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이 정의기억연대 폭로 릴레이에는 분명히 운동의 상징적 인물들간 갈등을 이용해 위안부 운동의 대의명분과 위신에 생채기를 내려는 역겨운 의도가 보인다. 당연히 이에 동조할 순 없다. 윤미향 씨가 의혹을 진지하게 해명하지 않는 것과 별개다. 그가 아무리 대표적 인물이라도 위안부 운동은 그 개인의 도덕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윤미향 씨와 정의연 현 집행부의 해명 방식은 황당하다. 자신이 아무리 그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해서 자신과 자신의 단체 운영 과정에 대한 의혹 모두를 친일 세력의 반격이니 운동 자체를 파괴하려는 공세라고 치부하는 건 좋게 봐 주기 어렵다. 운동을 방어해 주더라도 회계 문제는 자신들이 납득이 가도록 해명할 문제다.
그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혼자만인 것도 아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지만, 문제제기한 이용수 할머니는 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 아닌가?
문제의 본질은 운동을 대표하던 사람들끼리 정치적 방향성을 놓고 갈등과 분열을 낳은 것인데 그 문제는 지금 어디 있지? 문재인 정부가 전혀 문제 해결을 진척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급조된 문재인당의 의원이 된 것의 문제 말이다.
과연 그는 그 운동을 대표해 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운동의 주요 구성원들과 민주적 소통을 통해서 운동을 대표할 의원으로서 활동상과 목적과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쳤는가.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이뤄졌는가? 왜 부도덕한 위성정당 의원인지는 토론됐는가? 나는 그런 것이 이 갈등의 진정한 배경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박근혜 정부의 한일 합의시 정부와 정대협의 소통 문제도 현 정부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일 합의 과정 전반의 진실을 밝혀낼 주체는 문재인 정부이니 말이다. 지금 같은 구도로 봐서는 2017년 문서로 윤미향을 방어하는 것은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정신대와 위안부 문제를 뒤섞었다는 것도 일리 있는 지적인데, 입을 다물고 있다. 개인 의혹 해명에서 말이 바뀌는 건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운동이 일개인 지도자의 업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면, 운동의 대의명분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털 건 털고, 해명할 건 해명하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방어하고 무엇을 계승하며, 무엇을 앞으로 해 나갈지도 더 분명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쟁점은 어디로 가고, 우파의 속보이는 위선적 폭로 몇 개를 면피 삼아 슈퍼 여당과 진영논리에 줄선 세력들의 도움을 얻어 당연히 해명해야 할 문제들까지 덮어 버린다. 대의에 대한 방어와 운동의 사유화와 진영논리, 피해자중심주의의 이율배반이 혼란스럽게 동거한다.
이 국면에서 엔지오 운동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방식을 보면, 운동 지형이 전반적으로 함께 우향우 해 온 것이 느껴진다. 엔지오 개혁주의는 이제 과거와 같은 진보의 아우라를 잃었다. 그러나 민주당을 진보라고 부르듯이, 주류 양당 간 진영 대결(논리)를 진보 대 보수라고 부르는 걸 고착화시킨다면, 진보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 기의를 변질시킴으로써 기표를 고수한 사례가 되겠다. 그런 일이 여당과 언론의 도움을 얻어 가능하다는 것만 봐도 세상을 달라졌다. 급진적 반제국주의 정치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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