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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0 《열한 살의 한잘라》, 열두 살 한잘라를 보고 싶다 2



시대의 창이란 출판사에서 《열한 살의 한잘라》라는 만평(카툰) 모음집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나지 알 알리라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위대한’ 만평가다. 


한 컷짜리 흑백 카툰으로, 시대와 국제 질서를 꿰뚫는 통찰력과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비통한 역사적 기억과 감정, 그리고 불굴의 저항의지를 두루 담아 표현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의 작품 속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꼭두각시가 돼 팔레스타인 저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할 뿐인 [PLO를 포함한] 아랍 지배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도 담겨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 


나지 알 알리는 1948년 ‘나크바’[각주:1] 때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살던 열한 살 소년이었다. 나지 알 알리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뒷짐진 소년 ‘열한 살의 한잘라[각주:2]’는 바로  작가 자신의 분신인 것이다.


재앙의 시간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현실, 그리고 그 기억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저들이 우리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면, 저들의 시간도 더 앞으로 갈 수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지에 바탕해 그는 단순한 반서방 아랍 민족주의적 감성에 머물지 않고 아랍 세계 내부의 분열을 직시하며 무엇보다 단호한 아랍 민중의 단결과 저항을 부르짖은 작가였다.


이 이미지는 작품집에 포함된 것으로 블로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6Hl1#ajax_history_3 에서 빌려 왔다. 이 그림은 미국이 아랍 지배자들의 입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쪽저쪽 적도 많았다는[각주:3]] 나지 알 알리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후 활동 공간이 된 쿠웨이트에서 추방된 후 안타깝게도 영국 런던에서 1987년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각주:4] 인티파다를 촉구하며 기다려 왔던 그가 제1차 인티파다[각주:5]가 시작된 해에 죽고만 것이다.


‘열한 살의 한잘라’는 영원히 어른이 못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아끼는 많은 팔레스타인 인들이 ‘내가 한잘라’라고 한다니, 승리하는 한잘라, 드디어 인간의 시간을 돌려 나이 들어가는 현실의 한잘라들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200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복사집 제본 형태의 아랍어로 된] 나지 알 알리 작품집을 산 적이 있다. 그해 나는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반전회의에 한국의 대규모 참가단 중 하나였다. 


그때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지 알 알리에 대해 잘 알았던 건 아니다. 다른 동지의 소개와 추천이 있었고, 이 작가의 만평엔 뒷짐 진 소년이  나온다, 아랍 쪽에서 매우 유명한 만평가다 하는 정도였다. 



작품 몇 컷으로도 느낌이 팍 오는 것도 있고, 아랍에 대한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침략과 개입 문제가 화두였던 국제반전회의 참가자로서 가장 걸맞는 지출이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기꺼이 구입한 기억이 난다. (설사 소장용에 그칠지라도) 그걸 현지 동지들의 부스에서 사면서 연대감을 표시하는 건 덤이고 말이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느꼈던 건, 만평에게도 [심지어 언어 장벽을 넘어] 가슴 깊은 곳을 울릴 수 있는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내가 보기에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고,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의 속시원한 대변자이며, 불굴의 선동가다. 


그런데 이번에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비망록의 [만화] 작가 조 사코의 서문을 달고서 나온 것이다. 추가 해설도 있으니, 배경 설명이나 일부 작품 속 짧은 단어 해석이 아쉬웠던 나로선 반가운 출판이다. 지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글로 다루는 책 중 최근 내가 읽은 것은 9월에 나온《나의 아버지는 자유의 전사였다》(램지 바루드, 산수야, 2012)다. 

생생하면서도 현대사를 개괄할 수 있는 이 책도 신간들 중에선 내 개인 추천도서다.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저항에 관해 관심 있는 분이라면 두 책을 함께 봐도 좋을 듯하다. 

《한잘라》의 서문을 쓴 조 사코의 만화들도 모두 좋다. 출간 시기를 더 길게 잡으면 더 많은 좋은 책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인티파다》(책갈피)를 추천한다.






  1. 재앙이란 뜻의 아랍어라고 한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영국 등 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인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을 일컫는 고유명사다. [본문으로]
  2. 한잘라는 아랍어로 쓰라림, 고통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본문으로]
  3. 나지 알 알리의 카툰을 본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격노하여 "나지 알 알리가 대체 누구야? 이따위 카툰 그리는 걸 당장 멈추지 않으면 손가락을 산성 용액에 담가준다고 전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4. 이스라엘의 소행인지, 아랍 쪽의 소행인지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본문으로]
  5. 1987년 12월 가자지구 난민 캠프에서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살해된 것을 계기로 폭발한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제2차 인티파다는 2000년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의 도발과 이스라엘 군대의 소년 살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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