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남북 상호 폭격 사건이라 부르겠다.

왜냐면, 첫째, 이번 군사적 긴장도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에 기초한 지난 20년 간의 대북 압박을 근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대중 전략의 한 부분이다. 둘째, 연평도 포격 전후로 남한 군대의 대응도 명백한 도발의 성격이 있다.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쟁점이 되는 북방한계선부터 보자.

남한은 이를 국경이라 하고, 북한은 이를 1950년대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북의 연평도 포격 전 남한의 3천여 발 포격은 북한 입장에서 자신의 영토에 대한 사격인 것이다.

1999년 이후 3차에 걸친 서해 교전이 모두 이 쟁점이었다.

그렇다면, 북방한계선의 진실은 무엇인가?

휴전 협상 당시 이승만은 휴전에 반대했다. 남한이 북한을 공격하면 북쪽이 반격할 것이고 전투가 확대되면, 미국이 싫어도 참전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무력 북진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해도 연안을 계속 공격했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했다. 이승만의 도발에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아이젠하워 정부는 반이승만 쿠데타까지 계획했을 정도다.

이런 배경으로 남한 해군이 다시는 황해도 침공을 못하게 북쪽으로 더는 진격하지 말라고 그은 선이 북방한계선(NLL)이다.

쉽게 말해 남한 해군의 출입금지선으로 남한군이 소속된 유엔군 사령부의 내부 규정 같은 것이다.

비밀해제된 미국 극비문서들을 뒤지고 분석해 국내에서 이 사실을 체계적으로 완전히 밝혀낸 故 리영희 선생은 북방한계선이라는 명칭만 봐도 “소학교 2학년생의 아이큐로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가치중립적으로 봤을 때 이번 연평도를 배경으로 한 포격 사태는 남북이 상호 도발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 .

그렇다면, 문제는 이런 한반도의 상시적인 군사적 긴장이 어디에서 비롯했는가다.

첫째는 분단의 책임 소재다. 38선은 누가 그었는가. 미와 소 두 강대국은 자신들끼리 남북 분할 점령에 합의하고 신탁통치 주장하며 남북에 점령군으로 주둔했다.

이들이 냉전 초기 대리전으로 힘겨루기를 한 게 한국전쟁이다.

이후 미국은 남한을 대소 전초기지로 여겼다. 1950년대에는 정전협정을 어기고 수백 기의 전술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했다. 미국은 1991년에 이 핵무기들을 철수하면서야 핵무기 남한 배치 사실을 시인했다.

1969 년부터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하는데, 한미 합동 군사훈련으로 대북 핵 공격 상륙작전 훈련이다. 한미의 육해공 3군이 모두 참여하는데, 미국의 동맹국 합동훈련 중 규모 최대다. 실제 전쟁 규모인데, 평균 20만 병력이 참가했다.

제네바 합의 후 중단됐으나 지난해 키 리졸브 라는 이름으로 바꿔 실시했다.

1968년 1월 23일 북한은 원산항 앞바다에서 미국 전자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푸에블로호는 전자통신 인터셉트 기능이 있는 세계 최첨단 첩보함이었다.

미국 공해상에 있었다며 항의하고 핵 항공모함 2척 포함 25척으로 구성된 제 77 기동함대를 원산앞바다에 배치하며 북한을 협박했으나 10개월 만에 영해 침공을 시인하고 선원 36명이 풀려났다.

1981 년 11월 미 육참 총장 에드워드 마이어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통상적 전쟁에서도 전술 핵무기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이는 한국에도 적용된다. 핵무기 사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판단해 미 대통령에게 건의한다"고 발표했다. 북한도 핵공격의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둘째, 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다. 냉전 후 군사적으로는 압도적 최강이 됐지만 그 순간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냉전 초기 세계 최대 채권국이던 미국은 지금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그래서 미국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군사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전 세계에 퍼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압도적 군사력과 쇠퇴하는 경제력의 교차점은 점점더 군사력에 의존하려는 미국의 동기를 보여주는데, 한편에서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맥락에서 미국은 세르비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군사적 강대국들이 몰려 있는 동북아시아에선 북한을 악마화해 북한을 다루는 관리자로서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 했다.

반면, 소련은 냉전에서 패배해 몰락하면서 남한과 국교 정상화(1990년)를 하고는 북한과 동맹관계(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를 단절했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데, 소련의 핵우산을 잃어버린 북한은 자체 핵개발을 시도한다. 이것이 1990년대초 북핵 위기의 배경이다.

사실 남한도 박정희 정권 때 미국 몰래 핵기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남한은 1972년 미국 몰래 프랑스 우라늄 재처리 시설을 도입했다. 그리고 핵탄두와 미사일 개발을 동시에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이 알아내 이 계획은 백지화됐고, 1978년 미 대통령 카터가 방한해 박정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이 문제 등으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는 말도 있다.

당시 박정희가 핵무장을 추진한 배경은 미국이 혈맹이라던 남베트남 정권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패배하면서 미국의 우산을 불신했기 때문이다.

당시 충격으로 닉슨은 해외 개입을 줄이면서 주한미군 한 사단을 철수시켰고, 카터는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키려 했다.

게다가 당시는 북한이 경제와 군사력에서 남한보다 앞서던 시절이었다.

결국 남북 두 정권은 모두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상대방 정권에 맞서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볼 때 핵무장을 시도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최초의 북핵 위기 후 수 차례 북미 합의와 6자회담 합의, 남북미 합의가 나왔지만 매번 자기에게 불리한 조항을 깬 것은 미국이었다.

6 월 15일 전쟁개시일을 잡아 놓고 전쟁 직전까지 갔던 1994년 우여곡절 끝에 이뤄낸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이 한 약속 - 경수로와 중요 제공 약속은 간단히 무시됐다. 오히려 1998년엔 나중에 텅빈 동굴로 밝혀진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있다며 폭격 운운했다.

2000년 북미공동선언(코뮤니케)은 부시 정권이 뒤엎었고, 2002년 초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북한 핵 보유 선언 후 이뤄진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며칠 지나지 않아 파탄이 났고, 이라크에서 궁지에 몰린 탓에 흔치 않게 미국이 양보한 2007년 2·13 합의도 미국은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6자회담보다 북미간 담판이 더 중요하다고 간청하는 이유다.

이 기간 패턴은 북한 위협을 빌미로 긴장이 고조되다가 북한이 양보하는 수준에서 합의에 이르지만 그나마 미국이 불리한 내용은 약속을 파기하면서 다시 북한이 도발해 협상을 촉구하는 식이었다.

이것이 북한의 벼량끝 외교의 실체다. 북한은 벼랑끝으로 미국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벼량 끝에 내몰린 상태에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북한 핵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 압박은 정당한가? 그렇지 않다.

미 국은 이미 1950년대에 남한에 비밀 핵무기를 들여다 놓은 당사자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해 해마다 사찰을 받았지만, 예를 들어 제국주의 미국의 중동전략에서 경비견 구실을 하는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하지도 않았는데, 제재를 받기는커녕 미국의 후원으로 수백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1만 기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한 유일한 나라인 미국이 북의 핵 무장을 두고 이처럼 위선적인 것은 그것이 남한일본중국대만의 연쇄 핵무장(중국은 핵증강)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관리하는 동북아 체제에 균열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미 국은 따라서 북핵을 쟁점 삼아 동북아 나머지 국가들을 견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냉전해체 후 세계패권을 유지하는데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할 새로운 적이 필요하기도 했는데, 전략 요충지에 자리한 인기 없고 가난한 제3세계 스탈린주의 국가는 좋은 표적이 됐다..

이런 미국에게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정권의 수사와 달리 제국주의 반대가 아니라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하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미 1994년 카터 방북 때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고 했고, 김정일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균형을 위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정한다는 발언한 바 있다.

중국과 소련의 보호를 믿기 힘든 현실에서 미국과 화해를 모색했으나 미국의 동북아 전략 때문에 오히려 압박을 받아온 게 한반도 위기의 근본 배경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후원한 미국이 북한에게 민주화하라고 하는 건 웃기는 위선이다.

이명박은 지난달에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해 놓고 지금은 국지전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청와대와 국방부 해명대로라면 빈 바다에 포탄 1천 발을 쏘려고 이지스함과 F15K 전투기 수 대가 전투 준비를 하고 대기한 것인가.

나는 북한이 핵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대미 저항 수단으로 채택한 것은 이 체제와 정권이 지배체제의 강화와 유지의 관점에서 미국이나 남한과 갈등하는 것이지 인민의 필요를 소중히 여기는 정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북한은 국가 관료가 통제하는 국가자본주의 국가다. 이 국가가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자기 지도자들과 국가기구의 위신을 추구한다.

앞서 주한미군 발언에나 2005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추구하는 WTO 가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북한 지배자들은 결코 사회주의거나 반제국주의 투사가 아니다.

연평도 남북 상호 포격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첫째, 미국의 약화. 미국은 북한에 대한 관리를 중국을 통해 했음. 이것은 동북아에서 최고 관리자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 둘째,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 셋째, 한미일 동맹의 여전함과 호전성. 넷째, 러시아가 남한의 추가 포격에 반대하며 안보리를 소집하는 등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다섯째, 샌드위치된 이명박 정부. 지난달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고 이번 달엔 군사 충돌을 불사.

첫째 둘째 넷째가 모두 미국 패권전략의 어려움과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자기 이해관계(세계 패권이든 지역 패권이든)에 따라 한반도 문제를 다루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도 대안이 될 수 없다. 휴전선 남북의 두 사고뭉치 정권도 대안이 될 수 없다.

항 구적 평화는 동북아와 유럽의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무너뜨려야 가능하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기업들간의 경쟁인데, 이것이 국제 범위에서 경쟁할 땐 자기 국가의 군사적 보호와 연결된다. 기업 경쟁이 국가간 지정학적 군사 경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위계질서로 이뤄진 체제다. 불안한 1등 패권국가 미국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폭력적으로 세계에 강요하려 한다.


연평도 포격 사태- 동북아는 어디로? 라는 주제로 한 모임에서 발제한 내용.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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