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 달여의 과정은 국정원 규탄 촛불운동의 가능성과 더불어 한계와 약점도 보여 줬다.
우선, 강성 우파인 박근혜 정부를 임기 첫 해부터 궁지로 몰기에는 운동의 규모와 폭이 아직은 충분치 않다. 박근혜 지지율도 크게 낮아지진 않고 있다. 이명박은 2008년 촛불항쟁이 1백만 명 규모로 성장하면서 지지율이 7퍼센트 대로 급락한 바 있다.
물론 박근혜의 복지와 경제 민주화 공약 철회, 노동자 지갑에서 돈 꺼내 부자와 재벌을 도우려는 세제개편 사기극, 전월세 대책 사기극에 대한 분노가 물밑에서 자라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불만을 더 키우고 거리로 끌어내려면 촛불 운동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만의 결집점이 돼야 했다. 실제로 철도 민영화, 쌍용차 해고, 비정규직, 진주의료원, 공무원노조 등 다양한 의제들이 촛불 속에서 환영 받았다.
그런데 이 촛불운동을 이끌어 온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이런 과제 수행을 한사코 꺼려왔다.
운동에 참가하는 대중의 자발성도 아직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통제력을 넘어설 정도가 아니다. 이런 한계 때문 속에서 시국회의 내 NGO 지도자들은 촛불운동이 민주당이 설정한 한계와 틀을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려 해 왔다.
문제는 이런 방향을 통합진보당이나 한국진보연대 등 시국회의 내 주요 노동·민중운동 단체들도 묵인·동조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 역시 최근 수 년간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전략에 기초한 야권연대 노선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NGO지도자들을 뒤따르며 민주당과 공동보조를 취하는 데 중점을 둬 왔다.
이런 한계와 약점들 때문에 촛불운동은 국정조사 마무리 이후에 방향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음모 사건’을 국정원이 터트린 것이다.
개혁•해체의 대상으로 지목된 국정원을 전면에 내세워 탄압을 벌이는 것은 이 정권의 뼛 속 깊은 반동 DNA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는 촛불운동의 약점과 틈을 겨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운동이 해야 할 일은 이런 박근혜의 반동적 도발에 반대해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탄압에 대한 대응 문제에서 촛불운동은 분열해 있다.
많은 이들이 ‘범죄집단 국정원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올바른 입장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진보당 때문에 우리까지 종북•내란 동조 세력으로 매도당하게 생겼다’며 진보당을 촛불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 문제는 시국회의 지도자들이다. NGO 지도자들은 이 사건과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고 한다. 시국회의가 공안탄압 반대 입장을 채택하는 것마저 부담스러워했다.
‘통합진보당 탄압 건과 촛불운동의 국정원 개혁 요구는 별개’라며 이와 무관하게 촛불을 계속 들자는 주장도 편다.
이처럼 공안탄압 반대를 회피하는 논리는 의도가 무엇이든 스스로 운동의 정당성을 허물고 자기 발등을 찍게 된다.
국정원의 공안탄압에 침묵하거나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국정원의 국내 수사권을 폐지하라고 요구해 온 그동안의 주장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 공작이 “정당한 대북심리전”이라는 저들도 억지도 제대로 반박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이런 탄압에 맞서길 회피해버리면 ‘어떤 사상·단체는 안 된다’는 자기 검열이 운동 안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면 운동은 더 사분오열할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정책을 밀어불이려는 저들은 진보당과의 연관을 빌미로 철도노조, 전교조 등으로 탄압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또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다른 진보정당들과 박원순 등으로도 마녀사냥을 확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국회의가 진정으로 촛불의 단결을 바란다면, 논쟁을 각오하고 국정원의 공안 탄압에 반대하며 촛불운동을 마녀사냥에 분명하게 반대하도록 이끌려고 해야 한다.
국정원이 중심이 된 저들의 총체적 정치 공작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므로 국정원 게이트를 규탄해 온 촛불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운동의 애초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고 잘못된 사상이더라도 그 자유는 옹호돼야 한다.
더불어 촛불운동은 쟁점을 확대해 박근혜의 온갖 반동적 정책에 맞서는 더 많은 사회세력과 함께하려고 해서 저들의 고립·분열·약화 시도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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