 폐기[해야] … 합니다.”
정부는 인양 계획 발표라는 사이드스텝을 밟는 동시에 탄압의 훅을 날리고 있다. 경찰은 18일 집회에서 광화문 봉쇄가 뚫린 것을 빌미 삼아 수사본부까지 차려 ‘시위 참가자들을 처벌할 것’이며, ‘주최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 협박했다. 벌써 당일 집회 참가자 두 명이 구속됐다. 구조 당시 교신 기록을 조작한 해경 지도부는 처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동안 보여 준 것은 구조에는 무능, 진실에는 모르쇠, 진압에는 최선, 탄압에는 신속뿐이었다. 이런 정부가 정당한 집회를 불법 폭력으로 매도하고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탄압의 칼날을 겨누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의 과제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 참가자들이 경찰 탄압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박근혜가 요구 하나를 수용한 것 자체가 운동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게다가 부패 스캔들로 정부가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정부 시행령(안)도 문구 수정 같은 정부 꼼수를 단호히 거부하고 폐기를 목표로 뚝심 있게 싸워야 한다. 또한 그런 점에서 ‘불법 폭력 시위’, ‘매국 행위’, ‘유가족이 아닌 외부 세력의 선동’, ‘정치투쟁으로 변질’ 따위의 비방에도 단호하게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각별히 우파적인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중이다. 이런 야비한 정부와 맞서 싸워 참사의 진실과 책임을 규명해 내려면, 운동의 규모를 더 키워야 하고, 무엇보다 조직 노동운동의 힘과 연결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노동운동이 요구해 온 ‘이윤보다 인간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려는 투쟁의 일부다.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요구와 투쟁이 바로 평범한 사람들 다수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
결정적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부를 물러서게 할 잠재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 내 좌파 활동가들과 투사들의 몫이다.
대규모 시위와 행진도 계속돼야 한다. 4월 24일 민주노총 파업 집회부터 25일 집회, 5월 1일 노동절 집회 등이 중요할 것이다.
마침 유가족들도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대거 참가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파업을 지지하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투쟁에 노동자들도 함께해 줄 것을 호소할 것이다. 5월 1일에는 1박 2일 철야 행동도 호소하고 있다.
이 투쟁들에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47호 | 발행 2015-04-27 | 입력 201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