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가 내세우는 “법과 질서”가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갖 편법·불법으로 권력과 부를 쌓아 온 특권층 인물들을 총리·장관 후보자로 내정해 곤경에 빠지자, 박근혜는 ‘그렇게 트집을 잡으면 어떻게 일하느냐”며 도리어 역정을 냈다.


박근혜정부 첫 법무부장관 내정자인 황교안은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법은 언제나 지켜진다는 신뢰”를 강조한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드러났듯이] 황교안 본인이야말로 그 신뢰를 앞장서 깬 당사자 아닌가.


그래서 첫째, 박근혜의 법과 질서는 무엇보다 매우 위선적일 것이다.


‘불법파견 자행, 대법원 판결 이행 거부’로 법질서 위반 2관왕인 현대차 정몽구는 박근혜 취임식에 초대돼 귀빈석에 앉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자들은 경찰에게 밀려났다.


최시중 등 권력형 비리 사범이 사면될 때, 권력형 비리를 폭로했던 노회찬은 의원직을 잃었다.


오히려 박근혜는 취임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방문해 “극단적인 불법투쟁, 잘못된 관행을 반드시 개선해 …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이 말이 박근혜식 법치주의의 둘째 특징이 될 것이다. 물론 일부 기업주에게도 처벌 시늉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신세계·이마트 압수수색처럼 말이다. 그러나 ‘특권 세력엔 솜방망이, 저항운동에는 쇠방망이’라는 본질이 뒤바뀔 순 없다.


이런 본심은 박근혜의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육법당(군사정권 시절 육사·법관 출신 중용을 일컫는 말)”이 부활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법관 출신을 중용했지만, 하나같이 특권층의 이익 수호에만 앞장서 온 강성 우파들이다.


법무장관 내정자 황교안은 국가보안법, 집시법 해설서를 개정판까지 내면서 반동적 해석을 매뉴얼화해 온 자다.


그는 2009년 용산참사 강제진압의 주원인이 “농성자들의 … 불법·폭력성 때문”이고, 국가보안법이 “개정이나 폐지가 논의될 수 없는 국가의 기간법”(으뜸이나 본바탕이라는 뜻)이라고 말한 자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 불법이라는 소신파 공안통이다.


권력기관 감찰을 담당할 청와대 민정수석에는 일명 “강기훈 사건” 수사를 맡았던 곽상도가 임명됐다. 조작 혐의로 재심 과정 중인 이 수사에 연루된 검사들 중 안대희, 남기춘 등이 박근혜 선대위에 중용됐다. 당시 이들을 총지휘한 법무장관이 박근혜 후견그룹 7인회의 김기춘이다.



사실, 이런 억압적 “법치주의”는 신자유주의 우파 정권의 전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법과 질서”는 영국 전 총리 대처의 간판 슬로건이기도 했다. 미국의 레이건도 마찬가지였다.


신자유주의는 말로는 국가가 경제에서 물러나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에 ‘자유시장의 기강(질서)’를 바로 세우는 주체는 결국 국가다.


그래서 대처는 “자유는 법이 만든다”고까지 했다. 그는 경찰력 강화와 형량 강화, 사법 행정 개악을 밀어붙였고, 노동자가 파업을 하기 매우 어렵게 법을 점차 뜯어 고쳤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이들은 범죄 통계를 비틀어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 소련의 안보 위협도 크게 써먹었다.



신자유주의


당시 대처 정부는 극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집권했다. 늘어나는 실업과 복지 삭감, 반민주 개악에 대한 저항운동을 제압하려는 “법과 질서”였으므로 이들의 의제는 각별히 반동적이었다.


지금 박근혜정부도 경제 위기 조짐이 커지는 상황에서 들어섰다. 지배계급이 똘똘 뭉쳐 박근혜를 민 것은 위기 상황에서 “강한 우파 정부”를 바라기 때문이다(박근혜는 경찰력 증강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도리어 박근혜정부는 취임초부터 불안정과 위기를 겪고 있다. 복지 공약 뒤집기와 비리 인사 내정 등으로 벌써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 밑으로 떨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내각을 단 한 명도 임명 못 한 채 “나홀로 취임”을 해야 했다.


박근혜가 임기 첫 해부터 삐걱거리면, 박근혜 정부는 예상보다도 빨리 우파 본색을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지지층 이반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경찰청 소속 치안정책연구소는 《치안전망2013》에서 역대 정부의 임기 첫 해 집회와 시위가 대폭 증가했다고 지적하며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결론은 1998년 이후 절반 넘게 줄어든 보안경찰을 다시 늘리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억압적 법치주의는 민주적 과정보다 법 집행의 효율성을 더 강조한다. 그래서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법 개정 방식이 어려울 땐 행정부가 처리할 수 있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악 등으로 각종 개악을 시도할 것이다.


최근 철도 민영화나 의료민영화 도입 시도가 바로 이런 시행령 개정 방식에 의존했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성공해 사회 세력관계가 우파에게 유리해지면 각종 법 개악을 본격 추진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나 보안경찰을 동원한 진보진영 사찰도 늘어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일들을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려 할 것이다핵실험으로 조성된 긴장과 북한 위협론을 부추겨 좌파를 ‘종북’으로 몰아칠 것이다이주자 연계 테러 위협 등 각종 범죄 공포도 조장할 것이다지난해 이미 학교폭력과 주폭 등을 그렇게 활용했다‘안전’행정부로의 명칭 변경도 이런 ‘안전 담론’의 맥락이다


《치안전망2013》은 국가기관과 시민사회가 ‘전 사회적으로’ “치안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한다그렇게 강화된 민생치안 ‘역량’을 ‘시국치안’으로 돌릴 것은 뻔한 일이다


범죄 공포를 부추기는 방식의 효과에 관해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존 몰리뉴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우리가 이웃과 직장 동료들을 두려워할수록 지배자들에 맞서 단결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우리가 더 원자화되고 고립될수록 우리의 저항력은 약해진다. … 흉악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일반적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지배자들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쉽게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부패 내각과 최근의 위선적인 법 적용 따위는그 자체로 ‘법치[의 이름으로 벌이는 우파적 강압통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저들의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좌파는 위축되지 말고, [집요하고 단호하게] “법과 질서 쇼”의 위선과 허구, 진정한 목적을 폭로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법 조항과 절차를 활용할 수 있지만, 법 내용에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판결, 의회 절체에만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행 법 준수에 사고를 얽매지 말고, 대중의 즉각적 필요를 기준점으로 삼아서] 각종 개악과 복지 삭감에 맞서 과감하고 실질적 대중투쟁을 건설하는데 애를 써야 한다. 법의 제정뿐만 아니라 적용 과정에서도 ‘[계급간] 힘의 균형’은 영향을 미친다. 


법치주의를 빙자한 저항운동 탄압에 노동운동이 단결해 맞서야 한다이를 통해 진정한 ‘국민 안전’은 경찰력 강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과 실업 따위를 없애는 사회 개혁과 ‘99퍼센트의 저항 연대’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저들의 “법과 질서 쇼”가 사회적 세력관계를 우파 우위로 만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이 글은 <레프트21>99호에 축약해서 실렸습니다. ☞ http://www.left21.com/article/12657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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