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서민들 중에 복지국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복지국가를 내세우는 정당들이나 사회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진 못합니다.
이유는 대체로 둘 가운데 하나일텐데, 하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지지해 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 때문일테고, 다른 하나는 복지국가를 위한 비용 부담에 참여하기 싫어서일 겁니다.
그래서 복지국가, 달리 말해,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와 누가 그 비용을 댈 것인가에 답을 내놔야 합니다.
요즘 "역동적 복지국가"를 내세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세금을 더 늘려 복지를 하자고 합니다. 한국은 경제에서 정부 지출이 매우 낮은 나라인데, 이게 낮은 조세부담률에서 비롯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아직은 정부 적자 수준이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아서, 재정 적자를 단기간에 늘리며 보편적 복지제도를 도입해 혜택을 맛보게 한 뒤, 세금을 늘려도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단체는 최근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내놓은 사회복지세 도입 제안에 적극 찬성했습니다. 이 사회복지세는 복지 부문에만 쓸 수 있는 목적세로 하고, 대략 5퍼센트 정도 고소득자에게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방안입니다.
민주노동당 시절 부유세 정책과 비교하면, 세금을 매기는 대상이 자산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고, 기업에도 납세 의무를 부과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정책실장이 <레디앙> 기고 글에서 이 사회복지세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납세 대상을 너무 적게 설정했다는 겁니다. 이젠 노동자들도 복지 재정 마련에 참여하는 운동을 펼쳐야 가진 자들에게도 더 많이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건호 실장은 "내라"에서 "내자"로 바뀌어야 사회적 설득력을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오 실장은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노동시장에 참여해(고용되서) 일한 대가로 받는 노동소득은 '시장임금', 국가가 복지 등을 통해 제공하는 현금과 사회서비스는 '사회임금'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사회임금이 OECD 평균에 한참 모자라는 8퍼센트에도 못 미친다는 거죠. 오 실장은 한국에선 사회임금이 시장임금의 매우 부차적인 보조 소득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고용에 목 맬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기업과 부자들이 복지 재원을 부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그래서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의 재원을 둘러싸고 계급 이해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회임금을 둘러싸고도 계급투쟁이 벌어지니까요.
그러나 오 실장은 이와 모순된 결론도 내립니다. 조직 노동운동이 시장임금에만 집착해 사회임금 인상을 외면해 문제라고 말합니다. 마치 시장임금 투쟁이 이기적이므로 이제는 사회임금을 올리는 데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시장임금이야말로 계급 이해가 선명히 드러나는 계급투쟁인데 말이죠.
결국 모순된 두 얘기를 종합하면, 사회임금 재원 형성에 노동계급이 먼저 참여하고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첫째는 그게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 먼저 양보해야 부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시장임금/사회임금 개념이 유용한지 잘 모르겠지만, 오 실장의 개념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오 실장의 논리 전개에 중요한 다른 개념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사회임금은 국가가 현금과 현물서비스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세금을 주요 재원으로 합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소득세 등의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를 냅니다. 실업자나 면세점 이하 저소득 서민들도 세금을 냅니다. 상품 가격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담배에 포함된 교육세도!) 등 소비세 성격의 세금을 냅니다. 아, 주민세도 내야죠.
즉, 사회임금은 시장임금과 완전히 구분되는 별도 소득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일부가 직접세, 사회보험료, 간접세 부담 형태로 이전하는 부분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임금 개념으로 말하자면) 중요한 건 순(純) 사회임금입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 사회임금의 재원에 노동자들이 부담한 액수를 빼고 순수하게 플러스로 지급받는 사회임금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2차대전 후 호황기에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을 계산하면, 거의 '0'=제로에 가깝습니다. 낸 만큼 받은 것에 불과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복지국가의 역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경기가 좋아 실업률도 낮고 소득도 높으면 (건강도 좋겠죠) 실제 복지 비용을 지출할 일이 사실 별로 없습니다. 반면, 조세에 바탕한 보편 복지를 명분으로 스웨덴 노동계급은 꽤 높은 수준의 조세 부담을 했기 때문에 막상 순 사회임금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입니다.
진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경제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낮아지는 때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복지국가'들은 경기 침체기에 늘어나는 비용 지출을 감당 못하고 복지 제도를 약화시킵니다.
예를 들면, 높은 보장 수준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국민)연금을 위해 호황기에 높은 비용을 부담했던 노동자들은 막상 자신이 늙었을 때, 더 열악해진 연금제도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스웨덴에서 복지 지출이 실제로 증가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이때 정부는 우파 정부였죠. 그뒤, 스웨덴은 좌우파 정부 모두 정부 수입에서 누진세를 약화시키고 역진적인 간접세 비중을 늘립니다. 2
덴마크의 실업수당은 원래 기간 무제한이며, 거의 실업 전 소득의 1백 퍼센트를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실업률이 올라가 실업수당 지출이 늘어나니까 무제한→9년→4년으로 후퇴했고, 이것도 다시 2년으로 줄이려 합니다. 실업수당 지급 요건도 강화됐습니다.
아래 표는 오 실장이 계산한 2005년도 사회임금인데, 스웨덴의 사회임금이 48.5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 개인 소득에서 납세로 가는 비율(개인 세금부담률)이 평균 42~43퍼센트라고 합니다. 얼추 비슷한 수준이면서, 순 사회임금이 소폭의 플러스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전후 호황기보다 나은 건지 정확히 계산하진 못했지만 '복지국가도 후퇴한다'는 우파의 선전이 과장된 그림이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사회보장이 충실한 나라에서 일어난 이런 역설 때문에 사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를 위한 복지 '천국'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가 완전히 해체한 것처럼 (그래서 더는 보편적 복지 확대가 유토피아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가 이런저런 약점이 있고 '이상'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동계급이 호황의 조건에서 투쟁으로 쟁취해 불황기에 싸우며 지켜 가는 하나의 역사적(=한계를 가진) 성과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위기에 내몰렸을 때조차 복지 후퇴에 대항한 대중 저항, 그리고 안정적으로 건강한 노동력을 수급 받아야 하는 자본의 필요가 더해져 교육이나 의료 부문 등은 크게 약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복지 지출 수준 자체를 줄이는 것은 자본가들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 복지 축소와 복지 유지를 위한 재원 확보 문제는 계급투쟁의 중요한 전선 중 하나입니다.
그 나라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 보편적 사회복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그 모델의 내용과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 지금 실천에 적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겠죠.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오건호 실장이 사회임금 재원 형성, 증세와 사회보험료 인상에 노동계급도 동의하고 참여하자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관련 <레프트21> 기사) 3
첫째, 지금껏 소득재분배 방식의 복지 비용 마련이 힘들던 이유는 기업주와 부자들은 가뜩이나 경제 위기인 시대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비용을 지출하길 꺼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한다고 해도 자신들의 주머니에서도 돈이 나간다는 것 자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오 실장의 바람대로 그들에게 선양보론이 설득력을 얻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오 실장은 건강보험료를 먼저 올려서 정부에게 보장성 확대를 압박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모두 법으로 정해진 건강보험 재정 지원분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법정 기여금도 내지 않는 정부를 어찌 믿고 내 돈부터 먼저 낸답니까.
이것이야말로 우파들이 복지를 세금폭탄 식으로 설명하며 반대를 조장하는 논리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임금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사회임금 증대가 필요하다 해도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소득에서 시장임금 비중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임금을 보전하면서 사회임금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순 사회임금을 늘리도록 싸우는 겁니다. 그러려면, 시장임금 투쟁에서 잘 싸워야 합니다. 거기서 얻은 자신감과 조직력이 정치의식을 높이고 사회임금 투쟁에서 힘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셋째, 보편 증세론은 결과적으로 노동계급 안에서 소득 재분배를 하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라"에서 "내자"로 운동의 요구와 실천을 바꾸자는 오 실장의 전략은 고소득 노동자들의 시장임금이 더 많이 사회임금 재원으로 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대로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평균 노동소득이 낮아질수록, 면세점 이하 저소득층이 늘어날수록 대기업 정규직=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사회임금 부담은 늘어나야 합니다. 오 실장의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소득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 올 위험마저 있습니다.
현실은 '정의'롭지도 않을 뿐더러 '평등'하지도 않않습니다. 세계적으로나 한국에서나 2008년 이후 부자들의 재산은 늘었습니다. 한국은 서유럽 복지국가들과 비교하면, 조세 수입에서 소득세 비중도 작고, 누진율도 낮으며, 자산 과세나 기업 법인세도 비중과 세율이 모두 낮습니다. 간접세 비중은 훨씬 높습니다.
복지국가 요구는 이런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자는 겁니다. 노동계급의 순 사회임금이 늘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시장임금 대비 사회임금을 늘리자가 아니라, 부자들의 시장소득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해야 합니다. 책임은 저들이 져야 합니다.
저들이 노동계급의 노동력에 의존해 부유해졌기 때문에 이는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당한 요구입니다. 반대로, 우리끼리 소득 재분배하자는 건 '연대'가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편, 보편적 복지국가의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는 일부 논자들 가운데, 사회임금을 높여 안전망을 만들면 해고를 둘러싼 갈등이 줄지 않겠냐(쉽게 해고할 수 있지 않겠냐) 하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회임금이 보장되면 시장임금의 중요성이 덜해질 거라는 논리는, 복지국가가 겪어온 역사 과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스웨덴 모델의 근간이던 노사정 중앙교섭을 통한 연대임금제와 임금인상 자제는 노동자들도 스스로 거부한 정책입니다.
지금, 결과적으로 복지 지출 총액이 줄지 않았는데도, 자본은 줄기차게 복지국가를 공격합니다. 복지국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완성된 모델 같은 게 아니라,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을 둘러싼 자본의 공세와 노동계급의 저항 속에서 끊임 없이 요동치는 '역동적'인 세력 관계의 산물입니다.
의회에서 주류 정치인들이 수용할 만한 정책을 설계하는 데 치중해서는 복지국가를 실제로 쟁취할 대중적 힘을 만들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부자 증세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요구가 더 나은 면이 많습니다. 4
- 인용한 사진은 2007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이명박의 건강보험료 납부 자료입니다. 이명박 소유 빌딩 관리인은 월급이 1백20만 원인데도, 이명박보다 더 건강보험료를 많이 냅니다. 복지 재원 마련을 하려면 이런 불평등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 소비세 등 간접세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므로, 소득 격차가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진세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백만 원짜리 가재도구를 사는데, 10만 원 부가세가 붙는다면, 월 소득 1천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퍼센트를 부담하는 것이지만, 월 소득 1백만 원인 사람은 소득의 10퍼센트를 부담하는 겁니다. [본문으로]
- 실제로 오건호 실장이 정책위원으로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진보신당 등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1만1천 원씩 올려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자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법으로 정해진 국가보조금도 3조 원씩이나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장성 확대가 법으로 선행되지 않고 보험료부터 올려서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자는 것은 위험한 계획입니다. [본문으로]
- 어떤 분은 기본소득 등의 지속적인 복지를 위해 성장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되려 성장과 분배의 딜레마에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경제 위기도 저들의 탓이고, 저들의 부도 우리의 노동 때문이므로 복지 재원을 못 대겠다면 권력을 달라고 요구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전진하는 길밖에는 우리 삶을 지킬 길은 없습니다. 기본소득 관련 글은 링크된 포스트를 확인하세요. [본문으로]
- 이들은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포기하기 때문에 가장 비관적인 전제에서 가장 황당한 낙관주의로 치닫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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