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좌우 양극화 투표 속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했다. 박근혜가 복지 약속 따위를 지킬 거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경제 침체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는 상황에서 재벌, 고위관료, 조중동, 옛 군부세력 등 1퍼센트 반동적 지배자들이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똘똘 뭉쳐서 박근혜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한진, 쌍용차를 봐도 좌우 양극화 속에서 지배자들이 갈수록 참을성(인내와 양보 의지)을 잃어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그것이 유례 없는 보수대연합의 배경 아니겠는가.]


박근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국민대통합을 강조했지만, 당선 직후 그가 만나 감사와 축하 인사를 주고 받은 이들은 정몽구 같은 재벌 오너들이었다. 탄압과 장기 투쟁에 지쳐 목숨을 끊거나 지금도 철탑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치 기반의 뿌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이다. 정치 일선에 들어선 뒤에는 ‘TK+구 민정계+재벌+사학재단같은 반동적 기득권층이 그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2012년 시사만화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시사만화상 우수상 수상작.


박근혜 정부에서 내각이나 실세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군을 봐도이한구·진념·김광두·안종범 등 모두 강경한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면면도 [일부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마찬가지다.


이런 기반만 봐도 박근혜 당선은 명백히 친재벌 신자유주의(냉전주의) 강성 우파 정부를 예고한다국제적으로도 세계자본주의 지배자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직후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에 돈을 쏟았지만, ‘긴축과 내핍 강요라는 신자유주의 기조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파 결집을 추구하면서도 말은복지·경제민주화등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박근혜도 선거 막판에는내가 말한 경제 민주화는 [5년 전] 줄푸세 공약과 다르지 않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가 기본적으로 취할 방향은 분명하다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계급 생활수준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친제국주의 정책도 유지할 것이고, 대북 문제 뿐아니라 국내에서도 냉전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저항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옮겨가도록 시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 성소수자, 좌파, 청소년 등을 마녀사냥하며 분열·지배 방식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시도 때문에 한동안 상당히 불편한 시기가 될 것이다. 


2013년 예산도 신자유주의적 균형예산 기조로 확정했다. 그러면서도 제주 해군기지 예산은 전액 보전된 반면, 학비 호봉제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군부는 박근혜 당선 직후 발간한 ‘2012 국방백서에 ‘NLL이 국경선’[각주:1]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해묵은 일을 끄집어내 국가보안법 마녀사냥도 다시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 사법부 등 국가기구에서의 우위를 이 과정에서 이용하려 할 텐데, 이는 우파적 반동 시도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 시도와 연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노동운동에게도 민주주의 쟁점과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성격과 의도를 밝히는 것이 상황이 그들의 뜻대로만 흘러갈 거란 뜻은 아니다. 어떤 행위주체도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의지만으로 세상을 주조할 순 없다.


지금껏 박근혜 정부와 지배계급의 반동화를 낳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의지·방향을 살펴 봤으니,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의 반동성을 제약하는 조건을 따져보자. 첫째, 곧장 이 나라가 19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민주화의 핵심 동력인 노동운동의 조직과 의식이 [투지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전반적으로 건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학자들의 허구적 과장과 달리 부르주아민주주의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의 성장 속에서 확장돼 왔다.] 이런 힘이 유지되면 우파 정부가 들어서도 함부로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박근혜 시대가 영국의 80년대로 가느냐, 한국의 80년대로 가느냐는 진보와 노동운동의 대응에 달려있다. 저들이 영국의 80년대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해졌으므로.


둘째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복지 요구가 강해져 왔다. 박근혜가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교 무상의무교육 시대!” 같은 구호로 대선 현수막을 도배했던 까닭이다


또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이인제가 얻은 표를 모두 더하면 총유권자의 약 40퍼센트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모두 결집해 박근혜로 모은 표는 총유권자의 약 38.9퍼센트다. 우파 지지층이 크게 확장됐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한겨레>의 신년 여론조사에선 무려 60.1퍼센트가차기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를 묻는 질문에성장이 지연되더라도 복지와 분배가 우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5년 전보다 복지 응답은 늘고, 성장 응답은 줄었다[각주:2]더는 성장 담론이 예전처럼 일방적 우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사회적 세력관계가 [격변에 가까운 사건 없이] 단번에 무너지진 않는다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분위기가 성장주의 같은 우파적 가치와 정책에 [이명박 초기보다도] 덜 우호적이고정치적 반대파도 더 강경하게 결집한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게다가 박근혜에겐 내핍 정책을사회적 타협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 줄 정치적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명박조차도 [실패는 했지만] 한국노총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는데, 박근혜는 그조차도 없다시피하다.
(※ 2015년에 필자의 추가 멘트: 노동운동 안에서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는 예측은 취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 보면, 다소 부정확했으며 기계적이고 일면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 노사정위원회에 한국노총이 포함돼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 노조관료주의의 발전, 한국노총의 전통적인 보수파 지도자 집단의 구실은 물론이고 그들과 개혁파 지도자들의 관계, 그리고 민주당을 매개로 한 연결 고리 등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의 주된 통치스타일이 피억압 대중의 저항을 살살 달래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강성우파 스타일일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또한 체제 위기를 과장해 민주당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저항의 무마와 위기 탈출에 써먹을 것이라는 예측도 옳았다는 것이 거듭 증명됐다.) 


‘강제’(채찍)와 ‘동의’(당근) 두 축에서 동의 없이 강제에 주로 의존하는 통치는 당장은 편한 듯 보여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는국민적 합의란 명분으로 각종 개악에 민주당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 의회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의 완충장치이기 때문이다당분간 정치 쟁점과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이데올로기 투쟁의 주요 무대가 국회와 공식 정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거리 투쟁조차도 그 요구와 대상은 대체로 정부와 국회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더욱.)


민주당을 끌어들여 국회를 완충장치로 활용하려한다는 것은 국가기구의 권위주의화에도 명백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넷째, 박근혜가 표를 위해 내놨던 포퓰리즘 공약을 거둬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했던 일부 하층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후진 부위도 배신하는 것이다.


반대파가 완고한데, 정치적 완충지대를 못 갖춘 조건에서, 지지층이 이반하는 것은 재보선과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집권당의 안팎에서 상당한 긴장을 낳을 것이다.


정권을 잃을까 봐 뭉쳤던 보수대연합은 경제 위기 본격화 국면에서 민심 이반이 가중되면, 통치 방식을 놓고 분열할 수 있다. 궁지에 몰리면, 박근혜가 부패덩어리인 이명박 일당을 속죄양으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런 분열이 상호경쟁적 부패 추문 폭로를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억눌리던 민중에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3당 합당(보수대연합)으로 우파 정권이 연장된 경우였던 김영삼 정부와 집권당이 1997년 경제 위기와 노동자투쟁의 압력 속에서 분열한 것이 이런 사례다


박근혜 세력 자체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므로 부패 문제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다. 벌써 인수위원회 임명자들의 각종 비리 전력이 폭로되고 있다


바로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 무엇보다 경제 위기라는 조건에서 나오는 상반된 압력 때문에 박근혜 세력은 인수위원회 인선 과정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하게 행보하고 있는 것이다.(조용한 인수위?) 박근혜 세력은 정치적 자본가로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진 않는다 하더라도] 대중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도 어떤 복지는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다급하게 뻥카를 날리느라 재원 계획이 비어있다. 게다가 경제관료, 재벌들을 중심으로 긴축(내핍) 압력이 커지고 있다. 저들이 내놓을 복지란, 체제 수호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 위 사진처럼 사람들의 삶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수준에 머물 것이다.



물론 이런 전망이 반동적 공세에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객관적 조건은 모순된 압력을 낳고 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반동적 의지가 제약받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저항의 기세와 의지를 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테니 말이다


노조이기주의 담론, 종북 마녀사냥,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등 각종 소수자 공격 등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며 노동계급을 분열·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총리 대처가 처음부터강성 노동운동을 진압한 철의 여인이었던 건 아니다전면적 저항을 피하려고 파업권 약화를 위한 법 개악도 집권 후 수 년에 걸쳐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추진했고, 인력 구조조정도 노동운동이 약한 부위부터 신중하게 시작했다


영국 노동운동의 핵심부대인 광원노조는, 이런 각개격파 속에서 어느새 고립됐고, 석탄까지 비축해 놓은 뒤 벌인 대처의 공격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주력부대의 격렬한 전투와 유혈낭자한 패배로 영국 노동운동 전반이 침체하게 됐다.


지금은 지배계급이 반동화하는 경제 위기의 시대이므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야금야금 먹어오는 공격에 무신경하면 노동운동이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각개격파 시도에 계급적 단결과 공동 대응을 추구해야 한다.  


요컨대, 객관적 조건만으로 유불리를 말할 순 없다. 주관적 의지와 단결 면에서 일단 저들이 한발 앞서 나갔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반동을 막고 그들 처지의 모순을 이용해 상황을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가는 조직 노동운동과 반우파 청년들이 투쟁 태세를 얼마나 잘 갖추고 단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활동가들에게 가장 나쁜 것이 비관주의에 빠져 우경화하고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현실 직시를 회피해 적을 과소평가하고 단결된 방어 전선 구축에 소홀한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진짜 과제는 단결과 투쟁, 단호함을 얼마나 잘 촉진하느냐라고 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물론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는 기업주들의 때이른 도발로 조직 노동운동의 한두 작업장 투쟁이 갑작스레 분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임기초 주요 양상은 작업장 투쟁보다는 정치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미조직 청년들보다는 조직 노동자들이 먼저 각개전투를 벌일 것이다. 이런 투쟁들이 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서 박근혜의 정치 위기 양상이 누적된다면, 국면은 점차 대중투쟁에 유리하게 바뀌어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일부와 엔지오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노동계급을 투쟁 속에서 단결시킬 수 있는[각주:3]]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가 민주주의 쟁점을 포함해서 단결과 공동 대응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독자적 폭로와 선전선동으로 박근혜의 모순을 위기로 바꾸려해야 한다. 박근혜가 필연적으로 맞게 될 정치 위기를 이용해 현장과 거리에서 실질적 투쟁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급진적 대안도 선전해야 한다. 


정리하면, 개혁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반우파 공동 투쟁 건설에 나서도록 하면서도, 독립적이고 효과적인 비판과 대안을 설득력 있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각주:4]. 노동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을 재구축하고 걸맞는 정치 구조물을 세우는 일도  중 하나다. 


※ 이 글은 일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96호에 실렸습니다. ☞ 바로가기  



  1. 이 주장이 왜 틀렸는지는 관련 주제를 다룬 이 블로그 글을 검색해 읽어 보시오. [본문으로]
  2. “일부가 희생되더라도 성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쪽은 36.8%였다. 비슷한 설문을 포함한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 준다. 성장 담론이 힘을 잃었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처럼 일방적 힘을 발휘하지는 못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대중투쟁만이 과제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대중투쟁의 힘을 보유한 조직 노동운동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본문으로]
  4. 경제 위기 시대에 맞서는 투쟁의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는 행동강령 같은 것을 내놓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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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한 이정희 후보를 비난하는 우파

99퍼센트의 입을 막으려 하지 마라




“지지율 0.7퍼센트 후보에 휘둘린 TV 토론”(<동아일보>)

“판 깨러 나온 지지율 0.2퍼센트 후보”(<조선일보>)

“이정희가 다망쳤다” (<한국경제>)


12월 4일 18대 대선 TV 토론회를 마치고 난 뒤, 우익들이 광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우익들의 지도자인 박근혜를 그로기 상태가 되도록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선대위 대변인 박선규는 “소중한 자리를 실망의 자리, 어쩔 수 없는 탄식의 자리로 만들어 놓았다”고 불평했는데, 실망과 탄식의 주인공이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가 속절없이 모욕당하는 걸 지켜 본] 1퍼센트 부패 우파들이라면,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파가 노골적으로 방송 장악까지 해가며 감추려 했던 지배계급의 추악한 실체와 가려왔던 악행들이 너무도 속시원하게 똑똑히 폭로됐기 때문이다.  



<한겨레> 만평.



이정희 후보는 토론 시작부터 기성 정당 후보들이 외면하는 진정한 노동계급의 의제들을 거론했다. 쌍용차 해고자 투쟁,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강정마을, 용산 철거민 참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 한미FTA 폐기 등.


특히, 발끈한 ‘행동하는 앙심’ 박근혜가 ‘애국가’ 논란으로 역겨운 색깔론 공격을 폈을 때, 이정희 후보의 반론이 압권이었다.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각주:1],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 이름 박정희. 해방되자 쿠데타로 집권하고 한·일협정을 밀어붙였다. 뿌리는 숨길 수 없다.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한미 FTA를 날치기 통과해서 경제주권을 팔아먹고서 애국가만 부르면 용서가 되는가.”[각주:2]


또,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가 쓰던 돈이라며 6억 원[각주:3] 줬다고 스스로 받았다고 했지 않은가, 당시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었던 돈 아니냐”고 일갈한 것도 훌륭한 폭로였다. 연타를 맞고 멘붕에 빠진 박근혜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얼떨결에 해야 할 정도였다.


이정희 후보는  “재벌과 권력의 유착이 권력형 비리의 핵심”이라며 “삼성 장학생이 참여정부 집권 초기 장악했다는 말 있다. 삼성장학생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고위직에서 제외시킨다는 약속을 하라”고 문재인도 압박했다. 


이런 이정희 후보의 활약은 2002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TV 토론에 나와 “한나라당은 IMF당, 민주당은 정리해고당입니다. 한나라당은 부패원조당, 민주당은 부패신장개업당입니다” 하면서 지지를 얻었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 


당황과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이정희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표현한 것을 놓고 또 종북 색깔론을 펼쳤는데,  자신들도 지난해 6월 2일치 사설에서 “남쪽 정부”란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이 드러나면서 꼬리를 내려야 했다. 


결국 새누리당과 우파의 광분은 “첫 대선 TV토론의 주인공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라는 <PD저널>의 긍정적 평가를 거꾸로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이다.


이정희 후보가 대변한 진보 의제와 통쾌한 폭로는 사실 왜 독자적 진보정치세력이 필요한지 보여 준 훌륭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또 진보세력이 의회나 선거 연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모범 사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날 TV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가 없었다면 쌍용차, 현대차, 강정의 억울함과 분노를 누가 대변할 수 있었겠는가? 억눌리고 빼앗겨 온 99퍼센트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을 수 있었겠는가!


다카기 마사오


토론회 직후에 “다카키 마사오”와 “전두환 6억”이 검색어 1,2위에 오른 것은 이런 폭로와 비판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겨레> 정영무 논설위원은 이를 두고 “당연히 모든 유권자의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그만큼 드러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고 옳게 지적한다. 정 위원의 평가대로 “점령군에 장악된 방송의 마이크를 잠시 탈취한 잔 다르크 … 이정희 후보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바보상자와 그 배후세력에 진실의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이는 박근혜가 우파 결집에 충실하면서 명실상부한 보수대연합 후보로 서고, 안철수의 압박으로 문재인이 오른쪽을 기웃거리면서, 밋밋하고 재미 없는 선거로 가던 대선 국면에 새로운 활기가 생겼다는 뜻이다. 


주류 후보들이 제대로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 속에서 대선에 흥미를 잃어가던 젊은 세대가 ‘다까끼 마사오의 딸이 여왕으로 등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반우파 정서의 청년 세대가 “여자 1호는 여자 2호가 무섭다”, “6억씩이나 받고는 오빠가 다 늙어서 29만 원으로 산다는 데 돌봐주지 않나?”는 식으로 박근혜를 비꼬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라.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새누리당은 여론조사 15퍼센트 후보만 TV 토론에 나오게 하자는 속칭 “이정희 방지법”을 만들겠다는 역겨운 제안을 전광석화처럼 하고 있다. 2차 TV토론에서는 ‘환경’ 주제를 슬쩍 빼버렸다. 4대강과 핵발전으로 공격받을까 봐 선수를 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대형마트 규제 법안 등에 굼뜨기 그지 없고 가로막기 급급했던 것과 천양지차다. 날치기 속도전이라도 펼치려는 것인가. 자기 지도자를 보위하려고. 쓴소리 막으려고 법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그 마인드야말로 ‘유신 마인드’ 아니겠는가.(오죽하면 3자 출연 TV 토론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우파 뿐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의 일부조차 이정희 후보의 활약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예컨대, <한겨레> 사설은 “이 후보의 거친 토론 방식이 오히려 보수층 결집의 효과를 거두었다”며, “유력 대선주자 두 명이 … 진검승부를 벌이는 미국 대선토론회를 … 언제까지 부러워하고만 있어야 하는가”라며 진보 후보의 TV 토론 배제 압력에 호응하고 있다. 


유시민은 “거친 표현”이 “정상적이진 않았다“며 “이런 방식이 과연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을 얼마나 떨어뜨릴지 의심스럽다”며 <조선일보>가 기특하게 여길 말만 골라서 하고 있다[각주:4]


이미 박근혜의 높은 지지율이 보수대연합의 결과로 형성돼 있는데, 새삼 보수층 결집을 걱정하는 것은 우습다. ‘박근혜 쪽이 사실은 몰래 좋아하고 있을 것’이란 것도 말이 안 된다.


눈이 있다면 지금 우파가 답답하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라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지금 보수 대결집으로 형성된 박근혜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것은, 반우파 청년들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이들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우파와 박근혜에 대한 이정희 후보의 날선 공격이 문재인의 존재감을 약화시켰다는 비난도 우습다. 공평하게 시간이 주어지는 토론회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다면, 자기 탓을 해야지, 누구 탓을 하나. 


사실 문재인의 박근혜 비판과 대안이 별 새롭지도 않고, 날카롭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문재인은 박근혜와 덕담이나 주고 받다가 이정희를 오른쪽에서 압박하기도 했다. 


토론회 다음날 <리서치뷰>와 <오마이뉴스> 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 지지층의 30.8퍼센트가 이정희 후보가 가장 토론을 잘 했다고 지목했다. 문재인이 자기 지지자조차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오히려 이정희 후보의 박근혜 공격으로 박근혜가 이기기 쉽던 대선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들이 강요한 명망성과 엘리트주의적 품격론의 룰 따위에 얽매이지 않은 덕분이다.) 


이정희 후보도 유시민 세력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을 주도하는 등 진보의 정체성을 훼손하던 때가 아니라 독립적인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했을 때,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새겼으면 한다. 


이정희 후보가 다음 토론 때는 이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고 있는 쌍용차, 현대차, 용산, 강정의 절절한 목소리와 피눈물을 더욱 생생하게 전하며, 박근혜를 또 한 번 ‘멘붕’시키기를 기대한다.


※ <레프트21> 온라인 기사로 살짝 축약해 실렸습니다. 추가 박스 기사도 있으니 방문해서 보세요. 

바로가기 


  1. 박정희에겐 일본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사로 편입할 때, 더 일본식인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새 일본 이름을 썼다. [본문으로]
  2. 솔직히 한국은 국민의례가 지나치다. 웬 스포츠경기를 보러가서도 국민의례를 해야 하는 건지, 아는 사람 손 들어보시라. [본문으로]
  3. 박정희의 비밀 금고에서 나온 돈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4. 유시민은 본인이 야권 단일 후보로 나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점잔 빼다가 김문수에게 졌다. 유시민이 사실상 지휘한 노무현 고향 김해을 재선거서도 김태호에게 졌다. 1997년엔 김대중필패론을 책으로까지 내며 조순을 밀었다. 이미지와 달리 유시민의 판세 분석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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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정치쇄신안은 우리와 80퍼센트 같다. 이 염원을 받아 안는 게 우리의 도리다.”


이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말이다. 안철수 사퇴 전까지 “무면허 정치인”, “호객꾼”, “기회주의자” [심지어 마르크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등 막말을 퍼붓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민주당이 흘리게 한 안철수의 눈물을 우리가 닦아줘야 한다’며 안철수 지지층을 조금이라도 더 흡수하려고 책략을 부리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뜻대로 안 되더라도 두 지지층 사이를 이간질시켜 문재인에게 가는 표를 줄이면 보수 지지층 결집으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포함한 주요 우파 정당이 얻은 득표 합계는 엇비슷하다. 그런데도 2008년에 우파가 얻은 의석수가 30석가량 많은 것은 반우파층의 투표율과 결집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는 한동안 지지층 확장성의 한계와 이명박 레임덕의 여파로 위기를 겪었다. 

이 때문에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보수대연합’ 색채가 두드러졌다. 어차피 반우파 정서의 벽을 확인했으니 확실한 우파 결집 후 반우파층의 투표율 낮추기 책략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반우파 정서가 막강하고 검·경 갈등 등 레임덕 등 위기의 요소들은 여전하다. 다만, 보수층 다지기에 열중하는 동안, 문재인과 안철수가 감동과 비전 없는 단일화 과정 때문에 기회를 못 살려 숨돌릴 틈을 얻은 것이다. 


이회창, 나경원이 몰려 들고, 박근혜에게 ‘칠푼이’라고 막말하던 김영삼마저 지지 선언을 준비한다고 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국민대통합은 없고, 보수대연합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숨돌린 박근혜가 안철수 지지층을 노리고 위장막을 쳐도, 그것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우파 본색이 더 짙어지고 있다. 


사람들 속이려고 내놓은 유신피해자보상법이 딱 그렇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 때문에 생긴 불기피한 피해에 대해 쓰는 용어다. 국가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배상’이 맞다. 여전히 박근혜는 유신의 정당성을 신봉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벌 중심의 성장론과 색깔론 안보 공세 같은 전통적 우파 의제들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투표율 낮추기를 위한 무차별 네거티브 폭로전과 ‘종북’ 마녀사냥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캠프 총괄 지휘자인 김무성은 2008년 촛불항쟁을 두고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죠. 촛불을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공개해 국민을 실망시켰다”고까지 말했다.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최근 국회에서 투표시간 연장법안을 무산시키더니 제주해군기지 예산안도 국방위원회에서 날치기했다. 지난 번엔 면담 요구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끌어내더니, 어제는 반값등록금 요구하는 학생들을 전원 연행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중요하다더니, 박근혜 정권의 ‘미래’를 화끈하게 미리 보여 준 셈이다. 


그래놓고 박근혜는 지금 문재인을 ‘실패한 노무현 정권의 실세’라는 식으로 비난한다. “비정규직이 그때 양산됐고. 등록금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문제들은 문재인의 약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지층의 개혁 염원을 배신했다.


문제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냐는 것이다. 유신잔당들이 할 소리는 아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망스런 노동법 개악마저도 너무 ‘친노동’이라며 더한 개악을 주문했던 자들이 바로 오늘의 새누리당이었고, 박근혜는 바로 그 당의 대표였다. 


23명이 억울하게 죽어갔는데도, 쌍용차 국정조사조차 못 하겠다는 것이 박근혜의 ‘민생정치’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모른 체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법치주의’다.


박근혜가 민생법안이라고 내놓은 ‘사내하도급법’을 두고 노동자들은 ‘정몽구법’이라고 부른다. 이 법안대로면, “과거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몰래 관리해 왔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합법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권두섭 변호사) 현대차 8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무효화되는 것이다.


박근혜는 “최저임금이 5천 원도 안 되냐”며 무지를 드러냈는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법안을 한사코 거부한 것이 새누리당이다. 


영남대의료원지부는 박근혜가 사실상 소유주인 영남대재단 소속인데, 이 노조에 대한 노조 파괴 탄압이 시작된 것은 1989년 재단 비리로 쫓겨났던 박근혜 일당이 재단 복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 2006년부터다. 박근혜 복귀를 위해 눈엣가시인 노조부터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육영재단 이사장 때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결혼 후 퇴사를 강요한 바 있다.


박근혜의 법과 원칙은 우파와 기업주를 위해 노동자를 때려잡는 것이고, 박근혜의 소통은 불법 사찰과 탄압 따위를 위해 정부의 억압기구와 기업주가 연계하는 것일 뿐이다. 오죽하면, 한국노총조차도 2007년과 달리 지지하는 곳이 거의 없겠는가.


철두철미하게 ‘유신스타일’을 고수하는 반노동 우파 박근혜의 집권에 노동대중이 우려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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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왜 투표시간 연장에 결사반대하는가(11.1)



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대세론에 금이 간 뒤 좌충우돌하던 박근혜가 이제 우파 결집으로 방향을 좀 더 분명히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NLL” 문제로 하루에도 서너 개씩 논평을 내며 야권을 “종북”으로 몰아붙였다. 


민주통합당 김광진이 백선엽을 ‘민족 반역자’라고 한 것도 문제 삼았다. 만주에서 항일투쟁부대를 때려 잡는 일본 군인이었던 자를 옹호하며 자신의 뿌리를 드러낸 것이다. 급기야 낡아 빠진 우익인 선진통일당과 합당하면서 ‘1백 퍼센트 국민대통합’은 ‘1백 퍼센트 보수대통합’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 발맞추려는 건지 ‘레임덕’ 이명박도 5년을 끌어 온 영리병원 도입 조처를 강행 처리했다. 내곡동 특검으로 드러난 사실만이 아니라 지난 5년간 저지른 온갖 범죄적 행태와 악행 때문에 당장 구속수사 받아도 모자란 자가 죄목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박근혜는 유신 관련 과거사에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서는, 바로 부산에 가서는 말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는 아무것도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본질 규정에 계속 과거사 문제가 달라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그동안 박근혜는 우파 결집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하려고 무진 애를 써 왔다. 그런데 투표가 두 달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 확장성의 한계”를 절감하는 듯하다. 


<내일신문>의 10월 초 설문조사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후보’ 1위로 박근혜를 지목했다. 지역에서는 수도권, 세대에서는 30~40대, 심지어 중도층에서도 박근혜 거부 응답은 상대 후보들보다 두세 배나 높았다.


그래서 박근혜는 집토끼라도 단단히 단속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한 듯하다. 박근혜 반대층의 투표율이 낮거나 분열하면 견고한 우파 지지층 결집으로도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에서도 이런 책략이 민주당의 무능 속에서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박근혜가 ‘투표 시간 연장’에 그토록 결사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의 후계자로선 국민투표 자체가 “낭비”로 여겨지기도 할 터다. 


진흙탕


NLL에 이어서 우파는 ‘성장’ 프레임도 꺼내들고 있다. ‘무상복지’를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구호로 물타기 해 놓은 것도 성에 차지 않던 우파들이 이제 ‘안보’와 ‘성장’ 프레임으로 이데올로기 지형을 더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인적으로도 김종인이 토사종팽 당하고 재벌 브레인 출신인 이한구와 김광두가 확고한 주도권을 쥔 모양새다. 


박근혜는 31일 한 강연회에서 “무상복지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옳지 않으며 경제민주화와 성장,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며 달라진 강조점을 선보였다.


그러나 성장을 강조하면서 새누리당이 막상 내놓은 경기부양 방안에는 복지 예산이 절반이나 된다. 혼돈 그 자체인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평소 ‘우파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선진당과의 통합도 결국 반발과 이탈이 심해 겨우 철새 이인제 하나 건진 것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처럼 박근혜와 집권당은 우파 본색으로 돌진하면서도 혼란돼 있다. 이는 이들의 모순된 처지를 보여 준다.


박근혜는 집권당 위기를 벗어나려는 우파 결집에는 적격자였지만, 애초 문제의 뿌리인 우파 정부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는 데는 적격이 아니다.


한편, 올해 3분기 성장률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10월 들어 포스코가 본격 자산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현대중공업이 인력 감축에 나서는 등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잘 먹히지 않는데 경제 위기는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전반은 위기감이 커져가는 듯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도 집권 우파가 ‘안보’(종북)와 ‘성장’(복지 거부) 프레임을 꺼내들고 문재인과 안철수를 단도리하려는 까닭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역시 문제다. 이 둘이 우파 프레임에 타협하고 굴복하면서 박근혜가 모순과 위기 속에서도 살아날 기회를 계속 주고 있다. 


사실 박근혜가 말한 ‘경제민주화와 성장의 투트랙’은 안철수가 먼저 내놓은 ‘두바퀴 경제’와 흡사하다. 문재인은 “NLL에 대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안보능력” 운운하며 우파 공세에 장단을 맞췄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진보진영은 이런 투쟁들을 엮어서 독립적으로 진정한 진보 의제를 부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레프트21>92호(11.5)에 실린 기사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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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빨걸?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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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발언한 33명 가운데 21명이 재창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창당 과정에서 이명박을 탈당시켜 이명박 색깔을 지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창당의 폭과 범위, 그리고 주체를 놓고 이미 새로운 갈등이 번지고 있고 이것은 난파하는 배에서 쥐떼가 먼저 뛰어내리듯 탈당과 분당 위험을 몰고올 것이다. 박근혜의 反MB 재창당론은 수도권 위장 쇄신파들의 反MB反반박근혜 재창당 욕구와도 충돌할 것이다. 

돌아보면 정치 위기를 모면하려는 한나라당 주도세력의 재창당 역사는 늘 위장폐업과 거짓 신장개업의 역사였고, 중기적 실패와 새로운 갈등을 잉태한 역사였다

광주에서 학살극을 연출하고 집권한 군사 독재자 전두환과 노태우가 만든 민정당(민주정의당)이 한나라당의 전신이다.

광주항쟁의 학살과 위대한 저항의 기억은 청년세대를 급진화시켰고, 전투적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마침내 부활해 전두환 정권을 몰아붙였다. 결국, 전두환이 물러났으나 대선에선 겨우 노태우가 재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고 대중투쟁이 계속 되자,노태우는 결국 전임자 전두환을 유배보내야 했고, 지속적인 위기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90년초 3당 합당이었다. 민정당의 일당독재 체제는 보수대연합으로 
1980년대 후반 여대야소 정국과 활발한 노동자투쟁이 불러온 위기를 잠재우는 반동을 추진하려했다. 김영삼과 김종필과 내각제 개헌을 합의하고 3당 합당을 했다. 보수야당까지 끌어들여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민자당(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당시 이 당의 창당일이 바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창립일이기도 했다. 당시 운동권은 당시 당의 이름을 빗대 자민당의 내각제 장기집권 음모라고 판단하고 처음부터 민자당 해체 투쟁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 거대여당은 1991년 5월 투쟁과 경제 위기,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내부 암투 등으로 위기를 겪다가 2년 뒤 치러진 1992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도 실패했다.(149석)

초기에 인기를 끌던 김영삼 개혁이 무뎌지면서 1995년 지방선거에서 참패(서울시장을 포함 광역단체장 15곳 중 10곳에서 패배) 후 위기감을 느낀 민자당 정부는 1996년 4월 총선 패배를 막으려고 1995년 말부터 공작을 시작해 1996년초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며 재창당했다

당시 재창당 과정에서 영입된 이들이 이회창, 박찬종, 김문수, 이재오, 그리고 민주당을 기웃거리던 소장파 법조인 홍준표 안상수 등이었다.(홍준표가 재창당 모델로 신한국당 사례를 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신한국당이 이제 예전 민정당을 본류로 하는 당이 더는 아니라고 변명했다. 

신한국당도 1996년 총선에서 하락을 막지 못했다. 총 의석이 열 석이나 줄어 139석을 확보했다. 그런데도 신한국당은 환호했는데, 그나마 예상보다는 나은 성과였고, 서울에서 처음으로 집권당이 절반 넘는 의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정치적으로 잘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나마도 야당이 분열해 있었고(김대중의 국민회의와 노무현 등의 민주당) 무엇보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벌인 총격 사건 덕분에 안정론이 득세한 것이다.

그 점에서 신한국당 성공 사례는 일종의 착시 효과다. 여전히 당시 한국정치는 반공적 일당국가체제였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아니나다를까 나중에 이 총격 사건은 남한 정부가 북한 군부에 돈을 주고 요청한 조작 사건으로 밝혀졌다. 당시 유행어처럼, 신한국당은 독재정권을 노골적으로 연장하려 했던 민자당이 위장폐업한 ‘쉰한국당’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히려 차별화해서 생존하려는 이회창과 김영삼의 갈등만 갈수록 커져갔다. 무엇보다 노동자투쟁이 결정타를 먹였다. 다가오는 경제 위기에 대비하려고 정리해고 등 노동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던 김영삼(신한국당) 정권은 1996년말부터 1997년초까지 이어진 민주노총의 대중파업으로 결정타를 입고 ‘산 송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1997년 대선 직전 다시 ‘꼬마 민주당’과 합쳐 [이들에게 당권을 내 주면서까지] 한나라당으로 탈바꿈해야 했고, 그 해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처음으로 정권을 잃었다. 마침내 반공적 일당국가체제가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이때 꼬마 민주당 세력은 대부분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당적을 옮겨 갔다.)


그만큼 당시 김영삼 정권이 처한 위기가 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 위기나 정치 위기 수준이 더 심각하다. 지금은 세계적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국내 정치 위기가 겹쳐 있다. 

박근혜가 염두에 두는 듯한 2004년 리모델링도 성공 사례라고 볼 순 없다. 이회창 대선자금 차떼기 비리와 노무현 탄핵 역풍에 직면한 상황에서 박근혜는 비자금을 갚는다며 여의도 당사를 팔고 천막 당사에서 당무를 보는 쇼를 해야 했다. 그러고도 사상 처음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물론 박근혜의 리모델링은 더 큰 패배를 막는 구실은 했다그러나 2004년과 지금은 정치 상황과 처지가 다르다. 당시는 야당으로 잃을 게 없었고,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기간 6년이 지지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환멸을 낳은 경험 때문에 견제 세력을 살려달라는 호소가 먹힐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권 말기로 성난 민심의 표적이 되고 있는 집권 여당이고, 경제 상황이나 정치 위기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위기가 커서 집권여당이 스스로 붕괴하며 핵심 권력기관들끼리 다투며 오히려 정권을 무장해제하는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정리하면, 한나라당 세력의 핵심이라 할 구 민정당 세력이 자신들만으론 위기를 막기 힘들 때, 심각한 정치 위기 상황에서 보수대연합, 개혁세력 영입 등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의 재창당을 해 왔지만, 매번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 효과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역사를 돌아볼 때, 2007년의 한나라당의 집권 성공은 노무현 정부의 배신과 실패, 무능 그리고 진보정당의 취약함이라는 문제를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고립된 주류 우파 지배자들이 자신보다 덜 보수적 이미지의 세력 영입을 시도해 온 것인데, 그 점에서 박세일이 大중도신당을 만들자며 ‘민주당 일부 포함과 안철수 영입론’을 펴는 것도 이런 보수대연합을 추구한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 경우는 연성 보수대연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위기는 일시적 성공을 거둔 듯했던 그때보다도 위기가 크고 따라서 계급적 불만도 엄청 높은 수준이다. 다만 불만의 수위에 비하면 행동으로 표출되는 정도는 낮은 편이다. 민주당의 좌측 깜빡이 켜기와 의회 진보정당의 존재도 거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집권당이 추구하는 연성보수대연합이나 새인물 영입이 성공하기보다는 1997년처럼 지배계급 다수가 ‘플랜 B’ 당인 ‘통합’민주당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단, 이렇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더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깊은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정치 위기가 겹치면서 반백년 여당이던 자민당이 와해된 사례가 있다. 실권 전 자민당은 사회당과 연정을 꾸리기까지 했다.  

정치적 격변기에 노동운동이 만든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진정한 진보대연합을 추구하는 대신 분열해 참여당 같은 세력과 통합한 것이 못내 아쉬운 까닭이다.

지금의 정치적 불안정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크게 보면, 내년 경제위기의 재발 여부와 계급투쟁의 부활 정도에 따라 주류 정치의 변동 폭도 결정될 것이다. 어쨌든 저들의 정치 위기는 쉽게 봉합되지 못할 것이고, 우리 편도 이로 말미암은 혼란과 기회를 모두 겪게 될 것이다.

좌파로 말하자면, 지금은 안이하게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보다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좌파 재편 논의를 포함 정치 논쟁에 깊숙이 개입해 특히 기존 진보정당의 우경화에 맞서는 논쟁과 실천을 통해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이려 노력하며 기회를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치적 구심을 단단히 형성하는 세력에게 기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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