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 그 시절에 사람들은 이렇게 비꼬았지.
“큰 도둑에게는 문이 없(어도 된)다. / 또는 문이 (필요) 없다.”
그는 총칼로 들어선 큰큰도둑들과 손잡아 87년 항쟁의 성과에 반동의 일격을 가했지. 그러나 거대 보수대연합 내 암투 속에 꼬이던 상황이 공교롭게도 91년 투쟁 덕분에 풀리고 운좋게 정권을 쥐었고.
그런데도 뜻밖에 정권 초기 난데 없는 환상이 일었지. 그러나 그 환상은 얼마 못가서 노동탄압, 공안탄압, 냉전 정책, 한반도 전쟁위기 국면으로 깨지기 시작했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전두환 노태우에 면죄부를 주려다가 역풍을 맞았고,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는 더 큰 역풍을 맞았지. 정권은 대중파업과 불법 대선자금 부패 규탄이 맞물린 태풍에 휩쓸렸다네.
그 와중에 경제공황까지 터지면서 급기야 집권당이 사분오열돼 일당국가가 해체되는 일이 벌어졌지. 그 와중에도 정권재창출에 실패할까 봐 경제 공황이 터지는데도, 위기는 없다고 거짓말 하는 데만 전념하고(그 거짓말을 한 책임자 중 하나가 이명박 정부의 실세 강만수였지).
이 모든 경박함과 교활함, 무능, 무책임 때문에 나중에는 좌·우 모두 그를 경멸했네.
그의 정권이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한 것은 사실 91년 투쟁시 민자당 대선후보 쟁취, 하나회 숙청이 그랬듯이 그가 위기에서 잔꾀를 부린 것이지. 사형 선고에까지 이른 전노 구속 처벌 국면은 청년 학생들의 굉장한 거리 투쟁과 여론의 반발에 밀린 상황에서 일어난 것. 밀리다 못한 ys가 사실은 굴복한 사건이지.
그런데 사실은 그게 차도살인이 된 거란 말이지. ys는 이처럼 볼품없는 민주화 운동 경력을 이렇게 써먹은 것이지. 보수파와 잘 동거하다가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크게 번질 때 슬쩍 태도를 돌변해 이를 정적 제거에 이용해 공을 어느 정도 가로채고는 운동이 사그라들면, 그때 운동권에게도 보복을 가하는 식.
그가 정의를 추구한 학생들의 편이 아니란 것은 거듭 확인됐지. 96년 교육재정 확충 시위를 살인 진압해 연세대 노수석 학생을 죽이고, 96년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를 탄압해 대학생 수천 명이 연행되는 기네스적 탄압을 하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불법 대선자금 규명과 정권 퇴진을 요구하던 광주 대학생들 시위를 또 살인 진압해 조선대 류재을 학생을 사망케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3당 합당으로 87년 이후 민주화 흐름에 반격을 가하는데 앞장섰던 그는 (신자유주의라는) 더 깊은 사회경제적 차원의 반동의 성격을 지닌 노동법 개악과 안기부법 개악을 96년에 날치기로 밀어붙였지.
노동법은 정리해고의 도입, 파견제의 도입, 변형근로제의 도입 등 지금 노동 문제의 법적 뿌리에 해당하는 것들이었고, 안기부법은 87년 항쟁으로 가로막힌 안기부의 국내수사권을 부활시키는 것이었지.(이는 또 지금 박근혜가 노동시장 구조 개악 법들과 국가정보원의 일방적 권력을 대폭 강화시키는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이는 것과 부분적으로 매우 유사하지.)
그해 1996년 말, 민주노총이 미루고 미루다 확정한 12월 13일 총파업을 또 유보해 버리자(국민회의 등 야당을 믿고 파업을 유보했는데 지금 민주노총 중집 결정과 유사한 결정으로 보임) 03 씨의 신한국당은 성탄절 다음날 새벽 군사작전 하듯 비밀리에 국회에 진입해 7분 만에 이 악법들을 날치기 통과시켜 버렸지.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완성차 대공장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곧바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파업 선언을 하면서 국면을 극적으로 달라져버렸지. 관료적 대중파업이라 부를 수 있는 이 파업은 매일 서울 도심에서 수천 명, 수만 명이 (요즘 다시 유행하는 말로) 가투를 벌였지. 김영삼은 결국 아들을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구속했고, 날치기를 대국민사과했고, 법안들을 철회햇지. 그 결과로 나는 ‘정치적 산송장’이라는 정치 용어를 배우게 됐고.
이처럼 ys정권의 본질을 드러내고 파산의 궁지로 몰아넣은 과정은 결코 자동이 아니었고, 대부분 노동자들과 청년, 대학생들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싸워서 이뤄낸 것이지.
이 과정에서 ys에 맞서는 또 다른 YS들이 생겨났고, 박해를 받았고, 그러나 계속 생겨났지. Young Socialists 말이지. 노동계급의 힘도 살짝 봤고, 경제공황도 겪게 됐으니 더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이 커진 청년들이 늘어난 거지.
그들은 이제 성인이 돼서 더는 young하지 않은데, 난데없는 ys 칭송 분위기를 보면서 그 중 몇몇이 ‘이건 영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해 보네.
아무리 ‘옹박’이 미워도 이 시대는 큰도둑 ys 추모가 아니라 전혀 다른 YS, Young Socialists이 노동 현장, 대학, 곳곳에서 많아져야 하는 시대라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계급을 향하여 말이지. 여느 때처럼.
그럴려면, 과거는 정확히 후세대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함. 비록 기억이란 것이 현재적 현상이라서 늘 기억하는 시점의 기준(세계관, 주체의 처지)에 따라 달리 구성될 수 있다지만, 사실은 바로 그 때문에 역사라는 게 이론으로, 학문으로 있고, 역사적 평가라는 게 있는 것 아닌가.
박근혜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맞서 싸우는 건 바로 이 현재와 직결되는 역사적 평가를 두고 싸우는 것인데,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그 시절 얘기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부정직하게 전달하는 건 무능이자 일종의 작은 범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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