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모은 정의당 비례 선출 결과에 충격과 실망, 허탈감을 느끼는 정의당 지인들이 여럿 보인다. 결과 보니, 앞순위는 예상과 많이 닮았지만 말이다. 20세기에 시작해 십수 년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지낸 나도 알고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나혼자) 여기는 이름들이 다 뒤로 밀려서 당황하긴 했다. 꽃도 못 피워 보고 강제로 세대 교체 당하는 느낌도 들 듯하다. 그럼에도 성찰의 계기로 삼고 더 단단한 좌파 정치인들로 더 성장하길 바란다.
결과표를 주욱 보니, 뽑힌 후보 면면과 별개로(개개인의 자질이나 성향을 평가할 정보가 내겐 없다), 강력한 어퍼머티브 액션이 일부 노동운동 고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듯 보인다. 환산 전 단순 득표순으로 하면, 고득표는 대부분 현직 노조 간부, 노동계 출신, 노동계 연루자들이다.
시민선거인단 득표에서도 조직노동 출신자들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선거인단 득표에서 2000표를 넘긴 사람이 10명인데, 1명 빼고 광의의 노동운동(노조, 노동단체 등) 출신이고, 그 중 3인은 민주노총 중집 이상 출신이다.
그런데 이들 중 저명한 일부(특히 고위 지도자 출신 또는 고참들)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탈락했다. 진보정당 운동 경력이 화려한 일부 유명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으로 비친 듯하다.다득표를 하고도 뒤로 밀려서 상심도 큰 듯하다.
이런 이번 비례 선출 결과는 정의당 비례선출 제도의 취지/설계와 관계 있어 보인다. 최종 순번 정하기에서는 외부 선거인단보다는 당원 득표가 더 영향을 미쳤고, 총 득표보다는 전략명부 순위 같은 어퍼머티브 액션 요인들이 최종 당선권 순위에는 더 영향을 미친 듯하다. 아마 일부 노동계 출신자들은 강력한 선거인단 조직으로 제도적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계산했으나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확정된 비례 순번 10번까지의 명단을 보면, 조직노동이 배제됐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노동계 출신/연루자가 과반이다. 역설적으로 정의당의 노동 기반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노동계 출신이냐 아니냐보다는 노동계 안에서도 누가 더 외연 확대에 유리한가, 즉 (고정 지지층 밖에서 더 소구력을 가질 수 있는가)가 당원들에게도 더 유력한 기준이 된 듯하다. 당원 득표가 외부 선거인단 득표보다 최종 순번에 더 영향을 더 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점에서 그동안 정의당의 구조와 정치 문화가 의원 중심 운영, 의원 배출 중심 활동주의(선거 득표 활동 중심)에 너무 편향돼 왔던 것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분석이 가지는 함의는 정의당이 좀 더 왼쪽으로 가기를 바라는 당 안팎의 좌파들에게는 더 긴 호흡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대중 스스로 각성하고 정치 지형을 바꾸는 대중운동 전략 없는/배제한 선거중심주의는 현상(현재의 정치의식, 정태적 진단)에 대한 추수/굴복으로 귀결되기 쉽다. 선거중심주의가 위험한 이유다.
앞으로 이런 발상과 구조.정치 문화를 바꾸는 게 쉽지 않을 테고, 당 자체로는 결코 바뀌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런 선거중심주의 정치가 진보계의 주류로 일방적으로 굳어지는 경향에 도전하고 문제 제기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물론 그 도전은 당내 투쟁에 몰두하거나 단순히 약점을 폭로하는 식의 내향적·선전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당 밖의 노조, 사회운동, 좌파들과 연대해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해야 성과가 있을 것이다. 공동전선에 관한 코민테른 초기의 풍부한 논의와 전통을 오늘날 이론과 실천에서 되살려야 하는 이유다.
http://www.justice21.org/12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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