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쇠퇴하는 경제적 영향력을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으로 만회하는 전략을 추구해 왔다. 세르비아[각주:1],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인 야만적인 침략 전쟁은 이런 전략의 결과였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북한의 군사 위협을 과장해 ‘평화’의 유일 관리자를 자임해 왔는데 그 실상은 군사적 대북 압박이었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빌미로 일본(과 남한의 핵무장)을 묶어 두고,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했다. 군사대국들이 밀집한 동북아의 맞춤형 전략인 것이다[각주:2].


양국간 대화든 6자회담이든 매번 약속을 어기고 사태를 악화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북핵 위기 시작 이후 제네바 합의(1994)를 이행하지 않았고, 북미공동선언(2000)을 무시했으며, 9ㆍ19 공동선언(2005)은 바로 뒤집었다.
해외 계좌 동결, 북한 선박 임의 검색 등 경제 제재도 강화돼 왔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에 정전협정을 깨고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 온 적이 있다. 핵을 포함한 대규모 선제공격 훈련을 실시해 온 것도 미국와 남한 정부였다[각주:3]. 1994년에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이런 군사ㆍ경제적 압박이 북한 정권을 핵과 미사일 개발, 벼랑끝 외교[각주:4]로 내몬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반제국주의 저항으로 볼 수는 없다.


반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먼 북한의 군사적 대응

사회주의는 총과 미사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대중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핵심 수단은 말과 설득, 그리고 자신의 힘을 민주적적 사회 운영에 발휘하려는 집단적 행동이다. 폭력은 지배자들의 반동적 폭력에 맞서는 방어적 수단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소성의 기준을 벗어나는 대량살상무기는 사회주의의 방어수단이 될 수 없다.


첫째, 핵은 인류와 환경을 오염하고 파괴하며 폭격 지역의 인간을 절멸시키는 ‘대량살상무기’일 뿐이다.


따라서 방어적 억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변호도 명분이 없다. 약소국의 핵무장은 제국주의 핵 강국들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핵무기를 반대한다.

둘째, 군비 증강으로 강대국에 맞서려면 다른 분야를 희생해 가용 자원을 군사 분야로 최대한 집중시켜야 한다. 이 과정이 3대 세습 같은 권력의 초집중, 비민주적 억압의 강화, 노동계급 삶의 희생을 낳았다.

올해 김정일은 “[인민에게] 흰 쌀밥에 고깃국을 주겠다”고 한 아버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만성 식량부족국가가 돼 버렸다.

그 뒤 국제협상에서 북한의 요구 중 빠지지 않는 게 식량 지원이었는데, 정작 북한 정권의 우선 순위는 군비 증강에 가 있다.

결국 민중의 희생으로 군비를 늘리는 것은 북한 체제의 억압적ㆍ착취적 성격을 드러낼 뿐이다.

셋째,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북한은 진정으로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나라 안팎에서 모두 대중적 지지를 동원할 수 없다. 사실 북한 정권은 이에 관심도 없다.

대규모 살상무기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연평도처럼 군사 보복식으로 대응하면, 표적이 되는 상대 국가(남한)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민중에게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각주:5]. 남한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매번 부딪히는 어려움이다[각주:6].

역설이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시도는 미국 제국주의의 동북아 개입을 정당화하고 일본이 재무장하는 명분을 쌓는 데 이용됐다. 남한 정부와 우익 언론도 이를 국내에서 억압적 조처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

반대로 체제와 정권이 진정한 개혁을 제공하면서 ‘세계적 반동의 보루’인 미국 제국주의와 맞서는 경우, 나라 안팎에서 진정한 반제국주의 대중 동원을 이룰 수 있다[각주:7].

이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제국주의 연합군을 물리친 배경이다[각주:8].


비슷한 예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반(反)차베스 우익 쿠데타를 세 번이나 후원했는데, 이들은 번번이 민중 저항에 직면해 실패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반제국주의ㆍ반자본주의 운동에 지지를 호소[각주:9]하다가도 한편에서 관료와 군부에 의존하고, 중국 같은 비서방 강대국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최근에는 핵개발을 선언했다.

이런 사례는 반제국주의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체제의 우선순위


제국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기업 경쟁이 국제적 규모로 확산한 결과다[각주:10]. 호전적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바꾸는 일은 자본주의를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목표는 제국주의 미국에게서 “체제 보장”을 받고 그 질서에 편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대응이 반제국주의가 아닌) 넷째 이유다.

김일성은 1994년 전쟁 위기 때 방북한 카터에게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고 말했고,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같은 언급을 김대중에게 전했다.

“철천지 원쑤”의 군대를 통일 후에도 수용한다는 것은 현재의 주둔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억압 체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할 수 있다는 의사 표시인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려는 바는 북한 정권이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는 한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의 군사 압박을 막는데 도움이 될 정치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립은 더 깊어질 뿐이다.
그러나 국가간 경쟁과 축적을 인민의 필요보다 우선시하는 체제와 정권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신화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 진정한 반제국주의 저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7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 http://www.left21.com/article/9048


  1. 1999년 나토군을 앞세운 폭격 전쟁. [본문으로]
  2. 북핵 위기 주범설은 완전한 위선인데, 미국은 훨씬 더 파괴력이 큰 핵무기를 1만 6백 기나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 이스라엘 같은 호전적 우익 국가에게는 NPT에 가입하지 않고 핵무기 1백여 기를 보유하는데도 절대 제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지지했다. [본문으로]
  3. 연인원 20만 명이 참가하며 한미 육해공이 모두 [본문으로]
  4. 이른바 벼랑끝 외교가 남한 지배자들의 제국주의 추종 외교보다 자주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북한 정권이 미국에게 벼량으로 내몰린 상황에 있다. 북한이 능동적으로 벼량으로 간다는 것은 친제국주의 세력과 언론이 한반도 위기 주범을 북한으로 몰고가려는 술책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진영의 자주파는 북한 정권을 미화하려는 의도 때문에 이 술책에 무비판적이다. [본문으로]
  5. 베트남 전쟁 등 여러 사례를 봐도 약소국 민중의 민족해방투쟁이나 제국주의의 간섭에 부딪힌 제3세계의 진보 정권들에게는 제국주의 본국 민중운동의 지지가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본문으로]
  6. 미국의 대북 압박이 원흉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면, 흔히 남한 민중 전체를 겨누는 북한의 핵무기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악의적 반론에 부딪히곤 한다. [본문으로]
  7. 북한이 민중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제공하는 정권이라고 상상해 보자. 미국의 군사적 대북 압박에 저항하는 여론을 이끌어 내고, 저항 운동을 건설하는 일은 매우 쉬워질 것이다. [본문으로]
  8.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뒤이어 독일에서 제정이 타도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열강들은 14개국 연합군을 꾸려 러시아의 반혁명 백군을 지원하며 혁명 러시아를 침공했다. 만 3년의 내전은 러시아혁명의 조건을 더 어렵게 만들긴 했지만 열악한 무력에도 혁명 러시아의 군대는 말과 설득을 앞세워 승리했다. 전투 전에는 적국 병사들에게 선동 연설과 유인물이 배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곳곳에서 전투를 거부하는 연합군 병사들이 생겨났다. [본문으로]
  9. 차베스가 2005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한 것이 한 예다. 당시 연설장소인 체육관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모인(유럽과 우리 같은 아시아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급진적 청년 수만여 명은 차베스의 연설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본문으로]
  10. 기업주들은 경제적 경쟁자든 아래로부터 저항이든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과 이윤에 대한 도전자들에 대처하는 데 국가의 힘을 빌린다. 이들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약소국에게는 국가를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교역 조건을 강요하고, 선진국끼리 무역분쟁 때도 국가간 경쟁이 촉발된다. 제국주의는 세계자본주의의 오늘날 이름이다. 그래서 진정한 反제국주의는 反자본주의여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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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의 주요 지도자와 원로 들이 11월 30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각주:1] 선언문은 “주변국들의 대화”를 촉구하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협의”와 “6자회담 재개”를 평화적 긴장 해소 방안으로 주장했다. 

시국회의 참여자들이 반공적 냉전주의를 부추기는 주류 지배자들과 언론을 거슬러 ‘평화적’ 대응을 촉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어떻든 평범한 민중에게나 저항하는 민중에게나 국가간 평화 상태가 긴장과 전쟁 상태보다 낫다. 

평화를 바란다면 지금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하듯 무력 대응을 강화해 군사 긴장을 높이는 방식의 대응에 마땅히 반대해야 한다. 대결보다 ‘대화’를 촉구한 것에 1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럼에도 “6자회담”과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실제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해소되진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이 제안들은 안타깝게도 남북한 국가와 주변 강대국들에게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참가국들은 세계 최상위 그룹의 군사강대국들이다.

그중에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온갖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평화를 파괴해 왔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 유일한 핵무기 실전 사용국인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게 핵 공격 위협을 멈추지 않아 왔다. 미국은 냉전 후 약해진 경제력 대신 경쟁국과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해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조지워싱턴 호.

이런 미국에게 이 지역 패권은 세계 패권 전략의 일부다. 워낙 군사 강대국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 전략의 충실한 동맹자들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해 자신의 주도 하에 ‘북한 위험’을 관리해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려 해 왔다. 한·일의 미국 의존성을 유지하며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오히려 북한을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며 자기 영향력 아래 넣는 것에 더 열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고 침략과 간섭을 불사하는 호전적 국가다. 

이 강대국들이 각자의 영향력과 이권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이 6자회담의 본질이다. 이 나라들에 한반도 민중의 생존과 평화를 맡기자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박선원이 폭로한 내용, 즉 한반도 통일 후 중국에 북한 영토를 줄 수도 있다는 미국 관료의 발언은 조선 민중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들이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해방 후 미소 합의로 말미암은 강제 38선 분단을 연상시킨다. 

사실 이번 위기 자체가 6자회담이나 합의문으로 군사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다. 

평화 수단

2003년 시작한 6자회담이 지난 7년 동안 거둔 주요한 성과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각주:2]과 2007년 2ㆍ13 합의[각주:3] /10ㆍ3 합의였[각주:4]. 이 합의들 모두 미국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발목 잡힌 상황에서 북핵 폐기와 그에 따른 보상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보여 주는 바는 이 합의들이 휴지 조각이 됐다는 것이다. 합의들을 먼저 어긴 건 언제나 미국 행정부였다. 우리가 결코 핵무장을 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볼 순 없지만, 북한의 핵개발 시도 자체는 소련 붕괴 후 미국의 군사위협, 그리고 그 뒤 제네바 합의 위반[각주:5]의 산물이다.

9ㆍ19 공동성명에 기대를 걸고 있던 일부 진보진영에게 고(故) 리영희 교수는 “합의문의 문구 자체는 우리가 바라던 바다. …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제적인 조약이나 합의를 지킨 사례가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로 미국은 휴전협정을 어기고 한반도에 핵무기를 (맨 처음 그리고 몰래) 들여 온 당사자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도 마찬가지다. 경제 협력이 군사 경쟁을 막진 못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서유럽 국가들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국가이며 교역량도 매우 큰 나라인데도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최대 수출/수입국인 중국이 됐는데도 연평도 훈련 문제 등으로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남북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협력해 운영해 왔지만 군사 갈등을 막지 못했다.

6·15정상회담 2년 뒤 벌어진 서해 교전도 한 사례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을 하며 서해에선 1차(1998)보다 더 격렬하게 해상 전투를 벌인 것이다.

긴장의 주범인 강대국들이나 그 위계체제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가 평화를 위해 움직이길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2002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은 수렁에 빠졌다. 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군사적으로 아주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이런 사태 전개는 2002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강력했던 국제 반전운동 없이 설명할 수 없다. 강대국과 한국 정부(또는 북한 정부)에게서 독립적인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이 글은 다듬고 축약해 <레프트21> 46호에 실렸습니다. 기사 주소는 http://www.left21.com/article/8994

  1.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YMCA, 한국진보연대, 민변, 민주노총 등이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3가지 요구 사항으로 △남과 북, 주변국이 즉각 대화에 나서고 △한반도의 긴장 해소 방안으로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이행할 협의에 나서야 하며 △6자회담을 즉각 재개해야 한다를 제시했다. [본문으로]
  2. 9ㆍ19 공동성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바로 그 회담의 종료 발언에서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경수로 건설을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동성명 채택 후에도 미국은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을 빌미로 대북 금융제재를 계속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았고,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지만 역시 이행하지 않았다. ※출처: http://www.left21.com/article/6202 [본문으로]
  3. 상세 해설은 http://www.left21.com/article/3873 를 보라. [본문으로]
  4.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의 1단계 실행조치 합의 같은 것인데, 2단계로서 2007년 같은 해 10·3 합의가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가 그다지 진전 있는 합의라고 보기엔 과거 합의의 재탕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북한이 소련 붕괴 후 위협 속에서 핵개발에 기대려 했다가 미국의 침략전쟁 직전까지 갔던 게 1994년 위기다. 김일성 사망 후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지만 미국은 북한의 원자로 폐기를 대가로 주기로 한 중유를 약속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단도직입[單刀直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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