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빨리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위기가 길어지고 있다. 현재 위기의 효과와 수준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여러모로 살펴 보면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조직법 통과가 안 돼 취임 후 20일이 될 때까지 “식물정부 소리를 들었다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박근혜는 34일 대국민담화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문제는 “부르르 담화”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과 ‘안보’를 강조하는 우파 정부가, 그것도 경제와 안보 위기가 특히 두드러지는 시점에서, 경제부총리·미래창조과학부(신설국방장관·청와대 안보실장(신설) 등을 임명 못 하고 있는 것도 참 상징적이다.


북핵 위기를 띄우며 박근혜가 지하에서 “벙커 회의”를 하는데, 정작 국방부와 군 고위층은 골프장에서 “벙커샷”을 즐긴 일도 위기상의 한 단면이다.


지지율 하락과 불통 행보 때문에 집권당 내부와 우파 사이에서 불협화음도 드러났다. 우파적 인물들인 국무총리 내정자 김용준과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이동흡을 낙마시키는 결정적 공헌을 것은 우파 신문 <동아일보>였다.


이런 사태가 민주당 탓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줄곧 후퇴하는 양보안을 낸 건 민주당이었다. 도리어 “협박근혜”의 ‘몽니’ 행보에 부담을 느낀 민주당은 법무장관 황교안 등 문제 인사들을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통과시켜줬다.


결국 박근혜의 초반 위기는 일차적으로 정치 양극화 속에서 우파 본색 드러내기가 자초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조직법 통과 후에도 위기 요소들이 곧바로 물밑으로 가라앉질 않을 것이다.


박근혜의 첫 내각 후보 명단은 “걸레 경연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부패 비리 복마전 에 ‘박정희 유전자’로 채워진 인물들을 대거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선을 위한 책략으로 내놓은 ‘복지’와 ‘경제 민주화’ 구호가 취임도 하기 전에 하나씩 철회되고 뒤집혔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대선에서 반우파 정서로 뭉쳤고 반감을 풀지 않고 있던 ‘48퍼센트’(대선 반박근혜 득표율)를 자극했다. 심지어 박근혜 투표층에서도 이탈이 시작됐다.


박근혜가 아무리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 좋은 일자리를 많이 … 만들겠다는 목적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사심도 담겨있지 않다”고 해도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 장악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미 공중파 방송을 대선에 톡톡히 활용했고, 우파 언론들에게만 종편을 허가해 준 새누리당 정권 아닌가. 게다가 정보통신과 전자정부 업무 등을 통폐합하면서 국민 개인 정보들이 미래창조과학부로 집적돼 통제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NGO 단체인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 유니온’ 등은 박근혜와 복지부장관 진영을 사기죄와 허위사실공표죄로 고소했다. 통치의 정당성에 문제제기를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새누리당을 거수기 취급을 한 것도 악수가 됐다. 대신 박근혜가 택한 것은 대국민 직접 호소 방식의 여론 몰이였다. ‘부르르 담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대선 투표층에서조차 ‘속았다’는 말이 오는 상황에서 이 작전은 성공할 수 없었다. 복지장관이 ‘복지 공약은 선거 캠페인용’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새 정부를 야당이 정략적으로 발목 잡고 있다’는 말이 먹히겠는가. 오히려 유신 선포식 같았다는 비아냥만 들었다.(물론 민주당은 겁을 먹었고, 인사청문회에서 모조리 양보하는 선물을 내줬다.)


오히려 국회를 완충지대로 이용하는 책략을 피하면서 도리어 새누리당만 무력해졌다. 오죽하면, 떠오르는 실세 측근인 국가미래연구원장 김광두마저 “직접 나서면 보좌하시는 분들이 타협을 하거나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룸(공간)이 전혀 없어진다”고 한탄했을까.


결국 박근혜의 ‘몽니’ 행보는 민주당을 끌어들여 ‘국민적’(여야) 합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대신 날치기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이번엔 ‘국회선진화법’이 발목을 잡았다.


이 법은 지난해 총선에서 패배할 것을 우려한 박근혜 새누리당이 ‘날치기와 몸싸움을 막자’며 18대 국회에서 만든 것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과반수가 되는 국회를 견제하려던 법이 박근혜의 날치기를 막고 있는 것이다결국 정부조직법 날치기를 하려면 국회선진화법 개정 날치기부터 해야 하는 신세다.


그래서 집권당 내분도 있다. 최고위원회는 “소수에 의한 국회 지배를 보장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경하게 말하는데, 일부에선 “자기가 낳은 자식이 좀 어눌하다고 해서 의사에게 내 자식인지 아닌지 판정을 해 달라고 하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 지난 5년간 봤듯이 집권당의 당내 분열은 주요 변수가 못 될 것이다. 오히려 집권당과 행정관료, 또는 국가기구간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 그 정도까지 위기가 진척된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부르주아 정당과 언론들 사이에는 임기 행정부에게 협조해 주는 불문율(“허니문) 있다. ‘그들만의 리그’다운 신사협정인 것이다. 또 임기 초에는 공약 이행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도 대체로 올라간한다.(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기대를 보내게 되므로) 박근혜는 역대 최강의 보수대연합이 밀어준 정부였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임기 초부터 지지율 하락과 집권당 이완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는 경제 위기와 동아시아 긴장 고조 상황이 있다. 이것은 박근혜가 선택한 환경이 아니다. 지금 객관적 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 요소라 할 수 있다. 


우선 경제 위기 조짐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낮은 1분기 성장률은 1998년이나 2009년처럼 큼지막한 경제 위기 때 말고는 기록한 적이 없다.


또 용산 개발 사업이단군 이래 최대 헛삽질 것도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 아니라 경기 폭락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게다가 북한 실험 이후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급속히 고조됐다.


이런 상황들이 박근혜를 밀어줬던 반동적 지배자들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 핵심 기반이 이런 상태니 박근혜도 취임 초에 이런저런 민심잡기 쇼를 벌일 정치적 수단이 줄어들었다.


결국 경제 위기 조짐, 안보 위기를 배경으로 정치 양극화가 깊어지는 정치 환경 속에서 박근혜 본인도 더욱 신속하게 측근과 핵심기반에 의존하는 것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정당성의 위기가 커질수록 인사와 통치 방식의 우경화는 갈수록 선명해질 것이다.


벌써 안보 위기를 이용한 통합진보당 마녀사냥 조짐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는4대악 근절 내세우며법과 질서 통한 권위주의 통치 방식을 강화하려.


물론 최근 이마트 압수수색과 재벌 세무조사 등으로 ‘경제 민주화’ 같은 포퓰리즘 언사도 다시 동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공정거래위원장에 재벌 앞잡이 김앤장의 변호사 출신을 내정한 것이야말로 본심 아니겠는가.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앞날은 ‘반동’과 ‘동요’가 주요한 특징이 것이다. 대중의 불만이 조직된다면, 집권당은 서로 부패를 폭로하며 분열할 있다.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 군사 긴장 고조가 국내의 경제·정치 위기로 옮겨오고 있다.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반우파·노동자 투쟁이라는 기치 아래 주장과 행동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 노동운동의 사기 회복에 도움이 되도록 ― 줄기차게 폭로하고 활용하면서 싸울 태세를 갖춰야 한다.



4·24 재보선과 안철수, 그리고 진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박근혜 위기 때문에 4 재보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과에 따라 박근혜의 임기 위기가 심해질 수도 있다.


의도치 않게 박근혜의 위기를 촉발한 구실을 했지만, 민주당의 ‘발목 잡기’는 여전히 어정쩡하고 수줍다결국 첨예한 정치 양극화 속에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민주당 모두 지지율이 하락했다. (반새누리·비민주당 지대의 공백이 커졌다는 뜻)


이처럼 행정부와 국회 모두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정치 앞세운 안철수가 4·24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반박근혜 비민주당 층에서 정치적 공백이 생기자 안철수가 이를 메우려 나온 것이다.


게다가 정치 양극화가 가속화하면, 양극화를 봉합하려는 경향도 생기게 마련이다. 안철수는 정부조직법 협상에서제발 빨리 협상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치 하라고 주문한다.


그럼에도 공식정치에 대한 거대한 불신과 반새누리 비민주당 진영의 공백 때문에 안철수가 부상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양극화 봉합노선이 대안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정부조직법에 관한 언급처럼 모호하기 그지 없다.


그는 기성 정치에 ‘비전과 대안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고통 분담을 위한 제살 깎기로서 국회의원 정수 축소’ 말고는 별 다른 “새 정치 비전”을 내놓은 바도 없다오죽하면, ‘안철수의 새 정치는 안철수 본인의 당선 말고는 없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게다가 서울 노원병 선거구에 출마하면서 부당한 사법 탄압으로 이곳의 의석을 뺏긴 진보정의당과 노회찬 대표에 대한 진지한 배려도 없었다. 그가 진보정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


반새누리·비민주당 정서의 오른쪽 정도에서 양극화 봉합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이런 행보들은 안철수 정계개편이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 대비한 지배계급의 플랜B 구실을 수도 있다는 보여 준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는 “새 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한 번 해보려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안철수를 직격 비판했다.


결국 4·24 재보선 국면은 진보정치 세력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새누리 비민주당 층에 정치적 공백이 있다는 것이고, 이 층의 왼쪽을 대변할 정치 구조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지금 이런 논의가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내년 지방선거 전에 조만간 문제가 제기될 거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흐름에서 원칙있는 단결과 급진적 대안을 대변할 축을 단단히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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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의당의 ‘사회연대’ 제안

박근혜 정부와 동맹할 자세가 아니라 투쟁할 자세가 돼 있어야

어차피 불가능한 제안, 우리 편 혼란만 부추겨




진보정의당 지도부는 2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부와 일자리와 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동맹을 맺을 자세가 돼 있다”며 ‘(가칭)경제민주화 실천을 위한 사회연대협의회’를 제안했다.


박근혜정부는 유례 없는 정치 양극화 선거에서 반동적 지배자들이 똘똘 뭉쳐 지지한 결과로 탄생했다. 이런 강성 우파 정권과 진보정당이 “전략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는 주장은 당혹스럽다. [제안이 노회찬 의원직 박탈 직전이라서 놀랍기도 했다.]


불과 두 달 전 대선에서 진보정의당은 반새누리당 연합에 적극 참여했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2011년 방한 강연에서 “이탈리아에서 ‘역사적 타협’ 이전의 인민전선은 기독민주당이라는 공통의 적에 맞서 공산당과 군소 부르주아 정당들이 연합하는 것을 의미했다. ‘역사적 타협’이 획기적 반전인 것은 이 때문이다. 공산당이 오랜 적(기독민주당)을 끌어안은 것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탈리아 공산당은 가장 큰 야당이었으면서도 기성 정치 구조에서 배제돼 있었다. 그래서 지배계급 주류와의 ‘역사적 타협’으로 이 정치 구조에 편입해 정치권력에 다가가려 했다. “그 결과, … ‘역사적 타협’이란 이 끔찍하게 부패하고 경멸받는 정당을 구제해 주는 것”이 됐다.


출처는 레디앙. 왼쪽이 베를링게르라고 한다. 그는 역사적 타협을 주도한 이탈리아 공산당 리더였다.



진보정치세력이 주변화된 조건을 완화해 보려는 진보정의당 지도자들의 발상도 이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진보정의당의 제안은 진보정치의 주변화를 더 심하게 만들 뿐이다. 심지어는 안 좋은 방향으로 박근혜 좋은 일만 시켜줄 수 있다.


사실 이런 제안에 ‘나름’ 노련한 정치책략이 섞여 있을 수 있다. 박근혜가 어차피 수용하지 못할 경제민주화와 복지, 양극화 해소(‘국민대통합’) 등의 쟁점에서 일부분이나마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공적인 책략이 될 수 없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면, “[이런 제안은] 책략이 아니라 한심한 자기기만이다. … 계급은 속일 수 없다. … 마치 딴 사람인 척하며 그들을 속이려 든다면 실제로는 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친구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게 되고야 만다.”


,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 박근혜 정부와 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성격에 관한 혼란과 착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회찬 공동대표는 “[박근혜] 대선 공약은 굉장히 획기적인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진보정치세력이 박근혜 복지 공약의 후퇴와 뒤집기를 폭로하고 꾸짖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게 되면, 쟁점 주도권은커녕 진보정치세력들이 더 주변화할 것이다.


진보정의당 지도부는 “강제로라도 박근혜 정부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 성공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라고도 말했다. 이는 최근 박근혜의 공약 뒤집기가 관료와 우파들의 압력 때문이라고 보는 일부의 시각과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박근혜 세력 자체가 지배계급 주류 우파에 기반한 반노동자 정권이다. 박근혜는 표가 필요한 선거를 앞두고 대중의 강력한 복지 욕구를 고려해 두꺼운 화장을 했던 것이다.


경제 위기 조짐을 배경으로 그 화장이 갈수록 지워지는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의 할 일은 그것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지도자들은 기층의 운동이 부양력이 높지 않으니 ‘위로부터의 개혁’이란 관점으로 일시적으로 쏠리는 듯 보인다. 그러니 복지를 둘러싼 사회적 세력관계보다 ‘박근혜의’ ‘말’(화장)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행동과 기반을 모두 봐야 한다.


그 점에서 일부 진보 지도자들이 박근혜 복지 실현을 위해 ‘보편적 증세로 재원을 마련하자’고 말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진보정의연구소 김형탁 부소장도 최근 조직 노동자가 양보해서 취약 노동자를 돕자는 ‘사회연대전략’을 되살리자고 나섰다.


그 점에서는 분명히 “사대 매국의 뿌리, 분단 독재로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유지해 온 집권 수구 세력은 [동맹이 아니라] 청산의 대상”이라고 일갈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의 말이 옳다.


진보정의당 지도부의 박근혜 동맹 제안은 철회돼야 한다. 진보정치세력이 동맹해야 할 것은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각종 사회운동들이다. 진정한 좌파는 여러 의제에서 노동계급의 공동전선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이 기사는 <레프트21> 98호에 축약해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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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경제 성장 지속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규제보다는 경제 활력을 고취해야 한다, 개별 기업 노사 문제 관여는 최소화해야 한다, 증세는 신중해야 한다.”


118일 박근혜를 만난 전경련, 경총 등 경제5단체 회장들이 던진 말들이다. 박근혜에게 5년 전 기조인 ‘줄푸세’(신자유주의적 우파 정책 기조)로 돌아가라는 요구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경제 민주화’ 구호가 “특정 대기업 때리기, 기업들 편가르기 [등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도 많다”며 해명했다.[각주:1] 이런 식으로 박근혜는 우파 기득권 세력과 만남을 이어가며, 더 분명한 어조로 “성장”과 “안보”를 강조하고 있다


우파 신문 <세계일보> 주최 안보 심포지움에서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확실한 [대북]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보수 기독교 아성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서 “우리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만큼 발전시킨 것도 교회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아부했다.


레임덕인 이명박의 내곡동 특검 방해도 새누리당의 엄호 없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온갖 낡은 보수세력들이 박근혜 지지로 결집하고 있다. 선거법 등을 이용한 진보진영 재갈 물리기도 벌어지고 있고, NLL 문제로 국정원장을 고발하는 등 꼼수도 자행되고 있다.


여러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이제 박 캠프에서는 이한구(대우), 김광두(현대차 사외이사), 현명관(삼성), 김성주(대성) 같은 재벌그룹 출신 인사들이 중용되고 있다. 정몽준도 선대위원장으로 기용됐다.


허울 뿐인 ‘국민대통합’ 가면을 벗고서 ‘1퍼센트 보수 대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우향우의 배경에는, 반우파 정서의 벽 앞에서 좌절한 박근혜의 선거 책략 뿐아니라, 주류 지배자들의 커져가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아 세계경제 위기 확산 국면에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유럽 수출은 16퍼센트나 줄었다.


따라서 지배자들은 저항의 섟을 죽이며 [고통 전가의 다른 이름인]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하는 마당에, 우파인 박근혜마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주류 지배자들은 지난해말과 올해초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와 재집권 실패가 유력해 보였을 때는, 플랜B로서 민주당 집권을 염두에 두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보이지 않는 압력들을 동원해 [오른쪽에서] 민주당을 혹독하게 공격하며 길들이려 한 바 있다. (진보정당과 야권연대를 하지 말라는 압력도 이때 본격화됐다.)


무엇보다, 박근혜의 중도층 확보 노력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조사를 봐도, 박근혜 대세론 붕괴 후 필사적 우파 결집(보수대연합) 노력으로 보합세를 유지하곤 있으나 부동층 흡수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전히 박근혜가 다자 대결 1위인] <한겨레> 조사에서도 60퍼센트가 ‘새누리당의 재집권’보다 ‘정권 교체’가 낫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집토끼 묶는 것에 치중하는 박근혜의 우향우는 앞으로 보수대연합과 투표율 떨어뜨리기로 나아갈 것이다. 집권 우파가 믿을 것은, 반우파 정서가 표로 결집하지 못하도록 민주당의 실정과 약점을 이용하고, (이런 일이 가능할 정도로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만만치 않다) 진보진영을 탄압하며 폭로와 색깔론의 복마전을 만들 것이다. 당연히 투표시간 연장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요새 새누리당의 공식 논평은 하루 열 건 가까이 야당 후보 비리 의혹 제기인데, 대변인을 일곱이나 둔 것이 바로 이런 일을 하려고 한 듯하다! 14일 하루에만 네 가지 의혹을 8개의 논평으로 발표했다. 새누리당은 관계자는 화살 1백 발을 쏴서 그중 한 개가 맞으면 맞는 것”이라고 하는 실정이다.


요약하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최근 1~2주 사이에 부패 우파 본색에 충실해지고 있는 것은 반우파 정서를 뚫기 힘든 상황에서 집토끼라도 지키자는 선거 책략에 더해 지배계급의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야당들의 무기력 때문에 박근혜가 다시 여력을 회복하면, 국민대통합 시늉을 다시 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 박근혜가 중도 흉내가 결코 확장성의 한계를 깨지 못한다는 점이 바뀌는 건 아니다[각주:2]


2007년만 해도 그는 ’줄푸세’를 내세우며 우파 결집에 여념 없었다“제가 꿈꾸는 사회도 바로 뉴라이트가 꿈꾸는 사회와 같다공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 불법파업과 집단 이기주의기업은 규제 ... 이것이 우리 경제의 큰 병”이라고 핏대를 세웠다.


이미 박근혜는 당권을 장악한 직후인 2004년 가을에 이른바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규명법·언론관계법 개정) 반대 투쟁에 ‘올인’했다. 그녀는 이 투쟁을 “국가정체성 수호” 투쟁이라고 불렀다.[각주:3]


이 투쟁을 놓고 당내 논란이 일었는데,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당시 의원총회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장 민주적 방법으로 투표를 통해서 대표인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 주었다.” 이것이 지금껏 10년째 ‘정당 개혁’과 ‘정치 쇄신’을 내세우는 박근혜의 ‘민주주의관’이다.


그녀의 국가관은 1퍼센트 기득권 세력을 철저하게 옹호한다는 점에서도 우파적이었다. 박근혜는 노무현의 온건한 사립학교법 개정을 놓고 “나라의 정체성을 뒤흔들어 놓는 법은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되며 법의 뿌리가 허물어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고 강변했다.


박근혜는 1980년 전두환의 도움을 받아 사실상 소유주로 영남대 재단에 진입했다가 1989년 학원 민주화 투쟁 때 쫓겨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개악된 사학법으로 가장 먼저 구 재단이 복귀한 곳이 바로 영남대다


박근혜는 노무현 정부가 물러서면서 이미 2006년부터 복귀를 준비해 왔는데, 결국 새 이사진의 과반수를 임명했다. 재단 복귀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창조컨설팅과 합작해 영남대의료원노조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해 노조는 지금껏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던 박근혜가 “내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궤변을 내뱉으며 꼴사납게도 ‘복지’와 ‘경제 민주화’ 시늉(복지 코스프레?)이라도 낸 것은 순전히 사회적 세력관계가 우파에게 유리하지 않고, 복지와 분배 같은 진보 의제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여당 내 야당이라고 했지만 정작 18대 국회에서 이명박의 친기업·반민주·반노동 정책과 대립한 적이 없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4대강, 부자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쇠고기 협상 결과, 용산 사태에는 침묵했다. 최근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국정조사 요구를 거부했다.[각주:4]


박근혜의 최근 영입 인사 중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로 유명해진 안대희가 있는데, 안대희는 당시 유독 박근혜의 2억 원 수수 의혹만 수사하지 않았다. 안대희와 함께 들어온 남기춘은 7인회 일원인 김기춘(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과 함께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조작의 원흉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본색, 집권 목표라는 건 이처럼 반동적 쿠데타와 1퍼센트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권을 세우려는 추악한 권력욕일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과 안철수가 ‘안보’와 ‘성장’이라는 우파 프레임을 수용해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린 반우파 청년세대를 결집시키지 못 하고 있다. 선명하게 변별력 있는 대안이 유력하게 부상하지 않으니, 우파에 위기가 왔는데도 지지세가 붕괴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과가 어떨지 미리 예측하기 힘든 선거다. 그렇다고, 개혁주의적 진보정치에 공백과 균열이 생긴 마당에 선거판 안에서 쉽사리 대안을 찾기도 힘든 현실이다. 


김소연, 김순자 두 후보도 훌륭하고, 통진당 이정희, 진정당 심상정 후보도 비진보 후보들과 대면 훨 낫지만, 후보의 성격과 자질과 득표수는 별개 문제다. 이들 모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일부들을 각각 대표하고 있어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선거에서는 이들에게 투표하는 것이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세 후보 진영 모두 선거가 아닌 투쟁의 영역에서는 예상되는 득표수보다도 더 큰 힘과 역량,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역에서는 단결된 대응이 가능하고, 또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황이 지날수록 경제 위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방식과 속도, 태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노동계급에게 고통전가 공세가 예상된다는 점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의 참을성이 점차 없어진다는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이런 요소들에 상황을 비춰 보면, 우파 재집권을 저지하자는 반박근혜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투표 그 자체보다는 미래의 공세에 대비해 정치적·조직적 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대중투쟁으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일 없이 투표로만 주류 우파를 물리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사실 불가능하다. 그 점에서 최근 벌어진 노동자투쟁들은 좋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정권교체가 나은 일이긴 하나, 진보적 정권교체라 부를 것은 못 된다.


그래서 투표로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저지를 위한 단일화 후보든, 진보 노동 후보든]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낫겠다. 누구에게 투표하더라도 향후 운동의 과제에 비춰 부차적 비중일 수밖에 없을 듯하므로. 


  1. 전경련 전무 이승철은 “오늘 [박근혜와 안철수] 두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경제성장도 필요하다는 뜻을 보여 와 그동안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관련된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화답했다. [본문으로]
  2. 올 4월 총선에서 박근헤의 중도화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 이들은 민주당 등 야당에게도 빼앗긴 중원, 중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근혜와 민주당 사이의 중도로 가자는 것은 야당들이 우경화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박근혜를 돕는 멍청한 짓이 되었다. 물론, 재벌과 주류엘리트에게 잘 보이려는 민주당의 본성을 감안하면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한나라당 최연희가 ‘[여론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위세를 떨치던 공안검사 출신에게 ‘국가관’을 따져 물을 정도니 박근혜의 국가관이 얼마나 우파적인지 알 만하다. [본문으로]
  4. 유일하게 이명박과 대립한 게 행정수도 문제였는데, 사실 박정희가 1970년대 말에 지금의 세종시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장기지구를 유력한 제1후보지로 놓고 행정수도 이전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박근혜의 집착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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