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이 잠재적으로 지닌 사회적 유대와 협력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을 자본가들은 시간과 돈의 낭비로 여긴다. 자신들의 이윤 동기가 잘만 실현된다면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 수익을 늘리려 한다. 당장의 저비용으로 이윤을 얻으려던 동기 때문에 광우병이나 기후변화 같은 재앙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가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들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맞지만 말이다.
1년에 한 번 대형 사고가 날 확률이 있다고 했을 때, 자본가들은 그 하루를 대비해 나머지 364일 동안 안전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정기 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쓸모없는 짓으로 여긴다.
이런 돈을 줄이면서 정부와 기업은 그것을 ‘비용 절감’과 ‘합리화’라고 부른다.
이제 기업들은 안전 업무를 별도로 떼어 내어 국가에 맡기거나, 별도의 업체를 만들어서 안전 업무를 외주화한다. 그럼으로써 기존 기업들은 ‘사고 없는 364일’에 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이제 각 기업마다 365분의 1일에 해당하는 기회비용이 새로운 시장이 된다. 과거 정유회사들이 연합해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한 방제 회사를 세운 것이 그런 사례다.
정부도 민영화(와 외주화)를 촉진한다. 이번에 드러난 선박 안전 관리와 구조작업의 민영화가 딱 그 사례다. 민영화는 재정 적자를 만회하려는 수단이기도 하고, 특혜를 받는 일부 대기업과 국가가 유착하는 부패 문제이기도 하다.
부패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드러나지 않는 효과도 있다. 국가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이번 참사에서도 언딘이 구조 책임에 대한 비난을 나눠 가졌듯이 말이다.
지금 정당성 위기를 겪는 박근혜 정부의 처지를 보면, 국가 책임의 ‘분산’이 통치자들에게는 꽤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자본가들은 원활한 이윤 획득을 보장해 줄 경비성 지출(진정한 낭비)은 낭비로 보지 않는다.
거대 비자금을 형성해서 고위 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기업주들이 나누는 것은 그들에게 낭비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붙박이장 같은 ‘부패한 정경유착’은, 국가자본주의 시대에도, 신자유주의 민영화 시대에도 형태만 바꿔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 원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회가 대중의 민주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극도로 비민주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노조를 허용하고 교섭해서 임금을 올려주는 데 써도 충분한 돈을 삼성이 노조 설립을 막는 데 쓰는 것도 낭비가 아니다.
(그들에겐) 돈 없다고 8천여 명을 일시에 쫓아낸 KT가 소모적인 광고·마케팅 비용으로 수조 원씩 쓰는 것도 낭비가 아니다.
기업 간 경쟁의 규모와 범위가 해외로 확장돼 국가 간 경쟁으로 발전하고 온갖 살상무기, 핵발전 같은 야만적인 지출을 해도 지배자들에겐 결코 낭비가 아니다.
생지옥이 바다에서 펼쳐졌지만, 지옥문은 육지에서 열려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노동자 연대> 126호 게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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