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쥐꼬리만한 시급마저 훔쳐간 은행들
시중은행이 임금을 체불한다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지난 주말에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은행 계약직 모임에 갔었습니다. 모임 구성원이기도 하면서 후속 취재 같은 것이기도 하죠.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하나은행 시급제 해직자 분들과 올초 전원 해고돼 역시 소송 중인 국민은행의 내부통제점검자 분들이 오셨습니다.
조 단위로 수익 내는 은행이 임금 체불?
하나은행의 유급 휴일 문제는 기사에 썼습니다만, 이날 새로 알게 된 내용은 월 중식대 22만 5천 원도 시급제 노동자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년으로 치면 2백70만 원에 해당 하는 큰 돈입니다.
시급제로 1년만 근무했어도 휴일 관련 체불액이 5백만 원 가까이 되므로 총 7백만 원 가까운 돈을 규정을 어기고 지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날은 그밖에도 열악한 처지를 이용해 규정 이상의 실적 압박하기, 재계약 부담을 이용해 성희롱하기 등 은행 쪽 관리자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날 하나은행에서 오신 분들은 돈 주며 하라 해도 부당해고 소송(복직)은 하기 '싫다'고 했을까요.
시급제 해직자들 다수는 이밖에도 승산이 없다는 생각으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거의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분노 만큼이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로 비정규직 관련한 소송의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더라는 정보 때문입니다.
국민은행 해고자 분들은 명백한 사유인데도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차별시정만 인정받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하는 것도 참 부담입니다. 재직자는 회사 눈치를 봐야 하고 퇴직자는 1인당 60만 원 하는 소송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물론 이기기만 하면 비용은 문제가 안 되지만) 대상자가 1천 명 가까울 거라고 보는데 시급제 소송 참여자는 재직자가 거의 없고 해직자(최근 계약해지)로만 스무 명을 조금 넘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면서 방문한 브라질에선 부당노동행위의 입증 책임이 신고한 노동자가 아니라 신고 당한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부당노동행위가 생기면 한국은 노동자들이 돈 들여 증거 찾고 브라질은 사장들이 돈 들여 증거를 찾아 해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변호사 고용 등 소송 비용과 정신적 부담을 사용자가 진다는 겁니다.
관련 노동법에서 이 점만 개정돼도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개별 근로 관계라 해도 소송 자격을 노조에게 개방한다면 개인들의 부담은 매우 줄어들 겁니다.
국민은행에선 해고가...
한편, 국민은행 건은 은행이 내부통제점검 직무에 있던 계약직 4백여 명을 일괄 계약해지한 사건입니다. 직무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해당 직무 전원을 계약해지한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입니다.
이들의 대량해고는 정규직 임금피크제 도입이 명분입니다. 임금피크제란 고용이 불안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대신 마지막 몇 년 간의 임금을 대폭 깎는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은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게 만든 것입니다.
금융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던 국민은행지부는 이 난처함 때문에 이 문제에서 거의 침묵하고 있습니다. 둘 다 일할 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이 다 구제될 방안을 만들어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몇 년 간 이뤄놓은 성과를 앞으로 지키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처럼 이날 모임도 비정규직 싸움에서 흔히 보는 특징들-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정규직노조가 외면하면 매우 어렵고 외롭게 싸워야 한다, 당연한 권리인데도 (소송조차) 참여하기 힘들다 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자기 확신과 사회적 연대
이런 고립감 때문에 분노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정규직노조와 사측의 차이를 못 보기도 하고, 열악한 조건 때문에 오히려 손쉬운 타협이나 포기의 유혹을 더 쉽게 느끼기도 합니다.
워낙 주눅들고 살아서 자신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노하고 행동하려 해도 '투쟁' '연대' 이런 것들에 확신이 없고 스스로 믿지 않는 게 흔한 경우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연대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고, 연대에 소홀한 정규직노조 지도부가 강력하게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날 참석한 두 모임 모두 정규직노조의 도움을 못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평소 정책과 태도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하나은행 해직자 분들은 노조 집행부 뿐 아니라 일반 정규직 직원에 대한 불만도 더 크더군요.
정규직노조 집행부의 태도가 집행부에 대한 태도 뿐 아니라 해당 작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증이라 보면 비약일까요.
참고로 굳이 비교하자면 최근 수 년 동안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훨씬 더 적극적이었던 국민은행에서 정규직 처우도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행노조가 소극적 대응만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성과를 갉아먹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비정규직들에겐 서러운 시절입니다. 별다른 비법이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하늘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들썩이고 조직률도 높아졌던 때는 2007년 비정규 악법 시행과 발맞춘 이랜드 투쟁 때였습니다. 이 투쟁을 보고 은행 경영자들도 한발한발 양보하기 시작했고 굼뜨던 정규직노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조직화와 연대 확산 같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그 자신감이 조금 아쉬운 요즘입니다. 앞으로도 자신감을 북돋워 줄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겠죠.
시중은행이 임금을 체불한다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지난 주말에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은행 계약직 모임에 갔었습니다. 모임 구성원이기도 하면서 후속 취재 같은 것이기도 하죠.
시급제 소송을 시작한 하나은행 시급제 해직자 분들과 올초 전원 해고돼 역시 소송 중인 국민은행의 내부통제점검자 분들이 오셨습니다.
조 단위로 수익 내는 은행이 임금 체불?
하나은행의 유급 휴일 문제는 기사에 썼습니다만, 이날 새로 알게 된 내용은 월 중식대 22만 5천 원도 시급제 노동자들에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년으로 치면 2백70만 원에 해당 하는 큰 돈입니다.
시급제로 1년만 근무했어도 휴일 관련 체불액이 5백만 원 가까이 되므로 총 7백만 원 가까운 돈을 규정을 어기고 지급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날은 그밖에도 열악한 처지를 이용해 규정 이상의 실적 압박하기, 재계약 부담을 이용해 성희롱하기 등 은행 쪽 관리자들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날 하나은행에서 오신 분들은 돈 주며 하라 해도 부당해고 소송(복직)은 하기 '싫다'고 했을까요.
시급제 해직자들 다수는 이밖에도 승산이 없다는 생각으로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거의 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분노 만큼이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로 비정규직 관련한 소송의 결과가 노동자들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더라는 정보 때문입니다.
국민은행 해고자 분들은 명백한 사유인데도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차별시정만 인정받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하는 것도 참 부담입니다. 재직자는 회사 눈치를 봐야 하고 퇴직자는 1인당 60만 원 하는 소송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물론 이기기만 하면 비용은 문제가 안 되지만) 대상자가 1천 명 가까울 거라고 보는데 시급제 소송 참여자는 재직자가 거의 없고 해직자(최근 계약해지)로만 스무 명을 조금 넘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면서 방문한 브라질에선 부당노동행위의 입증 책임이 신고한 노동자가 아니라 신고 당한 사용자에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부당노동행위가 생기면 한국은 노동자들이 돈 들여 증거 찾고 브라질은 사장들이 돈 들여 증거를 찾아 해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변호사 고용 등 소송 비용과 정신적 부담을 사용자가 진다는 겁니다.
관련 노동법에서 이 점만 개정돼도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개별 근로 관계라 해도 소송 자격을 노조에게 개방한다면 개인들의 부담은 매우 줄어들 겁니다.
국민은행에선 해고가...
한편, 국민은행 건은 은행이 내부통제점검 직무에 있던 계약직 4백여 명을 일괄 계약해지한 사건입니다. 직무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해당 직무 전원을 계약해지한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입니다.
이들의 대량해고는 정규직 임금피크제 도입이 명분입니다. 임금피크제란 고용이 불안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년을 보장해 주는 대신 마지막 몇 년 간의 임금을 대폭 깎는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은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게 만든 것입니다.
금융노조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던 국민은행지부는 이 난처함 때문에 이 문제에서 거의 침묵하고 있습니다. 둘 다 일할 자리를 만들어 내라고 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규직-비정규직이 다 구제될 방안을 만들어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몇 년 간 이뤄놓은 성과를 앞으로 지키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처럼 이날 모임도 비정규직 싸움에서 흔히 보는 특징들-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정규직노조가 외면하면 매우 어렵고 외롭게 싸워야 한다, 당연한 권리인데도 (소송조차) 참여하기 힘들다 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자기 확신과 사회적 연대
이런 고립감 때문에 분노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정규직노조와 사측의 차이를 못 보기도 하고, 열악한 조건 때문에 오히려 손쉬운 타협이나 포기의 유혹을 더 쉽게 느끼기도 합니다.
워낙 주눅들고 살아서 자신의 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노하고 행동하려 해도 '투쟁' '연대' 이런 것들에 확신이 없고 스스로 믿지 않는 게 흔한 경우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연대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고, 연대에 소홀한 정규직노조 지도부가 강력하게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날 참석한 두 모임 모두 정규직노조의 도움을 못 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평소 정책과 태도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하나은행 해직자 분들은 노조 집행부 뿐 아니라 일반 정규직 직원에 대한 불만도 더 크더군요.
정규직노조 집행부의 태도가 집행부에 대한 태도 뿐 아니라 해당 작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증이라 보면 비약일까요.
참고로 굳이 비교하자면 최근 수 년 동안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훨씬 더 적극적이었던 국민은행에서 정규직 처우도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행노조가 소극적 대응만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성과를 갉아먹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비정규직들에겐 서러운 시절입니다. 별다른 비법이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닙니다. 하늘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은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들썩이고 조직률도 높아졌던 때는 2007년 비정규 악법 시행과 발맞춘 이랜드 투쟁 때였습니다. 이 투쟁을 보고 은행 경영자들도 한발한발 양보하기 시작했고 굼뜨던 정규직노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조직화와 연대 확산 같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그 자신감이 조금 아쉬운 요즘입니다. 앞으로도 자신감을 북돋워 줄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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