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개각으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고위 공직자들과 이 나라 기득권 엘리트들의 추한 일상이 곳곳에서 까발려졌습니다. 결국, 김태호 총리 후보 등 네 명이 자진 사퇴를 했죠.

뇌물, 투기, 위장전입 등. 네 명만 문제가 아닙니다. 경쟁교육=특권교육의 앞잡이인 이주호나 유일한 생계수단인 일자리를 빼앗지 말라는 노동자를 살인무기에 가까운 진압 도구와 작전으로 진압한 일을 ‘보람’으로 여기는 조‘혐오’ 같은 자들도 자리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이젠 개각에서 유임된 유명환의 딸이 문제가 됐네요. 무단 결근하고 자기 부모 통해 해결하는 등의 일로 별명이 “외교부 3차관”(아버지인 유명환이 당시 외교부 제1차관[각주:1])이었다고 하죠. 이번 특채 응시에선 채용 자격 자체를 유명환 딸에 맞춰 바꿨군요[각주:2].

결국 방금 사의를 표명한 유명환은 민주당 찍은 젊은이는 모두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막말을 했던 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외교부 공무원 직을 세습하는 유명환이야말로 북한으로 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새로 임명할 자들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기존의 인물들 모두 문제가 넘치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이 나라 주류 특권층의 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쓰는 인재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것이 계급사회에서 가진 자들에게 만연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억울해 하며 감싸주기도 잘 합니다. 물론, 가끔은 대중의 불만이 너무 클 때는 나머지들이라도 살려고 다른 놈을 쳐 내기도 합니다.

그게 집권당 내분이나 여야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더 큰 시야에서 보면 둘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최근 민주당이 제 식구 비리 감싸는 걸 보면 이 문제는 더 선명해집니다.

민주당은 뇌물 먹은 의원 강성종의 구속을 막으려고 한나라당과 방탄 국회를 해왔고, 지난 체포동의안 처리도 사실상 반대했습니다. 이때 한나라당 당론은 체포동의안 찬성이었는데, 당론 이탈표가 꽤 되더군요. 전북 고창군수 이강수의 성희롱 사건도 여태 미적지근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의 뇌물 사건이 또 터졌구요.

민주당이 지금은 이명박의 반민주 정책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야당하던 흉내를 내지만 그들은 불과 3년 전에 10년을 집권해 온갖 호사를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권력을 이명박과 별 다를 바 없는 정책을 추진하고, 한나라당 엘리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특혜를 추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기업주들의 후원에 기대는 기득권 정당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배계급을 포함한 기득권 집단 안에서 더 주류인 당(한나라)과 조금 덜 주류인 당(민주당 등)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1987년 이후 가장 많은 국가보안법 구속자를 냈고, 노무현 정부는 가장 많은 노동자를 구속했습니다. 반면, 살인마 전두환·노태우는 사면됐고, 수백억 탈세한 이건희는 아예 재판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낫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정부는 아니었습니다[각주:3].

그래서 어느 분들의 예상과 달리 민주당은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별로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 한 보좌관은 트위터에서 전직 국회의원 지원 금지법안 발의 서명을 민주당 의원들도 좀체 하지 않으려 받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이런 자들이 국회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체제에서 삼권분립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출신과 정책 지향에서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에 국회가 행정부를 진정으로 견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국회에서 위장전입 같은 건 합법으로 바꿔주자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1인1표는 현실에서 공평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습니다. 늘 뭔가 세상 돌아가는 데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제도교육과 기성언론, 형벌제도는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쥐어줍니다. 

돈이 있기 때문에 늘 더 많은 선전수단을 사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자신들을 위해 동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들을 만들어 냅니다. 수권능력이니, 품위니, 학벌이니 하면서 자신들을 포장합니다. 급할 땐 지역감정 같은 것도 이용해 먹습니다. 그래서 돈과 권력을 더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표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 점에서 자기들끼리는 당연하게 여기지만 대중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욕망을 추구하고, 속마음을 교환하고 협력하며, 때론 경쟁하기도 하는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가 진짜 권력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출되진 않았지만 이들이 각 권부의 수장으로, 때로는 뒤에서 국가기구와 대기업, 조중동 등 언론 등의 연결망을 짜면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법보다 세다는 ‘삼성공화국’도 어쩌면 이 네트워크가 가진 다양한 이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각종 사회단체들이 필요합니다.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에 맞설 노동자와 없고 차별 받는 자들의 조직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대중은 그런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집단적인 저항을 할 때만 의식과 삶, 세상의 혁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이 할 일은 민주당 꽁무니 따르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진보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라면 업무상 불가피하게 기존 기득권 정당들의 정치인들과 연관을 맺더라도 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칫 근묵자흑[각주:4]되서 진보정당이 하는 기존 체제 비판, 요구와 대안이 모두 명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헌정회육성법도 그런 점에서 문제인 것입니다. 이정희 대표의 해명을 보면 이 대표가 법안의 성격을 몰라서 그런 판단을 했던 게 아닙니다. “이것까지 반대할 수 있나” 하고 판단했던 것 자체가 다른 당 의원들의 눈치를 봤다는 것이고, 그들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예리한 대립각을 스스로 무디게 하면서 그 구조적 문화에 ‘적응’해 간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이번에는 8월 31일 관보에 신규 선출직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민주노동당 소속 전북도의회 이현주 비례의원의 투기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6·2 지방선거 때 전북도당 유세 모습.


이현주 의원은 보건노조 군산의료원지부 지부장으로 민주노총의 간부 활동가인 분입니다.노동운동 출신의 진보정당 공직자에게서 드러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파 언론의 물타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의원의 직장인 군산의료원에서 휴직 처리를 해 주지 않아 안팎에서 지방공기업 직원과 의원직을 겸직한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 터에 이런 식의 도덕성 흠집내기는 지역에서 진보정당의 위세를 매우 약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현주 의원은 부부 명의로 아파트 네 채(각각 두 채씩)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중 두 채가 소아마비 장애인인 친동생을 위해 마련한 것이고, 친정 부모 명의의 다섯 채는 자신과 상관없는데 직계존비속의 재산을 함께 신고한 결과일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진보정당 정치인이라고 무조건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원래 물려받은 재산이 많다면 그것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사느냐가 문제겠지요.

그 점에서 일부 언론이 자극적으로 아홉 채 보유 어쩌고 하는 건 좀 과장입니다. 자산가 집안에서 서로 명의를 주고 받으며 투기를 할 수준도 아닌데, 부모의 투기까지 정치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부모 앞으로 명의 돌려놓고 부모 명의의 재산은 신고하지 않은 작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 정황을 따져 보면 특권층 비리와는 명백히 다르고 탈세 사실도 없으며, 차익의 규모도 적은 듯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동산 다주택 소유를 선택했다는 점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의원의 해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새로 삼학동 대우아파트로 동생의 거처를 옮길 때 처음 동생에게 사 준 나운동 주공아파트를 왜 처분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은행 대출도 총 1억 원 가까이 받았던데요[각주:5].

관보에 실린 아파트 내역과 군산 지역 언론, 이 의원의 해명을 종합하면(현재까지 사실로 밝혀진 바), 나운동에 소재한 아파트 두 채가 자산 증식용으로 구입한 것으로 보입니다[각주:6]. 굳이 살지도 않는 집을 적어도 두 채나 보유한 건 노동운동 간부 활동가로서나 진보정당의 공직자로서 적절한 처신으로 볼 순 없습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어렵게 구입해 사는 집 한 채의 가격이 올라 자산이 늘어난 것과 다릅니다. 우리가 부동산 투기를 비난하고 진보정당의 공개적인 정책으로 1가구 1주택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의도적인 자산 투기가 부동산 가격을 올려 그 비율 만큼 따라 상승하지 못하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자산을 사실상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해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시급히 사건을 판단하고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으로만 보면, 특권층 비리와는 다르므로 의원직 박탈 같은 징계는 과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역 비례 의원이면 전라북도 전역에서 개인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표로 당선한 것입니다. 진보정당답게 판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길 바랍니다.



  1. 외교부 제1차관은 인사와 기획조정을 담당하는 장관 다음의 실세. 차관 시절에 해고 걱정 없는 계약직으로 들어와 아버지가 장관되니 이젠 정규직으로... 정말 누구 말대로 유명환의 딸이 특채로 뽑힌 직무의 전임자는 왜 그만 뒀는지까지 궁금해지네요. [본문으로]
  2. 이쯤에서 복지부장관에 내정된 진수희가 자기 딸의 미국 국적 부분을 질타하는 여론에 “나라 위해 큰 일을 할 애”라며 안타까운 해명을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ㅋ 이 정부를 보면 그 큰 일 안 해주면 좋겠어요. [본문으로]
  3. 두 정부가 집권할 때 받았던 기대감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 기대가 무너진 대가가 2007년 대선에서 높은 기권율과 이명박 당선이었습니다. [본문으로]
  4. 근묵자흑 [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비유한 한자성어임. 이 글에선 나쁜 무리와 어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뜻으로 썼음. 좋은 사례로도 쓸 수 있음. 같은 뜻의 대구가 되는 성어로 근주자적[近朱者赤]이 있다. [본문으로]
  5. 이 의원은 당시 추가 대출을 4천9백만 원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6. 나운동 쪽 재건축이 많던데, 재건축 프리미엄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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