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승리, 민주노동당의 약진으로 끝난 4·27 재보궐 선거 결과는 모순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MB 범야권연대 단일 후보들이 선전했고, 진보정당들과 양대 노총이 모두 이 단일화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명박 정부에 분노해 온 노동자들에게 사기 진작 효과가 있을 것이다.

5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이 점이 확인됐다. 한국노총 집회에는 조합원 10만여 명이 참가했다. 민주노총의 서울 집회는 몇 년 만에 경찰 저지를 뚫고 도심 행진을 했다. 서울 명동 등 거리의 시민들도 ‘최저임금 인상’ 등 시위대의 요구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만난 한국노총의 한 간부는 “재보선에서 집권당의 약화가 확인되자 싸울 만하다는 쪽으로 조합원들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그러나 막상 목소리를 높이는 쪽은 이런 분위기를 2012년 야권연대에 기초한 선거 심판론으로 끌고 가려는 쪽이 될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 이인영과 “국민의 명령” 문성근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성과가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야권 단일 정당”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이번 선거로] 야권연대의 정당성에 대해 어떤 의문도 망설임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연대 강화론은 선거에서 손쉽게 표를 얻으려는 선거공학적 계산에 바탕한 것이다.

셋째, 진보진영 내 통합 지지 세력도 조급해져서 진보대통합을 서두르려 할 것이다. 이미 내년 선거를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으로 삼는 이들에게 자칫하다간 민주당에 얻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총선·대선 선거연합(일방적인 후보 단일화)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고려하는 세력들은 진보대통합으로 덩치를 키워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둬야 지분을 받는 ―따라서 자신들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연립정부 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가 논란과 불협화음 속에서도 3차 합의문을 낸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이들 가운데 최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지식인들이 몇몇 정치인들과 연합해 복지국가 만들기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이들은 복지국가 강령을 중심으로 야권 단일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 단체의 산하 조직 격인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는 5월 초 이인영의 야권단일정당론을 환영하며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통합을 하는 가장 쉽고, 가장 빠르고, 가장 올바른 방법은 ‘가치중심’으로 정치권이 재편되는 ‘복지국가 단일정당’이라고”고 밝혔다.

사실상 독자적 진보정당의 길을 포기하고 보수정당의 개혁파들과 한살림을 차리자는 것이다.

서유럽 복지국가가 정당 차원의 계급 협력 전략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사진 출처: http://kafkago.tistory.com/414


이들과 한 배를 탄 진보신당 박용진 부대표는 “사회양극화에는 무심했던 진보세력도, 무능했던 개혁세력도 모두 책임이 있다”며 두 세력의 실천적·정책적 차이를 흐리고 물타기한다. 심지어 민주당과 단일정당을 해서 집권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진보는 “무책임”하고 “오만”한 것이라고 훈계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대중이 공감할 만한 목표지만, 이는 ‘자본주의 극복’을 강령으로 채택한 기존 진보정당들보다 후퇴한 강령이다. 복지국가만 주요 목표인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경제 위기와 전쟁, 핵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훨씬 더 포괄적인 반자본주의와 반제국주의 강령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들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의 유연성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반신자유주의 가치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강령인 것이다.

그 결과 논리적으로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은 급진좌파를 배제하고 민주당[일부?]과 손 잡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진보정당을 없애자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에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삽입하고 무상 교육·보육·의료 실현을 강령에 포함했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 구현과 1백 퍼센트 배치되는 FTA 협약을 찬성하는 이 당에게 당헌 변경은 선거를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해 보인다.

그것은 이 당의 핵심 기반이 자본가계급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연대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포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다.

그래서 사실 야권 단일정당론은 상시적 야권연대론의 필연적 귀결이다.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은 “[야권연대의] 정형화 된 후보 단일화 방식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정책 등이 미리미리 정비되고 선거운동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수행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책과 후보 선출에서 일사분란한 체계를 갖춘다면 단일 정당과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이런 논리가 연립정부 정당화로 발전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선거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투표로 심판하자”,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로 표현되는데이는 사람들을 몇 년에 한 번 선거에 투표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야권연대

지금 반MB 정서가 야권연대로 수렴되는 듯한 것은 민주당은 여전히 못 믿겠고, 진보진영은 분열해 있으며, 노동자투쟁도 아직 계급세력관계를 뒤흔들 만큼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MB 정서는 민주당 왼쪽과 진보정당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왼쪽 깜빡이를 켠 이유다. 올해는 양대 노총의 메이데이 집회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진보정당들과 맺은 약속을 깨고 부자 감세와 한―EU FTA 통과를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전북 버스 파업 때는 반 년 가까이 사장들 편만 들었다.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은 “[4당 정책] 합의문 내용은 굉장히 좋은 것 … 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민주당은 결코 자본가 계급 기반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선거 때는 반MB 투사, 평상시엔 한나라당 2중대’를 반복하는 이유다.

야권연대는 이런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려 하므로 진보정당 고유의 정책과 실천이 후퇴해 우경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민주당 대표 손학규는 51일 양 노총 본 집회에서 모두 연설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위선적이게도 “야권 단일화의 성과”와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을 강조했다.[각주:1]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도 야권연대의 우경화 논리에 젖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새 진보진영 상설연대체 민중의 힘() 상반기 계획에서 임단투 파업 시기를 집중하자는 제안이나 메이데이 집회를 서울로 집중해 위력적 시위를 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국민참여당과 진보정당들이 통합해야 한다는 진중권도 <한겨레> 53일치 칼럼에서 “‘미 제국주의’ 운운 … 같지도 않은 착각 속에 자신을 자폐시킨 채 개척교회 세우듯 사회주의 목회활동 … 1917년 러시아 혁명의 향수”를 들먹이며 급진좌파를 비난했다. 아마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에서 배제하자는 좌파의 주장이 못마땅했던 듯하다.

이처럼 버전은 다양해도 야권연대 찬성론자들은 모두 진보정치의 우경화를 주장한다. 그래서 야권연대를 진지하게 추진하면 진보진영의 당면 투쟁 건설에 방해가 된다.

재보선 직후 양대 노총과 야3당이 공동 발의하기로 한 노조법 재개정안에는 ‘손배가압류 제한’과 ‘필수유지업무 폐지’ 같은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안들이 빠졌다. 민주당의 반대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파업권을 크게 제약해 왔고 정부와 기업주들가 노동자 저항을 억누르는 중요한 무기가 돼 왔다. 당장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현대차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그런 점에서 급진좌파들이 메이데이를 계기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의 민주대연합 노선 비판 목소리를 높인 것은 적절했다. 문제는 진보대통합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염원을 반영해 진보대통합 논의에 참가하면서 우경화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야권단일화의 성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선거 직후 작성한 내 글을 보시오. 그리고 그동안 진보진영 안에서 기본적인 합의는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이 아니라 노동이 주인되는 세상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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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7월 28일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에서도 6ㆍ2 지방선거 때와 같이 한나라당이 참패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이명박 정부가 선거에서 지고도 대중의 의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열망은 더 커지는 듯하다.

정부는 ‘4대강 죽이기’ 공사를 강행하고, 상속세 폐지를 운운하는가 하면, 참여연대와 한국진보연대를 마녀사냥하기도 했다.

물론 이명박의 반동 엔진이 약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집권당 내부 분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이재오가 당의 도움 없이 혼자 선거를 치르겠다며 선을 긋겠는가.

한나라당이 이번 재보선에서도 패배한다면 이명박의 레임덕과 여권 분열은 더 가속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6ㆍ2 지방선거 때처럼 범야권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이런 흐름은 이명박의 오른팔이던 이재오에 맞서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사회당)이 모두 후보를 낸 서울 은평 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민주당이 이번 재보선 8곳에서 모두 사실상 양보를 거부하고 있는데도, 서울 은평구 시민단체ㆍ촛불모임 등 주민 수백 명이 서명해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사회당)의 단일화를 공개 촉구했다[각주:1].

오른팔

“[이재오의 지역구라는] 상징성이 있[으니] … 대의를 생각해 야권연대를 성사시켜 달라”는 주문이다. 물론, 이들 다수는 “동의할 수 없는 후보”를 낸 민주당에 불만을 털어놨다[각주:2].

이런 불만에는 민주당을 향한 뿌리 깊은 불신도 깔려 있다.

광주 남구에선 시민사회단체들이 야 4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을 모아 오병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비민주당] 시민사회 단일후보”로 내세웠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사실상 집권당 노릇을 하며 문제를 일으켜 온 민주당에게 이번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말라고 요구한 바 있다.

반이명박 정서 속에서도 존재하는 민주당 불신 정서는 민주당이 자초한 것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복지를 말하지만 부자 증세를 말하지 않고, 4대강 반대를 말하지만 4대강에 찬성한 후보를 공천하며, 반MB를 말하지만 일관되게 이명박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이런 모순은 기업주들의 당이라는 근본 성격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고쳐질 수가 없다.[각주:3]

그래서 지방선거 직후 집권당의 패인을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잘해서’라는 사람은 2.4퍼센트에 불과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이번 재보선을 진보 단일화와 독자 완주를 통해 독자적 진보 대안을 건설할 기회로 삼는 게 현명하다.

진보 후보들이 의미 있는 득표를 해야 이명박 정부와 기성 정당들에 진정한 압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반MB 야권 단일화로 민주당을 당선시켰다가 그들이 이명박 정부와 타협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민주당의 10년 집권 경험이 바로 이것 아닌가.

진보 후보가 진보적 주장을 날카롭게 펴고 의미 있는 득표를 했을 때, 누가 당선하든지 진보의 만만치 않은 힘을 의식해 함부로 공격이나 배신을 하기 쉽지 않아질 것이다.

그동안 반MB 민주연합 때문에 민주당에 정치적으로 의존한 결과, 진보진영은 이명박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에 맞서 일관된 투쟁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부터 반년간 민주당을 추수하며 독립적 투쟁을 미루다 통과를 막지 못한 타임오프제가 대표 사례다.

압력

그래서 설사 당선 못 하더라도 진보 후보의 의미 있는 득표가 장기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독립적 진보 정치대안 건설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더 많은 지지를 얻을수록 이런 미래를 더 앞당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당 금민 후보의 진보 단일화 논의 제안에 응하겠다는 이상규 후보의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마침 진보신당도 은평에서 진보 단일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단일화를 촉구했다.

서울 은평 을 사회당 금민 후보 개소식. 진보 단일화를 하려면 민주노동당이 먼저 반MB 단일화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진보 단일화’가 맞다. 이명박 정부에 맞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민주당·국민참여당이 아니라) 두 진보 후보 사이에 커다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권 혁신이 아니라 야권 교체"(금민)라는 말이 호소력 있다.

두 후보는 정부 재정을 통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나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 등 진보적 정책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고통전가에 반대하는 진보적 가치와 운동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범야권 단일화 미련을 버리고 은평에선 진보 후보 단일화에 나서고, 유일한 진보 후보가 된 나머지 세 곳에서는 독립적 진보 대안 건설을 위해 완주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유감스럽게도 “어떤 살신성인 다해서라도 야권연대 만들어 내야한다”며 또다시 반MB 야권 단일화에 매달리고 있다.

반MB 야권 단일화를 위해 “살신성인”까지 하겠다면서 동시에 “이제는 민주당이 양보할 차례”라고 매달리는 것은 구차하게 보이기도 한다[각주:4]. 정책과 정치 노선을 우선해야 하는 진보정당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다.

이 같은 ‘민주당 양보론’을 두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시장에서 … 흥정하는 것처럼 비춰”진다고 비판했다.

행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또다시 민주당과 단일화를 추진하려 하면 진보진영 전체로부터 흔쾌한 지지를 받기도 힘들 것이고 진보대통합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수도권에서 진보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과제도 더욱 멀어질 것이다.

사회당도 “민주노동당의 [6ㆍ2 지방선거 방침에 관한] 책임 있는 평가와 성찰”을 후보 단일화 협상의 ‘조건’으로 내걸거나 자당 중심의 단일화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각주:5]. 협력적 논의를 거부하는 것 같은 이런 태도는 진보 후보 단일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레프트21> 36호에 실린 내 기사를 거의 원문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원문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8391  
관련 기사: 김세균 서울대 교수의 진보대연합론 단상(短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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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국 이 모임은 결렬됐다. 민주노동당 선본 관계자는 중앙 시민단체가 주도한 협상도 실패했는데, 지역 단체들이 요구한다고 되겠느냐고 논평했다. 쟁점이 민주당의 양보 문제였기 때문이다. 즉, 이말의 뜻은 전국 단위 조정도 거부하는 민주당이 은평 하나에서 그냥 양보하라는 말을 수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여기에는 좀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후보를 바랐던 사람들의 불만과 해당 지역 위원장의 출마를 바라던 내부 불만(그 흔한 공천 파동)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그래서 진보진영이 민주당과 하는 연합을 정당화할 때, 자신들의 모순을 감추려고 민주당이 변화가능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일종의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이 사실이 되는 길은 민주당에게 아주 작은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민주당을 견인하겠다는 진보진영의 말문만 막히게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4. 앞뒤도 안 맞아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살신성인은 자기가 죽겠다는 뜻인데, 민주당에게 양보하라는 말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본문으로]
  5. 이와 같은 내용의 질문에 사회당 관계자는 단일화를 요구한다고 민주노동당의 민주대연합 방침에 입 다물 수는 없지 않냐고 답했다. 약간 동문서답인데, 비판하지 말하는 게 아니라 단일화 협상의 '조건'인 것이 실효성 있냐는 질문이었다. 이 동문서답에서 사회당이 연대연합(공동전선) 전략전술에서 발전이 더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조건을 걸면, 연합의 필요성 호소보다도 연합 상대를 불신한다는 것부터 드러내는 셈이 되고, 사실상 실현가능성도 없다는 점에서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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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관련 기사: 지방선거, 반MB 민주연합, 좌파

4+4 협상회의가 420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기도지사 경선 방식 이견으로 결렬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이상규 서울시장 후보와 안동섭 경기도지사 후보는 4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심판 이외에는 그 어떤 선택도 있을 수 없[]”며 반MB 연대 협상의 재개를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대연합이 모든 판단의 우선 순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공공연맹 등이 주도해 구성한 진보서울연석회의에서도 이상규 위원장은 ‘범 야권 단일화’를 포함시키라고 강요했다.

울산에선 민주당 등과 협상으로 단일화를 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에겐 경선으로 단일화하자고 해 사실상 진보 후보 단일화 노력을 회피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진보대연합을 전략적 과제로, 민주대연합을 전술적 과제로 설명하며 둘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다. 결국 민주대연합이 전략적 과제로 될 거라는 <레프트21>의 경고가 옳았다는 게 당사자들의 실천으로 증명됐다.


비판 없는 지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은 한술 더떠 “반MB 연대는 기존 진보진영의 대통합과 함께 새로운 진보대연합으로서 동일한 위상의 전략적 과제”라고 주장한다.(<진보정치> 463, “MB는 옛 ‘비지[비판적 지지]’인가”)

민주대연합이 사실상 민주노동당의 ‘집권 전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최 소장은 민주당을 미화하면서까지 당권파의 “묻지마 반MB 연대 올인”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최 소장은 “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 연합 노력은 …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치와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최 소장의 말과 달리 과거의 ‘무비판적 지지’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1987년과 1992, 아직 노동운동이 독립적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냉전 우파 정부의 집권을 막으려고 자유주의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비판적 지지’ 자체가 아니라, 그 지지가 자유주의 야당을 향한 ‘비판 없는 지지’였다는 데 있다당시 정치 무대에서 진보진영은 자유주의 야당의 지원 부대 구실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본가 야당과 전술적 제휴를 하더라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전략적 동맹으로 추켜 세워선 안 된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동맹은 악마 자신, 악마의 할머니 … 와도 체결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우리의 손발을 묶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각주:1]

이 비유를 빌어 표현하면, 최 소장의 주장은 ‘대중에게 악마를 천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손발을 묶을 것이다.’ 미화가 성공할수록, 그래서 연합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수록, 악마가 본색을 드러낼 때 대처할 능력은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려 자본가 당들과 연합 정부를 꾸린 서유럽 공산당들이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다 노동운동을 정치적으로 마비시켜 결국 파시즘에 권력을 내준 경험을 곱씹어야 한다.


진보의 단결

한편, 진보신당이 “묻지마 반MB 연대”를 비판하면서 5+4 협상회의에서 빠진 뒤, 진보적 “반MB 대안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진보신당의 행보는 전혀 일관되지가 않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민주노총 집회에서 “진보대연합을 적극 추진할 테니 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진보신당 대표단은 ‘진보정당 통합 의지를 밝혀 달라’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거절했다.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진보선거연합’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주로 유시민과 김진표를 겨냥해 “이기는 단일화”를 하자고 한다.

광주에서 반민주당연합을 외치던 윤난실 광주시장 후보는 민주당 예비 후보들과 금호타이어의  '노사 상생 구조조정'을 위한 중재를 하려다 민주노총 광주본부의 항의를 받았다.


사실 진보신당 지도부는 민주대연합을 위한 5+4 회의에 처음부터 참여했다. ('진보의 재구성'을 핑계로 대며[각주:2]) 민주노동당의 “진보대통합”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직후였다. 결국, 지금의 군색한 처지는 진보정당들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진보 양당이 모두 야권 단일화 협상에 참여하자, 진보대연합 논의도 힘을 잃었다. 310일 강기갑 대표와 노회찬 대표가 만나 “진보대통합 원칙”에 합의했지만, 진척은 없었다.

진보 선거연합이 부진하다 보니, 대중의 반MB 열망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 심판론으로 많이 기울었다. 진보정당 지지층 안에서도 반MB 범야권 단일화에는 찬성하는 비율이 70~80퍼센트를 넘는다.(새세상연구소 412일 발표, R&R 의뢰)


물론 이명박 정부가 어렵게 쟁취해 온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고 생활 수준을 하락시키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한나라당을 패퇴시키고 싶어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비판적 투표

그러나 반MB 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반대 경우보다 재집권이 힘들겠다는 안도감은 갖겠지만, 그것이 곧바로 탄압의 중단이나, 대중이 바라는 개혁의 성취를 뜻하지는 않는다.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진짜 열쇠다. 이 점이 독립적 진보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과제가 더 중요하며, 선거에서 두 노동자 진보정당들이 분열하는 게 잘못인 이유다

보수 양당 체제를 벗어나 진보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게 더 중요하다. 비록 진보 선거연합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진보정당 후보가 출마한 곳에선 진보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양당 후보가 경쟁하면 단일화를 요구하고, 안 되면 둘 중에서 더 나은 후보에게 투표하면 될 것이다.

진보 후보가 없는 곳에선 민주당 등의 개혁적 후보를 향한 ‘비판적 투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정책상 차이는 별로 없지만, 민주당이 이긴다면 적어도 광범한 노동자들의 사기 저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 승리 후 민주당도 경제 위기 등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정부의 노동자 공격에 동조할 개연성이 있다. 그럴 경우 민주노동당의 반MB 민주연합 노선은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1. 트로츠키 본인은 1917년 8월에 코르닐로프라는 우익 장군의 반혁명 군사 쿠데타에 맞서 케렌스키 임시정부와 군사 연합을 맺었다. 그와 볼셰비키는 케렌스키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고, 쿠데타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반동을 막을 힘은 불철저하고 동요하는 임시정부에 기대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노동자들 스스로 혁명을 전진시키는것임을 실천으로 증명했다. 두 달 뒤,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정부가 러시아에서 등장했다. [본문으로]
  2. 진보신당이 창당 때 내세운 '진보 재구성'은 당시 이념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존재하던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정치연합이 아니라 당 형태로 그 공백을 메우려니 당 자체가 우경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크게 받았다. 결국 분당으로 세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이 공백을 메우거나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참당 창당, 엔지오들의 민주당 지지 돌변, 민주당의 진보연 등 악재 때문에 오히려 군색한 처지로 몰렸다. 민주노동당이 좌파민족주의와 스탈린주의가 혼합된 제3세계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면, 진보신당은 서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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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묻지마” 야권 단일화에 갈수록 집착하고 있다. 5+4 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4+4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진보신당을 빼고 야권 단일화에 합의했다. 안동섭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4월 1일 유시민과 ‘손 맞잡고’ 민주당에 단일화를 촉구했다. 광주·전남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연대를 회피하며 4+4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진보 후보 단일화엔 별 열의가 없다. 그 탓에 ‘진보진영 2010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서울 연석회의’(진보서울연석회의)가 서울시의원 후보 둘을 단일후보로 선출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양 손에 쥘 수 있는 떡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는 걸 민주노동당 지도부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 안에서 반발도 만만치 않다.

3월 21일 서울시장 후보 선출에선 이상규 서울시당 위원장이 단독 등록했는데도 65퍼센트밖에 지지를 얻지 못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이 후보가 반MB 야권단일화를 노골적으로 추구한 데 따른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권영길 의원도 3월 30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진보신당 사이에서 ‘그래도 단일화 해야 한다’고 홀로 외치[는] … 이런 구도는 잘못된 구도”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과 한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중앙대의원인 이호성 씨(한국노총 조합원)는 민주노동당의 선거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과 연합해서] 구청장이나 지방의원 몇 석 차지해도 [정체성은] 더는 ‘민주노동당’이 아닙니다. 당선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겁니다.”

잘못된 구도

박금석 전 지부장 직무대행을 민주노동당 경기도의원 후보로 출마시킨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고동민 조합원은 민주노동당의 선거연합 방침으로는 계급 투표를 조직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 평택시장 후보는 과거 시장 시절, 지역의 노조를 탄압한 잡니다. 한나라당에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을 놓고 [시장 후보를 내 주고 시의원 단독 후보를 보장받는] 단일화 논의를 하면 조합원들에게 계급 투표를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3월 31일 현대차 4공장 차체4부 조합원들의 회식 자리를 방문한 민주노동당 김창현 울산시장 후보는 스스로 “반응이 썰렁하네요” 하고 말해야 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조합원 다수가 “진보가 둘이 나와 될 게 뭐 있노. [따로 나오면] 투표 몬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반MB’ 정서를 내세우며 민주대연합을 정당화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를 향한 반감은 아주 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패퇴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선거연합을 정당화할 순 없다.

윤태석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반MB는 맞다고 볼 수 있는데, 의료 민영화 등을 추진했던 민주당이 반MB 동맹을 할 만한 정당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고 말했다.

탄압이 심한 철도노조의 청량리역 연합지부 유균 지부장도 “민주당은 철도가 민주노조를 띄울 때부터 투쟁만 하면 탄압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죽어도 찍기 싫다”고 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을 피하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작에 진보대연합을 적극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두 당은 말과 달리 실천에서 진보대연합은 실종됐다. 진보신당은 5+4도 탈퇴했지만, 진보연합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한 전교조 활동가는 “한나라당 패배에 ‘묻지마’ 기대감을 갖게 되는 건 대안세력이 부실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대안이 없으니 기대감도 크지 않고 ‘안티’에만 집착하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지방선거 방침도 다소 모호하게 결정됐다.

민주노총은 3월 2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진보정당 통합을 대중적으로 책임 있게 공식화하는 정당의 후보” 중  지지 서약서를 쓰고 단일화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결정했다.

진보정당들의 단결을 바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지도부도 이 결정을 수용했다.

그러나 “‘반MB연대 단일후보’”도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다면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연합한 후보가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신당이 독자 출마한 선거구에서 민주노총은 누굴 지지할 것인가.

쌍용차지부 고동민 조합원은 이런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 선거연합은 총선·대선을 보고 하는 건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재미 보면, [계속 이 구도로 갈 텐데] 대선 때까지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 진보정당에게 선거는 계급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는 것 아닌가요. 지금 거꾸로 간다는 느낌이에요.”

한 공무원노조 활동가는 하루 빨리 진보 양당이 진보의 원칙을 지켜 단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정당들이 선거에 따로 나오는 건 이혼한 부모들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 단결해 싸우는 게 제일로 중요한 때다. 공무원노조도 나눠졌다가 다시 합쳤지 않나.”

진보정당들은, 특히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에서 노동자들을 분열·약화시킬 선거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의 재통합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이 글은 <레프트21> 29호에 실린 기사를 좀더 보충한 글입니다.

현장 조합원들이 민주노동당의 반MB연대를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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