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론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이 단연 한국문학의 최고봉에 서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치밀한 조사에 바탕한 생생한 사실성과 역사성, 그리고 각자의 개연성이 잘 살아있는 인물들, 유려한 문장 등.

지난해 늦가을에 읽은《허수아비춤》은 그런 웅장함은 없지만, 상상력 뛰어난 사람이라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같은 책을 읽고 한번쯤은 머리 속에 그려 봤음직한 저들의 세계와 사고 방식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형적인 인물들은 잘 묘사됐는데, 주인공 격인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전형적인 면에서도 입체적인 면에서도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보다 먼저 읽은 이들 일부가 계몽적이라 불편했다는 말도 하던데, 읽어 보니 그리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만큼 노작가가 기업권력이 정치권력과 언론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날로 두르러져 보이는 현실에 강력한 반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인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게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습니다. 누군가 해야 할 말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이런 대작가가 현실의 기업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자본주의의 속물 논리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말자고 호소하는 것은 요즘 같은 현실에 비춰 볼 때 큰 울림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저쪽 세계의 추악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정몽구와 이건희를 짬뽕해 놓은 듯한 ‘회장’의 일거수일투족과 말투는 잘 표준화된 한국 대자본가의 전형으로 보입니다.


현실의 강한 힘에 타협하는 게 마치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행동처럼 비춰지는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시스템에 맞서자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한편,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은 기업 권력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약한 이유를 대중 일반의 속물적 ‘욕망’ 탓으로 돌리는 게 과연 올바를까 하는 점입니다.(이 점은  굿바이 삼성 필자들의 상황 인식과도 비슷한 듯합니다)

(더 긴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각주:1]) 짧게 결론만 말하면, 화살은 대중의 ‘욕망’이 아니라 그 반대편을 향해야 합니다.

체제가 실제로 돌아가는데 필수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대중들이 엄청난 불평등 때문에 부당하게 결핍된 욕구를 욕망하는 것이 큰 문제일까요? 대중의 욕망을 문제 삼는 것은 또다른 억압적 권력을 불러 오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대중의 기본 욕구마저 제대로 충족해 주지 못하는 무능하고 불평등한 이 사회의 시스템과 그 운영자들이야말로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대중은 속물적 욕망으로 기업 권력의 충실한 하위 파트너나 암묵적 동조자가 된 게 아니라 억압적 현실과 불평등 때문에 욕구를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소외돼 냉소에 빠져 개인적 탈출구에 허망하게 기대는 상태에 있는 걸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또 대중의 욕구는 스스로 억제해야만 하는 것이냐는 겁니다. 저들의 논리가 단지 전도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의 차이에서 작가는 욕망을 절제하는 선한 엘리트들의 계몽적 활동에 기대를 걸게 되는 반면, 저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정당한 필요(욕구)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은 여러 가지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대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은 좋은 지적 경험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1. 애초에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나온 굿바이삼성과 허수아비춤을 묶어 글을 써 보려 했으나 여태 미뤄졌네요. 이것도 삼성의 음모일까요??? ㅋ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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