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일주일개혁 염원 대중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역시나 불충분한
〈노동자 연대〉 208호 | 2017-05-16문재인 정부 취임 일주일 동안, 직원 식당에서 줄 서서 밥 먹고, 함께 커피 마시는 당연한 일상이 화제가 됐다. 전임 새누리당 정부와 대통령들이 워낙 권위적(심지어 비밀주의)이고 특권층 지향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스처 정치가 새로움과 개혁을 표상하는 건 오래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퇴진 촛불 덕에 집권한 정부가 대중의 개혁 염원(적폐 청산)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일 것이다.
일주일 동안 문재인의 인사·행정 조처들을 보면, 그 점을 의식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5월 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약속했다. 같은 날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15일에는 세월호 희생 교사들을 순직으로 인정하라고 지시했다.
조국, 하승창 등을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기용한 것도 ‘개혁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려는 인사다. 새 민정수석 조국은 임명 직후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산하 반(反)부패 비서관에 공안검사 출신 박형철을 임명한 것은 반(反)개혁적이다. 그는 검사를 그만둔 후, 변호사 시절에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등 야비한 노조 파괴 공작을 벌인 갑을오토텍 사측의 소송 대리인(노조 상대)을 했다. 그 불법적 탄압 때문에 갑을 사장이 구속까지 됐을 정도인데도 말이다.
박형철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 때문에 눈밖에 나 결국 검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 밉보인 것이 만능 면죄부가 되고 정의를 표상하는 건 아니다. 박근혜의 치부를 폭로했다고 TV조선이 민주 언론인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기업주의 가장 부패한 행위를 의식적으로 변호한 인물이 반(反)부패의 칼날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는 ‘반(反)부패’가 지배계급도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과제도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박근혜 효과 때문에 신선해 보이지만, 문재인의 기조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관리에 맞춰져 있다. ⓒ출처 코리아넷
과대 포장된 ‘노동 개혁’
단원고 고(故) 이지혜·김초원 교사를 순직 인정토록 지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줄기찬 투쟁이 박근혜 퇴진의 주된 요인의 하나가 됐다는 점이 반영된 조처다. 두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하다가 희생됐지만, 박근혜 정부는 기간제(비정규직)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애초에 비정규직 교사를 순직 공무원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 독소 규정들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역시나 확실한 게 없다. 12일 방문에서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문재인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사장 정일영이 문재인에게 보고한 것이다. 비정규직을 늘려 온 당사자인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서는 노동자들이 줄곧 요구해 왔고 민주당도 을지로위원회를 통해 관여해 온 점을 고려해 알아서 긴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구체적 정규직화 방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당일 면담에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노사정 협상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기업 부담”을 언급하며 “노사정 고통 분담”으로 천천히 해결하자고 답했다.
인천공항공사 사측이 준비한 원래 내용은 자회사 신규 채용 방식으로 지금보다 임금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정권 초기의 일자리 정책 기조가 될 더불어민주당 국민주권선대위 일자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자회사를 통한 채용도 ‘정규직화’라고 부르고 있다.(이 문건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도 2022년까지로 수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고용이라도 일단 보장되길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불충분한 대책을 ‘정규직화’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마치 2007년 초 우리은행이 ‘정규직화’라며 비정규직들을 분리직군제로 돌려 형식상 고용을 보장하면서 사실상 차별을 고착시킨 일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거론되는 자회사 채용 방식은 자회사의 정규직이지, 모회사에서는 여전히 ‘간접고용’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시행한 KTX (여)승무원 채용 방식이었다. 사실상 불법 파견에 가까워 당시 KTX 승무원들은 직접고용·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워야 했다. 지금도 그들은 대법원의 편향적 판결로 고통받고 있다.
이처럼 포장과 내용물이 차이나는 ‘노동 개혁’은 문재인 정부도 경제 위기 조건에서 기업주들의 이해(이윤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임금비용 삭감)를 거스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에서는 다른 분야보다도 더 보잘것없는 조처들이 ‘개혁’으로 불릴 공산이 크다.
성과연봉제 철회나 노동개악 행정지침,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으로 보는 노동부의 행정해석 등도 대통령 지시로 즉각 폐기 가능하지만, 곧바로 시행할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고통 분담을 위한 노사정(사회적) 타협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의 ‘불평등 해소’는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이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정규직이 양보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2006년 KTX 승무원 노동자들의 투쟁 ⓒ출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제스처 정치의 신선함만으론 오래 못 간다
정부 취임 일주일도 안 돼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IRBM)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안 그래도 안보 위기가 지배계급 내 날카로운 충돌을 일으킨 상황에서 문재인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전통적인 한미동맹 강화를 기조로 하려 할 것이다.
노무현은 집권 전에 “반미면 어떠냐?” 해서 2002년 말 대선 시기에 벌어진 여중생 사망 항의 촛불 시위(주한미군이 여중생 둘을 죽인 사건에 대해 처벌을 요구한 시위)의 덕을 보았다. 그런 노무현 정부도 집권해서는 취임 한 달도 안 돼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지해,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이 점에서 문재인이 주변 강대국에 외교 특사를 보내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냈고 삼성가의 핵심 일원인 홍석현을 대미 특사로 보낸 것도 시사적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으니, 여권 내 친노 좌장 격인 이해찬을 대중 특사로 보냈다.
이런 한미동맹 중시 기조와 망설임이 새 안보 라인을 확정하지 못하고 박근혜의 안보실장 김관진과 국방장관 한민구가 계속 사드 배치 등을 추진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청와대 앞 통행을 자유롭게 허용한 듯 홍보했으나, 16일 청와대 앞 사드 배치 철회 기자회견을 신경질적으로 막은 것도 이런 상황과 관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캠프에는 주요 후보들 중 보수적인 군장성 출신들이 가장 많이 참여했는데, 이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탠다.
24년 전 김영삼 정부도 32년 만의 문민 정부라고 해서 초기에 인사와 몇몇 정책에서 신선함을 줬다. 하나회 해산은 대중의 기대를 설레게도 했다. 그러나 그 정부도 노동과 안보에선 다를 바가 없었다. 현대그룹 연대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해 파업을 일시 금지한 것이 바로 임기 첫해였다. 김영삼은 민족보다 우선하는 동맹은 없다더니 1년 만에 미국과 손잡고 북한과 전쟁 위기 국면으로까지 내달렸다. 임기 한 해 전에는 정리해고, 파견근로 등을 허용하는 노동 악법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랬다가 민주노총의 파업으로 굴욕적으로 완화시켰지만 말이다.
따라서 진보계와 노동단체들은 섣부른 기대에 바탕해 섣불리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구하거나 목표한 투쟁 일정들을 지연시키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미련 때문에, 싸워야 할 때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주저한 것 때문에, 비정규직 악법 등을 막지 못하고 낭패를 겪은 과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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