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위기 직전까지 가던 집권당이 총선을 코 앞에 두고 기사회생해 반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입맛이 쓰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의 모습은 “이명박근혜”당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박근혜는 2월 13일 “한미FTA에 반대하는 세력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야당이야말로 심판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17일 새누리당은 노무현의 딸 노정연의 미국 주택 구입자금 출처 수사를 촉구했다. 27일 총선 공천 1차 명단에는 ‘친이 실세’ 이재오를 포함시켰다.
이런 움직임이 좀처럼 탈출구를 못찾던 이명박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명박은 22일 ‘3월 15일 한미FTA 발효’를 발표했다. 25일 취임 4년 기자회견에선 “복지는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며 ‘복지망국론’을 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대중의 복지 확대 요구에 어깃장만 놓은 것이다. KTX 민영화 카드도 꺼내 들었다.
집권당의 우파적 반격을 배경으로 법원은 23일 왕재산 사건에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27일 노정연의 비자금 수사 개시를 선언했다.
이런 이명박과 박근혜의 관계 변화와 공격적 상황 대처가 새누리당의 기사회생을 뜻하는 것일까. 이들의 쇄신사기극이 성공한 것일까.
일단 2월 하순부터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하락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이다. <한겨레>의 최신 조사에서는 두 달 만에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민주통합당을 10퍼센트나 앞섰다. 정당 쇄신 신뢰도도 새누리당이 더 높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올해 총선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응답이 49.2퍼센트였고,
56.7퍼센트는 새누리당이 ‘기존
한나라당에서 거의 변한 게 없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떨어진 것이
일부 회복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런 흐름에서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박근혜가 ‘좌클릭’ 시늉으로
노리던 산토끼들은 거의 쇄신사기극에 속지 않았다.
그들의 변할 수 없는 본질.
둘째, 따라서 와해와 추락 직전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숨 쉴 틈을 얻고 지지세를 부분 회복한 것은 새로운 지지층의 유입이 아니라 기존 보수 지지층의 재결집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최근 옛 친박연대와 합당했고, 자유선진당과 박세일 신당에게는 선거 연대를 제안했다.
박근혜는 웬만해서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여의치 않다는 게 드러나자, 일단 이명박 구하기를 통해보수의 분열을 막고 집토끼를 확실히 잡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새누리당은 보수층 결집을 위해 조용환 헌법재판관을 부결시키고,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를 쟁점으로 삼아 국회 결의안까지 이끌어 냈다. 박희태 수사를 무마한 검찰이 난데 없이 노무현의 딸 비자금 수사를 시작하는 것도 우파는 결집하고, 안그래도 친노와 구 민주계가 다투기 시작한 민주통합당은 분열시키겠다는 꼼수다.
셋째, 이렇게 새누리당이 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민주통합당은 최악의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의 묶인 손을 풀어줬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주류 양당 구조를 복원해야 반MB 반사이익을 독점할 수 있다고 본 듯하다.
지난해 말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 바람 등에서 명확히 나타난 것은 노동계급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한 반한나라·비민주당 정서였다. 한미FTA반대 투쟁이 한창일 때도 거리의 여당은 옛 민주노동당, 즉 지금의 통합진보당이었다.
민주통합당은 이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흡수하면서도 진보정당 지지로
발전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NGO와
한국노총 지도자들을 끌어들여 ‘좌클릭’ 시늉을
하면서도, 디도스
사건으로 정권이 최악의 위기에 몰렸을 때 오히려
FTA 반대
장외 투쟁을 접어 버렸다.
한나라당과 석패율제에 합의한
것도 주류 양당 구조 복원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27일 선거구 개편으로 피해보는 곳
중 통합진보당 지역구 의원이 두 명(강기갑·김선동)이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인 것은 통합진보당 등 진보진영이 민주당과의 공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스스로 투쟁을 자제한 것은 좋은 기회만 보내버린 것이다. 결국 민주통합당이 한나라당을 떠받쳐주고, 그런 민주통합당을 진보진영이 도와주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의 위기가 근본에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사상 최대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일어난 유례 없는 정치 위기를 겪으며 한국 지배계급의 내분이 심화됐으므로 이 내분이 쉽게 가라앉을 수 없는 것이다.
당장 이재오 공천을
둘러싸고 공천위원회와 비대위 간에 공개 갈등이
불거졌다. 결과에
불만을 품은 김종인 등은 “박근혜 위원장의 태도가
굉장히 모호하다”며 비대위 해산까지 언급했다. 또 검찰이 건드리다
만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리는 여전히 시한폭탄이다.
박근혜는 여전히 집권당에서 이명박의
겉포장지라도 뜯어내는 시늉을 해야 한다. 지역구에서 승산 있는 이재오는 살려 줘도 이동관, 나경원 등도 공천할 지는 두고 봐야 한다.(그다지 높지 않다.)
이명박에겐 이 위기의 원인을 해소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우파 결집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길밖에 없다. 그는 위기 탈출을 위해 친북 마녀사냥, 학교폭력과의 전쟁, 핵안보정상회의와 키리졸브 훈련 등을 통한 대북 압박 등으로 보수적 분위기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조직 노동자들을 대거 공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은 더는 선거심판론과 ‘묻지마 야권연대’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대중투쟁이 민주통합당을 왼쪽으로 동요하게 만들어 새누리당 복원의 한 축을 무너뜨려야 진보적 반MB 실현의 기회가 온다.
당장 MBC
노동자들의 파업이 KBS,
YTN 파업으로 발전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명백한 반MB 정치투쟁이
진보진영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투쟁을 연결하고
일반화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KTX 민영화 반대 투쟁, 여성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투쟁 등 우리 편이 뭉쳐서 싸울 기회가 열리고 있다. 투쟁으로 국면을 바꾸지 않으면
선거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기회를 놓치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여기저기 돌아서 원 출처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암튼 절묘한 아이디어였습니다.
□ ‘민누리통합당’의 정체성
‘정체성’을
공청 기준으로 삼겠다던 민주통합당은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에
“[이명박의]
한마디 한마디[에]
동화 … 아버지의 음성”이라던
인물을 추천했다. 지난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으로 옮겨 국회의원이 됐던 철새
이상민도 복당했다.
사실 공천심사위원회에 노영민, 백원우 등 한미FTA 폐기 강불파(날치기 반대 때 강 건너 불구경했다고 붙여진 이름)들이 포함된 것부터 비판 대상이었다.
경제평론가 선대인이 대표적 토건 정치인으로 공천 반대 캠페인을 했던 박기춘도 공천됐다.
이쯤되면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이 뭐냐고 물을 만도 하다. 언론마저 비판적이다.
<미디어오늘>은 “민주통합당이 ‘여당놀이’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손석희도 민주당을 공개 비판할 정도다. 27일에는 당내 경선단을 불법 모집하던 사람이 투신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겨레21>
“민주통합당 ‘재벌의 X맨’
기사에서는 “김진표를 원내대표로 뽑은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 의원들”이라며 “당의 전반적인 체질과
인식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눈치보기”가 만연한 풍토는 민주당의 진짜 정체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지배계급의 ‘플랜B’ 정당으로서 민주통합당의 숙명이다. 기성 질서 ‘안에서’ 플랜A, 즉 주류 본당이 제 구실을 못 할 때 그 구실을 대신하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이는 플랜B 정당에게는 주류 본당과 비교해 기층의 저항운동을 일부를 흡수해 외양을 포장할 수 있는 폭이 더 크고 그 역량이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는 걸 뜻하는데, 문제는 이런 식의 정권 교체가 주류 양당 구조 자체는 유지하면서 이뤄지는, 즉 지배계급 주류가 관리할 수 있는 ‘변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본성상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2중대 구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 자체도 핵심 기반은 지배계급 내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상대적 소수파, 비주류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민누리통합당이라는 비아냥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러나 민심 이반의 깊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살아나면 분열 위기에 빠질 것은 바로 민주통합당이다. 진보정당과 진보진영이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야권연대 협상이 아니라 기층의 분노를 동력으로 대중 저항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창당 초기 보수당에 맞서 자유당의 하위 파트너 구실을
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이후 노동 대중의 급진화 과정에 노동당이 부응하자,
존재감을 잃은 건 [노동계급에게서 표를 얻지만 실제 기반은 자본가계급과 상층 중간계급에 둔] 자유당이었다.
그 이후로 노동당이 집권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훗날 영국 노동당이 플랜B 정당의 구실을 하게 됐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집권이 늘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진보 지지 대중 다수의 염원을 감안하면 민주통합당의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후보들과 야권연대가 불가피하겠지만, 명분과 기준 없는 전면적 후보 단일화까지 수용할 순 없다.
☞ 이 기사의 주제와 관련된 <레프트21> 기사: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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