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에 여러 세력의 프로젝트가 엉켜 있어 혼란스럽게 보인다. 


우선, 진보정당의 의회 세력 강화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지배계급 우파들이 있다.

 

이들은 혁명적 [친북] 스탈린주의 출신 통합진보당 당선자들을 ‘종북좌파’로 몰며 두어 달째 흠집내 왔다. 이들이 전향 여부가 불투명한 [친북좌파] 혁명가 출신들의 국가기구 진입을 얼마나 혐오하고 두려워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은 호재다. 일단은 그 덕분에 터져 나오는 권력형 비리를 감출 수 있게 됐다. 부패의 규모로 치면, 코끼리가 비스킷 뒤에 숨는 격이다. 역겹다.

 

무엇보다, 주류 지배자들과 우파들은 이 기회를 통해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의 투쟁을 동시에 약화시키고 싶어 한다. 노동운동과 연결된 통합진보당을 약화시켜 당면 투쟁들의 김도 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이왕이면 대선에서 위협적인 [진보정당을 포함한] 야권연대도 분열시키는 것이 좋다. 우파적 의제의 주도권이란 점에서 보면, 진보정당이 중요한 축의 하나가 되는 야권연대와 그렇지 않고 민주당의 오른쪽과만 하는 야권연대는 그 효과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투쟁을 당권투쟁 프레임으로 보는 통합진보당 내 세력들이 있다. 한쪽에는 당권파가 있고, 한쪽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온건파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이 있다.

 

애초부터 서로 다른 계급 기반을 둔 정당들의 옳지 않은 통합으로, 선거적 성공은 일시적으로 거둘 수 있어도 분열과 갈등이 조만간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그 점에서 당명에 ‘통합’이 들어간 것은 이 당이 실제로는 한지붕 아래 여러 당들이 연합한 인민전선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옛 민주노동당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노동계급 기반이 여전한 진보정당으로서 나는 총선에서 [묻지마 야권연대에 비판을 하면서도] 선거적 성공을 바라며 전폭 지지했다.


자유주의+사민주의 연합파는 이참에 국가기구 진입에 껄끄러운 친북 공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급진적 강령과 가치, 문화를 ‘낡은 운동권 관행’으로 매도해 폐기하려 한다. 이들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정당을 만들려 한다. 

 

그래서 유시민 공동대표는 그 첨예한 갈등과 이른바 ‘쇄신’ 투쟁의 와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게 득표에 해가 됐다며 통합진보당에 남은 급진성의 흔적마저 공격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계산된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심상정 대표는 이미 2008년에 민주노총당·운동권당을 탈피하자며 국가보안법 구속자들을 당에서 제명하는 안을 ‘민주노동당 혁신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혼란때문에 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깨질까 봐 걱정하는 발언도 했다.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당권을 장악해 대선 단일화와 연립정부 협상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사태의 엄중함에 비춰, 이들의 쇄신안이 초라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으로 당면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운동이 냉소와 환멸, 상호 불신과 분열,사기 저하 때문에 약화될 것을 우려해 진보의 원칙을 다시 세우며 발본적으로 혁신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민적 눈높이’ 즉 부르주아민주주의적 상식에 걸맞는 당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국민의례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잔재에도 굴복하려는 것이다.


그 맞은 편에 ‘당권파’라 불리는 세력이 있다. 진보적 자본가 분파와 연합해 국가권력에 진입한다는 옛 스탈린주의의 인민전선 전략을 몇 년 전부터 추진해 온 이들도 진보정당의 우경화를 부추겨 왔다. 


인민전선적 우경화는 선거적 실용주의를 부추겨 왔다. 인민전선적 정부 수립을 하고 그 정부에 참가한다는 생각으로 참여당과 묻지마 통합을 비민주적으로 물어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권을 빼앗기는 것은 자신들 전략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본 듯하다. 그러면서 사태의 한쪽 측면(우파의 공작)만 강조하고 있다.


크게 봐서 이 세력의 기획이 엉켜 있기 때문에 진보의 자기 정화 대신 당권 투쟁과 우파의 마녀사냥이 겹쳐서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 되고 있다. 균형을 잘 잡고 원칙있게 상황을 바라봐야 할 이유다. 


당대회의 회의 방해와 폭행 사태는 우리가 오랜만에 스탈린주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각주:1].(이미 인민전선 전략이 스탈린주의 문제이긴 했지만 말이다.)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건은 사건의 심각성과 더불어 우파의 음모 때문에 쟁점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노동자들과 진보적 의제의 투쟁들이 위축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진정한 혁신이란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돼야 하고, 그래야 우리 모두 진보는 똥덩어리라는 인식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자신들의 선거 부정을 가볍게 여기고 실행하는 그런 행동들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스탈린주의 윤리관이 한몫했다. 그런데 이들의 행태에서 스탈린주의라는 뿌리를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선거 부정 문제가 불거지고부터다. 


이들은 선거 부정에 당내 주요 세력이 모두 책임져야 하고, 그러려면 당권파도 혹독한 책임을 지는 것이 진보의 자기 정화를 위한 선결 조건이라는 주장을 ‘쿠데타’로 규정했다. 이후 전국운영위원회와 당대회를 거치면서 이들이 보인 행태는 스탈린주의 사상의 특징을 보여 줬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의 당 이론[각주:2]과 달리 스탈린주의에서 당은 계급을 대표한다. 그리고 당 지도부는 당을 대표한다. 사실 당이 계급을 대표한다는 사상은 20세기 초반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로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이라 불리던 카우츠키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당이 곧 국가권력을 구성해야 한다는 엘리트적 카우츠키의 사상이 갈수록 [선거제도 같은] 현실에 적응하면서 당이 후진적인 부위의 계급까지 대표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사회민주당들이 지지한 사상적 배경이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는 1928년 이후 러시아에서 새로운 지배계급로 등장한 공산당 관료들의 공식 이데올로기다. 당이 계급에 적응하기(야당인 사민당)보다는 계급이 당에 적응해야 한다(일당독재를 하고 있는 당)는 쪽에 무게중심이 실리게 된다. 당이 계급을 대표하며 따라서 혁명 이후에 당이 곧 국가권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상식(즉, ‘국민적 눈높이’)을 그다지 중시하진 않는다.(그래서 그때그때 실용주의적으로 대처한다.) 진보진영 안에서의 민주주의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배계급이 된 스탈린주의 관료들에게 자유로운 사상의 발전은 해롭기 때문에 정치와 조직이 전도돼 정치적 올바름을 규명하는 것보다 조직에 대한 충성이 우선하고, 조직 보전을 위한 이해관계를 사후 정당화하는 임무가 정치와 이론의 것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 결과, ‘무오류의 존재’로 가정된 당 지도부와 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당 조직을 보위하는 것은 계급에게 충성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당[과 당권]에 도전하는 당 안팎의 비판자들을 곧바로 ‘계급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 독재가 트로츠키를 비롯한 반대파들을 제국주의의 첩자로 규정해 숙청한 것처럼, 베트남의 공산당은 사이공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학살했으며, 김일성은 일인 체제를 위협하는 박헌영을 미제 첩자로 몰아 죽인 것이다


이런 특성은 저항세력의 이데올로기로 구실을 할 때조차 드러나곤 한다. 비록 자국에서는 급진적 야당이지만 스탈린주의를 그대로 수입한 각국 공산당들은 이런 사상적 특성을 그대로 흡수한다. [초기엔 소련 지도부의 권위와 지원 때문에, 그리고 나중엔 그 관료주의가 그 내부에서 굳어져서.]


이렇게 볼 때,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보인 당권파의 물리적 투쟁과 극단의 종파주의를 우리는 정치사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우파의 통합진보당 죽이기 공작으로 규정했으니, 당권투쟁은 곧 ‘계급투쟁’의 일부였던 셈이다.(일면적이서 그렇지 완전히 허구적 발상인 것은 아니다.) 


어제 내 옆을 스쳐 단상으로 몰려가던 한 학생은 (심상정을 지칭한 듯) “저기가 누구 자린데 어디서...”라고 북받치는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나는 맥락에서 단순한 이정희 추종 발언으로 여기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주인은 자신들의 ‘당’이고, 그 ‘당’은 오롯이 계급을 대표하는 당이라는 발상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그들이 자기 편이라 여기는 이정희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의장직 포기는 단상 자체를 적으로 보겠다는 신호였던 셈이다. 나는 회의 시작 전, 이정희 대표가 사퇴 선언을 하고 자리를 떳다는 소리를 듣고 심각한 상황이 오겠구나 하는 직감을 했다. [그러나 폭행 자체는 이런 심리 상태를 배경으로 일어난 우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비당권파의 비전이 색다르거나 발본적 진보 혁신과 자기 정화를 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리도 요란한 당내 쇄신 투쟁에 진보의 원칙과 가치, 기풍을 재확립하려는 어떤 의제도 제출된 바 없다. 유시민의 ‘애국가’와 ‘운동권 관행’을 없애자는 것 말고는.


어제도 나는 통합진보당 중앙위원으로서 새 강령 제정의 건에 표결을 요구하려 했다. 적극 반대는 하지 않더라도 찬성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만장일치 통과에 반대한 것이다. 


현재 강령 제정안은 옛 민주노동당 창당 강령을 포함해 기존 진보정치가 내세워 왔던 내용과 기준에서 진보의 정체성과 노동 중심성에서 상당한 후퇴가 있었다.

 

연립정부 참가를 위해 기존 진보정당의 강령들에서 톤다운한 것이다. 광범한 국유화와 사회화가 소유구조의 다원화로 후퇴했고, 노동이 주인되는 세상이 노동존중사회로 뒤바뀌었다. 반제국주의 강령도 후퇴했다.

 

연립정부와 전략적 우경화에 반대해 온  ‘노동자 연대 다함께’ 회원들이나 개별 중앙위원들로서는 찬성에 손을 들 수는 없는 안건인 것이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굳이 찬반 토론에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차분한 찬반토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권파가 분위기를 험악하고 시끄럽게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심지어 표결을 요구하며 내가 표찰을 들었을 때, 나를 표찰을 앞세워 단상으로 몰려가는 당권파 중앙위원들과 구분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새 강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이 묵살된 것과 별개로 바로 그런 상황 때문에 만장일치 통과라는 건 더욱 문제가 된다. 그것은 전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소란스런 와중에 나같은 이들의 반대 의견을 듣기 힘들 수도 있고, 절차를 위협하는 잘못을 했지만 안건 처리에 반대하는 중앙위원 세력이 있는데, 굳이 만장일치 통과를 시도했어야 할까. 그게 과연 현명한 처사일까. 이미 그 직전에 정회 표결을 봐도 표결이 불가능한 상황도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다.

 

어제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가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쳤고, 당권파가 표결 참가를 거부해도 정족수가 모자라는 일이 벌어질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후퇴한 강령안을 당권파를 핑계로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 한 것은 이 세력도 당내 좌파들에게 그다지 민주적이진 않다는 걸 보여 준다.

 

사실 중앙위원회 구성에서의 이런 세불리 때문에 당권파는 회의 자체를 불법으로 몰아가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회의 결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해야 계속 당권투쟁을 벌일 논리적 근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땐, 계산된 회의 방해였던 것이다. 폭행 사태 자체는 우발적일지라도 말이다.

 

사실 결과적으론 무리하게 만장일치 통과를 선포하는 순간, 단상 점거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매우 유감스런 상황 전개였다. (물론, 당권파의 폭력 난동은 결코 변호받을 수 없고, 진보진영 자체의 기존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

 

결국 진정한 혁신의 선결조건인 혁신안에 찬성하고, 강기갑 비대위에는 찬성하지 않는 입장은 표결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원칙적 기강, 진보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재확립하는 과제를 수행할 책임자로, 최근 줄곧 원칙 없는 중재적 태도를 보여 온 강기갑 전 대표가 적임자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리석게도 당권파가 도리어 울고싶은 유심의 뺨을 때려준 격이 됐다. 통합진보당은 자정 능력을 크게 상실했다는 게 드러났다. 화학적으로 결합하기 힘든 여러 당들의 무원칙한 연합체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분열과 갈등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타락과 무능도 드러났다.

 

나로선 오만방자한 패권파의 승리도, 이 와중에 애국가나 찾고 앉아 있는 우경화 세력의 승리도 바라지 않는다. 통합진보당 안에서는 노동 대중이 좌파적 버전의 희망을 더는 찾기 힘든 이유다. 그래서 현장을 지켜 본 나로선 더는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파의 ‘종북좌파’ 혐오증 유포는 그 단어가 곧 그들 나름의 대중적으로 ‘급진좌파’를 부르는 코드명이란 걸 유념해야 한다. 저들은 폭력 사태를 빌미로 검찰 수사 등으로 압박하며 조여올 것이다. 검찰 수사는 민주적 쇄신이 아니라 당원 명부 등 진보진영 내부 정보 확보와 좌파 단속을 위한 약점 잡기가 주요 목적일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며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자유주의자들이야 반새누리 세력의 헤게모니를 좌파가 아니라 자신들이 쥘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설치는 것이니 이들의 충고를 좌표로 삼을 순 없다.


이 둘의 의도와 목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어쨌든 이들이 지지하는 쇄신이란, 그들 표현을 빌면, ‘운동권적 습성 탈피’가 될 것이다. 그것은 진보정당의 투쟁성과 급진성을 제거해 기성 정치 체제에 순치하겠다는 것이다. 비판할 건 하되, 부화뇌동해선 안 되는 이유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그것이 의회정당 수준일 때조차도 강령 차원에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를 명확히 지향하는 것이 옳고, 대안적 미래를 위해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단결을 전략적으로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은 이런 원칙을 훼손하고, 여기에 항의하는 당내 좌파를 고립시키는 과정이었다. 한때 노동자 [의회] 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상징했던 옛 민주노동당을 전신으로 하는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진보정당일 테고 [누군가의 호들갑처럼] 당장 망하는 일도 없겠지만, 분열과 우경화를 결과적으로 더 부추기게 만든 이 당이 더는 노동자 진보정치의 ‘대표체’일 순 없는 듯하다.

 

가장 좋은 것은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당을 주도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동시에 진보정치의 타락에 대항해 원칙과 기강, 민주적 단결을 추구하려면 급진적 노동자 좌파 정치가 성장해야 한다.




  1. 한편에서 이번 폭행 사태에 스탈린주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일부 자유주의자들이 좌파 혐오증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을 전체주의나 파시스트와 동일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2. 마르크스가 기초하고 레닌이 정립한 당이론은, 당의 필요성은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에서 비롯한다. 당은 계급의 일부지만,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며 계급의식의 불균등성을 목적의식적으로 극복하려고 조직된 무리라는 점에서 계급과 구분되는 행위주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혁명 이후에도 새로운 국가의 주체는 계급이 되는 것이다. 당은 그 일부로서 여전한 자기 임무를 위해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레닌의 당 이론과 실천은 스탈린주의의 일당독재 이론과 조금치도 닮은 데가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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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올바른 개입을 위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여파로 지금껏 스물두 명이 죽었는데도 진짜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무도한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를 강행하며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진보진영은 해군기지 무효화는커녕 건설 중단조차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의 최고위 실세들이 부당한 특혜를 기업들에게 주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특권과 부를 누려온 일이 폭로됐는데도 당장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 지지리도 인기 없는 이 부패하고 추악한 정부가 아직도 살아남아 온갖 나쁜 정책을 아직도 밀붙이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들을 근본적이고 급진적으로 해결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이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민주당이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해결할 것을 기대할 순 없다. 


오히려 민주당을 주도하는 세력은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했던 사람들이고,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정권 차원의 저항적 사회운동 사찰을 저질렀던 세력이다. 지금도 이런 악행들을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 점에서 진짜 문제는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을 주도하는 진보진영 내 다수파의 노선과 태도에 있다. 


지난해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비판과 경고를 무시하고, 친자본주의 정치세력인 국민참여당과 통합했다. 


그 뒤에도 이들은 스탈린주의 전략과 개혁주의적 선거 실용주의의 맥락에서 인민전선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약점을 제대로 비판하지도 못했고 독립적 진보 대안 건설이나 투쟁 태세 구축 대신 ‘묻지마’ 야권연대에 더 힘을 실어 왔다.  


이런 태도가 진보진영 안에 투쟁을 통한 쟁취와 심판보다 수동적 선거 심판론을 유포해 왔다. 투쟁 연대체 등에서 이런 약점들에 비판이 나올라치면 연대체 안의 친민주당 NGO 지도자들과 손잡고 비판들을 패권적으로 묵살하곤 한다.


따라서 급진좌파들이 민주당의 친자본주의 본성을 비판하며, 통합진보당의 묻지마 야권연대에 반대해 온 것은 옳았다. 반MB를 넘어서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관점이 운동에 필요하다는 주장도 원리상 옳다. 


그러나 원리상 옳은 입장을 가지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좌파가 구체적 현실 조건과 당시의 대중 정서를 면밀히 판단해 접점을 만들어 개입하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때 원칙이란 추상적 원칙일 수밖에 없다. 추상적이란 단어는 원리상 옳지만, 현실의 실천지침으로 크게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 문제는 급진좌파들이 현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전술의 차이를 원칙의 차이로 과장하며 고립·주변화를 자초해 오히려 개입할 능력을 약화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우경화에 불만이 높은데도 좌파가 성장하기보다는 단순히 진보진영의 분열만 키우는 방식으로 사태가 흘러왔다. 


즉, 급진좌파들 일부의 문제점도 진보정치세력의 약점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운동의 우경화에 맞서 급진좌파들이 함께 개입해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제약해 왔다. 


첫째, 종파주의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 태도를 종파라 불렀다. “사회주의적 종파주의의 발전과 진정한 노동계급 운동의 발전은 언제나 반비례한다”고도 지적했다.


 


이는 종파주의가 고립을 자처할 뿐만 아니라 주변화하고 고립되는 상황에서 싹트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종의 악순환인 것이다. 


우선 이들은 옛 민주노동당의 우경화와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투쟁에 기권해놓고는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종파적 규정을 남발한다. 


민주노총의 상급 지도자들 다수에 기반해 있고, 조합원 다수가 지지하는 통합진보당을 ‘진보도 아니다’ 라거나, ‘진보정당은 변혁에 걸림돌’이란 일면적 분석을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심지어 투표를 통한 지지조차 반대하며, 어떤 공동행동도 거부하려 해 왔다. 일부 급진좌파들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투쟁 대안을 제시해 단결을 추구하기보다 민주노총의 통합진보당 지지를 막는 것에만 열을 올렸다. 


이들은 진보신당이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에서 통합진보당을 새누리당과 다름없다며 분열적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았다. 


계급투쟁에서 부차적 지위를 갖는 선거에서의 차이를 과장해 결과적으로 정작 중요한 투쟁에서의 단결을 해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얼마든지 비판과 지지, 이데올로기적 경쟁과 운동의 단결을 결합할 수 있는데도, ‘차이와 분화’만 강조함으로써 민주노총 조합원 등 선진노동자들 다수와 거리감을 넓히고 스스로 고립과 주변화를 자초한 것이다. 


선진적 소수는 ‘선전과 선동’만으로도 정치의식이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대중적 각성은 투쟁에 참여하고 승리하는 경험 속에서 낡은 사회적 편견과 소외감을 떨치며 더 급진적인 사상을 받아들이고 조직에 참가할 자신감을 얻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이런 자신감과 각성의 깊이와 폭은 투쟁의 규모에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좌파가 투쟁에 개입할 때나 주도할 때는 운동 지도부의 이데올로기만 보고 미리 재단하거나 선험적으로 참가의 폭을 제한하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이명박의 집권과 2008년 총선으로 자칫하면 우파의 우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사회 분위기가  오히려 진보적 의제가 주도하는 세력관계로 유지되고 바뀐 것은 서울에서만 최대 1백만 명까지 참가했던 촛불항쟁 덕분이었다. 


참가 규모가 커지자, 참가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미국산 소고기 수입 중단에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로 의제가 확장되고 정권 퇴진 같은 급진적 요구로 발전해 갔다. 이 운동은 개혁주의적 NGO 리더들이 주도했는데, 다함께는 이들의 견제 속에서도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 과정에서 의제 확대와 정권 퇴진 요구를 제안해 많은 지지를 받고 영향력을 키워갔다. 


그러나 당시 급진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문제는 배제됐다’거나 ‘가난한 노동자는 어차피 소고기는 못 사 먹으므로 이 투쟁은 중간계급의 투쟁’이라는 식으로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루되거나 개입하길 꺼렸다. 


그래서 이들은 운동 자체를 전진시키거나 운동 안에서 좌파의 영향력을 키우는 문제에서 완전히 무능했다. 이처럼 좌파 일부는 과거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듯하다. 심지어 지난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의 교훈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당시 중요한 승리의 요인이었던 사회적 연대의 확산 과정에는 대단히 개방적인 태도가 큰 구실을 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도 지지하고 참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급진좌파 일부가 주도권을 틀어쥐고 주도한 올해 희망광장 투쟁은 안타깝게도 통합진보당까지 배척하면서 개방적 연대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들 중 일부는 그런 식의 ‘순수한’ 투쟁으로 통합진보당 식의 야권연대와 경쟁하는 별도의 구심을 만들려고 한 듯하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이 투쟁은 장기투쟁 작업장 조합원들의 품앗이처럼 비춰졌다. 


쌍용차 희망텐트 때도 일부 참가단체들이 통합진보당 지도부에게까지 야유를 보냈는데, 이런 행동은 자신들이 주도한 그 집회에서조차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둘째, 급진좌파 일부의 태도는 말로는 진보정당들의 선거주의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설득력있는 투쟁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몇 가지 행동들을 보면, 선거주의를 비판하는 이들 자체가 엄청나게 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일례로, 노동운동 안의 급진좌파들은 올해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와 3월 임시 대의원대회,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공식 지지 정당으로 정하는 방침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심지어 3얼 22일 임시 대의원대회는 바로 이 방침을 막으려고 좌파들이 소집한 대회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 계획을 보완하거나, 언론 파업을 엄호하는 하루 총파업 등 투쟁 건설을 위한 제안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투쟁에 제약을 주기 때문에 야권연대에 반대한다는 자신들의 주장과도 모순된다. 선거 전술에서의 차이를 결정적 차이로 보는 것은 선거에만 집중하는 개혁주의의 거울 이미지다. 


셋째, 이들이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총 다수파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건 옳지만, 자신들이 주도하는 투쟁 등에서 보이는 소패권주의도 문제다. 


자신들이 주도한 희망텐트나 희망광장 등에서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세력의 제안이나 주장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따라서 진정으로 운동의 우경화를 막고 투쟁을 활성화하려면 급진좌파들은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야 한다. 


쌍용차, 한진, KEC와 유성기업, 그리고 언론사 들에서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우파 정권의 야비한 탄압을 받 왔고 지치지 않고 치열한 투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파편화된 투쟁으로 제대로 반격하는 데 애를 먹는 경험을 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는 광범한 단결의 정서가 커지고 잇다. 


무엇보다 각종 우파적 공격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격 능력은 얼마나 폭넓게 단결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좌파라면 이런 단결 투쟁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정책이 올바르다는 것을 실천 과정에서 입증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야 한다. 


즉 지금 벌어지는 언론 파업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 KTX 민영화 반대 파업, 금속 노동자들의 심야노동 철폐 투쟁 등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와 연결돼 폭넓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민주노총의 8월 총파업이 진정한 총파업이 될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고 헌신하는 관점에서 실천과 비판적 지지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파만의 고립된 섬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종파적 늪으로 더 자신을 밀어넣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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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2월말 조합원 여론조사를 근거로 4·11 총선 정당투표에서 통합진보당에게 집중 투표하자고 결정했다. 
 
정당 비례 투표는 지지율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지도가 더 높은 정당에게 집중 투표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비춰질 법도 하다. 특히 진보신당은 3퍼센트 득표 여부가 불확실해서 사표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유력한 정당을 지지해 키우지 않으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 대한 배타성(지지 배제)마저 무너져 정치적 실용주의가 만연할까 하는 일부의 두려움도 이해는 한다. 이석행, 이상범 같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적 고려를 이해한다 해도, 진보정당이 둘로 나뉘고 재통합에 실패한 상황을 반영해 배타적 지지 정당을 결정하지 않았던 민주노총이 집중 투표 정당으로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무리하고 위험한 결정이다.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통합진보당이 지지하는 야권연대 ‘단일’ 후보를 민주노총이 지지하기로 한 마당에 정당투표마저 진보신당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통합진보당을 배타적 지지 정당으로 결정한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물론 20만 명이 넘는 조합원에게 여론조사를 해서 결정하려한 것은 나름 이런 정황을 반영하려 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선거적 실용주의보다는 노동자가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 그 속에서 노동자 진보정치를 구현하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정신이다.(아래 박스 참조) 
 
상대적으로 지지가 적지만 진보신당도 민주노조운동에 기반한 진보정당이고 조합원 여론조사에서도 20퍼센트(약 4만 명)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진보신당의 비례후보 1번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신당 당원이거나 호의를 가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다른 정당에 투표하라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이다.
 
이런 이유로 진보신당을 민주노총 지지 대상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은 불필요한 불신과 반목을 불러올 뿐이다. 이미 반대파에서 “ARS조사에서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표본을 취합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반목은 언론 파업 등에서 단결해 연대 투쟁을 건설하는 데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 우파와 신자유주의 지지 정당을 지지 대상에서 배제하는 ‘배타성’은 유지하면서, 진보정당들(통합진보당·진보신당·녹색당) 가운데서 단위노조나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지지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도록 맡기는, ‘진보 다원주의’ 방침을 정당 집중 투표에서도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민주노총은 중집의 통합진보당 집중 투표 방침보다는 ’배타적 진보 다원주의’로 단결을 유지해 당면한 투쟁, 예고된 하반기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 단결한 정치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에 부차적인 선거 지지로 분열을 재생산하지는 말자. 


잠시 이 시대에 필요한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관해 살펴 본다. 

내가 보기에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출발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치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독자적 선거정당은 그런 정치투쟁의 논리적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해석이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진보운동의 문제가, 이상이 넘쳐서인지, 이상을 더는 추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난맥상이나 민주노총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글을 보시오. ☞ 바로 가기)

일부는 최근 통합진보당의 혼란상을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패권주의 문제로 덮어버리려는 듯하다.

그러나 
 패권주의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패권주의가 무엇을 밀어붙이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묻지마 야권연대’로 드러나는 인민전선 전략을 밀어붙이면서 진보정치의 정책과 가치, 원칙, 투쟁을 우경화시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이정희 대표가 잘못했고, 후보 사퇴를 해야 한다고 보지만, 득표에 해가 되기 때문인 것은 부차적인 이유라고 본다.

야권연대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다. 민주당의 과거를 뒤지지 않더라도 지금의 공천과 정책, 단일화 경선 불복 사태를 보면, 이런 당과의 ‘묻지마 단일화’ 자체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진보정당 죽이기라는 우파의 공격(민주당 길들이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궁극으로 의회주의(선거와 의회 입법 협상을 정치의 전부로 보는 경향) 경향, 의회주의를 강화한 야권연대 우선 노선이 결합하면서 강화된 당선제일주의가 진보의 가치(와 기준)를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수준으로 타락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정희 대표 선본의 잘못은 잘못된 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꼼수를 쓰려 한 것, 그것을 피장파장론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무뎌진 진보의 도덕성에 대한 감수성에 있었던 것이다. 후보 사퇴는 이를 바로 잡는 수순의 출발점일 뿐이다. 

그런 원칙에 찬 결기가 있어야, 진정으로 우파의 진보정치 죽이기에 계속해서 강단있게 맞설 수 있고, 설사 당장 뒤로 밀리더라도 버티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명분이냐, 실리냐 하면서 잘못된 선택지를 제시하는데, 가진 걸 지키려고 하는 보수정치는 그런 구분이 있을 수 있어도, 맨손으로 출발하는 진보정치에게는 명분이 곧 실리다, 즉 명분을 잃으면 실리도 없다.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잃고 지키는 실리의 실체가 뭐겠는가. 그것은 굴복이고 배교다.

경제 위기가 지속하고 제국주의간 갈등이 표출되는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국제적·전국적 시야에서 포괄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상과 목표로 추구하는 계급투쟁의 정치학이 아닐까. 

원인의 결과적 현상인 빈곤과 실업에 관해 대증적 요법인 복지 확대에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 계급사회라는 근본 원인을 정직하게 알리고,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 정책을 시기에 맞게 적절하게 내놓는 그런 정치 말이다. 

국가의 군사화(제주 해군기지)에 맞서 단지 군인과 경찰 폭력으로 뒤덮인 ‘절차’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할 줄 아는 그런 정치 말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투쟁하는 진보정치, 즉 계급투쟁의 정치학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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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보대중의 단결투쟁 염원에 복무해야(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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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새벽,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 (사회당을 뺀) 참가 단체들이 최종 합의문에 합의했다.

진보 대중 다수가 진보세력의 단결을 바랐던 만큼 연석회의의 통합 협상 타결을 환영한다.

최종합의문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세계 변혁운동의 이상과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 남한 자본주의와 북한 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 노동자·민중이 …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진보적 대중정당”이라고 밝혔다. 

새 진보정당이 진보세력의 단결에 기초해 이런 지향대로 행동한다면 노동자와 진보적 학생들의 투쟁의지를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합파인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 등이 최종합의문에 반발하는 것은 진보대통합이 단일정당론으로 포장된 민주당으로의 흡수통합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만 봐도 진보대통합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보루를 지키는 데 더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이랜드노조 수석부위원장 출신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전국적으로 이뤄진 이랜드투쟁을 지원한 핵심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노동자, 여성, 인권, 시민사회단체들이었는데 분당 후 지원대책위 체계가 무너졌다”며 진보대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부속합의문으로 채택한 ‘20대 주요 정책과제’도 진보세력이 쟁취할 실천 과제로 손색이 없다. 비정규직 해소,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기자본 규제, 핵발전 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해외 파병 반대, FTA 반대 등.

연석회의는 또 앞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동의하는 세력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더 많은 진보 대중과 단체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약속이 실질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다.

제발 손에 손잡고 민주대연합으로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단결 염원

 
한편, 일부에선 결렬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쟁점들이 모호한 문구로 절충됐다.

최대 쟁점이었던 2012년 대선은 “완주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 선거연대는 … 신자유주의 극복과 관련된 주요정책들에 대한 가치를 확고한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앞뒤가 서로 안 맞는 절충을 시도했다. 연립정부 문제는 아예 합의문에서 빠졌다.

북한 핵 개발과 3대 세습에 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 등을 적극 추진”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사실상 ‘새 진보정당의 주류’는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 운영 문제는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극복”으로 “당 조직을 공동 운영”하자고 절충했다.

사실 연석회의는 그동안 자신들이 정한 합의 시한을 계속 어겨왔다. 3차 합의문은 4월을 넘겼고, 최종합의문 시한인 5월 26일도 넘겼다. 쟁점간 이견이 워낙 첨예했던 탓이다.

일각에서는 난항을 겪은 책임이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주류인 ‘경기동부’파에 있냐, 진보신당의 독자파와 사회당에 있냐에 분석의 초점을 두기도 한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2012년 대선 선거연대에 찬성하는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진보대통합시민회의 등 연석회의 주도 세력들이 “독자 완주”를 주장한 진보신당을 압박하고 사회당은 배제하는 모양새였던 듯하다. 결과도 그렇게 됐다.

사실 연석회의 난항의 근본적 배경은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진보대통합을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여기면서 연석회의 논의 구도 자체가 우경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분당 전 민주노동당에게 대선 독자 완주는 당연한 ‘전제’였다. 2007년 대선에서 기대보다 낮은 득표 때문에 민주노동당 안에서 책임 공방이 일고 분열로 이어졌지만, 논쟁 당사자 누구도 ‘독자 완주’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연석회의 주도세력은 ‘독자 완주를 기본으로 한다’는 문구를 “양보”라고 부른다. 일부는 민주당과 공동정부도 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경화


연석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 논의를 미루고 4·27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연대를 추구했다. 이런 태도들이 연석회의 안팎에서 좌파적 반발을 낳았다.

현대차 비정규직과 KEC에서 ‘민주대연합’ 의원단이 투쟁을 망친 것에 대한 비판도 늘었다. 전북 버스 노동자들은 손학규 낙선운동을 경고했다. 울산 동구청장 선거에 이갑용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출마해 민주노동당 후보와 경합했다.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패권적으로 나온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였다. 좌파들과 현장 투사들의 반발을 피하려고 최종 협상은 밀실 협상으로 진행됐고, 이런 우경화와 패권주의를 비판한 ‘다함께’는 ‘반자본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연석회의에 포함되지 못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을 제외한 세력들이 사실상 담합해 두 당을 압박했다.

밀실협상은 불신을 더 증폭시켰다. 민주노총의  민주노총 임성규 전 위원장조차 “이탈자를 가속화하고 고립화하는 과정이 되고 있어 매우 불쾌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최종합의문이 연석회의 주도세력 입맛대로만 되지 않고 절충 형태를 띤 것은 바깥의 비판과 압력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극복” 문구가 4차 대표자회의에서 빠졌다가 최종합의문에서 “자본주의 한계와 폐해 극복”으로 다소 완화돼 되살아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의 참여가 봉쇄됐기 때문에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좌파를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진보신당 지도부는 일관성이 없었다. 오히려 애초의 원칙적 견해를 쉽게 포기해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지분을 보장받는데 더 관심있는 것 아니냐는 당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진보신당 독자파와 사회당은 그동안 야권 선거연대에는 거의 반대한 적이 없고, 주요 점거 파업을 방해한 야권 중재단에 진보신당 지도부가 참여한 것은 비판하지 않았다.

진보신당의 독자파 부대표들이 야권단일정당론자인 박용진 부대표와 함께 진보대통합 합의문에 반대 성명을 낸 것도 독자파의 일관성 부족을 보여 준다.[각주:1] 이래서 안타깝게도 독자파와 사회당의 민주대연합 반대 주장은 자주파에 대한 종파적 태도와 구별하기 힘들 때가 많다.


반북주의?


한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등은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3대 세습을 비판하자는 견해를 ‘반북주의’라며 우파적 동기에서만 비롯한 것처럼 주장해 왔다.

진보신당 독자파 일부와 대통합파(복지파) 등이 북한 쟁점에서 우파 논리에 기대는 것은 사실이다. 최종합의문 발표 후 독자파 리더 중 한 명인 이근선은 우파 매체 <브레이크뉴스>의 칼럼 “진보신당은 종북정당에 연연하지 말라”를 당원 게시판에 올렸다. 대통합파인 최병천은 이를 지지했다.

김준수, 심재옥 등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추진위원회’ 위원 넷도 합의문 비판 성명을 내고 “미국과 남한의 가중되는 압박”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문제삼았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합의문에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를 포함하자고 한 것은 이런 압력을 고려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의 주범인 미국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주로 비판·반대하는 것은 균형 잡힌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 지배자와 남한 민중 운동의 일부인 자주파는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핵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는 진보의 원칙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친북으로 비치는 걸 피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대안사회의 모습에 관한 것이다.

북한은 노동계급이 민주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주의와 관계가 없다. 3대 세습은 바로 그런 비민주성과 억압성의 한 표현이다. 새 진보정당은 남북 양 체제 모두 반자본주의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은 새 진보정당의 지향을 다루는 것이므로 2008년 “종북 소동”과도 다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등은 6·15 선언을 근거로 북한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6·15 선언은 남북 통치자들 간의 합의다. 각자 나라에서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자들이 서로의 통치 질서를 인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거꾸로 말해 북한 정권이 남한 체제를 인정했으니 우리도 남한 자본주의를 대안사회로 인정해야 할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진보정당은 달라야 한다. 이번 합의문은 진보신당은 물론이고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하겠다고 한 민주노동당의 기존 강령에서도 후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일부(경기동부)와 이정희 대표가 북한 비판 자체를 모두 싸잡아 반북주의·반공주의 취급하는 것은 왜곡이다.

 

공동전선
 
결국 최종합의문은 핵심 쟁점에서 좌파와 현장 투사들에겐 불만족스럽게 절충됐다. 그래서 연립정부 반대와 북한 정권 비판을 요구했던 진보신당은 내분에 빠지는 듯하다.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진보 대중의 단결 염원을 받아 안으면서도 첨예한 쟁점이 오히려 분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각 단체의 독자성을 보전하며 합의가능한 행동강령 중심으로 뭉치는 공동전선 형태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단일정당 형태를 취하더라도 운영 원리를 이를 반영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연석회의 주도세력이 새 진보정당을 우경화로 이끌어 가려는 상황에서 급진좌파가 개입하는 것에 더 유리한 것은 공동전선적 당 운영일 것이다.

연석회의가 통합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개방하기로 결정했는데, 연석회의는 그다양한 진보세력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급진좌파도 이 기회를 이용해 진보대통합이 민주대연합의 부속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개입해야 한다.

성공회대 서영표 연구교수의 지적처럼 “진보대통합이 정치적 과정이라면 이미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과정에 개입하는 정치적 주체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 성격과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석회의 주도세력도 민주대연합 따위를 일방적으로 추구하거나 추진위 개방을 국민참여당을 위한 장치로 만들려 하면 애써 마련한 진보대통합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다.

진보 대중이라면 누구나 한나라당 정권을 교체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정권교체 자체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혁의 진정한 동력은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힘이었다.

정권 교체는 대중투쟁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만 의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기업주와 관료, 사법부와 군부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양보하도록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개혁주의의 고전적 사고방식이다.

또 민주당은 반MB 야권연대하자면서 한EU FTA 통과에 합의하는 등 이중성을 보여 온 것은 민주당이 대중의 표를 얻어야 하는 의회주의 정당이지만, 근본적으로 자본가계급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과 연립정부로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몽상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의 과제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목표로 단결된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주대연합 등 선거주의 압력을 이겨내고 진정한 사회 변화에 헌신하며 진보정치의 독자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6.1)
  1. 이들은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정당을 만들려고 민주노동당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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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올해 메이데이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선언할 예정이다.

△1997년 1월 대중파업으로 정리해고법과 반민주 악법들을 철회시킨 민주노총 노동자들은 한동안 한국 정치의 주역이었다. 이 때 얻은 정치적 자신감과 교훈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발행한 “2011년 정세와 투쟁” 교안은 이 과제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노동조합이 단위사업장의 근로조건 개선 등 경제투쟁을 뛰어넘는 …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해 나가는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자신만의 고용에만 안주하고, 통장에 남은 잔고만 바라보는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정당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에 의존해서는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깨달음은 진작부터 있어 왔다.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성공한 첫째 시도가 2000년에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한때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며 약진하기도 했지만,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분열했다.

다수의 현장 조합원들은 진보정당이 단결해 세력을 키워서 노동자 투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민주노총의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진보대통합’을 뜻하게 된 이유다.

이 점에서 일부 급진좌파들처럼 진보대연합을 지지하지 않거나 냉소적인 것은 잘못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왜 난관에 부딪쳤는가

민주노동당은 2004년 4월 총선 때 노무현 탄핵 반대 투쟁의 열기 속에서 의원 열 명을 당선시키며 약진했다.

2004년은 파병반대 운동, 비정규직 투쟁,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 대중운동이 활발한 시기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런 투쟁들을 확대ㆍ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의회 안에서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에 더 매달렸다. 자주파와 평등파 지도자들 모두 이러한 방침을 추구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아예 우경화해 2005년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고 2006년에 한미FTA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양극화는 심화했고, 비정규직은 늘어만 갔다.

문제는 이에 맞서 투쟁과 대안을 건설해야 할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투쟁을 회피하려고 비정규직 투쟁 등 단결된 투쟁을 외면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비리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대체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이런 노조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투쟁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했다. 게다가 “정규직 이기주의론”에 굴복하는 사회연대전략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각주:1]

그것은 오히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을 모두 겨냥한 우파의 공세에 힘을 실어줄 뿐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과 우경화에 실망해 왼쪽으로 이탈한 대중을 민주노동당은 흡수하지 못했고 민주노총의 선진 조합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줬다.

진보정치의 위기에는 주요 지도자들의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집권당을 대체할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중의 환멸을 기회 삼아 이명박 같은 우파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심상정 전 의원 등은 ‘민주노총당’, ‘데모당’이 문제라며 민주노동당을 더 온건화시켜 이 상황에 대처하려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당원을 제명시키려고도 했다. 원인과 해법이 어긋났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대가를 치렀다.

다함께 등의 좌파가 이 잘못된 시도에 맞섰지만, 끝내 민주노동당은 분열했다. 분열의 결과로 진보 양당이 모두 약화됐고 어느 정도 더 온건해졌다.

그래서 현장 조합원 다수가 진보진영의 단결을 바라지만, 한편에선 불신도 있다. 현대자동차 정동석 조합원은 “울산 북구에서 국회의원, 구청장을 노동자들이 계속 밀어줬는데,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에 기대감은 있지만 열정적이진 않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따라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대중적 정치투쟁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해야 노동자들의 사기와 신
뢰를 높여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반MB 범야권 연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 정부 아래서 벌어진 부자 감세, 기업 특혜,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 물가와 전월세 폭등, 노동운동 탄압 등 때문에 수많은 노동 대중이 고통받고 분노하며 싸우고 싶어 한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이들의 ‘반MB’는 기본으로 ‘반정부’를 뜻한다.[각주:2]

문제는 이것이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반MB’ 민주연합(범야권연대)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등은 진보대연합 이후에 민주당과 선거연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심상정 전 대표는 나아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까지 얘기한다.[각주:3]

그런데 현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꼭 민주대연합이어야 할까? 그것은 ‘반자본주의’를 위해 ‘반MB(반정부)’를 기각하자는 급진좌파 일부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논리 비약이이다. 둘은 같지 않지만, 대립된 목표가 아니며 결합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반MB 정서는 모순적이다. 그것이 대체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대연합 지지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그 이면에는 민주당을 향한 불신이 배어 있기도 하다.
민주당의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들과 연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그 정서는 왼쪽으로 향하는 점도 있다. 그 점에서 정치인들의 민주대연합 노선과 대중의 정서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

그래서 허영구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처럼 ‘반MB’를 단순히 ‘민주당 지지 정서’로 낮춰 보면 올바른 전략·전술을 내놓기 어렵다. 일부 급진좌파처럼 외부에서 기존 진보정당들을 비난하기만 하면, 아직 좌파를 지지하진 않지만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울 의지가 있으며 왼쪽으로 향하는 대중을 오히려 민주대연합 노선에 내맡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래서 진보의 단결이 필요하고, 특히 단결된 대중투쟁이 중요하다. 1997년 1월 노동법·안기부법 철회 파업 때처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청소 노동자 투쟁이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쌍용차·한진중공업 등 정규직 파업 등은 전투적 투쟁 자체가 옛날 얘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 줬다. 열쇠는 지도부가 민주노총 차원에서 전(全) 계급적인 연대 투쟁과 파업을 제대로 조직하는 것이다. .


문제는 친자본주의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을 하려 하면 할수록 이명박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 연합해 진보 개혁을 이룬다는 노선은 자본가들과 타협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의 반영인데,
지금처럼 경제 위기 상황에선 자본가들도 이윤과 지배력을 보존하려고 매우 거칠고 무자비하게 나온다.

그래서 단호한 투쟁과 반자본주의 대안이 필요할 때,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요구와 강령을 낮추고 투쟁을 자제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각주:4] 그것이 비록 단기적으로는 선거에서 성과를 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 즉 계급정치의 잠재력을 갉아 먹게 된다.[각주:5] 


예컨대, 전북 버스 노동자 투쟁에서는 민주당이 지역 자본가들 편을 들고 있는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당을 날세워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KEC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민주당과 진보정당 의원들이 함께한 의원 중재단이 투쟁을 자제시키는 구실을 했다.[각주:6]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당이 진보대통합연석회의에 참가하겠다고 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촛불을 통해서 정치사회에 새롭게 뛰어든 시민들”(이학영)인 국민참여당 당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국민참여당이 실시한 1월 초 온라인 조사에서 당원 67퍼센트가 자신을 ‘대체로 진보’라고 했고, 75퍼센트는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복지 이념으로 골랐다.

그럼에도 그 당의 강령과 핵심 지도자들의 정치가 친자본주의적 자유주의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대체로 ‘제3의 길’ 정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이 당을 진보대통합에 포함시키기보다는 실천 속에서 이 당의 한계와 불철저함을 진보적 대중 앞에서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진보대연합을 건설해 국민참여당에 호감을 갖는 진보적 대중을 끌어당겨야 한다.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패권주의 문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도 진보대통합의 주요 쟁점이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종북주의’ 비판은 색깔론과 유사하며, 단결을 하려면 공통점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종북주의’ 용어는 마녀사냥 느낌을 주는 잘못된 용어다. 동아시아 군사적 긴장의 주범인 미국 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주되게 비판ㆍ반대하는 것도 균형 잡힌 태도가 아니다. 또 북한 지배자와 남한 노동자ㆍ민중 운동의 일부인 자주파 동지들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핵에 철저하게 반대해야 하는 진보의 원칙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체제에 반대한다고 남한 체제를 지지해서는 안 되지만, 남한과 똑같이 억압적 착취체제인 북한을 대안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이처럼 북한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와 연립정부에 대한 찬반 등을 어물쩍 덮으며 민주노총 지도부가 세몰이 식으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패권적 태도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자주파 지도자들은 패권주의를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묻지마 야권연대’ 추진 과정에서 당내 절차와 비판 의견은 패권적으로 묵살해 왔다. 그 점에서 오히려 진보대통합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견해 차이와 문제점들을 이유로 민주노동당 자주파와 연합하는 것 자체를 사실상 반대하는 진보신당 독자파 등의 태도도 적절하지는 않다. 급진좌파 일부처럼 진보대연합이 민주대연합의 사전단계라고 선험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도 지도부의 노선만 보고는 대중의 염원을 무시하는 처사다.

그래서 다함께와 <레프트21>은 진보대통합이란 이름으로 단일 정당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공동전선 방식의 진보대연합을 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각 정파가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를 유지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강령 십수 개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중투쟁과 선거 대안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정치ㆍ문화적 차이와 오랜 갈등의 뿌리를 볼 때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단결 방식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는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대연합이 선거공학으로 기울어 민주대연합의 부속물이 되지 않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그것이 대중의 염원에 부응하면서도 진보운동의 좌파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이 글은 축약해 <레프트21> 55호(발행 4.23/온라인 입력 4.21)에 실렸습니다. 바로 가기


  1. 이 전략은 상대적으로 평등파 지도자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이때부터 진보정치는 대중투쟁 대신 기업주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다수당 그리고 국가기구와 벌이는 정치협상을 주요 목표이자 수단으로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햇다. [본문으로]
  2. 이 반정부 정서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에 바탕한 반노동계급적 성격 때문에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본문으로]
  3.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한 진보대통합 시민회의나 최근 모임을 만든 ‘진보의 합창’도 통합진보정당이 범야권연대나 연립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본문으로]
  4. 그 점에서 복지국가 강령으로 민주당과도 연합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복지국가단일정당론’은 (진지하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공상에 가까운 목표다. [본문으로]
  5. 만일 민주당의 양보로 민주노동당이 선거에서 성과를 얻게 된다면, 그 성과를 유지하려는 관성과 이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이 스스로 옳았다는 판단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활동 폭은 더욱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즉,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더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의 변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6. 민주당은 최근에도 부자 감세의 하나인 취득세 인하에 합의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직업안정법개악에 한나라당과 합의했는데, 민주대연합에 적극적인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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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7월초에 청탁받아 기고한 글을 업데이트 수정한 것입니다. 새세상연구소 쪽에서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정희 신임 당 대표에게 바라는 내용을 써 달라고 청탁했고, 나중에 나온 웹진을 보니 긍정적 의견과 제 의견, 두 개가 실렸더군요.

청탁받은 시점이 7월초니 지금과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그때보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민주연합 노선 집착과 그에 따른 우경화가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 생각난 김에 전체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둔 채, 분량과 매체의 성격상 포함하지 못한 더 비판적인 내용과 지난 한달 반 동안 변화된 상황을 보충해 블로그에 옮겨 봅니다. 


민주노동당은 당장 이명박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진보진영의 투쟁 태세 구축에 중요한 몫을 해야 한다. 좋든싫든 민주노동당이 진보진영의 다수파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6·2 지방선거 참패 후 친서민·중도·실용을 다시 꺼내고 대기업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 했으나 8·8 돌격대 내각 인선으로 그 본심을 드러냈다.

정부는 타임오프 등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발을 묶으려 하고, ‘4대강 죽이기’를 계속 밀어붙이려 한다. 한국진보연대를 친북 마녀사냥에 이용해 좌파를 단속하고 민주적 권리도 더 옥죄려 한다.

물론 이것은 경기 회복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집권당의 불신과 분열이라는 정치 위기에 빠진 정부의 몸부림이므로 이런 반동 공세가 저들의 강력함으로 보여주는 징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선전포고를 한 만큼 우리 쪽도 맞설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저들의 돌격에 맞서려면 투쟁 태세 뿐아니라 강력한 진보 대안 구축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정책과 세력 모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단결과 강화에 복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이탈하려는 4대강 반대를 강조하거나 PD수첩 불방 사태에 즉각 대응한 것은 괜찮은 대응이었다.

한편, 민주노동당 지도부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율 저조 문제는 아마도 당원들(특히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자발적 열의가 예전만 못하다는 지역 활동가들의 호소를 증명한 바일 것이다.

나는 이 문제와 현재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본다. 대략 세 가지 문제가 민주노동당이 더는 진보적 대중과 당원, 조직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는 것과 관계있다고 본다.

첫째,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상충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각주:1].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대연합 노선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각주:2]

둘째, 민주대연합 노선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진보정당들이 경제위기 시대에 걸맞는 수준의 진보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 민주노동당 분당의 교훈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먼저 해결할 몫으로 남겨진 패권주의 문제가 있다. 이 패권주의는 민주노동당의 비중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의 단결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주대연합 노선을 당장 폐기해야


우선, 민주대연합 노선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표의 총합이라는 단순 산술 계산(선거공학)에서 보면 계급보다 국민이 커 보인다.

이 관점에서는 민주노동당의 현 지도부는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보완관계로 보는 게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대등한 보완 관계가 아니라 진보연합이나 노동자정치세력화(계급) 등이 반MB 민주연합(국민)의 부속물이 된다.

이 말이 실천에서 뜻하는 바는 둘 가운데 민주대연합이 늘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분을 위해 전체의 단결을 희생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진보대연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민주대연합 노선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노골적으로 질주하는 논리적 배경이다. 노골적인 자주파 일부는 (민주대연합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단결에 기초한 변혁 노선을 소아병적 분열주의로 취급한다[각주:3].

그러나 과연 국민이 계급보다 포괄적인가.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핵심 배경은 1997년 1월 대중파업이다. 이때의 정치적 각성과 대중적 자신감이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그때 의석 1백 석의 국민회의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막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법외 노조였고 자신을 대표할 국회의원 한 명 없던 민주노총의 대중파업은 오만한 대통령 김영삼의 대국민 사과와 날치기 철회를 이끌어 냈다[각주:4].

이처럼 조직된 노동계급의 힘은 단지 표수의 총합만으로 계산할 수 없다. 삼성그룹 보스 이건희와 가난한 철거민이 선거에선 똑같이 한 표를 가지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이 비교할 수 없게 차이 나는 것과 같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분단선이 계급에 있고, 진정한 권력은 계급 관계에서 나온다. 자본가들의 권력 원천은 기업 이윤과 무장력의 독점(국가)이다. 노동계급은 이 이윤 생산과 국가 운영을 실제로 담당하는 존재다. 이 점에서 두 계급은 화해할 수 없는 이해관계를 이루며, 노동계급은 사회를 변혁하고 해방시킬 역사적 잠재력(=잠재적 경제 권력)을 가지게 된다[각주:5].

바꿔 말하면, 노동자들은 계급으로 단결하고 계급으로 행동할 때 (지금은 잠재돼 있지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이미 예전에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선 국가다. 당연히 산업화가 매우 진전한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노동계급이 인구의 다수다. 노동계급 중심성 노선과 계급 단결 전략이야말로 실질적인 힘 면에서, 심지어 득표 면에서도 더 현실적이고 민주적이며 강력한 다수파 전략이다[각주:6]

오히려 단순한 선거 논리에 따른 민주대연합 노선은 이 힘을 억제하게 된다. 이것이 진짜 문제다. 계급 연합인 민주대연합은 첫째, 그 구성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르므로 불안정한 동맹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 불안한 동맹을 유지하려면 누군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일부인) 자본가 당들은 결코 희생하지 않으려 한다. 결국 희생되는 건 노동계급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독립성이다.

민주당을 보자. 저들은 이명박 집권 후 복지를 말해 왔지만 부자 증세를 말하지 않고, 4대강 반대를 말하지만 4대강에 찬성한 후보를 공천하며, 이명박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만,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정책(부자 감세와 한미FTA 등)은 반성하거나 철회하지 않았다. 이명박을 핑계삼아 비정규직 악법을 좋은 법이라 호도하기도 한다.

이런 민주당의 이율배반은 기업주들의 당이라는 근본 성격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일부의 기대와 달리 민주당은 사회 변화를 위해 고쳐 쓸 수 없다. 

노동자 진보정당의 지도부가 자본가 정당과 동맹을 고집하면 할수록 노동계급 대중이 독자적으로 싸울 힘을 잃게 되는 이유다. 불필요한 양보와 후퇴를 강요당할 뿐이다. 그래서 이정희 대표의 말과 달리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는 “작은 차이”가 아니다[각주:7]. “작은 차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있는 것이다. 7·28 재보선 패배는 바로 이 점을 대중이 아직 잊지는 않고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민주당은 5월 MBC 파업을 지지했지만, 선거에 도움 되는 한에서만 그렇게 했다. 노조의 파업 종료 후 보도 투쟁(?) 결정은 민주당이 바라는 바였다. 엔지오가 매개가 된 이 압력을 진보정당들은 추수했다.


결국 현실에서 노동계급 운동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전략이야말로 진보 개혁 쟁취의 진정한 동력이다. 이것은 낡은 교과서의 반복이 아니고 거친 구호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에게 혁명당이 되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위기 시대에 실질적인 진보 개혁을 성취할 현실적 전략·전술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급 대신 국민’, ‘투쟁 대신 투표’를 말하는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이 진정한 동력을 파괴하는 재앙의 씨앗인 것이다. 이 점에서 진보대연합도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버전을 구분해야 한다.

진보대연합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의 단결에 복무하고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민주대연합 안에서 지본을 높이려는 선거공학적 시도여서는 안 된다.


진보적 사회 변화의 비전을 제시해야


다음으로 경제 위기 시대에 걸맞는 진보적 사회 변화의 비전을 만드는 데에 주력하기 바란다. 여기서도 민주대연합 노선에서 비롯하는 약점들이 문제가 된다.

이정희 대표가 내세우는 ‘수도권과 청년층 기반 확대’, ‘명쾌하고 유연한 진보’의 문구 자체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이냐다.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는 개별 정책의 진보성에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진보적으로 재편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는 데 있다.

게다가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대에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당장 어렵지 않은 기업조차 만연한 위기가 자신을 덮칠 때를 대비해 비용을 절감해야 하므로 대체로 불황기에는 투쟁이 길고 격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대중투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를 통한 정치·사회 지형의 급진화와 원칙이 분명한 가치·이념 논쟁 없이 진보·개혁 청년 세대를 노동계급의 편으로 끌어 올 수 없다.

이 점에서도 민주대연합과 진보와 노동계급의 단결 노선은 상충되는 면이 있다. 단기 연대가 아니라 연립 정부를 염두에 두는 야권연대라면 정책과 노선을 최대공약수[각주:8] 수준에 맞춰야 하므로 목소리를 낮추는 건 진보진영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첫째가 올해 민주노동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지향 부분을 삭제하려 한 시도다[각주:9].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은 더 큰 진보적 비전 제시로 기타 보수정당들과 차별화하길 포기하고, 민주당이 제시한 무상급식 수준에서 멈췄다.

이란 제재에 대한 반대 논평도 그렇다. 이라크 등에서 봤듯 경제 제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이란 제재 반대 논평에는 세계 평화도 인도적 재난에 대한 우려도 없다. 세상에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게 이유다. 스스로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버리는 논평을 한 것이다.

이번에 당선한 인천의 구청장들은 자치단체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벌써부터 약속한 개혁을 볼품 없게 만들려 하는 듯 보인다. 그와 반대로 중앙 정부에게 재정을 더 내놓으라고 싸워야 할 일이다.

진보정당의 정책 담당들과 국회의원들은 정부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걸 걱정하지 말고, 공공부문과 복지 지출이 늘지 않는 걸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런 비판과 투쟁에 재정 위기를 이유로 집권당과 민주당이 반대하면, 기업과 부자에게 증세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정책당대회에서 나는 쌍용차 사례를 들며 ‘부도기업의 공기업화’ 요구를 채택하자는 안건을 낸 바 있다. 그때 이정희 대표는 직접 나서 ‘국회에서 통과될 현실성이 없다[각주:10]’, ‘진보정당이 뜬구름 잡는 정당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특단의 위기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시 해외 매각이 진행되는 쌍용차에 구조조정 조건 없는 공기업화 말고 어떤 고용보장 대책이 있을 수 있는가[각주:11].뜬구름 잡는 건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위기로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자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진보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노동자 양보론을 포함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캠페인 의제[각주:12]를 수용하려는 태도도 우려스럽다. 애초 민주노동당은 보장성 강화만 수용하고, 보험료 인상은 수용하지 않는 입장이었다[각주:13]. 그런데 이정희 대표가 나서서 이 입장을 뒤집으려 한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작은 개혁도 소홀히 하면 안 되지만, 진보정당 아니면 제시할 수 없는 그런 대안사회의 비전이 없다면 진보정당은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의 보완재에 불과한 만년 소수파 야당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패권주의로 우경화 밀어붙여


끝으로, 이정희 대표가 말한 ‘유연한 진보’의 모습은 정작 당 운영에서 드러나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당 운영은 일사분란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계속 바뀌어 왔다.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분당의 원인 가운데 민주노동당 몫으로 남은 패권주의 문제가 더 심해졌다.

게다가 민주대연합 노선과 우경화는 기존의 당 운영 방식이 민망할 정도로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다.

진보정당의 당 대표란 사람이 자신의 당이 반진보 정권이라고 싸웠던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자들을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말하는데 다수파는 침묵이다.

당은 민주대연합 노선을 집권전략으로 채택한 바가 없는데도 지난 최고위원회와 이정희 대표 등 현 지도부 다수가 ‘민주대연합을 통한 (연립정부) 집권’을 말한다.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 일방 사퇴 건도 어느 공식 의결 단위에서도 결정된 바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제대로 된 해명조차 없다.

일방적 다수결 방침도, 소수파의 어거지도 모두 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 당내 다수파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도 임의로 번복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럴 때, 소수파가 의견을 반영할 수단이 남아 있는가[각주:14].

진보진영 전체에서 민주노동당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거취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됐다. 신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민주대연합 노선과 우경화 추진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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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새 대표와 상견례를 한 자리에서 “민주노동당의 반MB 연대연합, 진보대통합 노선에 그야말로 배타적 지지를 보낸다. 2012년을 앞둔 두 가지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는 길에서 민주노총은 제2의 정치세력화, 제2의 노동자 정치운동을 한다는 결의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모순을 일으킬 것이다. [본문으로]
  2. 현재 당분간 전국적 선거 일정이 없고, 진보 양당이 민주대연합 노선을 배제하지 않고 있어서 민주연합을 반대하는 것이 곧바로 대안적 진보연합 건설 논의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3. 민주대연합 노선에 푹 빠지다보니 이젠 초기에 보이던 부끄러움마저 잊었다. 가령 내 기사를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올렸을 때 달린 막말 댓글이 한 사례다. [본문으로]
  4. 이 파업으로 김영삼은 완전히 레임덕에 빠졌다.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구속된 것도 바로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이 성공한 여파였다. [본문으로]
  5. 달리 말해 자본가계급은 노동계급을 억눌러 지배함으로써만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자신들의 현실적 권력이 노동계급의 (암묵적이든 아니든) 복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노동계급이 잉여노동 제공을 거부한다면 저들이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현실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지만, 실천으로 구현하려면 좀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본문으로]
  6. 장기 관점에선 득표력에도 더 이득인 것이다. 진보정당의 득표가 는다고 자동으로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며 그래서 선거주의(표 만능주의)에 빠지면 안 되겠지만, 득표의 성장 자체는 진보·개혁 대중에겐 일시적 자신감을 줄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7. 그 대가는 단지 선거에서 독자 후보를 못 내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과 정치 노선 자체가 우경화하게 된다. 내가 다음 둘째 제안에서 다루려는 게 바로 이 문제다. [본문으로]
  8. 어감상 최소공배수를 비유어로 많이 쓰긴 하나, 내가 볼 땐 최대공약수가 더 적확한 비유인 듯하다. 100(좌파)과 10(민주당)의 최대공약수는 10이다. [본문으로]
  9. 이 시도는 이정희 대표 체제에서 더 목적의식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온건하게 바뀔 당 강령 개정안은 아마 내년에 개최할 정책 당대회에서 통과될 것이다. 지금처럼 자주파 지도부가 이정희 대표를 계속 추수한다면 말이다. [본문으로]
  10. 여기서 주요 고려 사항은 민주당이 동의해 주냐 였을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11. 정부(산업은행)는 상하이차와 비슷한 성격의 인도 마힌드라 사를 쌍용차 우선 매각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본문으로]
  12.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다룰 것이다. [본문으로]
  13. 진보적 보건의료운동 진영에서도 전 국민 1만1천 원 인상 운동에 반대해 정부와 기업주들의 부담을 늘리는 1백만원 상한제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본문으로]
  14.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만 10년을 넘긴 당원이지만, 이 당에서 활동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품게 된다. 사실 앞서 지적한 최근 민주노동당의 문제점들은 내가 굳이 당원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비판해야 할 문제들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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