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이어서 시의적절한 분석을 늘 발전시키려 노력하지만, 노력의 부족으로 결국 마감이라는 시간의 벽에 부딪힌다. 결국 마감을 넘겨 스스로 과거의 주장을 단순히 답습하거나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글을 내놓을 때가 있다. 

돌아보면, 생각을 뿌리까지 발전시키는 습관을 많이 잃어버린 듯하다. 결국 정신과 신체의 에너지를 총동원해 문제를 파헤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지난해 몇 가지 기사에서 드러난 실수들, 매의 눈으로는 보였겠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부족함 등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요소들을 평가하면서 이 요소들에 어떻게 ‘개입’하고 ‘작용’해서 사태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냐는 관점이 부족한 것에 있었던 듯하다. 

변화의 관점. 자연 상태의 변화와 인간의 의식과 실천이 가져 오는 변화는 같은 듯 다르다. 자연 상태의 변화는 만물은 변화한다는 대전제를 확증시켜 주지만, 변화의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줌 지배자들이 자신의 체제를 영구히 하려고 설파하는 온갖 현상 유지의 거짓 이데올로기들, 체제 유지라는 저들의 목적에 결박당한 개혁주의가 추구하는 ‘겉모습 변화에 만족하기’에 혁명가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변한다(바꿀 수 있다)’는 말이 우리에게 줄 선물은 아무것도 없다. 

의심과 질문보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게 많아지고, 도전·모험을 하고 저항하기보다 적응할 게 늘어난다는 것은 지금의 사회적 관습과 낡은 사고, 그리고 그들의 모태인 체제가 지속(영원)할 거라는 가정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노동계급 대중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 확신이 부족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건너가려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관념론자들과 다른 것이 현실 그 자체(자본주의)에서 변화(노동계급이 주도해 사회를 변혁하는 일)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점이라면, 기계적 유물론자들과 다른 것은 그 가능성에 인간(집단)의 의지와 목표의식이 인간의 집단적 실천으로 작용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정한 혁명적 변화의 철학은 계급투쟁의 이론, 계급투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정치 이론은 결국 어느 계급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냐 하는 것이니까.

그 점에서 모 동지와 나눈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술자리는 새해를 맞기에 참으로 좋은 자리였던 듯하다. 모 동지는 바로 그거라며 이 어려운 한자숙어를 메모지에 써 갔다. 중학생 때 한문부였다는 자랑과 함께... 올 한 해 울산의 투사들과 상담 잘 하시길! 

그냥 하루가 넘어가는 것일 뿐인데, 인간의 문화는 어느 하루에 일년 단위의 의미를 부여해 놨다. 그래서 사실은 편한 마음으로 넘어가기에는 껄끄러운 하루였다. 

스스로 세운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 채 한 해를 넘기는 게 싫어서 열심히 “회피 뉴 이어!”를 외웠지만, 해는 떴고 사람들은 하루 밤 사이에 1년이 지났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간의 바람을 신경쓰지 않고 시간은 가고 세상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주어진 세상을 조각하든 조각내든, 작은 정이나마 쥘 수 있는 한, 머리는 돌아 보고 내다 보며 구상하고 결정해야 하고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며 발은 부지런히 걷고 뛰어야 한다. 인간의 의지는, 혁명가의 자의식은, 무기력하거나 동요할 틈이 없다. 

우리는 돈의 노예도 햄릿도 아닌, , 수천 년 천대받은 노동대중이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일에 가장 크게 일조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늘 즐겁고 자부심에 넘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한겨울에 집에서 키우는 선인장에 꽃이 피었다. 붉은 빛을 낸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온실 속의 화초겠지만, 단지 자연이 이 연약한 생명체에게 부여한 자연의 시간을 거슬렀다는 사실이 그러기를 바라며 무언가를 한 사람들에게는 참 기특한 느낌을 준다. 


※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이 글로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한 바 이루세요~ 그러려면 뭉쳐서 싸워야 하는 건 아시죠? 함께합시다!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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